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서 온 e메일 반달문고 8
웬디 오어 지음, 케리 밀라드 그림, 조은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미네르바처럼 인터넷만을 떠돌던 꼬마작가가

이제는 서서히 한국의 주류 세계를 들이치기 시작합니다.

주류들이 얼마나 단단한 지는 꼬마작가가 몇 번 들이치면 알게 될 겁니다.

어제 <초코파이 자전거>에서는 동시에 대한 강의를 했고 알라딘에 올렸는데,

이 글도 알라딘에 그대로 올라가게 될 겁니다.

주변 세계를 빙빙 돌기만 하던 꼬마작가가 이제는

막강한 배후 세력을 등에 업고 주류 세계로 쳐들어가는 겁니다.

자, 구경들 하시라!

꼬마작가는 늘 흥미진진한 이벤트를 만들어드리는 재주가 있지요?

지식과 정보가 곧 권력인 21세기 인터넷 세상을 아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꼬마작가,

그 꼬마작가가 이제 한국 최고의 번역가라고 할 수 있는 조은수에게 시비를 겁니다.

알라딘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될까 구경들 하세요.

 

조은수의 실망스런 번역!

제목은 이렇게 달았지만, 꼬마작가를 잘 모르는 분들은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문장가 꼬마작가가 보기에 실망스럽다는 말이지,

일반 대중들이 읽어보면 <그래도 최고>입니다.

꼭 좀좀 기억해 주세요!

 

쉼표!

전에는 조은수의 번역 작품을 읽으면서 <쉼표 문제>를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책에서는 쉼표가 아주 눈에 거슬리네요.

쉼표에 대해서는 전에도 여러 차례 강의를 한 바가 있지요?

가장 어려운 문법이 바로 쉼표다!

 

"온통 암초로 뒤덮인 섬 주변은 미로 같아서,

아주 작은 배로만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섬 한쪽은 검은 바위들로 구불구불 둘러싸여 있고,

다른 쪽은 하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13페이지)."

 

이 문단에는 쉼표가 두 번 사용됐는데,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습니다.

"섬 한쪽은 ..., 다른 쪽은 ..." 하는 두 번째 문장에서는

두 구절이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지요?

이럴 경우에는 쉼표를 찍어야 하는 겁니다.

반면에 첫 번째 문장의 쉼표는 찍으면 안 되는 겁니다.

<아마도, 아마도> 영어 원문에는 쉼표가 찍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지만,

한국어에서는 찍으면 안 되는 <지점>입니다.

 

<아마도, 아마도> 2급 작가라면 "미로 같아서"가 아니라

"미로 같기 때문에" 하는 번역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은수는 "미로 같아서" 하고 처리했고 아주 매끈한 솜씨를 보였습니다.

대신에 그 다음에 쉼표를 찍었습니다.

 

"미로 같아서" 그 다음에 숨이 찬가요?

"미로 같아서" 그 다음에 명백한 대조를 보이던가요?

그러면 쉼표를 찍어야 합니다.

 

"미로 같아서" 그 다음에 글이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있지요?

글이 미끄러지는 느낌이란

바로 스키 선수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고 했지요?

이때 쉼표가 있으면 가볍게 눈을 밟으며 샥샥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갑자기 <돌뿌리>가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했지요?

돌뿌리에 걸리면 스키 선수는 자빠지게 됩니다.

글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7페이지)."

 

사실, 이 대목은 조은수의 '일품' 한글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지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하고 썼습니다.

2급 번역가들 같으면 "머리카락과" 또는 "머리카락 그리고" 했을 대목입니다.

"머리카락에"!

요런 표현은 꼬마작가가 잘 써먹는 문법이지요?

여기에 강조 용법으로 <머리카락에다가> 하고 쓸 수도 있습니다.

 

꼬마작가가 하고 싶은 말!

"머리카락에" 하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서는 100점!

쉼표를 찍은 것에 대해서는 빵점!

이렇다는 말입니다.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구요?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반짝반짝 빛나는 눈.>

 

쉼표를 찍고 싶으면, 이렇게 쓰란 말입니다!

"헝클어진" - "반짝반짝," 명백한 대조를 이루고 있지요?

그럼, 쉼표를 써서 강조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영어 원문이 어떻든지 간에 번역자한테는 이 정도의 자유는 주어질 수 있습니다.

대조는 쉼표로 처리한다, 이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겁니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

 

이때는 쉼표를 찍으면 안 되는 겁니다.

<과>나 또는 <그리고> 같은 접속사 대용으로 "에"를 쓴 마당에 쉼표를 찍게 되면,

스키 선수 꼬마작가는 돌뿌리에 걸려서 고꾸라지게 됩니다.

