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게 만드는 법칙 - 꼭 사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반전의 마케팅
혼마 다쓰헤이 지음, 최예은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SBS TV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이 찾아가 노하우를 전수하는 식당은 크게 2가지 케이스다. 맛이나 위생, 친절 등 음식점을 할만한 기본이 부족한 경우와 또 하나는 소문만 안났지 탄탄한 내공을 갖췄으나 2%의 전략이 부족해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처럼 상품은 자신있는데 어떻게 팔아야 더 효과적인지 셀링포인트를 찾지 못한 판매자나 마케터에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읽고 달라진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판매전략 대응이 필요하다.


'꼭 사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반전의 마케팅'이라는 부제를 단 <사게 만드는 법칙>은 일본 최대 광고대행사인 덴쓰 테크에서 근무하는 혼마 다쓰헤이가 소비자의구매 행동 패턴을 분석해 판매로 이어지기까지의 전략을 총 34가지로 정리해 소개한다.


왜 가격이 저렴한지 고객들의 의심을 해소해줄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직한 마케팅', 조잡한 진열은 싸다는 휴리스틱(heuristic)을 이용한 '셔플진열'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방법, 이미 매진된 상품에 매진 표기를 하지 않아 고객이 허탕치게 만들며 오히려 상품에 대한 욕구를 키우는 '헝거마케팅', 난관을 뚫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 성공스토리텔링으로 브랜드충성도를 높이는 전략, 사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 것 같은 정보를 가시화해 보여줌으로써 진행하는 공포마케팅은 흥미로웠다.


특히, 타사 제품을 비하하며 자사 제품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개별특성을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경쟁사의 제품을 극찬함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사 타사와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는 전략과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고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우유부단한 결정장애자들을 위해 제공하는 픽원 마케팅 등은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고도 정리못하고 바로 써먹지 못할 독자들을 염려했는지 책에 나온 '구매욕구를 높이는 팔리는 패턴 34가지'를 단어장처럼 정리했으며, 실전 기획서 작성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획과 프리젠테이션에 활용하는 구매행동 모델'도 부록으로 제공한다.


연구하는 마케팅교수가 아니라 현직 잘나가는 마케터가 책이 대중적으로 반응이 좋으려면 어떤 점이 필요할지 셀링포인트를 고려해 그런지 쉬운 내용으로 폭넓은 분야에서 당장 실행에 옮겨 효과를 볼 수 있는 전략을 소개한다. 사례 중심의 마케팅책들이 그렇듯 그냥 읽어도 흥미롭기도 하다. 마케터 입장에서 한수 배울 수 있는 판매전략 노하우가 담긴 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마케터의 수를 먼저 읽고 그들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고 스마트한 소비를 할 수 있는 비법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용하고 재미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소년을 위한 고전 소설 에세이 - 류수열 교수와 함께하는 재미있고 유익한 우리 고전 소설 읽기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류수열 지음 / 해냄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폭넓은 책읽기가 아이 교육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좋은 책을 아이가 읽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트렌디한 정보만이 최고인양 따르는 아이들에게 한국 고전을 읽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입시에서 다뤄지는 분야라 나중에 원할 때 읽으라고 미뤄둘 수도 없다.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의 하나로 펴년 <청소년을 위한 고전 소설 에세이>는 고전 소설을 아이들이 접근하기 만만한 내용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아이들 수준에 맞춰 비교적 평이한 언어로 소개하는 해설집으로 12편의 한국의 대표 고전을 다루며 또 그와 함께 견주어 읽을 만한 책들을 함께 총 24편의 고전소설을 소개한다. ‘작품 더 살펴보기’ 코너와 '생각해보기'를 통해 각 작품에 대한 요약정보를 제공하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의 여지를 주기도한다.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한 내용을 담아 한자어나 옛말 등 어려운 어휘는 작은 박스창으로 소개하고 일러스트 컷도 추가해 이해를 돕는다.


