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김성중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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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저 자: 김성중

출판사: 흐름출판

 

키츠는 아폴로니우스처럼 모든 세상사를 사실이라는 기준으로만 보려는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사실만을 믿는 사람보다는 사실과 상상력을 더불어 믿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이다.

-본문 중-

 

낭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음, 노래 가사나 소설 속에서 느끼는 것 밖에 알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뭔가 현시로가 동떨어진 세계라고 강하게 느껴지는데 오늘 만난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선 낭만이 인간에게 주는 것이 단순히 몽상이 아닌 삶의 질을 높여주는 하나의 도구임을 알려준다. 과거에 비해 현재의 삶은 풍요롭고 필요한 것을 쉽게 구하는 시대가 되었다(물론, 이중에는 힘든 사람들이 있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너무 앞서나가기만 해서 자신과 타인을 비롯해 인간의 감정을 돌아보는 서적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하면 이 책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19세기 영국의 모습과 현재 한국의 상황을 대조하면서 흘러가는데 왜 영국일까? 그건 산업혁명이 최초로 발생한 나라였으며 이로 인해 문제점을 가장 먼저 인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그로인해 상실된 감성과 정서를 회복하고자 사람들 마음속에 '낭만'을 불어넣으려 했던 영국의 모습은 오늘날 드러나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보니 책을 읽으면서도 공감되고 당시 시인과 작가들이 산업발전으로 우려된 모습을 통찰했던 게 대단할 뿐이었다.

 

단어의 시작은 비현실적은 모험담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여주는 로망에서 나온 말로, 저자는 영국의 낭만주의의 창시자인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를 시작으로 키츠, 바이런,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 당시 영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시인의 시를 통해 전달한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상 이건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하류층과 구분 짓기 위해 부유층은 매너와 예의를 철저하게 배워나갔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낯설지가 않는데 누구나 알다시피 한국은 계급이 없는 사회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느 아파트에 사는 것을 시작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절대적 신이 사라지고 과학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다(그만큼 지식인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나 이성적으로 살아간다면 행복할까? 물론,그렇다고 감성적으로만 살아가는 거 역시 옳다고 볼 수 없지만 그 옛날 시인들은 이성보다는 상상력에 더 치우쳤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흔히 알고 있는 뜻에 국한 된게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상상할 줄 알아야 가능한 것임을 알려준다. 시인이 바라본 세상은 현실적이지만 문자를 통해 아픔과 감정을 움직이게 한다. 이른 나이에 요절한 시인 키츠는 의사가 될 수 있었지만 시인을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결국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 전에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린 인물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키츠는 우울로 인해 자살률이 높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은 바로 '강렬함'에 휩싸이는 것이다. 키츠가 말한 이 단어는 강한 자극적 경험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 몰입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으라는 의미로 미술관에 가면 그림에 빠지듯이, 그 순간만큼은 걱정을 잊게 되니 말이다. 삶을 고달팠던 키츠에게 우울함은 단순히 부정적으로 바라본 게 아니라 이로 인해 인간 감성의 성장과 사색을 찾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우울은

죽어야 하는 미와,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항상 입에 손을 대고 있는 환희와

벌이 꿀을 빠는 동안에 독으로 변하는 고통스러운 기쁨과

공존합니다.

베일에 가려진 우울은

희열의 성전에 그녀의 성소를 가지고 있어요.

그 성소는 환희의 열매를 강한 혀로 입안에서 터뜨릴 수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으리.

-우울에게 보내는 시 중-

 

 

이뿐만 아니라 찰스 디킨스의 소설인 <올리버 트위스터>를 통해 당시 영국에서 구빈원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었는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 유명한 고전소설을 소개하면서 19세기 영국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특히, <멋진 신세계>는 고통 대신 쾌락만이 있는 사회를 그려냈다. 고통이 있는 삶을 누구나 원하지는 않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불행하게도 고통이 존재할 때 가능함을 상기시킨 소설이다. 또한, 시인들은 자연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는데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에도 늘 우위에 있음을 말하곤 한다. 낭만주의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자연에 대해 살펴봐야 하는데 영국 작가 체스터턴은 인간이 신비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건 자연에서 어떤 필연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라 했다. 계절에 따라 꽃과 나무가 자라고 지는 것 역시 하나의 마법이라고 봐야한다고 주장한 그는 석양의 아름다움도, 열매과 강물 역시 같은 존재임을...더 나아가 자연은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에올리언 하프>시에 담아놓았다.

 

그리고 자연은 여성 시인에게 위로와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대부분 남성 시인인 반면 왜 여성 시인은 없을까? 사실 없는 게 아니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면했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 역시 익명으로 발표했다고 했으니 시는 오죽했을까 싶다. 하지만, 여인들은 일상만을 소재로 쓰지 않았고 부당한 사회제도를 향해, 남성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약자의 소리를 대변했었다. 그 중 메리 로빈슨는 기구한 삶을 살다간 여성 시인으로 뛰어난 미모 때문에 사기 결혼과 남편의 빚 때문에 감옥에 수감이 되고, 조지 4세의 눈에 띄어 정부가 되었던 인물이다. 시인뿐만 아니라 소설가, 극작가로 활동을 했는데 당시 여성으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고 그녀가 쓴 <노래하는 가난한 부인>은 성주와 가난한 노부인의 삶을 대조하는 것으로 가난하지만 사냥꾼을 두려워 하지 않는 대담한 삶을 보여주는 시다. 자신을 한탄하는 다른 여성 시와 달리 자기 힘으로 삶을 일궈가는 자긍심을 알려준 모습은 마치 매리 로빈슨을 보는 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여러 소제목으로 19세기 영국의 모습을 시와 소설로 만나본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문득, 고전 문학과 시를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라는 점 그럼에도 그 안에서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이들을 이들을(시인과 작가, 소설)보면서 스스로 어떤 삶을 지나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개인의 안위와 욕망을 생각했더라면 선택하지 못했을 삶을 살았던 낭만주의 시인들을 되돌아보면 더 높고 숭고한 가치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초연한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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