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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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고이케 마리코씨는 1952년 생으로 1978년 [지적인 악녀의 권유]라는 에세이를

시작으로 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그 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시마세 연예문학상, 시바타 엔자부로상등

수 많은 상을 받으며

일본 작가들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도 글을 쓰는 작가로 한 집안에 두명의 작가가 있는 보기 드문 내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은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펜만 잡는다고 술술 나오는게 아니지 않은가.

대부분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인데,

한 집안에 그것도 남편과 아내가 글을 쓰는 작가라니 누가 들어도 앗 소리가 나오기

마련일것이다.

묘하게 라이벌 의식도 있을 것이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상도 받으며

서로에게 자극과 격려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쓰기위해 시골로 내려가 숲속의 집을 마련하고 자연 속에 뭍혀 살던 부부는

완성된 글을 상대방에게 건네며 평가를 받기도 하고, 까페에 앉아서 차한잔을 앞에두고

서로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에 대해서 얘기하며 부부로써, 동료로써 나무랄데 없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병마에 몸이 침탈 당하면서도 자신에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기도 한다.

얼마후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된 작가는

지독한 상실의 시간을 견디며 홀로 숲속 집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는 아내가 남편에게 바치는 사모곡처럼 느껴진다.

남편과 다정했던 한때를 회상하며 남기고 간 흔적들을 손으로, 눈으로 더듬어며

그리움과 애틋함을 글 마디마디에 새겨놓았다.






예전에 남편이 내동댕이쳤던 말들, 억지를 부려 화를 솟구치게 했던 말들을 이것저것 떠올려본다.

그때 그런 소리를 했었지, 이런 소리도 들었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두운 기억'이 몸집을 불려 나간다.

상실의 슬픔이 흔들흔들 출렁이던 그 희미하고 부드러운 윤곽이

뾰족하고 예리한 무언가로 변해 가는 느낌이 든다.

됐다.

이렇게 하면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겠다. 편안해질 수 있겠다.

든든한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남은 이에겐 고문일 것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접어두고 밉고 섭섭했던 생각들을

끄집어 내어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부재의 외로움에 잠식당하게 된다.


나도 사람을 잊기 위해서 분단히 노력한 적있다.

차라리 미워해보면 잊어질까, 부러 그런 기억들만 꺼집에 내봐도 효과는 미비했다.

결국은 시간에 맡겨볼 수 밖엔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각성을 하며, 흔들리지 않을려고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두고 지탱하려고 애쓰는 사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상흔 같은 기억들이

흐려지며 비로써 완벽하진 않지만 울지 않게 되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작가에 글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남편이 죽고 난 뒤로는, 늦은 밤 침대에 들어가 스마트 폰을 쥐고 트위터에

'사별, 남편' '사별, 코로나'등을 검색했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고독한 외침을 따라가다 보면

쓸쓸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잠이 몰려왔고 손에 쥔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깬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낯선 이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저이도 나와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어찌보면 나보다 더 힘들고, 나보다 더 처지가 안쓰러운

사람들을 보며 그나마 나는 양반이네..라며 위안을 삼는다.

남편의 부재와 동시에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시작되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여의치 않게 되면서 심각한 우울증으로 빠져들 수 있는데, 손바닥만 스마트폰으로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함께 공감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위로와 격려는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기도 한다.

작가도 그러한 시간을 보내며 상실의 아픔을 이겨낼려고 했었구나.. 이 사람도

나와 다를바가 없네..라는 생각을 하며 나 또한 조금 힘을 내어보게 된다.





배우자를 잃고 숲 속 집에서 혼자 지내는 쓸쓸함.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며 사람들과 손을 잡지도 가까이 하지도 못하는 외로움.

이 두가지의 쓸쓸함과 외로움은 묘하게 닮아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이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 때, 의할 곳이 없어 외로울 때, 술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

누군가 가만히 안아 주거나 손을 잡아 주기만 해도 잠시나마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 적막한 마음에 따뜻한 빛 한줄기가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별거아닌 그 간단한 일을 하는 것이 너를 지켜냈고, 나를 지켜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손을 맞잡고, 안고, 안기며..

그렇게 또 힘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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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카페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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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녀의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으로 비평가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프랑스 문단에 등장하였다.