크게 4가지 장으로 나누어 <허생전> <주몽설화> 등 고전을 통해 청소년들이 왜 공부를 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 주체적인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며, <운영전>, <흥부전> 등을 통해 사랑과 이별, 선함, 욕망 등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모색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토끼전><장화홍련전> 등의 고전을 통해서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거짓말과 진실, 법에 따른 처벌과 사적인 복수에 대해 이야기하며, <황새결송>, <적벽가> 등을 통해서는 법의 중요성,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세대가 공부했을 때는 정형화된 한가지 방식으로 주로 이해했던 것과 달리 새로운 각도로 작품을 해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3장 <침묵하는 진실, 숨어있는 지혜>편의 하나인 ' 누구의 거짓말이 승리할까'라는 챕터를 통해 주인공을 누구로 놓고 보느냐에 따라 제목이 수궁가가 되기도 하고 토끼의 간이 되기도 했으며, 다양한 결말이 제시되기도 했던 '토끼전'을 소개하는데 당위적 충성심에서 나온 국가의 거짓말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토끼의 거짓말은 어떤 잣대로 판단해야하는지 등 과거와 다른 현대적 의미에서의 거짓말에 대해 화두를 던져 흥미로웠다. 


또한, 오히려 진실만 말했음에도 기억력과 정보력 부족으로 오히려 위기에 궁지에 몰리는 '옹고집전'을 함께 언급해 거짓말과 진실의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인 절대성을 깨면서도 사필귀정으로 귀결되는 고전소설의 이야기 흐름을 재확인시키기도 한다.


입시를 위해 마지못해 읽어야 하는 고전소설이 아니라 각 작품 속 의미를 파악하고 현대사회에서 적용해 풀이해보면서 세상을 읽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되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고전소설을 해석한 자습서 같은 책이 아니고 고전소설을 통해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던지는 질문들이 들어있어 유익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늘 드는 생각이지만 결국 남는 문제는 어떻게 이 책을 우리 아이가 읽게 만드냐 하는 것 뿐이다.


- 이 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때로 가혹할 정도로 지루한 이 삶에서 나를 끌어당기고 낯선 곳에 떨어뜨려 온통 흔들어놓을 수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즐거움을 쫓는 매혹적인 독서에 인류의 길고 사연많은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의 수호자라 불린다는 알베르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는 독서와 관련된 숱한 문헌들을 하나하나 찾고 정리하면서 그가 얼마나 들뜨고 즐거웠을지가 짐작될 정도로 그의 책사랑이 구석구석 느껴진다.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첫장부터 수세기 전 역사 속 책읽는 사람들의 기록들을 내보이며 간증하듯 독서 행위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소리내 읽는 음독의 형태로 시작된 독서가 느긋하고 은밀한 묵독이 가능한 시대가 되고,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이를 통제하기 위해 글자를 배우고 책읽기를 금지해 온 만행이 어떻게 자행되었으며, 독서를 통해 충격과 자극을 받고 나아가 자유를 느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또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의해 달라지고 곡해될 수 있는 책 해석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과거 역사에서 소외되고 폄하해온 여성의 위치가 이 독서의 역사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적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두려워해 궁중에서조차 여성이 읽을 수 있는 독서의 분야를 제한한 일본의 이야기나 여성의 지적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해 마리아가 화가의 작품에서 독서가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을 고민한 적이 있는 카톨릭교회나 여성들의 독서모임의 내용을 폄하하고 비판한 내용들도 눈에 띈다.

안경의 발명으로 책읽기가 자유로운 시기를 맞았지만 나태하고 연약하며 삶의 기쁨을 모른 채 책 속에만 파묻힌 안경쓴 얼간이 같은 책벌레의 오명을 갖게된 독서가들의 이미지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역사적 근거를 들어 독서가들을 변호한다.

특히 젊은 법학박사였던 브란트라는 사람의 풍자시집인 '바보선'이라는 책을 근거로 설교한 인문주의학자 가일러가 이야기한 책에 빠진 얼간이 7가지 형태를 언급한 것은 기억에 남는다. 첫째, 책이 마치 값비싼 가구인양 장식을 위해 수집하는 얼간이, 둘째, 현명해지려는 욕심에서 지나치게 많은 책을 읽는 얼간이, 셋째, 책은 모으되 진정으로 읽지는 않고 자신의 값싼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건성으로 들춰보기만 하는 얼간이, 넷째, 호화로운 그림책만을 좋아하는 얼간이, 다섯째, 종이책을 값비싼 표지로 장정하는 얼간이, 여섯째, 고전은 한 번도 읽지 않았을 뿐더러 철자나 문법 등에 대한 지식은 없으면서 엉성한 책을 써서 출판하는 얼간이, 일곱째, 책을 철저히 무시하고 책에서 얻는 지혜를 멸시하는 얼간이다. 나도 아마 어떤 얼간이에 속해있을 것이다.

