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이어도 너무나 대중적인 커피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 처음 커피를 발견한 내용은 그 유명한 산양치기다. 그런데, 저자는 커피의 발견과 탄생 역사에서 산양의 역할이 없는 이슬람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더 깊이는 수피 즉, 수도사들을 등장시키는 데 커피의 효능을 제대로 맛 본 이들이었다. 기도를 해야하는 그들은 쏟아지는 잠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었지만 곧 커피로 인해 자유롭게(?) 기도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먼저 수피라는 단어를 언급 했는 데 이 단어의 시작은 8세기 메소포타미아까지 올라가고 양털을 의미하는 수프에서, 하얀 망토를 두르고 광야에서 종교적 고행을 하는 사람을 뜻하게 되면서 종교적 의미가 된 단어다. 커피와는 무관한 종교가 왜 나왔을까?
커피의 시작은 유럽이 아닌 이슬람권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앞서 소개하듯이 커피는 기도를 하는 이들에게 아주 유용한 음료였다. 밤을 지새워도 피곤하지 않고 혼자가 아닌 모두가 같이 밤을 새우면서 하게 되니 이 점이 문제가 되었다. 즉,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해야하는 데 커피를 마시며 기도를 했으니 이건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딱히, 이런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도발'로 봤으니 금지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에서 '커피하우스'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유럽처럼 잠깐 모일 수 있는 선술집이 없던 시기라 사교장으로써 커피하우스는 획기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니, 커피를 마시고 싶다기 보단 다수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중심적인 곳이었다. 오스만에 이어 영국에서도 커피하우스가 등장했지만 음, 여성을 배제한 공간이었기에 결국 인기가 사그라 들었고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먼저 귀부인들이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관심은 점점 높아졌다.
커피 역사에서 프랑스를 빼 놓을 수가 없는 데 여기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있기 때문이다. 18세기엔 전시체제 였고, 강국(영국,프랑스, 러시아 등)들은 식민지를 둔 상태였다. 프랑스는 그 중 서인도에 식민지가 있었는 데 한 군인의 독특한 발상으로 커피나무를 심었고 다른 곳에서 고가로 판매 되던 커피와 반대로 서인도 커피는 저렴하게 판매가 되면서 소아시아의 여러 곳에 수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커피 나무를 재배하고 거둬들이는 건 흑인 노예들이었다. 또한, 저자는 '니그로의 땀'이라고 오늘 날까지 커피를 이렇게 부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서인도제도에 커피나무를 가져간 드 클리외에겐 명예 훈장까지 주었으나 강제 노역을 해야했던 흑인 노예들의 삶은 누구도 보상을 해 주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의 끊임없는 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가 식민지로 강국이 되어가는 것을 어떻게서든 끊어놓아야 했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바로 '노예제도 폐지'였지만 그럼에도 프랑스를 쉽게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에서 프랑스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데 바로 '커피'였다.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를(대륙으로부터 바다를 봉쇄) 추진하는 데 그 첫번째가 커피였고 그 이유는 대륙 봉쇄가 효력이 확실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나...물론 이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그렇지 않는 곳도 있었는 데 독일은 완전 봉쇄상태가 되면서 밀수 커피가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커피를 대신하는 음료가 등장하기도 했고, 더 나아가 커피의 쓴맛으로 악마의 음료라고 오해를 받곤 했는 데 커피에 설탕을 넣은 터키인으로 인해 유럽은 달콤한 커피와 케이크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