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 인생 그림 - 아트메신저 이소영이 전하는 명화의 세계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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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라고 믿는다.

-본문중

 

그림을 본다는 건 다양한 이유가 있는 데 그 중 위안을 얻기 위해 가까이 하는 경우가 크다. 오늘 만난 <하루 한 장, 인생 그림>은 59명의 작가가 그린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술 관련 도서를 보면서 느끼는 건 작가와 작품의 연관성 그리고 감정이다. 600페이가 넘는 도서로 그림을 보면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에게 익숙한 화가가 있는가 하면 생소하거나 낯선 이들이나 작품은 또 익숙한 게 많았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는 그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갈라지기에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인생 그림의 첫 시작은 화가 '로렌스 알마 타데마'다. 그의 작품은 고전주의로 고대 그리스 배경으로 인물들을 종종 그렸다. 삶 또한 어땠는가?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회복이 되면서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가졌고 더 나아가 이집트를 직접 방문할 정도로 고전에 심취한 화가였다.

 

 

인생의 나락에서 올라왔고 화려한 삶을 살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점점 신인상중의와 같은 새로운 화풍으로 점점 대중들에게 관심을 잃어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헐리우드 영화에 배경으로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이를 보고 작가는 찰린 채플린의 말을 인용하는 데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는 문장을 남겼다. 타데마는 그래도 명성을 누리기도 했지만 같은 고전주의 화풍을 그린 '존 윌리엄 고드워드'는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받지 못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여기에, 가문에서는 자살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남긴 작품이나 그에 대한 기록을 삭제해버렸다는 데 너무 안타까웠다. 흔히, 시대를 잘 못 만났다고 말하는 데 고드워드가 바로 그랬다.

 

 

그리고 사는 동안 개를 자주 그린 화가가 있다. 애완동물이 아닌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진 지금 '브리튼 리비에르'의 <신뢰>는 그 작품만으로 마음이 울컥해진다. 상실감으로 슬퍼하는 주인의 허벅지에 그저 턱을 올려놓고 바라보는 개의 모습은 '위로'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종교화, 역사화가 인기를 끌던 빅토리아 시기에 동물을 자주 그렸던 화가였고, 그의 작품엔 요크셔테리어, 말티즈, 폴리 등 많은 종류의 개가 등장한다.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다는 문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화가로, 인간에게서만 신뢰를 찾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철학적 질문 같지만 사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해답을 찾고 싶은 질문이다. 책,그림, 여행 등 여러 방법으로 의미를 찾는 데 그래도 '그림'은 시각적으로 더 자극을 주는 거 같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꽃다발>을 그린 암브로시우스 보스샤르트는 네덜란드 정물화의 대가다. 화려한 이 작품은 인생에서 죽음 피할 수 없으니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라는 것을 전달한다.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은 소멸되기 마련이며 인간 역시 그렇다. 보스샤르트의 작품은 계절에 피는 꽃들을 모아 그린 작품으로 상상으로 조합한 것이다. 분명 아름답지만 언젠가 지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꽃들을 보면서 사람은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테다. 여기서 저자는 몽테뉴가 쓴 '수상록' 대해 짧은 언급도 하는 데 관심 있던 인물이라 그저 반가웠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역시 화가들에게도 타인의 후원이나 도움이 없었다면 능력이 있었도 펼칠 수 없었던 이들도 많았을 테다. 화가보단 컬렉터로 더 알려진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바로 그렇다. <파리의 비 오는 거리>는 익숙하게 봤던 작품으로 카유보트의 대표라 할 정도로 화가보다 작품이 더 유명하다. 마치, 셜록 홈즈(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처럼 말이다. 유복한 집안에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으나 화가로 전향하면서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사 모았던 그는 이미 화가이며, 컬렉터이자 후원자였다. 모네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었던 그는 동생의 죽음으로 자신이 수집한 그림을 프랑스에 기증하려고 했지만 당시 정책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정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중요성을 깨닫고 개인 컬렉터들에게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 한 개인이 모은 작품들을 기증한다는 건 쉽지 않는 일인데...말이다. 모네는 그가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세상은 때론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을 자극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SF, 공포, 영적 세계 등을 선호하는 것 역시 여러 설명이 되겠지만 잠깐이라도 다른 세상을 통해 다시 현실로 안착하기 때문이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대두되었던 시기에 자신의 내면을 더 파고들면서 정신적 이미지에 힘을 쓴 즉, 상징주의의 대표적 작가가 있다. '오딜롱 르동' 나에게 너무 생송한 화가인데 그의 작품을 보면 영화 감독 '팀 버튼'의 작품 속 등장인물이 떠오른다. 그동안 인상중의나 사실주의 작품을 봐왔는 데 나에게 르동의 작품은 음...쉽게 익숙해지지 않을거 같다. 그러나, 혐오스러운 모습도 르동의 손에서는 다르게 태어난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시골의 외삼촌 집에서 11세까지 살았지만 늘 외로웠다. 혼자만의 시간으로 내성적 아이가 되었고, 허약에 몸 탓에 마음 역시 약한 아이였다. 하지만, 늘 그림이 있었기에 내면을 표출했으며 부족하고, 가날픈 것, 이상한 것에 애정을 쏟게 되었다.

 

 

이를 보면 작품은 화가의 제 2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뭉크의 <절규>는 그의 삶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할 정도로 공포감이 엄습하는 데 이와 반대되는 <태양> 작품을 보는 순간 뭐지? 뭉크에게 이런 그림을 그릴 정도로 뜨거운 열정이 있었나? 비록, 오슬로 대학의 강당 벽화를 의뢰받아 그린 작품이나 그 역시 살고자 하는 희망에 발버둥을 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자신의 삶이 가족의 죽음과 병으로 좌초되어왔지만, 늘 의지를 갖고 자신만의 예술을 진행했고, 그 예술로 일어선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중 -

 

 

<하루 한 장, 인생 그림>을 보면서 많은 삶을 들여다 봤다. 절망에서 희망을, 괴로움에서 행복을 .... 미술은 인간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책 속의 그림을 보면서 깨달았다. 여전히 미술에 문외한인데 이렇게 관련 도서를 읽고 있으니 점점 빠져들고 무엇인가 알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작품과 화가에 대해 이해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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