문헌 속 글 뿐만 아니라 회화 작품과 사진 외에도 독서가들의 연대표 등 다양한 정보를 정말 성의있게 정리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지만 주제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도 풀어내 에세이처럼 재미있기도 하다. 책을 사랑하는 역대 독서가들의 주옥같은 명언도 얻을 수 있다. 암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섬광처럼 구원을 내리는 책읽기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저자가 실은 사진을 보면서 내게도 계속 책읽기가 그처럼 다가올 것을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이 그것을 악용하는 이들에 의해 그 뜻이 혼탁해지거나 오히려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다. 번지르르한 말로 본질을 흐리고 사람들을 호도시키는 일은 역사와 함께 쭉 있어왔지만 근래에는 신천지나 극단적인 보수단체에서 사용하는 태극기나 자유수호, 평화, 통일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 책에서는 여성혐오자인 세력들을 위시한 대통령과 보수적인 목사가 권력을 장악하고 모든 여성에게 전자팔찌를 채우고 하루에 100단어만 말하도록 통제한 사회 시스템을 '순수'운동이라 부른다. 순수라는 단어가 여성의 목소리나 글, 의사 표현을 옥죄는 장치가 되었고 근본주의 기독교식 교리 아래 동성애나 혼전관계 등은 중범죄가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의 영어제목은 VOX다. 사전을 보니 대문자 VOX는 송신·수신 전환이 음성에 의해 작동 제어되는 장치이고, 소문자 vox는 소리, 음성, 말을 뜻한다는데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100단어 카운터 팔찌인 대문자의미인 것도 같다. 영어 제목보다는 애거스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강렬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한글 제목이 더 잘 지은 것 같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역시 100단어 카운터를 팔에 차고 불합리한 생활을 버텨가는 주인공인 신경학과 언어학의 박사였던 진은 정부로부터 대통령 형의 실어증 치료제를 개발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처음에는 그 제안에 부정적이었으나 정부에 협조적인 프자신의 아들과 데이트하던 평범한 이웃집 여자아이, 여성운동을 하던 대학친구 재키, 동성애자인 의학박사 동료 등 본인들 기준에 벗어나는 여성들을 범죄자인양 처단당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실수로라도 100단어를 넘어 말을 뱉으면 전자충격이 가해지는 팔찌로 여성의 표현을 억압당하는 부당한 세상에 괴로워하며 이를 수락한다. 제안을 허락하는 대신 자신과 자신의 딸을 치료제 개발 기간동안 카운터로부터 벗어나는 혜택을 얻고, 다섯살인 자신의 딸과 딸일 수도 있는 임신한 뱃속 아기를 떠올리며 근본적으로 이 불합리한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한 모색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 특히, 그녀 팀이 개발한 '베르니케 혈청’이 단순히 실어증치료제가 아니라 여성들을 언어세상을 교란시키기 위한 정부의 악독한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며 주변 반정부 사람들과의 연대로 기회를 잡아 정권 협조자를 처단을 시도한다.


이 책의 가장 공포스러운 대목은 하필이면 나의 아들이 정부의 교육에 세뇌돼 정부를 대변하는 말을 서슴치 않고 전한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강요당했던 신화, 여자는 신성한 가정의 수호신이며 집안의 천사이며 여왕같은 존재이므로 더 높은 어떤 것에 대한 야망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엄마인 주인공을 심판하는 말들을 내뱉아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다행인지 여자친구와의 문제로 방황하던 아들이 위기에 처하고 엄마가 구해냄으로써 아들은 다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식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 기대했던 진취적인 페미니즘의 대안이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기 보다는 투표하지 않고 의견을 피력하지 않아 처해질 수 있는 가상세상에 대한 경고와 흥행 요소를 섞은 한 편의 미국 영화를 본듯 했다.


네 아이의 엄마지만 아슬아슬 선을 넘는 사랑을 저지르는 거침없는 주인공은 참고만 사는 게 미덕이 아니라는 듯 도덕적이지 않고 거침없이 사랑을 따른다. 여성의 권한을 빼앗은 세상이 기본 설정이다 보니 여성을 억압하는 세상을 바로잡는 데 연인이나 남편, 경호요원, 우체부, 과학자 등 현 정부에 반하는 의견을 가진 남성들의 도움을 받아 균열을 내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반드시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고 이런 문제 해결을 스스로 해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좀더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움직임을 주도했다면 연애문제에 휘둘리지 않는 주인공이었다면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 같다.


