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막의 꼬마 농부 ㅣ 깨금발 그림책 8
양혜원 지음, 장순녀 그림, 마승애 감수 / 한우리북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Lives of the Hunted
시튼 동물기에 대해서는 예고편 광고를 몇 차례 했지요?
이제는 서서히 시튼 동물기를 소개합니다.
한국 작가들이 다시 쓴 책은 절대로 사지 마세요.
글도 그렇고, 그림은 한국 화가들이 그린 겁니다.
그림은 원판으로 봐야 합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입니다.
품절!
2002년에 출판됐는데, 안 팔리니 뭐 재간이 없지요?
이 책은 제가 지난 1월 초에 소개를 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는 혹시라도 남은 책은 동이 났을 겁니다.
지금은 동네 서점을 알아봐야 할 겁니다!
Lives of the Hunted
원서는 제가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문장이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번역서를 구하기 어려우면, 원서로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갓난아기 엄마들부터!
엄마가 그림만 봐도 본전은 뽑는 책이고, 나중에 아이가 크면 영어로 읽어주면 됩니다.
솔직히 이 책은 제가 출판을 시작했더라면, <반드시> 재번역해서 냈을 것 같은 책입니다.
한국어 문장의 표본은 바로 이거다!
선언을 하겠다는 겁니다.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한 번역을 번역가에게 주문했을 겁니다.
번역문으로만 봐도 시튼의 문장이 엄청납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문 구성력의 극치라고 할까요?
글이란 이렇게 쓰는 거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따라서 저는 완벽한 번역본과 영어 원서, 두 권을 모두 사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번역본을 구하기 힘든 분들은 영어 원서로 사면 됩니다.
그림은 200장!
흑백 그림의 진수!
자, 한국 그림책 <사막의 꼬마농부>와 비교해서 시튼을 소개합니다.
독자들에게
큰뿔양 크래그
참새 랜디의 모험
곰 조니
열 마리 새끼 쇠오리
강아지 칭크
달빛 요정 캥거루쥐
포로가 된 코요테
목차를 보면 이렇게 돼 있는데, 이중에 <달빛 요정 캥거루쥐>가 바로 <사막의 꼬마농부>입니다.
"우선 그 흔적들은 다리가 둘이고 매끄러운 털로 뒤덮인 작은 동물들이 밤에 몰려들어
달빛 아래 춤을 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 마리가 발끝으로 서서 맴을 돌면,
마치 시동처럼 훨씬 더 작은 녀석 하나가 그것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들은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들은 원할 때 몸을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는 코요테들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을 것이다(242페이지)."
자, 먼저 시튼의 문장을 맛볼 수 있지요?
철저한 과학을 문학스럽게 묘사하는 대가의 솜씨!
이런 문장은 책 전체에 걸쳐서 계속 반복되는데,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과학을 과학으로 표현하면 참 재미없습니다.
이해하는 일도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문학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 그런 능력을 한껏 과시하면 되는 겁니다.
애들이 배워야 할 것은 이런 재주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한음이의 번역 솜씨인데, 딱 한 군데가 문제입니다.
"코요테들로부터," 요건 "코요테들한테서"라고 고치면 됩니다.
그럼, 제가 위에 인용한 번역글은 완벽합니다.
세 번째로는 바로 위에 인용한 페이지 다음에 그림이 있다는 점입니다.
캥거루쥐들이 달빛 아래 춤추는 장면을 한 페이지 꽉 차게 넣은 그림입니다.
번역본과 원서의 페이지 수를 보면 똑같은데,
한국 출판사에서 그림을 제대로 맞추느라고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잘 못 들어간 그림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요 두 페이지만 딱 봐도 시튼이 어떤 사람인가는 다 보여주는 겁니다.
글과 그림!
우리 애들 요렇게 좀 키우고 싶지요?
한국 그림책 <사막의 꼬마농부>에서는 주인공이 한 마리입니다.
마치 캥거루쥐는 혼자 사는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시튼은 아직 캥거루쥐를 본 것은 아니고 그들의 흔적만 보고도
여러 마리가 몰려다닌다는 것을 위의 인용문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막의 꼬마농부>가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동화니까 작가는 이렇게 구성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다만 부모나 교사들은 이런 걸 알아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이 구멍들 가까이에 덫을 설치했고, 다음 날 아침 "요정"을 잡는 데 성공했다.
털밖에 보이지 않는 그 너무나 사랑스럽고 우아한 엷은 황갈색의 작은 생물은
새끼 사슴의 눈처럼 크고 아름다운 눈을 갖고 있었다.
아니, 새끼 사슴 정도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새끼 사슴도
그처럼 물기를 머금은 놀랍도록 순수해 보이는 갈색 눈을 갖고 있지 못했으니까.
...
춤을 출 때 따라 도는 시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주 긴 꼬리였다.
꼬리에는 승마바지와 어울리는 두 줄기의 하얀 띠가 길게 나 있었다.
그리고 꼬리 끝에는 먼지떨이처럼 털이 나 있었다.
그 털은 매우 예뻤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많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몇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245-246페이지)."
