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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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피츠제럴드하면 <위대한 개츠비>가 먼저 떠오른다. 고전 소설의 작품은 허구가 아닌 인간의 심리와 삶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삶의 유추할 수 있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또는 현재 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게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저자의 삶을 투영한 것이기에 작가와 소설의 배경을 알고 나면 독자는 두 가지를 얻게 된다.

오늘 만난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는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삶과 글 사이에 분투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이라는 것을 고전 작가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즐거움이 아닌 살기 위해서 또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글쓰기다.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는 저자가 쓴 글들을 엮은 책으로 짧막한 문장이 많다.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지만 작가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과 단어 선택 등 글쓰기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들을 담아냈다.

여러 소주제로 나뉘어 묶은 글을 읽고 있으면 독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 같다.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꾸준히 써보지 않아 어렵다고 했다. 위대한 작가라도 그들 역시 끊임없이 문장과 단어를 분쟁을 했음을 안다. 단지, 천재가 아닌 무한한 노력의 과정을 통해 결실을 맺은 그 열매를 독자는 너무나 탐스럽게 먹어치운다. 때론 서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하는데 글쓰기의 고된함을 깊은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으면 헤엄치는 일과 같다라고 했을 정도로 피츠제럴드의 개인적인 감정까지 드러나 볼 수 있었다.

고전 작품을 보면 인간의 깊은 내면을 절실히 보여주는지 놀랍다. 탐욕이든 욕망이든 아님 애정이든!! 그 깊은 탐구를 어떻게 써내려 가는지 늘 궁금했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글쓰기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글쓰기가 인간에게 있어 삶의 밑바탕이란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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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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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누구에게나 분투가 되면 그 결과는 달콤하다는 것을 깨달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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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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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의 책은 오래 전 한 권의 책으로 읽게 되었다. 당시, 국내 장르소설이 지금처럼 광범위 하지 않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저자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직업 역시 소설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미권 장르 소설을 보면 대부분 관련 된 업종을 지닌 작가가 많다. 그렇다보니 소설은 더 깊이 있고 현실감 있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오는 만난 <법의 체면> 역시 그렇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책을 읽기도 전에 단순히 선과 악 또는 권선징악이 아닌 결국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못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총 6편의 단편으로 묶어진 소설은 SF도 있다는 사실. 그러나 SF든 아니든 인간에 대한 윤리, 사회적 규범, 도덕적 관념 등을 다 포함시키고 있다. 장물을 우연히 사게 되었지만 과거 범죄 이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의 범죄가 되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진실을 밝히고자 변호사를 찾아갔기에 누명을 벗겠지 했는데 이야기는 단순히 해결 방향성으로만 가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불법 실험을 하는 이야기, 행복을 원하고 바랐지만 이뤄질 수 없었지만 그는 행복을 찾았다. 그런데 과연 행복일까? 허황된 것이 아니기에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만 남았다. 


각 소재마다 가볍지 않은 작품은 단편이었지만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장르소설을 좋아하지만 오락성이 아닌 사회파 소설은 현실과 맞닿아 다가오니 읽고서 묵직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법의 체면>은 제목에서 먼저 체감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마치 선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 감정이 섬뜩하게 다가왔고 동시에 법이 무엇인가? 이 존재 자체가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이 되는지 이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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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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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국내에 출간 된지 25년이나 되었다는 <아인슈타인의 꿈> 도서를 난 이제서야 만났다. 물리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시간'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쓴 첫 소설이다. 띠지에서 먼저 '시간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문구가 궁금했었는데 책장 넘기면서 그동안 의식하고 생각했던 '시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었다. SF소설이라기 보단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랄까? 그리고 동시에 철학적으로 다가온 소설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한 젊은이가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인슈타인과 친구 베소가 등장해 서로의 이야기와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시간들이 등장하고 그 시간은 다양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보여지고 누군가는 미래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용히 고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반복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조차 알 수가 없다. 인간은 한 번의 생애밖에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동일한 시간이 나뉘어져 어느 선택을 하듯 그 선택한 삶을 다 살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누구나 하는데 소설에서는 이것만큼은 '후회'가 없다. 그렇다면 그 삶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은 누군가에는 빠르고 다른 이에겐 느리게 적용이 된다. 그런데,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닌가? 다만 그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도서는 '시간' 주제로 글을 써내려갔지만 철학적 요소를 볼 수가 있다.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누군가는 시간을 겪으면서 세월의 흔적을 느끼지만 반대로 홀로 그 정체된 곳에선 시간의 멈춰져 젊음만 있을 뿐 무엇도 느낄 수가 없다면 어느 쪽이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상대성으로 비교 되는 '시간'과 관련된 단편들을 읽고 있으면 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문득 떠오른다. 그 순간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아님 실수한 제 삶을 완벽하게 하게 되어 행복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삶이 옳고 그르다는 것 보단 그 주어진 시간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란 걸 다시 한번 의식했고, 책을 덮고서도 여러 '시간' 속을 살고 있는 그 순간들이 나에게 생각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ekida_library
@das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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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 -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을까
제임스 홀리스 지음, 정명진 옮김, 김지용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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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들을 어떻게 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인생에 대해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갈 수록 깊이 고찰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라고 자문을 하는 때가 생긴다. 잘 살았든 그렇지 못했든 누구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 만난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은 지난 온 세월을 두고 앞으로 계속 이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스스로 행복해야 주위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 이건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책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조언대신 흐르는 강물처럼 문장이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짧은 예시를 보여주지만 만약 이론적 설명만 있었다면 공감이 쉽지 않았을 테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삶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며 더더욱 지나간 시간도 아니다. 방황과 선택을 지난 시점에서 정류장이라는 곳에서 멈춰 삶을 다시 재정비를 해야할 시기라 생각한다. 사람을 변해야 하고 변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자리에 머문다면 삶의 질은 낙후가 된다. 이는 저자가 "우리 내면에 의식적 통제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만 변화할 것이다"라는 것과 의미가 같다.

융을 통해 인간에게서 소멸된 감정들을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문장을 보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문을 해 본다. 그 중 8장인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시대' 라는 소제목은 누구나 아차 싶었을 테다. 앞만 보고 달려가라는 사회에 아파도 느끼지 못하고 설령 그렇더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 시간이 익숙해져 무엇도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내면이 경험 되지 않을 때 외부로 투사됨을 불안하게 바라봤는데 이는 제대로 내면의 삶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외적인 것에 더 강하게 끌리게 되는 것임을 피력했다. 외부 자극은 극단적인 것이 있으며 쉽게 자신의 내면을 잃어버리기 쉽기에 위험하다는 말이다.

고요하면서 강한 울리는 주는 도서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 급하게 읽기 보단 책에 집중을 하면서 읽으면 더 깊이 생각할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생각하기 보단 살아온 날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니 남은 시간을 조금은 다르게 보낼 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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