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세계사 세트 - 전3권 -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 최파일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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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 나폴레옹 세계사 1부

저 자: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출판사: 책과함께

 

혁명전쟁은 전쟁 방식에서 새로운 전환을 나타냈다. 유럽 역사상 처음으로 이 전쟁은 유럽의 정치·사회 시스템을 떠받치는 세력들을 풀어헤쳤다. 프랑스 혁명군은 특권과 불평등에 바탕을 둔 기존의 군주정들에게 정면 도전하는 '국민/민족','인민','평등','자유' 같은 추상적 관념들을 함께 가져왔다. 국왕들의 사안이었던 전쟁은 이제 국민들의 사안이 되었다.

-본문 중-

 

나폴레옹 하면 정복자 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 데 오늘 [나폴레옹 세계사]를 읽으면서 나폴레옹 뿐만 아니라 프랑스로 인해 주변국가 또 저 멀리 있는 나라들에게 혁명 이라는 단어가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한 인물에 대한 내용으로만 생각을 했었는 데 저자는 나폴레옹 뿐만 아니라 당시 전시체제 였던 유럽 국가들간의 여러 동맹과 배신, 자국의 이익으로 움직이는 동맹국들의 모습을 보여주니 매 순간마다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영국과 7년 전쟁을 비롯한 18세기 내내 전쟁의 시기였다. 전쟁으로 인한 빌린 돈 대문에 경제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농민 봉기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프랑스는 1차 대불동맹에 가담한 국가(영국, 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스파냐,나폴리외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해야했는 데 그 이유는 바로 '바다'를 차지 하기 위함이었다. 영국은 해군 강국으로 아직은 프랑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만 프랑스는 영국 -에스퍄냐 연합국을 전략 요충지에서 몰아냈고 여기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무명의 포병 소령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되는 프랑스의 승전 소식 여기에 또 다른 국가인 폴란드가 등장하는 데 아, 정말 이 나라는 러시아,프로이센에 의해 분열되는 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가지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한 번도 아닌 세 차례 걸친 분할이는 글에 놀랐지만 책을 읽다보면 강국(프랑스, 영국,러시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위 국가들은 나라의 일부를 내주거나 흡수되는 일들이 더러 발생했다. 특히, 에스파냐는 결국 정복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프랑스를 향한 반란과 활동은 여인과 어린아이들까지 돌멩이를 가지고 대항했던 내용은 이들이 어떤 자국을 향한 민족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물론, 다른 나라도 있었지만). 또한, 아이티 국가의 탄생은 루베르튀르가 이끄는 흑인 병사들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는 데 이들은 아이티의 독립을 영국과 최선의 관계를 추구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미국은 당시 어땠을까? 이 나라는 해상이나 여러면에서 부족한 나라였다. 프랑스의 맹방인 미국은 프랑스가 영국에 선전포고 했을 때 도와줘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직은 중립을 유지하는 데 미국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점. 그러나, 앞서 적었듯이 아무리 맹방이었더라도 자국이 위험해질 거 같으면 주춤했던 게 그 시대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프랑스가 점점 세력이 퍼져가고 동시에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에 왔을 땐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오히려 정부에서는 나폴레옹은 내세워 그를 조종하려 했지만 그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을 황제라 칭하게 할 만큼 권력을 얻은 인물임을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가 유럽을 향한 승전이 이어질 때 영국의 동맹국에 패배하기도 했고 또는 영국에 등을 돌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영국은 해군에서 여전히 프랑스를 앞서고 있었다.



