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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평전 -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 한다
마르틴 아우어 지음, 인성기 옮김 / 청년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어제는 타샤 튜더를 소개했지요?
맨날 과학자들만 소개하니까 따분할 것 같아서
분위기 전환용으로 탸샤를 소개한 겁니다.
기질이 그래서 그런가 저는 타샤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내 인생 전체는 휴가였어요."
솔직히 꼬마작가가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파브르는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 상황 속에서 갓난아기 둘을 잃고,
세 번째로는 자신의 연구 보조원이던 아들 쥘을 16살 나이에 또 잃었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구를 그치지 않았던 파브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인 잘 만난 덕에
자기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다윈하고는 또 다르지요?
두 사람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고,
서로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파브르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건 어떤 이념이나 종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 결과를 놓고 따져보니까 그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겁니다.
사실, 우리한테는 이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대학 입학 시험에 파브르는 왜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하는 것을
찍기로 낼 리도 없을 것이고,
논술 문제로 낼랑가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파브르의 이론을 알고 싶다면,
김남길 시리즈 중에서 아래 책을 정독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바로 이 쇠똥구리가 원작 <파브르 곤충기> 중에서도 첫 번째로 나오는 녀석입니다.
<파브로 곤충기>는 모두 11권이 출판됐다고 하는데,
한국에 나온 '두툼한 번역본'을 보고는 제가 질겁을 했습니다.
두꺼워서가 아니라 번역이 완전 개판입니다.
도저히 읽어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군요.
그런 책을 제가 추천하면 완전히, 쫄딱 망하지요?
오늘 소개하는 <파브르 평전>은 독일 작가 마르틴 아우어가 쓴 겁니다.
마르틴 아우어는 옛날에 소개한 적이 있는 아래 책의 저자!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아동문학 전문가입니다.
이런 아동문학 작가가 평전을 썼는데,
구성은 <파브르의 글 + 작가의 짤막한 해설> 형식으로 돼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죽도록 고생했다는 파브르는
<곤충기> 11권 말고도 과학 교과서를 비롯해서
엄청난게 많은 책과 글을 남겼더군요.
이 <파브르 평전>에는 파브르의 편지를 포함한
많은 자료들이 그대로 수록돼 있습니다.
Primary Source지요?
원사료를 이렇게 실어준 것인데,
마르틴 아우어라는 작가의 약력을 보니까 이렇습니다.
소개 : 195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역사학과 통역학을 전공했다. 배우, 극작가, 음악가로 활동했고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마술에 관심을 갖게 되어 마술 공부를 했다. 지은 책으로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마술사의 여름>, <빔보와 새>, <마술 지팡이를 찾아>, <오즈의 신기한 마법사> 등이 있다.
역시 꼬마작가와 통하는 데가 있지요?
남의 인생을 자기 멋대로 재단하기보다는
이렇게 Primary Source를 중심 텍스트로 해서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는 것도
아주 훌륭한 서술 방식이 됩니다.
한국에서 출판된 아래 책의 목차를 보니까 <파브르 평전>과 비슷한 것 같기는 한데,
표지 그림만 봐도 이건 황이지요?
만화 그림!
MBC 마크가 찍혀 있는데, 도대체가 그림에 대한 개념들이 없는 모양입니다, 한국에서는!
반면에 오늘 소개하는 <파브르 평전>에는 그림이 없습니다.
이게 아주 커다란 흠입니다.
예를 들면, 163페이지에는 쌍살벌(종이 말벌)의 정육각형 집 얘기가 나오는데,
이건 제가 전에 <동물들의 집짓기>를 소개할 때 얘기했던 것이지요?
http://en.wikipedia.org/wiki/Paper_wasp
이렇게 생긴 종이 말벌 집의 내구력도 인용문을 통해서 소개했지요?
"비록 방들의 벽 두께가 10분의 1밀리미터도 채 안 되지만,
쌍살벌의 집도 꿀벌의 집처럼 자체 무게보다
엄청나게 더 큰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이 집이 보여주는 성능의 비결은 구조에 있다.
쌍살벌의 집은 마치 신문지처럼 쉽게 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아무런 쓸데가 없는 일본식 문법, 그냥 지워버리면 됩니다)
아래쪽을 향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장력을 견뎌낼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편지지가 꼬깃꼬깃 구겨지거나 찢어지면서도
잡아당겨서 찢어내기는 무척 어려운 것과 같다.
여기에서도 벌집의 커다란 장력을 가져다주는 것은 식물 섬유 속의 셀룰로오스이다(61-64 페이지)."
중요한 건 이런 그림이 없으면, 과학책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파브르 곤충기> 원작에도 그림이 들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동물들의 집짓기>와 같은 보조 텍스트를 활용하는 것은
파브르 원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일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쌍살벌의 정육각형과 같은 얘기는
제가 아래 책을 읽었기에 쉽게 이해를 했던 것이지,
다른 곤충들에 대해서는 이해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파브르 평전>이 2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1부에서는 <곤충기>를 쓰기 전까지 파브르의 인생이 소개됐고,
2부에서는 <곤충기>의 핵심 내용과 철학이 소개됐습니다.
사실, <곤충기>는 천천히 읽고 이해해도 되는 겁니다.
중요한 건 거의 독학을 하다시피 한 파브르의 인생과 교육관(또는 이론)입니다.
이것으로만 해도 이 책은 충분히 사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파브르는 독학으로 거의 모든 것을 이루어낸 사람이고,
이 책에는 그의 생각이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학문 연구서는 암호를 풀듯 해독해야 하는 수수께끼이다.
누군가 너에게 열쇠를 준다면,
그 해결법만큼 쉽고 당연한 것은 없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가 닥치면,
너는 첫 번째 문제를 풀 때와는 달리 해결 능력이 없을 것이다...(65페이지)."
