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방법들. 단순히 거울로 확인하는 방법부터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쓴 일기, 혹은 일생에 대한 일대기를 다루는 자서전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얼굴을 직접 그린다면 자화상이 될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표현 욕구를 가지고 있다. 대상에 대한 해석의 초점을 주체인 나에게로 돌려 일종의 메타사고를 통해서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해석은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작업일 것이다. 많은 화가들에게는 자화상이 있고 많은 작가들에게는 자전소설이 있다. 자화상은 예술가에게 있어서 자기 고백이며 자기반성일 수 있다. 그러나 이원의 살가죽이 벗겨진 자화상은 제목이 주는 기괴한 분위기와 함께 자신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자화상의 일반적인 범주 외에 있다. 과연 살가죽이 벗겨진 나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살가죽을 나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단지 살가죽이 덧씌워진 나의 이면에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가. 시의 제목으로 질문의 연쇄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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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은 1행으로 되어 있다. ‘검은 빛에 갇힌그러나 주어와 동사로 구성된 문장, 혹은 명징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명사가 아니다. 수식 어구뿐이기 때문에 수식대상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수식대상은 2연에서 이어진다. ‘길들하루. 2연의 분위기는 검은 빛의 수식을 받아 이어가기 때문에 어둡다. 1행의 제 스스로 몸을 구부려 돌아가고 있는 것에서 편하게 빠른 길로 가는 것과 대비되어 고행의 느낌을 준다. 이어서 하루벽을 밀고 가는 것이다. 벽은 밀리지 않는다. 예정된 실패의 행동들이 하루의 과업인 것이다. 3행에서는 한 여름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는 형국이라고 묘사하며 일부러 고생하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2연의 행동들, 돌아가거나 벽을 밀고 가거나 땀을 흘리는 것은 특별한 산출물이 없는 고생 정도로 보인다. 이 시의 제목이 자화상이었던 것을 염두 하면 2연에 그려진 고행은 자기반성을 위한 선행 단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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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에 등장하는 물 빠진 뻘의 배는 바다로 나갈 수 없는 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바다 멀리 까지 보인다.’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는 한계만을 확인하게 한다. 나를 배로, 바다를 세계로 치환할 때 내가 세계로 진입하는 데 있어서의 좌절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1연에서 나의 자기반성적 고행을 시작으로 2연에서는 세계로 진출하지 못하는 나를 묘사하고 있다. 3행에서 지칭하는 여기는 죽은 사람, 산 사람이 모두 보이는 공간이다. ‘여기는 시 안에서 물 빠진 뻘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떠난 자들과 남겨진 자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층위에서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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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은 하나의 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이 들끓어 밖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이 의도한 살가죽이 벗겨진 자화상에 가장 근접한 시적 언술이 된다고 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말로 진정한 자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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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은 자기반성의 결과인데 다소 파격적이다. ‘다시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것이라는 다짐에서 인간에 대한 메타사고가 인간에 대한 부정에 이르는 모순을 확인하게 된다. 이어지는 2행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나는 내가 사람인지조차 모를 것이다라고 끝까지 부정한다. 자기반성의 의도로 시작한 자화상의 결론이 인간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마무리되면서 이 시의 대상은 애초에 나라는 소박한 차원에서의 자화상이 아니라 인류 전체로 확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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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해석의 결과는 의도와 달리 강한 자기 부정성을 내포한다. 자기 해석의 과정은 자기 부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부정된 자아 역시 다양하게 해석된 자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쩌면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를 비운 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허상들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아마 살가죽은 우리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나라고 믿고 있던 허상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자화상을 통한 나와의 대면 과정은 고통스럽고 자기 한계를 확인하는 괴로운 과정이지만 그 결과로서의 자기 부정은 더욱 결연하여 진실로서 믿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연을 읽었을 때의 울림은 강렬한 시적 분위기를 성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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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핸드포드의 <월리를 찾아라>가 지방 소도시의 홍보공간에서 재현된다. 책 속에서 우리는 단지 재미를 위해 월리는 찾는다. 월리를 위해 400명의 인파가 그림마다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월리는 찾아달라고 간청한다. 홍보 공간을 활보하는 사람들 사이에 월리가 있지만 그를 찾는 일에는 무심할 뿐이다. 절박한 심정의 월리는 군중 사이를 애처롭게 돌아다니지만 연민과 동정을 받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월리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안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있다. 군중의 외면과 월리들과의 경쟁을 넘어선 전쟁. 윤고은의 <월리를 찾아라>가 구축한 세계다.