심심풀이로 6주만에 완성했다는 첫 작품의 성공이후로 그녀가 내놓은 작품들은 세간의 이목을 끌며

영화화 되기도 하는등 천재적인 글재주를 가진 작가라는 호평을 받게 된다.

[길 모퉁이 카페]는 사강의 단편집으로 1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편의 단편들은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별과 죽음, 인간 내면에 드리워진 고독과 번뇌를 그리고 있으며

두어편은 끊어질듯 다시 이어가는 인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무거운 이야기에 비해서 꽤나 담담하고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강의 작품들의

특징인가 싶기도 하다.

19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상식적인

삶에서 조금 빗나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늙고 돈 많은 여자의 애인 노릇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

사랑하는아내와의 관계에 의심스러운 친구를 죽도록 경멸하는 남자.

두번째 남편과의 이별 후 남편의 비서와 바람이 난 백작부인의 자살 등등

평범하지 않은 그들이지만 헤어짐에 대한 무게가 어찌 가볍기만 하겠는가..

누구에게든 이별이란 어떤 모양새를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점에서는 그런 이별도 초월함으로 다루려고 하였지만 차근히 읽다보면

절제된 감정들이 글속에서 새어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난치지 마. 난 장난할 여유가 없어. 난 그렇게 못해. 어서 가버려!"

계단을 오르던 여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늙어버렸다.

나이는 오십을 넘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여자는 서둘러 짐을 싸고 큰 침대에서 홀로 잠을 청했다.

이것 참 짜증난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기 전까지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

의연한 척 애인에게 이별을 고했지만 남겨졌을 때의 고독과 허망함을

아무도 모르게 침대속에서 흐느껴 우는 여자의 마음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되었다.

쎄보이지만 강철로 만든 심장을 가지지 않은 이상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롬의 사냥감은 산양이 아니었다.

그의 사냥감은 금발 머리에 옅은 황갈색 스웨이드 정장을 입고 있다.

그의 사냥감은 참으로 죽이기 어려운 사냥감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불륜을 의심캐하는 친구의 행동을 본 후, 살의를 느끼는

주인공에게서는 배신감과 질투로 사로잡힌 한 남자의 광기를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수 많은 이별의 이유에는 배신감과 질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배신감과 질투는 상대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황폐하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감정이다. 산양을 끝까지 쫓아가지만 결국 산양에게 총을 쏘지 못한

남자의 감정에 저릿함을 느꼈다.

물론 샤를에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좀스런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정말 고약했다.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만약 샤를이 있었다면 기차안의 모든 화장실 문은 이미 오래전에

다 열렸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사냥개 눈을 하고서 그녀를 쳐다보며 길고 넙적하고 큰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물었을 것이다.

'무섭지 않았소? 이 말도 안되는 사고가 불쾌하지는 않았소?'

항상 자유를 추구하는 그녀는 미스트랄(기차)를 타고 애인에게로 가서

별을 통보할 예정이다. 그 남자와 이별 후 실컷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기차안 화장실문이 고장나는 바람에

좁고 소독약 냄새 가득한 카키색의 기차안 화장실에 갇혀버리게 된다.

이 뜻하지 않은 사건에서 그녀는 이별하려고 했던 남자 샤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할 사람은 샤를뿐이겠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가까스로 화장실에서 빠져나와 샤를이 기다리는 역에서 하차한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럼 우리 언제 결혼해? "

많은 사람들은 만남도, 이별도 이미 결정된 운명이라고 말한곤 한다.

하지만 그건 운명이 아니고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이 정해놓은 운명도 인간의 의지 앞에는 변수가 발생하는 법이니까..

나와 그대의 선택으로 만남도 헤어짐도 결정되는 것이니 이별 또한 운명이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만나고 헤어지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짙은 회색같은 고독의 색깔도 느낄 수 있었다.

과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그려내는 탁월한 글솜씨를 가진

작가 프랑수와즈 사강이 프랑스에서 천재 작가로 명성을 날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등 유럽각지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조금 독특하고, 평범하고,

야릇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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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그대로 좋다
서미태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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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과 사랑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찾아낸

당신의 등을 부드럽게 밀어줄 따뜻한 응원의 문장들

어쩌면 이 말에 강하게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내가 잘해왔는지.. 잘하고 있는지..잘해 나갈것인지..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을때, 그 누군가

"괜찮아. 충분히 잘 해왔어.지금 그대로 좋아.."라고 말해준다면

나의 흔들리는 삶도 떨림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바램은 책을 읽어갈 수록 확신으로 바뀌었다.

