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와 융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영성가의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BOOKULOVE(북유럽)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헤세와 융 / 미구엘 세라노 / 북유럽] 


헤세와 융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같은 분야도 아니기에 더더욱 두 사람의 같이 생각하기란 어색하다. 헤세는 작품을 읽기도 전에 너무 익히 들었던 이름이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음에도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작년 부터 고전을 접하면서 헤세의 작품을 읽게 되었고 조금씩 작품 세계를 알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흡수가 된 것은 아니며 헤세의 작품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 한 것이 많았으며 인간이 가지는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그려넣었기에 어려우면서도 이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헤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의 문장과 이미지가 너무 잘 어울린다. 고요하고, 아련하고 혼란스러움 음..이런 감정들이 먼저 떠오른다. 반면 융은 심리학 하면 프로이트라는 생각했었는데 우연히 융을 알게 되었다. 이 역시 새로운 심리학자여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프로이트와 달리 상징과 비유에 관한 이론을 내세웠다. 


이렇게 생애 업적을 후세에 남긴 두 사람을 한 시대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저자인 미구엘 세라노는 헤세와 융을 만나는 큰 영광을 가졌다. 이 책은 개정판으로 재출간이 되었고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헤세와 융은 1년 정도 간격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세라노는 먼저ㅅ 헤세와의 만남을 가졌다. 헤세 나이 74세, 세라노는 34세였다. 너무나 차이나는 이들이었지만 세대차이는 전혀 없었다. 헤세의 작품은 미국 보다 스페인의 젊은이들에게 더 알려졌었다. 헤세의 작품 중 [픽토르의 변신]이 있는데 이는 동화로 픽토르가 나무가 되면서 외로움을 느끼며 하나가 아닌 둘의 존재에 대한 내용으로 잔잔하게 표현했다. 또한, 그저 팬으로서 만난 게 아니라 헤세의 작품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들이 부러웠을 뿐이다. 특히, 고전은 토론을 할 만큼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직접 저자를 이렇게 만나면서 대화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일까...



융 역시 그와의 만남을 가지면서 저자가 책을 출간하면서 융은 책의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헤세와 융의 공통점은 신화와 상징이었다. 동양의 종교에 관심이 많은 헤세.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다. 융 역시 그러했는데 확실히 작가가 아닌 심리학자라 그 세계를 보는 것은 살짝 힘들었다. 하지만 삶과 이론을 볼 수 있었고 저자와의 만남을 보면서 융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잦은 만남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의 만남 후 편지로 오랫동안 유지해 온 관계로 살아가면서 이런 인연을 만나는 것도 힘들텐데 헤세와 융 그리고 세라노의 모습을 보면서 누군과의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삶이 성공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단, 여기서 겉 모습이 아닌 진정 상대방의 삶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작품으로 심리학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음 아직은 나에게 가깝지 않는 길이나 하반기엔 헤세의 작품을 완독하는 것을 목표를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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