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둥그배미야 - 김용택 선생님이 들려 주는 논 이야기
김용택 지음, 신혜원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양반의 장편동화 시리즈 세 권은 2년 전에 소개를 했는데,

이번에 다시 꼼꼼히 읽어보니 역시 재미있네요.

 

"그렇게 어둑어둑 새벽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앞산을 넘어와

뒷산 꼭대기를 비추면 사람들은 모 낼 논으로 향하지(48페이지)."

 

꼬마작가를 처음 만나는 분들!

위의 문장을 왜 인용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요?

뛰어난 문장이란 저렇게 쓰는 것이고,

글은 저렇게 써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대로 담아온 것입니다.

책 정보 하나 더 알아가기 위해서 아등바등 하지 마세요.

대학 졸업 때까지도 배우지 못한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꼬마작가입니다.

하나만 더 볼까요?

 

"비가 많이 온 날이면 농부들이 삽을 메고 들로 나와

물꼬를 넓혀 물을 빼지.

올챙이들은 다 자라 개구리가 되고 메뚜기들도 후두두두

들판 이곳 저곳을 튀어오르며 잘 자라지.

거미들은 벼 잎 끝에다가 집을 지어 논에 날아드는 해충들을

잡아먹지(73페이지)."

 

뭔 소린지 잘 모르겠지요?

왜 문장이 뛰어나다고 하는지 모르겠지요?

그러니까 대학 헛 나왔다고 하는 겁니다.

명문대 출신이라고 하면 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니까

대학 이름 가지고 기죽거나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한국 엄마는 다들 대학 헛 나온 거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아무튼 위에 담아온 문장들은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입으로 소리를 내서 읽어보세요.

눈으로 읽지 마세요!

 

이 책은 2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까 생각이 참 많네요.

이걸 잘 읽으면 경제학 이론도 뽑아낼 수가 있고,

헛깨비 4대강 논리에 대한 반박 논리도 뽑아낼 수가 있습니다.

또 역사로 들어가면 '허약 체질 한국인' 문제도 얘기할 수 있고,

세계화 시대에 걸맞지 않는 <신토불이 밥심> 문제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홍수를 막아주는 논

논은 비가 많이 오면 여름철에 물을 가두어 두잖아.

그게 커다란 저수지 같은 역할을 해.

그 조그마한 논이 물을 얼마나 담아 두겠냐고 하겠지만,

우리 나라 논 하나 하나를 모두 모아 보면 그 물의 양은 엄청난 거야.

춘천댐이라는 커다란 댐보다 24배나 많은 물을 품고 있다고 해(16페이지)."

 

홍수 조절을 위해서 대운하를 파고 4대강 정비를 해야 한다고?

이걸 떠들던 교수들이 들이대던 근거란 라인강 운하뿐이었습니다.

이 라인강 운하에다가 한국의 발달된 IT 시스템을 결합하면

엄청난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만 주장했지,

교수다운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인간들!

그런 교수들보다는 고졸 김용택 선생이

훨씬 더 과학스런 통계 수치를 들이대고 있지요?

교수랍시고 깝치는 분들, 섬진강에 가서 무릎 꿇고 좀 배우도록 하세요.

 

"오후 새참 때가 되면 모내기가 무르익어 갈 때여서

사람들은 술이 거나해지거든.

술이 거나하게 취해야 굽혔다 폈다 하느라 아픈

허리의 통증을 잊을 수 있지(61페이지)."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같지요?

이건 서양의 장사들은 제대로 못하는 일일 겁니다.

차라리 그냥 힘을 쓰라고 하면 다를 테지만,

모내기를 해보라고 하면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경제학자들은 <노동 강도>라는 개념을 추출합니다.

한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 강도!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이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노동 현장에서 축출된다!

요건 20세기 중반 이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추출한 개념입니다.

아래 책에 보면 설명이 나옵니다.

 



 

요즘에는 농업이 기계화 돼서 많이 바뀌었을 테지만,

제가 군대 있을 때에는 <모내기 전문 떠돌이 노동꾼>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대여섯 명이 한 팀을 이루어서 모내기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최전방 철책부터

남쪽으로 죽 훑고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임금은 일당이 아니라 <일정한 면적에 대해서 얼마> 하는 식으로 받았구요.

그렇게 해서 남쪽 끝까지 내려가면 6월이 돼서 모내기 시즌을 끝내는 겁니다.

 

제가 병장 때에는 추수가 끝나고 볏단 쌓는 일을 하러 <대민 봉사>를 나갔습니다.

군대밥이 아니라 <민간인 밥>에다가 막걸리도 주니까

이런 일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런 건 고참들 차지가 되지요?

그때 저와 한 팀이었던 세 명은

정말 거짓말 안 하고 하루 종일 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그 아저씨 집에 가서 막걸리 얻어 마시며 얘기를 듣는디,

"프로 한 명이 군인들 대여섯 명보다는 더 빠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 얘기를 들으니까 막걸리가 확 깨더군요.