서미태 작가의 사람의 마음을 쓰담쓰담하는 에세이 [당신, 지금 그대로 좋다]라는 책은

제목처럼 독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말들로 가득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한줄 한줄 필사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만큼 다정한 언어로 채워져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침묵한다.

끝 모르고 뻗을 것 같던 설렘은 번짐이 그치고,

익숙함이란 이유로 흩어진다.

드물게 설렘은 사랑이 되는데, 애석하게도 사람은 설렘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편안함은 사랑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생각하고, 글을 쓰고 다듬으면 문장 하나, 단어하나에서

이런 섬세함이 나오는 건지.. 세삼스럽게 글 쓰는 이들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저자인 서미태는 학생이며, 직장인이며, 글을 쓰는 작가로 1인 3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하나도 버거운 시대에 3가지 역활을 충실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종종거리며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지.. 20대를 보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알것도 같다.

남들보다 3배는 더 분주하게 보내야하는 하루.

그 하루의 한조각을 떼내어 생각을 다듬고 글을 쓰며 SNS로 자신을 글을 공유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감동한 글을 모아 펴낸 책이 [당신, 지금 그대로 좋다]로 활자화되었다고

하니, 서미태를 몰랐던 나는 단숨에 보석을 얻어 쥔 느낌이다.




바다를 건너온 바람은 건조할 때가 없듯이

사람을 스치고 건너온 바람도 그렇다

회사에서, 집에서, 연인사이에서, 친구사이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은 거치고 더불어 말도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이럴때 조금 진정하고 서미태의 글을 읽어보면 어떨까..

이렇게 조분조분 이쁘게 말하는 글을 읽다보면 거칠어진 내 마음도 다시 보들거리게 되겠지.

자칫 틀어지기 쉬운 인간관계도

쉼표를 찍고 다시 마음을 정비하고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테니

뒤틀린 심사를 진정시켜주는 안정제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더 사랑하면 이해가 필요없고

덜 사랑하면 이해를 할 수 없고..

책 읽기를 별로 즐겨하지 않는 친구에게 딱 두 문장으로 된 페이지를 펼쳐 건네보았다.

읽어보던 친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 많은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시키는 짧지만 확신에 찬 서미태의 언어들이

가슴에 콕콕 박히게 된다.

그래서 수만명의 독자가 서미태의 글에 감동받고 환호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친김에 인스타를 팔로우하여 건조하고 거칠어진 내 마음에 보습제를 발라두어야겠다.

날이 차가워 마음까지 추워지는 계절에

함께하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에세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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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말차 카페 마블 카페 이야기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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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미치코의 '목요일에는 코코아를'를 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사람과 사람들의 인연에 대해 쓴 소설이었다.

극적인 반전이나 하이라이트가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잔잔하고 부드러운 바람한점이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문예 춘추사에서 아오야마 미치코의 두번째 인연에 관한 책 '월요일의 말차 카페'가

나왔을때 상당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코코아에 이어서 말차라...왜 하필 말차일까 라는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일본사람들은 말차를 즐겨 마신다.

찻잎을 수확하여 빠르게 말린 후 가루를 내어 마시는 말차는 선명한 녹색을 가지고 있으며

달콤하고 쌈싸름하다.

말차는 풍부하고 풀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어쩜 코코아처럼 진하고 거품이 풍부하고 부드러우며 진한 향이 나는

그래서 커피처럼 속을 갉아내는 듯한 자극이 없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신사 근처의 강변 끝자락에 오도커니 문을 열고 있는 마블카페가

주요 장소로 등장한다.

그리고 1월부터 12월까지 12편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찬바람이 부는 1월, 봄비가 내리는 4월, 매미 울음소리 가득한 8월,

묘하게 가슴설레게 하는 금목서 꽃향기가 나는 10월,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의불빛이 흔들리는 12월.

계절은 돌고, 사람들의 만남도 이어지며 돌아간다.

계절을 따라 이어지는 12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말랑해지게 되는 느낀다.

낯선이에게서 느끼는 경계도 느슨해진다.




그들의 만남은 수다스럽지 않고, 차분하다.

하지만 묘하게 가슴 설레며, 가슴 한켠이 따뜻해진다.