이 글은 파브르가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랍니다.
아이에게 수학 하나 가르치기 위해서 아등바등 하는 것보다는
이런 구절을 하나 읽어주면, 교육 효과는 훨씬 더 높겠지요?
"파브르는 그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무작정 교장 선생님의 방에 들어가
책을 빌려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뉴턴의 이항식'이 파브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파브르는 그것에 매달려 밤을 지새웠고 마침내 이해했다.
이제 첫 수업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수업의 끝이자 목표가 될 줄은 몰랐다.
교사와 학생은 그 어려운 내용을 파악했지만,
왜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는지는 깜깜하기만 했다.
그래도 파브르는 학생이 이것을 이해할 때까지 열심히 가르쳤다.
가르치면서 교사인 그도 이해했다(65-66 페이지)."
이 글은 박봉에 시달리던 파브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한 것입니다.
내 아이에게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풀어줄 것인가 아니면
자생력을 키워줄 것인가?
수학 문제 하나 더 풀어줘봐야
어차피 한국 부모들 중에서 미분 적분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문법이 인생을 질식시킨다(55페이지)."
이건 사범 대학에 입학하고 난 다음에 파브르가 한 말이랍니다.
19세기 프랑스 교육 과정이 그랬다는데,
어쩌면, 요새 한국 교사들이 '질식' 당한 사람들이 아닌가 몰러!
"모켕 탕동 덕택에 나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
적나라한 기억력에다가 조형적인 언어의 마술 외투를 입히는 방법을
터득한 저술가이며 시인이다.
나는 이런 정신의 축제를 다시는 결코 체험하지 못할 듯하다(78페이지)."
요게 바로 꼬마작가가 늘 주장하는 "문체와 형식(78페이지)" 문제입니다.
나중에 파브르의 <곤충기>가 출판됐을 때
이 책은 "'호머의 서사시'와 같다(157페이지)"는 평을 들었답니다.
과학을 건조한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 아니면 호머의 서사시처럼 표현할 것인가?
답은 대충 다 나와 있지요?
문장이 받쳐주지 못하는 과학자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요즘 소개하고 있는 시튼과 비교해볼 때,
파브르보다는 시튼이 더 시어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여기에서 파브르의 스승은 로마 시대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였다고 합니다.
파브르는 라틴어도 다룰 줄 알았다는데,
"아름다운 운율의 시어로 초원과 들판에 대해 쓴 작품을 읽는 것은
내게는 축제의 향연(53페이지)"이었다고 회고했답니다.
반면에 시튼은 자서전에서 <로빈 후드>와 같은 작품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문체란 모방이다!
대문장가들이 누구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대개는 엄청난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건 아이들의 글쓰기와 연관해서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파스퇴르가 누에고치를 흔들어보고 ...
나는 곤충의 본능에 대한 연구를 할 때
그 무지의 시스템을 법칙으로 격상시켰다.
이제부터 독서는 아주 조금만 할 것이다.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수록 더 좋다.
왜냐하면 나의 질문들은 그만큼 더 편견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102페이지)."
이 인용문에 나오는 파스퇴르는
얼마 전에도 의학사에서 소개한 '우유 파스퇴르'입니다.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4체액설에 종지부를 찍은 세포설로
1860년대 자연과학계의 스타로 떠오른 파스퇴르!
이 파스퇴르가 그때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가난하기 이를 데 없던 파브르를 찾았답니다.
이 스타가 파브르를 깔보고 무시했나 본데,
파브르는 그런 기분 나빴던 점과 함께
<파스퇴르의 당당한 무식 자랑>에 놀랐다며
"독서는 조금만 할 것"이라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선입관 없이 자유롭게 연구 대상에 접근하는(101페이지)" 파스퇴르의 태도,
여기에다가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답니다.
이렇게 해서 "무지의 시스템을 법칙으로" 하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어때요?
대체로 꼬마작가의 교육 철학과 비슷한 냄새가 나지요?
솔직히 독학에다가 "당당한 무식 자랑"이 전문인 꼬마작가로서는
교육 전문가들의 교육 철학과 방법론은 별로 관심 없습니다.
직업을 유지하면서 밥 벌이를 하려면 말이라도 그럴 듯하게 해야 하는 거지요?
그런 사람들보다는 파브르, 다윈 같은 사람들의 교육 철학과 방법론이
때로는 훨씬 더 쓸모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1부에서는 파브르의 인생과 교육 철학이 얘기되는데,
2부로 넘어가면 <곤충기>의 핵심 내용이 설명됩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곤충들의 본능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파브르는 곤충들의 본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해부용 메스와 현미경을 버리고 <돋보기>를 사용했답니다(124페이지).
그때까지 생물학 또는 동물학이란 거의 모두가 <해부학>이었던 모양입니다.
해부를 해서 <종속과목>으로 분류를 하고,
뭐, 이런 게 권위자들이 하던 일이었답니다.
<파브르 곤충기>는 이런 '해부 철학'에다가 철퇴를 내린 겁니다.
본능의 본질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동물학!
제가 지난 겨울 내내 소개해온 것이 바로 동물행동학이지요?
파브르는 바로 이 영역의 기초를 세운 겁니다.
시튼이 훨씬 더 다이내믹한 주인공을 내세워서 다이내믹한 문체,
소설 같은 문체로 동물행동학을 대중들에게 소개했다면,
파브르는 곤충을 주인공으로 해서 접근한 겁니다.
이게 19세기 후반부터 일어난 생물학 또는 동물학의 커다란 변화로 생각되는데,
우리는 중고등학교 때 맨날 <해부 생물학>만 배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군부독재 교육이란 생물을 가르쳐도 재미 대가리 하나도 없는 것만 가르칩니다.
그래,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