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정원 - 산, 들, 나무, 꽃 위인들이 찾은 지혜의 공간
성종상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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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아무리 문명을 발달 시켰다 해도 자연을 벗어날 수가 없다. 동식물 구분 없이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 속에서 살고 그 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평소 산책을 좋아해서 집 근처 또는 공원을 걷는 데 그곳을 갈 때마다 느낀 건 고용함과 자연 속에 있는 그 자체가 너무 좋다는 사실이다. 식물을 가꾼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인간에게 안정을 주기도 하며 특히, 흙을 만져가면서 꾸민다면 더더욱 큰 효과를 볼 수가 있다. 오늘 만난 <인생 정원>을 위인들이 찾은 자연 안에서 무엇을 얻고 깨닫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이들이 직접 꾸민 정원 사진도 있어 시각적인 즐거움도 있다. 또한 이들의 공통점은 힘든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정원을 찾곤 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원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였기에 고통 속에서도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헤르만 헤세를 시작으로 저자가 소개한 문인들은 직접 정원을 꾸미고 가꿨다. 전쟁과 황폐해진 나라로 인해 헤세는 서양 사상 뿐만 아니라 동양 사상에 관심이 많아 자연과 사회의 화합을 추구했으면 이는 독일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 분야로 오히려 한국과 일본에서 독자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어, 다산 정약용 역시 일생을 정원이라는 공간을 소중하게 생각한 만큼 여러개가 있다. 가는 곳만 작은 정원을 만들기도 했고, 정원 생활을 통해 다산이 풍부한 식물학적 지식이 많았다는 것과 산지에 맞게 직접 땅을 가꾸며 감수성과 공감 능력의 소유자였다. 다산은 "먹을 수 있어야만 실용이 아니라 정신을 기쁘게 해서 뜻을 길러 주는 것도 가치가 있다"라고 할 만큼 정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독일 최고의 대문호인 괴테가 식물학자이며 비교해부학자라, 변호사 였다는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젊은 나이에 출간한 책 성공으로 작가로 알려졌지만 알고보니 조경가, 정원가였다.

 

이를 비롯해 퇴계 이황, 미국 세 번째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영국 찰스 3세, 원스턴 처칠, 정조 대왕, 모네, 소새옹 양산보, 고산 윤선도, 안평대군 이들은 모두 정원에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안식처를 자신의 철학과 이상을 찾아내고 발전 시켰다. 이중 토머스 제퍼슨은 자연에서 기독교, 정치철학, 과학의 출발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했고, 미국 경제적 자립과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식물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또한, 이 공간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매개체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많은 노예를 데리고 있었으면 그 중엔 흑인 노예 사이와 자녀 6명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노예로 살아야 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라고 했지만 정작 그의 삶에선 이뤄지지 않았기에 이건 여전히 그의 흠으로 남아있다. 정원 하면 영국이 떠오르게 되는 데 찰스 3제는 어릴적 할머니의 추억을 담아 기념으로 작은 정원을 만들었고 왕위 계승 후 어릴 적 살았던 클라렌스 하우스에 거주했다. 대표 궁전인 버킹궁엄과 천년 역사를 지닌 윈저궁은 사슴공원, 새빌정원, 롱 워크 등 여러 개의 공원과 정원이 이뤄져 있으면 일반이들이 다닐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그에게도 정원은 특별한 곳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했고, 현대문명이 가져다 준 자연 훼손과 전통적 가치 소멸 등 인간과 자연 중심 가치를 주장한 인물이다.

 

이어,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터 처칠은 장수하면서 그가 지은 정원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자녀들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어릴 적 성정에 대해 아버지는 부정적 시선을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한 인간이 아닌 영국을 비롯해 유럽 국가의 판도를 바꿨다는 사실이다. 그 역시 전원생활을 즐겼으며 전쟁으로 집을 소유할 형편이 되지 못했을 때 전원 속의 집을 빌려 아쉬움을 달래곤 했었다. 더 나아가 그림까지 잘 그렸다고 하니 천재가 아니었나? 하지만, 정원은 그에게 삶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매개체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꿈꾸었다. 보통 정원하면 서양을 떠올리게 하는 데 첫 장 다산 정약용 이후 정조대왕을 소개하는 데 이는 역사에 정말 정점을 이룬 왕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할아버지의 후원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반대파 세력이 불안한 처지였다. 그렇다보니 후원은 어느 세속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안정을 취하고 앞날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서예와 그림, 시문, 그리고 음악에도 뛰어난 군주로서의 면모를 갖춘 정조대왕은 유능한 인재들과 같이 후원을 산책하며 시를 풀어내기도 했었다.

 

누군가는 많은 정원을 지어 생을 살기도 했지만 소쇄옹 양산보는 '소쇄원' 한 곳만 있다. 후손이 잘 보존해서 현재까지도 볼 수 있는 데 중간에 새로 짓기도 하고 원래 소쇄원은 그림이 사라져 200년 후에나 그려졌지만 그래도 귀중한 자료다. 벼슬길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삶을 선택했지만 그가 남긴 이곳은 당시만 해도 많은 문인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훗날 지어진 이름이 '소쇄원'이지만 그의 뜻을 알고나면 세상 욕망을 버리고 이곳에서 맑고 깨끗한 기상을 기르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된다. 정원은 앞서 적었듯이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도 아니다. 뜻하는 바가 달랐지만 <인생정원>에서 만난 인물들은 자연이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이것을 알고 있었다. 자식이 죽고 유배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고산 윤선도는 그 아픔을 정원 속에서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 단순히 아름답다고 즐기는 공간이 아닌 본연의 모습을 보고 일어서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정원을 가꾸기도 그렇다고 쉽게 소유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자연과 가까이(산책) 하면 이들과 같은 위안과 치유를 받을 수가 있다. 자연은 늘 그자리에 있으니 말이다.

 

자연법칙으로 이뤄진 미학적 장으로서 자연은 퇴계에서 심미의식을 체험하고 즐기는 장이기도 했다. 퇴계는 어렵고 유쾌하지 못한 공부만을 하기보다 한가하게 쉬면서 정서를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퇴계 이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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