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 섬>은 공동묘지로 향하는 작은 배를 보여준다. 웅크리고 앞모습이 보이지 않는 자의 등에선 슬픔이 전해진다. 뭉크는 죽음을 악몽으로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어쩔 수 없는 죽음을 그저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전달한다. 그리고, 저자는 <죽음의 섬>을 통해 '위로'를 알려주고 싶었다. 또한, 절망과 슬픔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게 더 최선의 선택일까? 슬픔은 혼자만의 감정이지만 절망은 모두가 느끼는 것이다. 아들을 빼앗긴 농부는 그 잃은 슬픔에 빠지지만 다시 가난에 아들을 데려와 질병과 아픔 속에서 살아야 하는 절망에서 선택을 해야한다.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한 작가의 그림 <독일의 아이들은 굶주린다>, 아픈 아이가 자신을 안고 있는 엄마의 뺨에 손을 올려놓은 그림<아픈 아이>, 죄수들을 실은 기차가 잠시 멈춘 간이역에서 빵조각을 새에게 던져 준 아이의 모습인 <삶은 어디에나> 등 정말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만나는 작품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흔히, 울고 싶을 때 슬픈 영화를 보라고 하는 데 그건 감정을 쏟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저자를 위로해 주었던 명작 95개를 통해 슬픔 대신 위로를 절망 대신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니 인생은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함을 다시 한번 생각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