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젖어 - 나는 위로해 주었던 95개의 명화
손수천 지음 / 북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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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그림에 젖어

저 자: 손수천

출판사: 북산

눈이 먼 소녀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어도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언 발을 두 손으로 감싸 안아주는 것. 그러한 연대감이야말로 희망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연대, 희망의 다른 이름 중에서-

예술은 인간에게 언어 대신 슬픔과 기쁨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줬다. 어떤 말보다 한 장의 그림으로 모든 것을....때론 나도 몰랐던 감정을 그림을 통해 알아 가기도 하는데 사람은 이처럼 자신 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을 외면에서 찾아가기도 한다. 오늘 만난 [그림에 젖어]는 95개의 명화와 함께 작품이 주는 의미를 더 깊게 설명하고 있다. 한 작품에 작가 그리고 그림에 대한 설명까지 하고 있어 읽다보면 울컥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세상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전쟁이 있고 타인을 배척하고 외면하고 있다. 이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책 속에서 소개 된 그림을 보면서 느낀 건 과거나 현재나 항상 인간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물론, 미래는 달라져야 하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죽음은 생명이 있는 존재는 피해갈 수 없다. '절규'로 유명한 화가인 뭉크는 어릴 적 엄마와 가족을 병으로 잃었다 그 충격으로 그의 작품은 인간의 공포가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했음을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지만 악몽이 뭉크를 집어 켜버린 거 같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켤 때마다 첨다 문명의 이기가 괴물이 되어 내 이성을 잠재우는 건 아닐까 하고 경계한다. 이성은 검색이 아니라 사색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성이 잠들지 않도록 중에서-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 섬>은 공동묘지로 향하는 작은 배를 보여준다. 웅크리고 앞모습이 보이지 않는 자의 등에선 슬픔이 전해진다. 뭉크는 죽음을 악몽으로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어쩔 수 없는 죽음을 그저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전달한다. 그리고, 저자는 <죽음의 섬>을 통해 '위로'를 알려주고 싶었다. 또한, 절망과 슬픔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게 더 최선의 선택일까? 슬픔은 혼자만의 감정이지만 절망은 모두가 느끼는 것이다. 아들을 빼앗긴 농부는 그 잃은 슬픔에 빠지지만 다시 가난에 아들을 데려와 질병과 아픔 속에서 살아야 하는 절망에서 선택을 해야한다.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

전쟁으로 아들과 손자를 잃은 한 작가의 그림 <독일의 아이들은 굶주린다>, 아픈 아이가 자신을 안고 있는 엄마의 뺨에 손을 올려놓은 그림<아픈 아이>, 죄수들을 실은 기차가 잠시 멈춘 간이역에서 빵조각을 새에게 던져 준 아이의 모습인 <삶은 어디에나> 등 정말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만나는 작품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 흔히, 울고 싶을 때 슬픈 영화를 보라고 하는 데 그건 감정을 쏟아내기 위한 방법이다. 저자를 위로해 주었던 명작 95개를 통해 슬픔 대신 위로를 절망 대신 희망을 보여준다. 그러니 인생은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함을 다시 한번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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