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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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고이케 마리코씨는 1952년 생으로 1978년 [지적인 악녀의 권유]라는 에세이를

시작으로 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그 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나오키상, 시마세 연예문학상, 시바타 엔자부로상등

수 많은 상을 받으며

일본 작가들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도 글을 쓰는 작가로 한 집안에 두명의 작가가 있는 보기 드문 내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은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펜만 잡는다고 술술 나오는게 아니지 않은가.

대부분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인데,

한 집안에 그것도 남편과 아내가 글을 쓰는 작가라니 누가 들어도 앗 소리가 나오기

마련일것이다.

묘하게 라이벌 의식도 있을 것이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상도 받으며

서로에게 자극과 격려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쓰기위해 시골로 내려가 숲속의 집을 마련하고 자연 속에 뭍혀 살던 부부는

완성된 글을 상대방에게 건네며 평가를 받기도 하고, 까페에 앉아서 차한잔을 앞에두고

서로가 구상하고 있는 소설에 대해서 얘기하며 부부로써, 동료로써 나무랄데 없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고,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병마에 몸이 침탈 당하면서도 자신에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기도 한다.

얼마후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된 작가는

지독한 상실의 시간을 견디며 홀로 숲속 집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는 아내가 남편에게 바치는 사모곡처럼 느껴진다.

남편과 다정했던 한때를 회상하며 남기고 간 흔적들을 손으로, 눈으로 더듬어며

그리움과 애틋함을 글 마디마디에 새겨놓았다.






예전에 남편이 내동댕이쳤던 말들, 억지를 부려 화를 솟구치게 했던 말들을 이것저것 떠올려본다.

그때 그런 소리를 했었지, 이런 소리도 들었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두운 기억'이 몸집을 불려 나간다.

상실의 슬픔이 흔들흔들 출렁이던 그 희미하고 부드러운 윤곽이

뾰족하고 예리한 무언가로 변해 가는 느낌이 든다.

됐다.

이렇게 하면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겠다. 편안해질 수 있겠다.

든든한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잠시뿐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남은 이에겐 고문일 것이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접어두고 밉고 섭섭했던 생각들을

끄집어 내어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그리움과 부재의 외로움에 잠식당하게 된다.


나도 사람을 잊기 위해서 분단히 노력한 적있다.

차라리 미워해보면 잊어질까, 부러 그런 기억들만 꺼집에 내봐도 효과는 미비했다.

결국은 시간에 맡겨볼 수 밖엔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정말 혼자라는 각성을 하며, 흔들리지 않을려고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두고 지탱하려고 애쓰는 사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상흔 같은 기억들이

흐려지며 비로써 완벽하진 않지만 울지 않게 되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작가에 글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남편이 죽고 난 뒤로는, 늦은 밤 침대에 들어가 스마트 폰을 쥐고 트위터에

'사별, 남편' '사별, 코로나'등을 검색했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고독한 외침을 따라가다 보면

쓸쓸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는 사이 잠이 몰려왔고 손에 쥔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깬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낯선 이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저이도 나와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어찌보면 나보다 더 힘들고, 나보다 더 처지가 안쓰러운

사람들을 보며 그나마 나는 양반이네..라며 위안을 삼는다.

남편의 부재와 동시에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시작되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여의치 않게 되면서 심각한 우울증으로 빠져들 수 있는데, 손바닥만 스마트폰으로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함께 공감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위로와 격려는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기도 한다.

작가도 그러한 시간을 보내며 상실의 아픔을 이겨낼려고 했었구나.. 이 사람도

나와 다를바가 없네..라는 생각을 하며 나 또한 조금 힘을 내어보게 된다.





배우자를 잃고 숲 속 집에서 혼자 지내는 쓸쓸함.

바이러스의 시대를 살며 사람들과 손을 잡지도 가까이 하지도 못하는 외로움.

이 두가지의 쓸쓸함과 외로움은 묘하게 닮아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이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불안과 공포에 휘둘리 때, 의할 곳이 없어 외로울 때, 술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

누군가 가만히 안아 주거나 손을 잡아 주기만 해도 잠시나마 고통에서

도망칠 수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 적막한 마음에 따뜻한 빛 한줄기가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별거아닌 그 간단한 일을 하는 것이 너를 지켜냈고, 나를 지켜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손을 맞잡고, 안고, 안기며..

그렇게 또 힘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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