게다가 저야 온 세상이 다 아는 <국제 빌빌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힘 좀 쓰는 애들이었거든요.

그 아저씨의 평가대로라면

우리 세 명 모두는 <프로페셔널 모내기 시장>에서는 도태되는 거지요?

노동 강도라는 게 이런 건데, 김용택 선생은 이 점을 문학으로 표현해 줬습니다.

 

"생각해 봐. 모내기철이 되면 농부들은 15일이 넘게 모를

심는 거야. 뜨거운 햇살 아래, 몇 날 며칠 일을 하면 얼마나

몸이 힘들고 허리가 아프겠어. 잠깐씩 쉴 참이면 사람들은

허리가 끊어지려고 한다면서 논두렁에 허리를 걸치고 누워

끙끙 앓는다니까(64페이지)."

 

아주 실감나지요?

솔직히 저는 모내기를 해본 일은 없지만,

군대에서 겪은 딱 하루 경험 덕분에 뭔 말인지 쉽게 이해하겠더군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외국인들은 일 잘한다고 자부하는 우리 조상들을 두고

<힘써먹기는 글러먹은 족속>이라고 폄하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 소개한 <한국의 야생동물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일본 사람들보다는 키가 크고 북부 중국인들보다 덩치도 좋다.

한국 사람은 자신들이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여겨지는 것을 수치로 생각한다.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 역시 한국 사람으로 오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성격 면에서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과 매우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가진 정력과 힘, 투쟁 정신,

그리고 집단행동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고 개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반해,

한국에서 개인은 공동체보다 중요하다(32-33페이지)."

 

이 글에서는 스웨덴 저자 베리만이 

"정력과 힘, 투쟁 정신, 집단행동 능력"을 한꺼번에 써서

개개인의 능력을 말하는 것인지 또는 집단의 힘을 말하는 것인지

조금 아리송한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친한파'라고 할 수 있는 가린-미하일롭스끼는

압록강 중류 철도 사업을 얘기하면서

한국인은 비리비리해서 못 쓴다며 중국인을 노동자로 채용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한국인이 다들 <비리비리 꼬마작가> 같은 사람들이라면 제가 이해를 해줄 수 있지요.

하지만 한국인은 그다지 비리비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뒤 1960-70년대에 한국인의 왕성한 노동 능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지요?

솔직히 저는 이렇게 의심합니다.

혹시 20세기 초 저작들의 영향 때문에

<한국인은 비리비리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놀란 것은 아닌가?

 

재미있나요?

애들 동화책 하나 가지고 야부리 잘 풀지요?

이게 바로 역사학의 힘입니다.

잡학천식!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원래가 깊은 공부를 할 머리는 안 되고 하니까

이것 저것 많이 읽고 글줄 주워다가 이리저리 끼워 맞추다보면,

야부리 솜씨도 저절로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야부리 종목>을 두고 한국에서는 <억지 암기>로 때우려고 하니까

암기는 암기대로 안 되고, 조리는 조리대로 없어지고 그런 겁니다.

 

아무튼 <나는 둥그배미야>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도록 하는 동화입니다.

책 제목이 둥그배미인 까닭은 이렇답니다.

 

"논이 장구같이 생겼으면 '장구배미'라고 하고,

버선같이 생겼으면 '버선배미'라고 하고,

자라를 닮았으면 '자라배미'라고 불러(8페이지)."

 

그러니까 논에도 다 제각각 이름이 있다는 말이지요?

생긴 모양대로 이름을 지어주는 겁니다.

다만 요새는 기계화가 진행돼서 이런 논도 많이 없어지고 있답니다.

 

100페이지 분량인 이 책도 그림이 절반 가까이 될 겁니다.

그림 중에는 "봇도랑->물꼬->논->물꼬->아래논(16페이지)" 하는 설명도 있고,

34페이지 "볍씨 키우기"에서는 논에 심기 전까지

볍씨는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 것이 얘기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계화 이전 전통 벼농사에 관련된 것은 다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글은 모두가 동화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것인데,

문장가 김용택 선생은 이런 문제를 뛰어난 글솜씨로 가볍게 넘겼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문법 오류를 몇 군데 지적하면 이렇습니다.

1) 저수지 같은 역할 -> 노릇(16페이지)

2) 땅으로부터 -> 땅에서(37페이지, 으로부터는 무조건 틀린 겁니다)

3)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되지 -> 모내기가 제대로 시작되지(60페이지)

4) 술이 거나하게 취해야 굽혔다 폈다 하느라 아픈 허리의 통증을 잊을 수 있지

    -> 아픈 허리를(61페이지, <의> 문법은 우리를 늘 고민스럽게 만듭니다)

5) 네 개 내지 다섯 개씩 -> 네 개나 다섯 개씩(68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