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
러셀 프리드먼 지음, 라이트 형제 사진,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은 제가 러시아 역사 학술 논문을 한 편 쓴다면 인용할 것이 많은 책입니다.

저 자신은 1890-1913년 러시아사 전공인데,

그 중에서도 경제-기업경영-화이트 칼라 전공입니다.

문서 보관소(Archive)에서 자료를 읽다보니 자주 만나게 된 것 하나가 바로 <비행기 광고>였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몇몇 책을 읽기는 했는데, 사실 아는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비행기 광고>는 1908-1909년에 자주 등장했는데,

황제인 니꼴라이 2세가 주동을 떴습니다.

러시아 항공기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기부금을 모으자는 내용이었고,

황제가 맨 앞에서 돈을 냈다는 광고가 문서 보관소에서는 자주 등장합니다.

또 당시 자료를 보면 1908-1909년 이 무렵에는 대중들 앞에서 비행 쇼를 하는 모습이 나오곤 합니다.

 

우주항공 산업의 강대국, 러시아!

빨갱이 이데올로기에 젖은 한국에서는 러시아의 우주항공 산업이 발달된 이유가

마치 소련 시절의 '호전성' 때문인 것으로 인식돼 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호전성'은 러시아 황제들의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전쟁만 생각하면 바들바들 떨던 조선의 왕들과는 달리,

러시아 황제들은 전쟁이 없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전쟁을 해서 땅을 한 평이라도 넓히면,

조상들 앞에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바로 러시아 황제들입니다.

 

이런 기질 속에서 러시아는 경제 수준과는 관계 없이 전쟁 관련 산업은 발달하게 됩니다.

1904-5년 러일 전쟁 기간에는 잠수함이 실전에 배치됐다는 기록이 있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출항해서 원산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게 실전에 활용됐던 최초의 잠수함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황제 니꼴라이 2세는 1880년대부터 자신의 별장에 있는 저수지에서

잠수함 실험을 하도록 했을 만큼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과 한 판 붙을 것 같다는 '예감' 속에서 니꼴라이 2세는 비행기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런 지원 속에서 러시아는 1914년에 벌써 폭격기를 실전에서 활용했습니다.

이 폭격기는 독일 전투기를 수두룩하게 잡아내서 독일 조종사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폭격기에 설치된 기관총과 기관총 사수 덕분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독일 전투기에는 달랑 조종사 하나만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조종과 기총 사격을 한꺼번에 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런 전쟁 산업 전통 속에서 현재 러시아의 발전된 군수 산업을 찾아야지,

소련의 호전성에서 찾는 짓은 박정희-전두환 이데올로기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항공기 산업은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1914년에 1차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러시아는 자동차를 생산할 능력이 없던 나라였습니다.

프랑스의 르노가 르이빈스끄라는 도시에 1914년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고,

1916년에는 러시아 대기업이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합작으로 공장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인 1917년에 혁명이 터지는 바람에 이 공장은 문을 닫고 맙니다.

이 공장이 얼마 전까지 러시아 국민차인 <쥐굴리>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는데,

이 쥐굴리는 1960년대부터 피아트의 협력 아래 생산된 것입니다.

아마도 품질은 얼마 전까지도 한국의 <포니> 수준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지금은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서 문을 닫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러시아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한 이유는

20세기 초 항공 산업이 자동차 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자료를 보면, 초기 항공 산업은 자전거 회사들이 설쳐대서 발전됩니다.

자전거 회사 사장들이 황제를 열심히 꼬셔 가지고는 돈 뜯어내고 지원을 얻어냅니다.

 

자, 그럼 라이트 형제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라이트 형제도 역시 <자전거 전문가>였다네요.

물론 과학과 기술에 관한 다양한 재능을 가진 형제였지만,

1904년에 최초의 비행이 성공되기 바로 전까지 또 성공한 이후에도

이 형제는 수리와 부품 발명을 비롯한 자전거 산업으로 돈을 법니다.

<하늘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를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아마도 자전거 기술만 제대로 터득해도 초기 비행기는 만들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20세기 초 러시아 항공산업에 관한 논문을 쓴다면,

첫 번째로는 바로 이 자전거 산업과 항공 산업의 연관성을 제대로 설명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1908-1909년에 러시아에서는 항공 쇼가 인기였는데,

<하늘의 개척자>를 보면 바로 이 무렵에 라이트 형제가 항공 쇼를 통해서

세계의 스타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때 형은 프랑스에서 비행 쇼를 펼치고, 동생은 미국에서 쇼를 보여줍니다.

당시 프랑스는 비행 쇼가 대중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 있는 종목이었다고 하는데,

형인 윌버 라이트는 프랑스 비행기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프랑스 사람들을 휘어잡았다고 합니다.

동생인 오빌 라이트는 미국 국방부를 상대로 비행 쇼를 펼쳐서 전투기 산업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하늘의 개척자>라는 책에서 소개된 것을 가지고 러시아를 비교하면,

당시 러시아는 항공산업 분야에서는 세계 최첨단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논문에서 국제 비교를 통해서 러시아 항공산업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겁니다.

 

세 번째로 <하늘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가 지니는 가치는 항공 과학에 대한 간략한 설명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는 기본 원리에서는 지금의 제트 비행기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답니다.

엔진만 제트 엔진을 실으면 제트 비행기가 될 만큼, 

다양한 분야의 과학과 기술에서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그만큼 뛰어났다고 합니다.

 

비행기에 관한 과학과 기술은 라이트 형제가 등장하기 전에도 상당히 축적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라이트 형제는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데,

<비행을 통제하는 제어 장치> 분야가 라이트 형제의 혁명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제어 장치에 관한 설명이 제가 보기에는 과학 논술 문제로 쓸만 하지 않은가 합니다.

또 제가 학술 논문을 쓰더라도 이 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어야만 할 것 같구요.

 

라이트 형제는 "새들이 날개를 조종하는 원리"를 비행기에다가 적용했다고 하는데,

책에는 <날개 비틀기>와 같은 설명들이 나옵니다.

물론 이 책에서는 깊이 있는 설명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것들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연구해보는 것이 바로 과학스런 사고일 텐데,

이 책은 여기에 필요한 기본 정보와 지식을 전해준다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앞에 설명한 두 가지, 

다시 말하면, 자전거 산업과 항공 산업의 연관관계와 1908-9년 비행 쇼의 대중성에 관한 글은

역사학자인 꼬마작가에게 필요한 내용이 됩니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가 새롭게 개척한 과학 이론 문제는 고등학생들도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추천연령을 고등학생까지 잡았습니다.

 

이 책은 뉴베리 수상작품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서술돼 있습니다.

다만 번역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당시 사진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읽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좋고,

이 사진들은 모두가 라이트 형제가 직접 남긴 것이라고 합니다.

또 직접 인용된 글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 역시 대가답게 인용도 깔끔하게 잘했습니다.

예를 들면, 형인 윌버 라이트가 44세에 장티푸스로 죽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짧지만 의식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고 일기에 썼다고 합니다.

형제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보여주는 인용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꼬마작가 추천 걸작 위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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