소설의 주인공 제이는 스물일곱살로 주말에 이벤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의 친구 장은 예식장에서 하객 대역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장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며 회의를 느낀다. 다른 역할로 살아가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월리 역을 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군중 속에 섞여 있으면서 절대 숨어있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도록 강요받는 청년들은 그 비루함 속에서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하며 하루하루 소모된다. ‘월리의 역할을 하는 청년들은 이 소설에서 무한 경쟁 시대에서 하루하루 에너지를 고갈당하며 무익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을 비유하고 있다


월리를 찾아라는 어린 시절 인기를 끌었던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책이었다. 복잡한 그림 속에서 월리를 찾았을 때의 즐거움과 반가움을 현실 문제에 투영하며 비틀고 있는 상상력과 구성력은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월 리가 한명이 아니라 발견되지 못한 월리들의 존재를 추측하는 대목은 현실의 비정함과 개인의 소외를 잘 드러낸다. 또한 번식된 듯 많아진 월리들과의 갈등을 드러내며 연대의식과 공동체주의가 제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인물과 공간의 설정, 사회적 문제의식을 함의하고 있음에도 이 소설의 결말은 다소 허망하며 문제를 관통하지 못하는 비켜선 결말이다. 그렇다고 이를 거리두기의 여운을 남긴다고도 볼 수 없는데 이미 주인공의 동선과 사고에 집중하고 이야기를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흥미를 상쇄하는 결말이라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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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면 ()인 사람이 된다. 대상에 대한 사랑은 사소하지만 애정 어린 시적발화를 이끌어낸다. 낯간지럽고 유치한 구절들을 일기장에 적어본 기억 때문에 연애시(戀愛詩)에 대한 편견이 있다. 하지만 연애시라고 해서 단순히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시인 김혜순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은 시인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제 시 속에서 대상과 사랑에 빠진 화자의 모습을 즐겨 등장시킵니다.”라고 말했다. 김혜순의 시에서 사랑에 빠진 화자는 사랑을 속삭이는 것 이상으로 시인이 구축한 시적 공간에서 대상과 주체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구하기에 존재론적 성격이 강하다


김혜순의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은 나와 당신에 대한 훌륭한 연애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나와 당신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구축되고 선명한 감각으로 서로를 소환한다. 사랑과 이별의 서사는 일상에서 우주로 펼쳐지는 무한한 무대, 특히 도시라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그려진다. 그 중 1부에 실린 얼굴을 통해 사랑하는 주체와 사랑받는 대상의 관계를 존재론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시의 첫 구절은 당신 속에는 또 하나의 당신이 들어있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당신을 파악하는 것이 이 시를 이해하는 즐거움이다. 이어서 당신속의 당신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표면적으로는 본연의 자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를 연애시의 범주에서 읽을 때,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서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대상 그 자체를 파악할 수도 없다. 사랑은 해석의 행위이며 하나의 대상은 다양하게 해석된 형태로 존재한다. 대상은 언제나 분석주체만큼의 해석된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 속의 당신내가 해석한-사랑하는 당신일 수 있으며 해석의 틀을 확장한다면 당신이 해석하는-사랑하는 나로 읽을 수도 있다. 당신 안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발견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 안에 사랑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나를 마주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의 대상은 당신을 넘어서 당신 속의 당신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당신 속의 당신이 어떻게 서사를 이끌어나가는지 추적함에 따라 그 존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2연에서 당신 속의 당신몸 안으로 단단히 당겨 잡고있다. ‘손톱이 안쪽으로 동그랗게 말려들어갈정도로, ‘귓바퀴가 몸속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갈정도로 잡아당기는 힘은 상당한 것으로 보여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손을 놓으면 당신 속의 당신은 세상에 없는 것이 된다. 세상에 없다는 것은 죽음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연애시의 맥락에서는 이별, 혹은 존재론적으로 무의미한 대상이 된 당신 혹은 나로 해석할 수 있다.


