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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평점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우리가 환경에 대해서 생각할 때, 환경을 보호해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다. 한스 요나스는 현세대가 가진 책임은 일차적으로 미래 세대의 존재를 보장하는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그들의 삶의 질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문제는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과 배려의 차원을 넘어 현세대가 당면한 절대적으로 위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위태로운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발전하는 문명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환경 문제는 급격한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의 문제는 특정 지역의 음모론이나 책임론을 벗어나는 것으로 기후변화나 생태계 파괴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의 변화를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 가능하리라는 낙관론은 무방비상태를 이끌 것이며 현재 진행중인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코로나19가 언제 끝나는지를 원망하며 국가차원의 방역에 협조하는 것 이상으로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 장기적인 통찰이 필요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 주관식 시험의 답처럼 떠오르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개발’은 너무나 멀게 여겨진다. 나의 삶 속에서 환경을 생각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출발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와 환경, 나와 지구, 나와 과학기술 등 ‘나’에 방점을 찍고 ‘나’를 주어로 환경에 대한 문장들을 써보는 것이다.
고생물학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 호프 자런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책을 통해 환경문제를 자신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데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하며 환경문제와 자신의 유년시절을 연관시키며 책을 시작한다. 할머니의 재봉틀은 에너지 문제와 이어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도시인 미니애폴리스를 언급하며 교통문제를 설명한다. 본인이 자란 하트랜드의 이야기를 하면서 식량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런 시도들은 환경문제가 애초부터 우리의 삶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환경문제에 있어서 미래의 나에게 막연한 부담을 줄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진심을 다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지금 여기’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생명, 식량, 에너지의 챕터에서 구체적으로 과거의 문제들을 다루고 앞으로의 위기에 대해 함께 고민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지구라는 챕터는 좀더 시사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역사적, 세계적 맥락에서 환경문제를 다룬다. 기후변화를 중심으로 변해버린 대기, 따뜻해진 날씨, 녹아내리는 빙하에 대해서 다룬다. 폭염이나 혹한 등의 이상 기후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당장 우리의 문제이며 이를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고민해야한다. 전처럼 ‘올해는 덥네.’ 수준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이 책의 미덕은 ‘지금 여기 우리’라는 문제의식을 공유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통찰과 윤리적 태도다. 저자는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내일 아침부터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시간을 적어보라”는 과제를 낸다. 또한 가방 안의 플라스틱 제품의 개수를 세어보라고 한다. 문제의식의 공유는 해박한 지식으로 설득하기보다는 일상의 작은 행위에서 출발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며 “덜 소비하고 더 나누라”고 제안한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이 문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덜 소비하고 더 나누는 것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나 싶다. 나의 풍요가 지구를 담보로 하는 것이라면 다시 고민해볼 일이다.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