나폴레옹 세계사는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이 큰 그림이다. 두 강국의 전쟁의 목표는 자국의 국가 이익, 국제적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코끼리 대 고래 싸움에 주변 국가들은 어느 나라와 동맹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가 사라지고 건사하는 운명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립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결국 두 나라는 전쟁을 하게 될 운명이었다. 나폴레옹이 명성이 유럽 전역에 퍼질 때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다른 이들은 음모를 꿰하기도 했는 데 여기엔 조르주 카두달이 이끄는 프랑스인들도 있었다. 제1통령 정부를 선언한 그에게 음모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고 이 음모에 '부르몽 가문 왕족'의 가담을 했음을 실토하고 나폴레옹은 전혀 증거 없었음에도 당기앵 공작을 체포, 처형시켰는 데 이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수단이든 쓸 것이라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었다. 이 사건은 마지막 명망 높은 콩데 가문의 마지막 혈통을 살해 한 것이라고 유럽 전역 정부들은 경악했고 이 사건은 나폴레옹이 앞으로 떨칠 명성에 오점으로 남은 사건이었다.

 

지휘 계통의 꼭대기에는 명령을 상세히 설명하고 전달하며, 보나파르트를 위해 지도를 준비하고, 기동과 정보, 군 재정, 병참, 의무등을 조율하는 임무를 맡은 참모부를 구성했다. 이러한 조직 개편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신만만한 그의 성격, 지도력, 휘하 부하들에 대한 이해 등이 합쳐져 프랑스 군대는 무적으로 보였다.

-본문 중-

 

프랑스 군대 체제는 여러 소수 군단으로 나누어 각각 연대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했다. 하나의 군보다는 규모가 적은 군대들이 있어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고, 나뉘어 행군하며 적과 조우했을 때 전환태세가 가능했지만 단점은 만약 교전하는 군대가 없다면 오랫동안 단독으로 싸워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의 야망은 어디까지 였을까? 세계사에서 전쟁은 누가 나쁘고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소수의 사람으로 인해 좌우되는 국가들...여기서 다시 에스파냐를 언급하는 데 정규군이 생기고 프랑스군에 대적했던 나라인 데 결국 프랑스에 패배하게 되면서 다른 전쟁에 에스파냐인들이 착출하는 것을 봐야했다. 그러나, 이들은 훗날 다시 한번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동맹국과 합류해 프랑스와 싸울 운명이었다. 아무리 보나파르트가 오랫동안 유럽을 거의 정복했지만 그 나라들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문제점이 발생하고, 행상 무역을 두고 영국과 대립해야하는 상황은 끊임없이 일어나니 영국에 평화협정까지 내밀기도 했었다.

 

유럽의 지배적인 경제 신조인 중상주의는 부를 얻기 위해서는 무역 흑자를 통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부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 둘 다 중상주의 정책을 추구했고 경재국들의 수출을 제한하고 자국의 수출을 장려학자 공격적으로 활동했다.

-본문 중-

 

 

대륙에서 헤게모니로 입지룰 굳히려는 나폴레옹. 대륙 봉쇄 체제를 도입했지만(영국을 향한) 6년 밖에 가지 못했는 데 사실 이것으로 영국 경제를 완전 고립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밀수가 늘어났고 나폴레옹의 부인 역시 밀수로 물품을 구입했다고 하니...이 정책은 80%는 실패고 20%는 성공했다. 20%로는 그나마 성공한 사례가 있어서다. 그리고 여전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유럽 국가에서 견제해야하는 인물이었다는 점과 동시에 프랑스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곳도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후는 더 이상 승리를 거머쥘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전 유럽의 정부에게 나폴레옹이 무적이 아님을 자각한 전쟁이었다. 저자는 간혹 나폴레옹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만약 당시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했다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알려준다. 그러나, 전시 상황에서 누가 얼마나 이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약국이라면 영국이든 프랑스든 어느 나라와 동맹을 하든 자국이 힘들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니 어느 선택이든 버거웠을 테다. 1부 도서는 이렇게 여러 국가들이 상황과 프랑스의 입지를 보여준다. 아직은 건장하고 무너지지 않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보여주는 데 2부에서는 어떤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 지...프랑스과 영국 뿐만 아니라 두 나라의 동맹국과 러시아 등 '나폴레옹 세계사'는 여러 나라들과 얽혀 있어 앞으로 운명이 어떻게 될지...가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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