3연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당신 속의 당신과 나와의 관계가 구축되고 있다. ‘내 얼굴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내가 느끼기도 하는것으로 보면 나와 당신과의 아름다운 사랑이 느껴진다. 여기서는 당신 속의 당신을 당신인지 당신에 의해 해석된 나인지에 관계없이 나와 당신의 사랑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속의 내가 등장해 당신에게 끌려들어갈 지경이라고 말하면서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강렬한지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신 속의 당신을 당신이 해석한 나로 본다면, 해석된 내가 일상의 나를 사로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 속의 나를 당신이 해석한 나로 파악가능하다. 사랑에 의해서 나에 대한 재개념화가 되는 것이다. 이런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교류되는 상황에서 당신 속의 당신내 속의 나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깊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서로 닮아가고 흉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 속의 당신은 당신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떠나도 여기에즉 내가 있는 이 곳에도 있다. 돌려보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강력한 존재가 되어있다. 다음 연에서 시인은 부재자의 인질이라고 나를 묘사하는데 사랑의 감정에 완전히 점령당한 나의 모습을 매력적인 시어로 표현하고 있다. 당신이 없어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 혹은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김혜순의 얼굴당신 속의 당신혹은 내 속의 나와 같은 개념을 시적 대상으로 선택하여 사랑하는 대상, 즉 해석된 대상의 존재에 대해서 접근하고 있다. 시적 공간이 거의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체와 대상만이 있으며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서사에 의해서 사랑의 정황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화자는 사랑에 의해 완전히 사로잡힌 부재자의 인질의 상황에서 대상에 대한 순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 안의 것들을 숙성하여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애틋한 마음은 단순한 순정 그 자체가 아니다. 대상에 대한 시인의 심층적 사고를 통해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은 철학적 대상을 통해 깊은 사유에 이르는 것이다


사랑은 해석이다. 나의 연인은 나에 의해서 해석된 대상이다. 대상 안에는 내가 해석한 대상이 존재한다. 해석된 대상은 해석주체만큼 무한하며 대상 안에서 연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마치 러시아 민속인형인 마트로시카처럼 대상 안에 대상이 숨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속의 당신을 우연과 의도에 따라 생성한 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당신 속의 당신에서 열렬히 사랑에 빠진 나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해석되어 서로에게 존재할지는 알 수 없으나 무한대의 해석에 이른 사랑은 고유하고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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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앞에서 모든 문장은 위선이거나 위악일지도 모른다. 문장의 이면에 숨겨둔 의도와 장치들이 무의미해지는 지점이 그의 시에 확연히 드러난다. 생과 역사를 그대로 관통하는 시어의 힘은 강하다. 그 힘은 다른 문장을 굴복시키거나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긴장을 치열하게 유지하는 온전한 힘 그 자체다. 내적 갈등의 증폭을 견뎌내는 강인함을 통해 그의 시는 살아있다. 하지만 힘의 근원은 거대한 뿌리에 있다. 척박한 땅을 뚫고 지나가며 단단히 끌어안는 뿌리로 그의 시를 형상화할 수 있다.




시인 김수영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4.19라는 사건에서 그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늘과 땅의 통일을 느끼며 스스로는 온몸에 허위가 없다고 한다. (저 하늘이 열릴 때1960) 김수영은 4.19를 찬양하여 사건 자체에 매몰되지도 않으며 사건에 대한 사유를 발전시켜나간다. 그의 시 사랑에서 사랑을 배우게 해준 ‘4.19’로 치환하여도 독해가 가능하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사랑의 변주곡도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4.19는 기념의 사건이 아니다. <4.19>라는 제목의 시는 기념하지 않기 위해 쓴 시다. 그의 헌신에는 맹목이 없다.