고꾸라지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한 번 잘 읽어보세요.

접속사 대용으로 쓴 "에"는

문장 속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도록 해주는 기능도 갖추고 있는 '언어'입니다.

단어는 아니고 뭐라고 해야 되나요?

아무튼 "에" 용법, 뭔 말인지 이해가 되나요?

이해가 잘 안 되면, 계속해서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꼬마작가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하늘이 내린 문장가>라고 자화자찬을 일삼는 데에는

바로 이런 감각이 뛰어나다고 자화자찬하기 때문입니다.

이중에서도 쉼표는 감각 중에서도 감각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 조은수에 대해서 좀 실망했다는 말은

바로 이런 감각 문제를 짚어서 하는 것인데,

솔직히 책을 읽는 내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느라고 고생했습니다.

아, 조은수는 한국 최고의 스키 선수가 돌뿌리로 고생하도록 만든답니까, 그래?

쉼표 문제, 하나만 더 볼까요?

 

"심지어 잭이 섬에 없다는 것도 깜빡 잊고,

쉭쉭 바위 어디쯤에서 거품을 조사하고 있거나,

갈매기 둥지에서 알을 세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20페이지)."

 

이 문장에서는 쉼표가 두 번 찍혔는데,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습니다.

당연하게도, "깜빡 잊고," 하는 첫 번째 쉼표가 틀린 것이지요?

이 대목은 잘 생각해보면, "깜빡 잊고서" 하고 좀 더 길게 써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영어 원문에는 쉼표가 찍혀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한국어에서는 <역시 미끄러지는> 대목입니다.

미끄러질 때에는 <잘 미끄러지도록> 도와줘야 할 사람이 바로 번역가입니다.

뭔 말인가 이해가 되나요?

아직은 좀 어려울 겁니다.

쉼표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고, <는>이라는 한국어 문법에 대해서!

 

"아론이 소리치면서, 바나나 송이를 싹둑 베어 냈다.

그러고는 바나나 송이를 헛간으로 질질 끌고 가서는 밧줄에 묶은 뒤(26-27페이지),"

 

<는>은 아주 중요한 기능 두 가지를 담고 있는 중요한 '언어'라고 했지요?

1) <그리고>를 비롯한 접속사를 없앨 때

2) <바로 그 단어>에 대한 강조를 하고 싶을 때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는 <는>이 두 번 사용됐습니다.

"그러고는," "가서는"!

<는>은 가능하면 한 문장에서는 딱 한 번만 써라!

요건 공식이니까 그렇게 암기를 하도록 하세요.

물론 꼬마작가가 만든 공식입니다.

 

위에 인용된 문장에서 <는>은 두 번 다 강조 용법으로 쓴 겁니다.

"그러고는," 이건 <그리고 나서>의 대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다음에> 하고 써도 큰 문제는 없는데, 입말=구어체하고는 좀 어울리지 않지요?

따라서 "그러고는" 하고 쓴 것은 아주 좋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그 뒤에 다시 한 번 <는>이 나옵니다.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는>이 두 번씩이나 들어가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건 감각 문제입니다.

어느 게 맞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다만 <꼬마작가의 감각>에서 볼 때

"가서는"의 <는>은 벌써 <잉여>라는 겁니다.

<는>은 한 번만 써라!

먼 말인가, 알겠지?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번역가 조은수>에 대해서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한국어를 전문으로 연구한 사람은 아니다!

동식물 전문 번역가인 이한음의 책에서도 그런 점을 느꼈는데,

조은수에 대해서는 바로 며칠 전에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낭만적인(37페이지)."

"로버로부터(40페이지)."

"잭이 언젠가 그랬었다(108페이지)."

"위성 안테나가 너무 멀어졌다. 덕분에 알렉스의 전화는 꺼져 버렸다(153페이지)."

 

너무나도 명백한 문법 오류들이 쉽게 드러나지요?

한국어 문법!

조은수 씨가 이 글을 읽는다면 얼굴이 화끈거리겠지만,

꼬마작가 뒤에는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꼼꼼하게 연구하는

수백 명의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꼬마작가는 그 분들을 위해서도 자잘한 오류라도 지적해야만 합니다.

올바른 한국어 사용이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만일 조은수가 한국어 문법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것이 아니라면,

타고난 감각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솔직히 꼬마작가는 나이 40 넘어서야 겨우 한국어를 깨친 사람입니다,

이오덕 선생 덕분에!

그러니 이오덕을 연구하지 않고도 이 정도라면, 그 언어 감각은 대단한 것이지요?

 

자, 오늘은 여기까지!

책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

다음이 언제가 될 지는 나도 몰라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