제가 맨 처음에 인용한 구절은 시튼이 캥거루쥐의 흔적만을 보고 추측한 것이고,
바로 위에 인용한 것은 시튼이 캥거루쥐 한 마리를 보고 쓴 겁니다.
한국 그림책에서는 캥거루쥐의 눈이 시튼의 묘사처럼 생겼나요?
그 다음에는 아주 중요한 꼬리!
그림책에도 보면 꼬리가 아주 길게 그려져 있습니다.
코요테한테 물려서 꼬리가 잘려져 나가는 장면도 묘사돼 있는데,
"승마바지와 어울리는 두 줄기의 하얀 띠"는 그림책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종류가 다른 캥거루쥐인지 또는 그림작가가 그렇게 그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듯이 아주 멀리 도약할 때 캥거루쥐의 꼬리 끝에 달린 털은
화살에 달린 깃털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것은 허공에서 곧장 날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만이 아니다.
도약한 뒤에 꼬리를 이용해 공중에서 방향을 약간 바꿀 수도 있다.
꼬리 자체는 다른 용도로도 쓰인다.
캥거루쥐의 줄이 쳐진 반바지에는 겨울 식량을 넣어서 집으로 들고 올 주머니가 달려 있지 않다.
하지만 캥거루쥐에게는 커다란 주머니 두 개가 있다.
양 볼이 바로 그것이다.
캥거루쥐는 양 볼이 얼굴 양쪽으로 불룩 튀어나올 때까지 입 안에 식량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볼은 굴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옆으로 돌려야 할 정도까지 늘어난다.
그렇게 입 안 가득 먹을 것을 넣으면 주머니를 비운 채 뛸 때와 달리,
무게 중심이 머리로 이동한다.
바로 이때 꼬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꼬리는 아주 길고 무게가 있기 때문에 튼튼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256페이지)."
요건 그 긴 꼬리가 뭔 일을 하는 건지 시튼이 연구를 한 다음에 결론을 내린 겁니다.
덫을 놓아서 한 놈을 생포한 덕분에 연구가 가능했던 겁니다.
1) 달리는 속도를 높이고
2) 식량을 입에 물고 달릴 때 균형을 잡아준다.
여기에서 꼬리는 달리는 속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방향도 틀어준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얘기인 <큰뿔양 크래그>를 보면,
산양이 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방향을 틀면서 달리기 때문이랍니다.
바로 그 유명한 지그재그 전술, 지그재그로 도망치기!
산양은 쫓는 동물에 비해서 달리는 속도가 딸리는데, 이때 써먹는 전술이 바로 지그재그랍니다.
캥거루쥐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지그재그 비슷하게 도망을 치는 겁니다.
그러면?
"경솔한 코요테가 따라가다가 불행히도 코를 그 끔직한 선인장에 들이박고 멈추거나,
초원 올빼미에게 자신을 가만 놔두지 않으면
칼잎유카에게 큰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호통을 치면서(262페이지)."
바로 위의 문장이 무슨 뜻인가 하면,
캥거루쥐는 선인장을 향해 막 달려가다가 바로 앞에서 방향을 확 바꾸는 겁니다.
그럼, 코요테는 선인장에다가 코를 콱 박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게 바로 약자들의 생존 전략이라고 하는데, 산양의 경우에는 지그재그 전법입니다.
그림책 <사막의 꼬마농부>에서는 캥거루쥐가 꼬리를 잘린 채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시튼의 책은 1901년에 출판된 것이고, 그는 이때 딱 한 번 캥거루쥐를 연구한 모양입니다.
그것도 직접 눈으로 본 녀석은 덫으로 잡은 캥거루쥐 한 마리뿐이랍니다.
그러니까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나온 어떤 연구 결과 덕분에
한국 작가는 꼬리가 잘린 채 도망친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시튼이 두 번째로 얘기한 꼬리의 무게 중심 노릇은 아주 대단한 상상력이지요?
실제로 그런지 안 그런지는 지금쯤이면 과학자들의 연구로 판명이 났을 겁니다.
맞든 틀리든지 간에 시튼의 과학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막의 꼬마농부>에서는 캥거루쥐의 집인 굴이 단순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시튼은 캥거루쥐의 굴을 삽으로 직접 파봤답니다.
그림으로도 보여줬는데, 아주 복잡합니다.
캥거루쥐가 집을 지을 때 주로 사용하는 전술 - 위장 전술!
여기가 출입구인가 보다 하고 들어가보면 가짜랍니다.
가짜 문을 잔뜩 만들어놓고는 그 중에 몇 개가 진짜이고,
들어가보면 굴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만들어 놨답니다.
적이 들어와서는 헤매다가 나가도록 만든 거지요.
집도 아기방에다가 제1 창고, 제 2창고 하는 식으로 쓰임새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 놨다고 하네요.
어때요, 재미있겠지요?
요게 시튼이 27페이지 분량에 담아낸 것입니다.
책 전체는 364페이지인데, 요 캥거루쥐 얘기는 좀 짧은 편입니다.
가장 길고 가장 흥미진진한 얘기는 산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