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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서점 이야기 - ‘세계 서적상의 왕’ 베스파시아노, 그리고 르네상스를 만든 책과 작가들
로스 킹 지음,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1월
평점 :

도 서: 피렌체 서점 이야기
저 자: 로스 킹
출판사: 책과함께
인쇄기술이 발달한 이후 책은 누구나(물론 어려운 사람들은 제외)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전에는 어떻게 사람들은 도서를 접하게 되었을까? 오늘 만난 <피렌체 서점 이야기>는 이런 궁금증과 같이 유럽의 혼란스러운 중세시대를 보여주고 그 중심에는 서적상의 왕이라 불리는 '베스파시아노'라는 인물을 소개해 준다. 총명했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빚으로 인해 1433년 11살 나이에 서적상 거리에 있는 한 서점(필사본을 제작해 판매하는 곳)에 조수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서적상으로 능력을 펼치게 되고 피렌체의 경제를 잡고 있던 메디치가가 무너지면서 같이 생을 마감하게 되는 데, 그의 나이 76세로 1498년 7월27일이다. 그가 살아온 삶은 결코 짧지 않기에 저자는 베스파시아노가 사는 동안 피렌체서 서적상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동시에 튀르크의 침략 교황과 메디치가의 충돌로 불안하고 폭력, 살인 등 사는 동안 그의 눈앞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이 목격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어느 기록에 쉽게 찾을 수 없었는 데 1839년 스위스의 한 교수가 발견한 한 권의 책으로 '서적상의 왕인 베스파시아노'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1430년대 피렌체는 어느 유럽보다 문맹률이 낮은 곳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책을(필사본)을 접할 수 있었는 데,그건 상점들이 있던 거리에는 다양한 가게가 있었고 그 중에는 문구상들이 있었는 데 이곳에서 바로 필사본을 판매하고 있었다. 베스파시아노가 어린 나이에 한 문구상에 들어갔는 데 그가 어떻게 고대 문헌을 비롯해 책들을 접하고 서적상인으로 경력을 쌓은 것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 책을 판매하는 시점을 비롯해 필사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여기엔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명석함을 간파한 줄리아노 체리니 추기경, 체리니의 친구인 니콜로 니콜리, 당시 최고의 번역가인 레오나르도 브루니, 피에로 데 파치가, 잔노초 마네티,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도시국가 우르비노 통치자),로렌초 데 메디치(코시모의 손자), 도나토 아차이우울리, 마르실리오 피치노 ,베사리온 추기경 등 학자로서 저명한 인물도 있고 피렌체를 통치한 가문 등 베스파시아노의 고객의 직위는 결코 평범치 않았다. 저자에 의하면 서적상인은 이익만을 추구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언급한다. 그는 책을 통해 사람들이 일깨우기를 바라는 컸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 유명한 문구인 ' 모든 악은 무지에서 생겨난다'를 쓴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악은 무지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작가들, 특히 고대의 작가들은 어둠을 몰라내고 세상을 밝게 비춰왔다.
-본문 중(베스파시아노)-
이렇게 베스파시아노가 필사본으로 고객들에게 맞춤을 제공할 때 독일 한 곳에서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기가 발명되었다. 하지만 정작 독일 내에서도 인쇄기 활용은 늦어지고 있었는 데 이건 구텐베르크가 자신이 발명한 것을 동업자와 문제가 생기면서 빼앗기고 쉽게 노출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다 1470년에 가서야 인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는 데 정작 발명가 구텐베르크는 제대로 대우 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또한, 저자는 한국의 금속활자도 소개를 하는 데 " ~한국인의 특별한 발명품으로 보인다" 라는 문구가 거슬린다. 왠지 확실치 않는 표현같아서 말이다. 그저 구텐베르크 보다 먼저 존재했음을 서양에서도 인지했다는 점으로 간주할 뿐이다. 하여튼, 인쇄기 시작 설명과 베스파시아노가 필사본을 만드는 과정을 교차로 보여주는 데 필사본 하면 그저 책을 옮겨 쓴다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당시, 인쇄기술이 없었기에 필사본이 유일한 독서 방법이었고, 누가 필사본을 만들었는지에 따라 명성이 달라졌다.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이어 종이로 필사본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흥미로운 데 그건, 기록지의 중요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양피지를 사용한 서적상은 동물 가죽으로 사용했기에 삼나무 향으로 냄새를 제거했고 필경사 역시 최고의 수준으로 사람을 고용하고, 채식사(필사본 한 부분에 삽화를 하는 화가들)를 직접 고용하면서 필사본 한 권을 완성할 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베스파시아노는 단순히 책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에 영향력도 있었는 데 나폴리와 피렌체의 갈등에서 대리인으로 가기도 했었다. 그의 영업은 코시도 메 메디치와 인연이 닿으면서 필사본을 수집하려는 것을 시작으로 메디치 가문과 인연이 닿았으며 우르비노 도시에 도서관 구축을 위해 필사본을 만들기도 했었고, 메디치 가문 역시 수집으로 그의 필사본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동시에 메디치 가문과 적대적인 파치가문과도 작업을 했는 데 대립적 관계인 나폴리와 피렌체 등 베스파시아노의 능력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필사본을 찾을 때 그를 고용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남을 다시 한번 알려준다. 책을 읽다보면 중세시대엔 오스만튀르크가 유럽을 침략한 시기도 등장하는 데 메메트가 이탈리아 본토를 정복하면서 분열이 심하던 메디치가와 이 가문을 적대시하던 식스투스 교황은 화해의 손을 잡아 저항을 하기도 했었다. 여기서, 메메트라는 인물은 잔인하지만 한편으로 고대 문헌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책에서 종종 '플라톤' '오딧세이아' '일리아스' 눈먼시인 '호메로스' ,로마 건국사를 지은 리비우스 등을 소개하는 데 메메트든 교황이든 누구든 필사본을 소장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고, 플라톤 전집을 번역한 브루니로 인해 플라톤의 책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하지만, 침략과 살육이 만무하던 그 시대에 베스파시아노가 만든 필사본들은 화재와 무지 속에서 사라진 게 많은데, 그나마 일부는 무사히 이탈리아와 미국 등에 현재 보존 되어 있음을 저자는 알려준다.