모르는 이들에게 건내는 말 한마디와 배려있는 행동 하나가 어쩌면 벼랑끝에 서있을지도

모를 상대방에게 내미는 손같아서 모르는 사이에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같은 만남들이 많은 요즘같은 시대에

이렇게 따듯하고 정감가는 아나로그적인 감성이 건조하고 매말라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거품이 풍부하고 부드럽고 풍미 가득한 한잔의 따뜻한 말차처럼 만들어주는듯 하다.

말차의 맛처럼 달콤하지만 쌉싸름한 삶의 맛.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나와의 인연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싹을 튀우고 꽃을 피우고 있을까..

이왕이면 이쁜 꽃이 피는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작고 인연들도 귀하게 정중하게 대해야겠다.


겨울 앞에 바짝 다가선 요즘 같은 계절에 썰렁해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잔의 차처럼

데워줄 소설인것 같다.

혹시 다음 편도 나올까.. 조바심내며 기다리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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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요리 - 슬퍼도 배는 고프고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네코자와 에미 지음, 최서희 옮김 / 언폴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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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네코자와 에미씨는 뮤지션이자 작가이며 칼럼니스트이다.

그리고 영화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재다능한 그녀는 2002년 프랑스에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였다.

그녀의 나이가 50을 넘었으나 독신자로 사랑하는 고양이과 함께 살고 있다.

비혼주의자들이 많은 일본에서는 아주 흔한 1인 가정의 모습이다.

후쿠시마에서 자라다 열여덟살에 도쿄로 와서 스물여섯 살에 싱어송 라이터로 데뷰하였지만

생활이 여유로웠던 적은 없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격하게 공감하겠지만 시간을 내어 장을 보고 식자재를 손질하고

혼자 먹을 소량의 음식을 하고 남은 재료들을 정리하고 설겆이 하는게 솔직히 참 귀찮다.

간편하게 인스턴트 음식을 먹거나 배달 음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혼자 식사해야 할 경우, 밥솥에 남은 밤에다 냉장고에서

밑반찬 두어가지 꺼내서 대충 떼우기 일쑤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싫은건 야채칸 구석에서 물러 문들어진 야채 꼬투리들을 볼때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무리 적게 산다고 하더라도 1인분의 요리를 하고 나면 식재료들이 남기 마련이고

언제 넣어두었는지 까먹고 있다가 형체를 알 수 없는 야채들의 사체를 발견하곤

절망하곤 한다.





네코자와 에미씨는 요리사가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기꺼이 자신을 위해서 정성껏 요리를 한다.

그리고 햇볕 좋은 베란다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혼자만의 행복한 식사를 한다.

혼자는 외톨이가 아니다.

나 자신과 단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혼자 보내는 시간은 바깥 세상과 이어져 새로운 문을 열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 정성껏 요리을 하고, 그녀만의 레시피를 가지게 된 것은

여유롭지 않았던 경제적인 이유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살 수 있는 식재료는 정해져 있고, 남김없이 먹기 위해서 다양한 요리를 생각하고 궁리하여

그녀만의 레시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 소박하지만 일상의 행복한 생활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책에서 소개된 요리들은 프랑스에서 그녀가 즐겨먹던 요리들이 대부분이고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식재료들도 있어서 흉내내기 어렵지만

요리된 사진을 보고, 일상을 전하는 솔직담백한 글을 통해 음식의 맛과 풍미가 느껴진다.






나이 많은 여자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고양이들의 집사를 하며 지내는 삶이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그녀의 삶은

여유롭다, 자유롭다, 외로워보인다, 부럽다. 노후가 불안하겠다 등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결국 타인들의 시선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내가 행복하고 , 내가 만족하면 그만일걸..

가끔 생각한다.

나이를 먹고 아이들이 독립을 하고 그러다 혼자만 남게 되었을때

나는 그녀처럼 나 자신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을 절친대하듯 살갑게 대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가까워서, 너무 잘 알아서, 홀대를 하고 있진 않을까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아는 그녀가 부럽다.

그리고 더 늦기전에 나도 나와 친해지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영양가 듬뿍 든 음식을 나에게 대접해주고 싶다.

현재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자신만의 삶을 가꿔가고 있다고 한다.

글 곳곳에서 프랑스에 대한 향수를 엿볼 수 있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고양이들과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서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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