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활동은 여성 보다 남성에게 유리했는 데 산책 조차 여성들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남성들은 일을 마치고 산책이나 다른 취미를 가질 수 있지만 여성은 가사노동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바느질, 원예 등 일부 여성에게도 취미가 생겼지만 가난한 여성에게는 취미보다는 가사노동의 일원이었다. 그러니 취미라고 해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게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혼자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바로 환자들이었다. 요양으로 떠나면서 외부 접촉을 거절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치유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마 여전히 여성이 혼자 산책하는 것과 다양한 취미를 갖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요한 치머만의 <고독에 관하여>를 첫 장에서 소개하는데 이 책은 19세기에 누구네게도 비판을 받지 않고도 인기를 누렸다. 치머만은 혼자와 집단 두 가지를 동시에 수용하는 입장이었고 그보다 앞선 이들은 어느 한쪽만을 선택했었다. 치머만의 선택이 옳았다. 사람들이 아무리 혼자이고 싶어도 집단 속에 자연스럽게 소속 되었는 데 대표적으로 동호회 활동이었다. 특히, 낚시는 영국에서 신분 상관없이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부유층은 개인 공간을 빌릴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협회를 가입해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기차역에 내려도 그들은 각자 움직여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 나한테는 생소한 십자말풀이 역시 돈을 들이지 않게 하는 취미로 급상했고, 서신이 발달하면서 우표 수집가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취미란 단순히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내면의 치유를 하기도 한다. 몸에 해롭다고 하던 담배까지 그랬다고 하니 말이다(중독이라는 치명적인 게 있지만 말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다. 도보로 시작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났다. 과거에 비해 현재는 혼자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결코 혼자가 아니다. 저자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있어 외로움과 고독 사이 적정선에 머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고독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될 것이며 1791년 요한 치머만이 말한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은 먼 미래에도 여전히 동일한 현상을 일으킬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