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 -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나누는 예술과 삶에 대한 뒷담화
이경남 지음 / 북스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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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작년이다. 2019년 6월 그동안 미뤘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취미미술로 시작했고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배우다보니 점점 미술에 관심이 생겼는데 물론, 전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냥 '미술'이라는 점에서 알고 싶었을 뿐이다. 미술은(통틀어서) 넓은 시야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상상을 동원해서 만드는 작품도 있고, 너무 시대를 앞서가 버려 비운의 삶을 마친 작가도 있고 정말 어느 시대에 맞춰야 하나 싶지만 가장 중요한 '영감'이라는 것을 예술가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늘 읽은 <오늘의 화가 어제의 화가>는 그동안 작품만 보고 감동이나 느낌을 받았다면 더 깊이 들어가 어떻게 해서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작가의 삶을 보여준다.



 


익히 들었던 작가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인물도 있는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남성에 비해 여성작가는 많지 않았다. 또한, 책 속에 소개된 화가들은 거의 삶이 평탄치 않았다 어쩜 이렇게도 살았을까? 그런데 사람은 감정이 잔잔한데서 나오지 않는다. 참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인데 고통 또는 폭풍같은 삶에서 때론 누구도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드는게 바로 작가들이다. 책은 총 13명의 화가을 소개하고 첫 시작은 '에드아루 마네'로 한번 이라도 봤던 그림이었다. 예술가는 자신의 삶을 작품속에서 투영하거나 때론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더라도 먼저 작품을 보기 전에 작가의 삶과 그 작품을 만들었을 당시 상황을 안다면 그림이 보기 훨씬 수월하다(그림에서 보여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마네의 삶은 읽을 수록 추측이라고 하지만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계속 해서 이어가네 싶었다. 그래도 가족, 예술과 사랑 중 어느 것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성실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이해불가능한 화가다. 짧은 화가 인생 20년 동안 정말 마네는 무엇을 보고 앞으로 나아갔을까? 이렇게 마네를 시작으로 베르트 모리조(여성작가),클로드 모네,폴 고갱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하나같이 고단스러운 삶을 지녔고 통틀어서 이들에게 뮤즈란 사랑이라는 감정이었을까? 아님 사람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92년를 살면서 끊임없이 여성과 인연을 맺었던 피카소를 보면 새로운 여성을 만날 때(바람이었다)마다 색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상처 입는 것은 결국 상대 여성들이었고 그 중엔 버림 받았지만 피카소가 죽었단 소식을 듣고 자살한 여성도 있었다.


그저 한 인간의 삶으로 볼 때 답답한데 예술작가로 그 작품과 같이 이어서 본다면 왜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그 중에 프랑스 출신인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화가는 선천적으로 뼈가 약했기에 정상적인 성인 몸으로 성장을 할 수 없었다. 외부활동을 거의 할 수 없어 자연스레 주변 사물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로트렉 그림의 특징은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의 감정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이런 설명을 듣고 그림을 봐도 음...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여러 작품을 보다 보면 알거 같기도 하다. 하여튼, 로트렉이 살았던 몽마르트르는 환락가여서 창녀들과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자신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다고 한다)그들이 종종 모델이 되어주었다. <침대>라는 작품을 보면 그저 평온하게 자는 모습인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작가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로댕의 연인이었던 까미유 클로델. 오히려 로댕보다 뛰어났던 작가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헤어지고 살롱에서 자신의 작품을 도둑맞고(아무래도 범인은 로댕이라고 ..) 당시에는 여성이 활동을 하는 것은 어려운데 아버지의 전적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과 멀어지고 인생의 말년은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된 작가다. 책속에 소개된 조각상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그건 로댕의 족가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로댕이 까미유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데....삶을 조금만 더 강하게 살았더라도 인생도 작품도 더 멋지게 빛날 수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 작가였다.


또한 <앉아있는 악마>를 그린 러시아 화가 미하일 브루벨. 그림을 보고 슬픈 감정이 느껴지긴 했는데 악마가 인간을 사랑했지만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자신으로 인해 죽은 그녀의 영혼조차 소유할 수 없는 고뇌를 그렸다. 악마라고 하면 무시한 얼굴이 떠오른데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먼저 눈에 띄었다. 예술 작가들은 다른 예술에서 영감을 얻는데 브루벨은 한 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고 한다. 누구나 시나 소설, 그림을 통해 새로운 것을 느끼지만 이를 자신만의 방식(그림, 음악, 시 등)으로 나타내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예술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하거나 알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작품을 볼 때 먼저 '왜 작가는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를 거고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작품을 꼼꼼히 보면서 찾아낼거 같다. 블로그 이웃 중에 미술에 조예가 깊은분이 있다. 그분의 블로그를 보면서 화가와 그림을 알게 되었다. 예술가라 하면 보통 가난하고 마지막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 고달픈 인생이다 싶었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소개된 화가들은 부유하거나 중간층 또는 그림을 배우는 여건이 되는 화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독특한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들...한 장의 그림으로 수 많은 감정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다니 정말 존경스럽다(다만, 가정사에서는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예술의 어느 사조에도 속하는 것을 거부하며 만들어낸 작품들이 예를 들을 수 있는 결과물이지. 나의 취향에 머물기 전에 부정하며 또 다른 취향을 만들기 위해 애썼네. 나중에는 습관처럼 다양성을 찾게 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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