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읽는 시간 - 도슨트 정우철과 거니는 한국의 미술관 7선
정우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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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미술관을 읽는 시간 / 저 자: 이동섭 /출판사: 쌤앤파커스

 

한국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미술관들

-들어가며 중-

 

국내 미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몇 작품 밖에 알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해외 작가와 작품을 수없이 봤는 데 정작 한국 미술에 대해선 극소수로 알고 있으니 부끄러웠다. 미술하면 크게 동양화 서양화로 생각하고 서양화는 당연히 기존에 봤던 다양한 미술 작품을 ... 반면에 동양화는 수묵화 같은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오늘 만난 <미술관을 읽는 시간>은 기존에 부족했던 작품과 작가에 대해 세세하게 알려줘서 너무 고마웠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어도 한국 예술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았나..이 책을 보면서 이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책은 총 7명의 예술가를 소개하는 데 한국 전쟁을 겪은 것은 물론이고 가난과 생계, 아픔 속에서 숨이 끝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는 이들을 볼 수 있다. 먼저 저자는 1.환기 미술관을 소개하는 데 미술관 이름이 김환기 화백의 이름이다. 나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가업을 이으면 평탄했을 텐데 그는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다. 그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수영으로 일본으로 밀항을 했을 정도니 이를 누가 말렸을까? 20세기 일본에서 서구의 고전주의, 사실주의,인상주의,추상미술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기에 영향을 받았고 데뷔작인 <종달새 노래할 때,1935>를 보면 한복을 입고 있으나 서양화에서 느끼는 분위기를 볼 수 있다.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을 맞고 더 나은 형편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로 도전을 했고, 아내의 권유 프랑스로 향하고,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고된 시간을 보내다 친모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때 그림 그림이 하트 모양의 성심이다. 이런 아픔이 있지만 다시 한번 명예와 지위를 놓고 뉴욕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작업 중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때가 향년 61세였다.

 

복잡한 그림 대신 심플한 것을 선호했던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2.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왠지 반 고흐가 떠오르기도 하는 데 1951년 한국전쟁 중에 탄생한 <자화상>은 혼란스러운 대신 너무나도 평온한 들판과 하늘을 나는 새를 보여준다. 전쟁 중이니 무슨 평화가 있을까...하지만, 그림의 풍경은 너무 평온하고 행복하기만 하다. 일평생 그린 그림이 유화700여 점, 먹그림 100여 점, 매직 그림 83점 등을 남겼고, 화가의 신념은 단순하고 작은 크기의 그림을 그렸다. 장욱진 화가 역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일찍 별세 하는 바람에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서울로 올라오게 되고 이미 미술이 소질이 있었던지라 상을 받기도 했다. 우역곡절 끝에 그림을 그리는 데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포근한 느낌을 들게 하고,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작품 중 1973 <가족>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이 보기만 해도 애뜻하기만 하다. 일화 중 화가인 나혜석과의 수덕사에서 만남도 있었다는 데 책을 읽다보면 서로 인연이 있던 화가들이 몇몇 있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비워내기,단순하게 살기.

말은 쉽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것 아닐까요.

-본문 중(장욱진미술관)-

 

다음으로는 국내에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화가 김창열 화백(3.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을 소개한다. 일생의 반편생을 외국에서 보낸 인물이며 다른 화가와 달리 작품은 한자와 물방울이 섞여 있다. 마치 그래픽으로 그린것 같은데 아니라는 점이 놀라웠다. 한국 전쟁 당시 잠시 제주도에 머물게 된 사연으로 제주도에 2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하게 되면서 그곳에 지어진 미술관이다. 어릴 적 천자문을 배웠던 기억이 떠올라 그림에 접목 시켰고 타국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렇게 새롭게 탄생 되었다. 화가 역시 한국 전쟁 소용돌이에 있었기에 친구와 가족, 동창생을 잃은 슬픔을 그림으로 승화시키려 했었다. 알고보니 한국 전쟁이 끝난 후 한국 추상 미술에 앞선 인물이었다. 물방울 작품을 먼저 봐서 그런지 막상 <제사>,<판자집>을 보면 어두움이 엄습해온다. 전쟁의 아픔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그리고 프랑스 유학시기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캔버스를 재활용 하려다 그때 발견한 게 바로 물방울 표현이다. 돈이 없어 마구간을 빌려 그리다가 발견한 것이니...창조는 어느 조건에 무관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살아생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미술관을 갖는 게 쉽지 않다는 데 김창열 화백은 생전에 갖게 되었으니...그 기쁨은 어떤 표현으로도 되지 않을 테다.

 


그의 작품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 '회귀'하고 싶었던 순수한 사람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본문 중(김창열화가)-