로마제국 멸망과 1500년도 사이의 천 년 동안 약 1080만 권의 필사본이 서유럽에서 생산되었다. 그중 거의 절반인 490만 권이 1400년대에 필사된 것이고, 그 중 140만 권, 즉 29%는 이탈리에서 제작된 것이다.
-본문 중-
만약 이시기에 베스파시아노와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고대 로마사를 비롯한 책들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다. 물론, 인쇄기를 사용한 도메니코 수사로 인해 인쇄본이 출간이 점점 퍼져나가면서 남겨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서적상인의 존재는 정말 중요한 인물임은 확실하다. 비록 인쇄본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베스파시아노 역시 타격을 받게 되기도 하는 데 피렌체는 다른 지역보다 가장 늦게 인쇄기가 등장했다는 점. 음 이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크게 관심이 없었기도 했다는 데 인쇄본이라도 해보 오타를 비롯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에 반해 필사본은 누구나가 소장하고픈 책을 만들었기에 나 역시도 '필사본'을 요구했을 거 같다. 하지만, 결국 은퇴를 하게 된 서적상인...반대로 도메니코 수사의 인쇄기는 열심히 움직였는 데 초반부터 관심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인쇄기로 인해 종교혁명이 일어났음을 알려주고, 특권층만 읽을 수 있었던 책을 누구나 만날 수 있었다(물론, 그 중에는 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적상인은 이제 작가의 길로 남은 여생을 보내는 동시에 도메니코 수사의 인쇄기를 바쁘게 돌아가는 데 어느 순간 이 수사의 기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데 아마 플라톤 전집을 인쇄하는 것을 무리로 건강이 해친 게 아닐까 라고 저자는 의문점을 설명한다.
당시 플라톤의 전집은 종교적으로 비판을 받았는 데 라틴교와 그리스리도교가 나뉘어져 문제가 많았고 여기에 철학자 사상의 영향이 큰 것을 볼 수 있다. 하여튼, 메디치에서 관심을 둔 '플라톤 전집'은 학자인 브루니 번역으로 필사본이 있었고 마르실리오 피치노 학자로 인해 베스파시아노가 추진한 필사본이 완성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인쇄기를 이용한 것이다. 종교, 전쟁, 정치 ,경제 등 어느 혼란스러운 곳에서 서적상인 베스파시아노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면 고대 문헌을 지켜냈다. 그렇다고 사는 동안 명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많은 이익을 낸 것은 아니다. 필경사와 채식사 등 고용된 일꾼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재료들을 구입 해야했기 때문이다. 사망 후에도 그저 묘비명에 이름만 적혀져 있을 뿐이었고, 400년이 지나서야 이탈리에서 경의를 표한 '베스파시아노'. 문득,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어느 역사든 기록으로 과거로 올라가는 데 개인이든 한 국가의 역사든 남겨진다는 게 후세에 중요한 것임을 느끼게 했다.
마지막으로 베스파시아노는 자신의 전기를 1493년에 완성했고 필사본을 여러 친구들에게 선물했다는 데 여기서 그가 남긴 문장을 적어본다.
"기록이 남지 않았다면 위대한 행적이 잊혔을 영웅들의 명성을 보존한 역사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썼고, 서문에서 '고대와 현대의 작가들이 명사들의 업적을 얼마나 많은 빛을 비추었는지, 그리고 누구도 그들의 행적을 전해주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명성이 역사 속에 묻혔는지를 생각하곤 한다" 라고 썼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