그의 시는 세계와 소통한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우슈비츠라는 파국 이후에 아름다운 가상을 노래하는 것은 기만이며 더 나아가 야만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수많은 파국들이 상흔을 남겼다. 김수영은 이러한 파국 앞에 절망을 노래하거나 근거 없는 긍정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는 눈물 없이 애도한다. 그의 반성적 사고는 그의 윤리적 자세에서 가능하다. 그의 자세에 철학자 김상환의 <시와 교량술>을 참고하여 교량적 태도하고 명명하고자 한다.



그의 시 현대식 교량은 앞서 언급한 교량적 태도가 잘 드러나는 시이다. 서로 다른, 거리를 두고 있는 두 대상은 다리로 이어져 고유성을 유지하며 구축된 다리를 통해 소통의 가능성을 연다. 시에 등장하는 다리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것이며 현재에도 이용되고 있다. 과거세대로 대표되는 화자는 미래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와 만난다. 그들은 화자와 20년의 거리를 두지만 화자는 서로의 간극을 소급한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적 도착이다. 과거의 역사성에 현재를 함몰시키며 미래를 예감하는 일방적인 사고가 아니라 과거와 분절된 현대적 사고에 다리를 놓으며 미래의 연대의식을 예감하는 것이다



그의 교량적 태도는 시인과 생활인으로서 김수영을 연결시키며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공자의 생활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같은 시에서 생활인으로서의 지리멸렬함과 비루함이 거침없이 시로 형상화된다. 하지만 이런 삶이 시일 수 있는 이유는 사유의 치열함에서 기인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어 자신의 시작(詩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메타적으로 사유한다. 이런 긴장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한 교량을 만든다.

그는 시 쓰기에 대해 머리로, 심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 즉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온몸이라는 것은 그의 정신과 세계 그리고 도래할 미래와 지나간 과거의 역사를 일괄한다. 온몸으로 헌신하여 쓰되 진실이 남아 치열한 사유로 쓰여진 시들은 시의성에 무관하게 김수영의 정신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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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은 나에게 너무나 멀리에 있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다른 세계에 존재했다. 여신은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존재도, 숨 쉬고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수천년 전의 신화 속에 눈을 마주할 수 없는 대리석 조각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파랑새를 찾는 여정처럼 내 안에 여신이 있음을 전해준다. 저자의 진실한 순례기를 따라가 보면 여신의 생명과 포용 속에서 내가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여성으로서 상처받은 부분들이 여신이 주는 치유의 힘으로 되살아남을 느끼는 것이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여신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새로운 힘을 받는다. 나의 능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신은 이 책의 제목대로 찾아야하고 찾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내면의 힘이 된다.

이 책은 여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저자의 간절한 여신만나기의 진실성과 친절한 설명, 그리고 여행 자체의 즐거움을 따르게 된다. 1부에서는 크레타 여신 순례기를 다루고 2부에서는 한국에서 찾아보는 여신 순례를 그리고 있다.

2부는 저자가 여신 순례에서 돌아와서 한국에서 여신 운동의 단서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특히 제주의 뱀이 여신, 바리공주, 마고할미, 첨성대 등에 대한 해석은 발상의 전환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여신들에 대한 계보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처럼 이미 내 안에 '여신'이라는 무게중심이 실려 기존의 관념들을 명쾌하게 재해석한다. 그래서 여신은 어디에나 있으며 나에게도 여신의 숨결이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페미니즘은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지만 여신운동이 주는 ....남녀 대치의 위태로움에서 그 본연의 의도는 퇴색될 수 있다. 하지만 여신을 구심점으로 하는 근원적 성평등은 우리의 삶을 더욱 평화롭고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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