책을 보면서 그나마 가장 많이 들어본 이중섭미술관(4.제주도)은 이번에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다른 화가들과 달리 40세의 나이에 요절해서 안타까웠다. 같은 학교 동기인 화가는 2022년 3월 타계하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던 것을 보면 너무 일찍 세상떠나 꿈을 이루지 못한 게 마음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가 화가여서 어릴 적 부터 미술에 가까웠던 이중섭 화가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서양의 화풍 중 하나인 아수파 경향을 그림을 그리게 된다. 또한, 그곳에서 일본인 아내를 만나게 되는 데 일제강점기 인데도 오히려 이중섭과 교제를 허락하고 화가로서 생활이 어려우면 일본으로 오라고 할 정도로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한국 전쟁이 터지고 가족과 같이 제주도로 피난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지낸 1년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한다. 결국, 생활고를 해결하고자 아내는 일본인 이기에아들들을 데리고 먼저 일본에 갈 수 있었지만 한국인인 이중섭은 갈 수 없었다. 겨우 선원증을 만들어 갔지만 선원 자격이었기에 도착 후 일주일 만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이게 영원한 헤어짐이었음을..그때는 누가 알았을까. 한 때는 희망을 가졌다 화가의 능력을 알아본 서양인이 그림을 구매하게 되면서 작품이 판매가 되면서 빛이 보이는가 했지만 그림값을 제때 받지 못해서 실망과 나락에 빠지면서 결국 건강이 약해져 4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고 싶어한 가족을 뼛가루가 되어 만났다.....이중섭 화가의 삶엔 그리움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사도 모르는 어머니는 북한에, 생사를 알아도 만날 수 없는 아내는 일본에...정말 외로움 속에 살다간 화가의 마음이 편지를 통해 절실히 느껴진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금액으로 낙찰된 한 화가의 그림이 있다. '박수근:봄을 기다리는 나목'이다. 나에게 화가 박수근은 생소한 이름인데(5.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작품을 보면 또 낯설지가 않다. 아마,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일 텐데...밀레 같은 화가가 되기를 바랐던 박수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역시 겪은 인물이다. 농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은 밀레처럼 그 역시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는 것..그렇다보니 작품들은 빨래터에서 빨래는 하는 정겨운 아낙네들을 그린 <빨래터>와 할아버지와 손자를 그린 <할아버지와 손자> 등 정겨운 작품들이 많다. 당시 박완서 작가와도 인연이 있었는 데 생계 때문에 미군PX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화가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았다. 그러나 출품한 작품이 낙선하게 되면서 과음으로 몸을 상하게 하고 심지어 서류를 제때 확인하지 않고 샀던 집으로 진짜 주인에게 쫓겨나면서 생활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나, 낙선했어도 그래도...좌절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최악으로 몸이 좋지 않았을 때 출품한 <할아버지와 손자>를 보더라도 그림을 향한 열정만은 식지 않았음을 보였기에 안타깝기다 하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요.

-본문 중(박수근 화가)-

 

이렇게 사후에라도 이름을 따서 미술관을 갖게 된 화가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화가도 있다. 바로 나혜석 화백(6.수원시립미술관 나혜석기념홀)이다. 전에 TV에서 화가의 생애를 보여 준 적이 있다보니 좀 더 집중하면서 읽었다. '한국 최초의 모던 걸'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등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정말 그녀의 말년은 비참했다. 부유한 집에 태어나 여성이어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부모님 때문에 학교에 입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성은 결혼을 해야한다는 사고방식은 무시 할 수 없었다. 오빠의 도움으로 그림 공부를 하고 유학까지 다녀와 개인전을 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현재 나혜석 화가의 작품은 거의 소실 되었는 데 그건 생전에는 집에 큰불이 나서 재가 되었고, 사후엔 원고와 그림을 보관하던 오빠 집이 한국 전쟁 때 북한군에 점령되면서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1927년 세계여행을 한다는 건 쉽지 않는 일인데 외교관이 된 남편과 같이 유럽으로 떠나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을 테다. 파리에서 만난 최린으로 인해 이혼을 하고 궁핍한 생활고를 겪어야만 했던 나혜석. 여성이었기에 더 비난을 받아야 했던 순간들...그러나, 여성이 아닌 화가로서, 여권운동의 선구자임은 사실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화가가 남긴 <농촌 풍경>,<만주 봉천 풍경>,<파리 풍경>,<수원 서호>등 몇 점이 안되지만 소실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작품이 남겨졌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화가는 이응노 화백(7.이응노미술관)으로 그 역시 기구한 삶을 살았으며 타국에서 눈을 감은 화가다. 저자는 먼저 조심스럽게 화가에 대해 설명하는 데 앞서 적었듯이 나열한 화가들은 전부 한국전쟁을 겪었다. 이응노 화가 역시 그러했는 데 아들이 인민군에 끌려간 일이 훗날 그를 간첩으로 몰리게 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동양 회화를 현대 미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며 지필묵으로 그림을 그렸다. 서양화 화풍이 들어 올 때 배우기 보단 우리 그림에 새로운 화법을 넣어 창조했다.<거리 풍경>과 <피난> 작품이 주는 느낌은 다르지만 묵으로 표현한 기법이 독특함을 알 수 있다. 늦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 동양의 미학을 담은 콜라주 작품으로 '문자추상'이 만들어지고 현재까지 그만의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군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으로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미워하는 사람 없이 서로를 감싸고 서로를 지켜준다는 겁니다.'(본문 중)라는 마음으로 그린 대작이다.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받고 세계 여러 예술가 단체의 탄원서로 2년 6개월만에 풀려났지만 결국 프랑스로 귀화하게 되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기인 1980년 입국 허가를 낼 수 없기에 작가 없는 전시회를 연 정말 어이 없는 최초의 일이 아닌가 싶다. 더 믿기지 않는 건 전시회가 열리는 그 시각 이응노 화가는 파리의 작업실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게 되면서 전시장에 분향소가 마련되고 죽어서야 자신의 전시장을 올 수 있었다.

 

모두가 그림에 열정을 지녔고 그 열정만으로 살아온 화가들이다. 문득, 이들이 살아생전 그렸던 멋진 화폭처럼 인생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전쟁과 신념이 더 무거운 짐을 주지 않았나 싶고, 한편으로 이 책으로 한국 화가들,미술관을 알게 되어 너무 만족스럽다. 기존에 해외 작품만 보다보니 익숙해져서 <미술관 읽는 시간>에 소개된 작품이 낯설게 느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와 삶 그리고 작품을 소개 해 주니 각각의 그림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화가들...이 한 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국내 화가들을 알려주는 책이 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마지막으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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