이 책의 설정처럼 여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민들을 입다물게 하고 눈가리게 하는 시대를 우리도 살았다. 그리고 현재도 누군가의 의견은 폭압적으로 저지당하며 짓밟힌 채 죽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고 권력을 세습하며 그들만의 논리에 세뇌당하지 않으려면 계속 레이더를 켜고 국민의 주권을 바로 행사하며 현명한 국민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우리가 혹시 그 약자에 속하지 않는 경우라 해도 부당한 현실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애쓰며 손잡을 책임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 SF소설을 몇 권 읽었더니 미래의 어떤 날 인간이 거의 멸종된 지구나 낯선 행성 어디에서 그 여러 책들의 캐릭터들이 오며가며 마주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학기술 발전에 뒤따르는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고 인간과 유사한 여러 개체가 등장해 정체성이 불분명해가는 존재들은 고민하는 음울한 정서도 유사해 그들을 한데 모아놓아도 어색함이 없어보인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의 캐릭터들도 그들과 함께였다.


출판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김영하 작가도 SF소설을 쓴 걸 보니 역시 SF가 출판계의 자극이 되어줄 트렌드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타 장르보다 매니아들이 선호하는 SF소설이라는 장르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김영하 작가에게 괜찮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우리를 지루하게 방치할 리 없는 이야기꾼인 작가는 영화 AI에서처럼 본인이 로봇이라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휴머노이드 소년의 화자를 내세워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좀더 또렷하게 파고 들어와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 기술은 날로 진화해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가 개발돼 인간과 함께 살며 통일을 이룬 미래의 한국, 또래보다 성숙한 것처럼 보이는 열일곱 살 소년 철이는 미등록 휴머노이드 수용소에 끌려간다. 거기서 클론인 소녀 선이와 휴머노이드인 민이와 지내며 여러 휴머노이드의 피폐한 삶을 목격하며 존재에 혼란을 느낀다. 인간의 삶이 휴머노이드로서의 삶보다 낫다는 전제는 누가 내린 것인가라는 질문이 갑자기 들었다.


통일 이후 이를 반대하는 세력과 전투용 휴머노이드는 내전을 꾀하며 정부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인간들이 활용 후 처치곤란해 요양원에 버린 휴머노이드 가운데 일부는 의식을 백업해 전세계 네트워크에 올려 공유하며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 인간의 개입없이 인간보다 우수한 세계를 이룬다.


철이는 자신을 저지하는 여러 방해 요소를 물리치고 휴먼매터스랩 연구원인 아빠에게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아빠를 다시 만나는 것만으로는 안일한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없다. 어차피 인간은 죽음을 맞닥뜨려야 하는 유한한 존재이고, 혹 영원한 삶을 원한다면 의식 상태로 선택이 가능한 세상에 이른다.


어릴 적 보았던 '은하철도 999'에서 결국 기계인간이 되는 것을 포기한 철이와 이 책의 주인공 철이가 같은 이름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영화 'AI'에서 부모가 결국 내다버렸던 휴머노이드 꼬마 아이를 향한 죄책감을 가진 채 이 책을 읽게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주인공 철이는 의식으로 떠도는 삶 대신 인간처럼 육체를 가진 삶의 형태로 세상과의 작별인사를 원했다.


하지만 육체를 가진 유한한 삶이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자유로운 삶보다 더 나을꺼라는 판단은 아직 그 기술에 닿지 못한 인간들의 쉬운 자포포기 결말이 아닐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선택도 다양할 수 있고 유한한 '인간적인' 삶이 더 나을꺼라는 판단도 보류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전에 인공지능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인간들이 겸허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삶이 지긋지긋해서 다시 돌아보고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 세상을 떠난 후 의식의 상태로 떠돌아다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나고 웃을 수 있다면 작별인사라던가 헤어짐, 죽음, 소멸 이런 것을 아파하지 않아도 되어 나는 차라리 좋을 것 같다.


SF소설이라는 것조차 잊고 읽는 재미 자체로 충분히 즐기게 해주고 생각할 기회도 주는 김영하 작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하 작가는 이 책을 '밀리의 서재'를 통해 발간해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 가입자를 늘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일반 서점을 통해서는 몇달이후에 유통된다고 한다. 꾸준히 책읽는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출판시장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에 동참한 작가의 시도가 독서인구 확대에 기여하기를 응원한다.


우리는 의식을 가진 어떤 존재로 태어났어. 민이 네가 인간이든 기계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민아, 너는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다 보고 느끼게 될거야. 걱정하지마.


"잘될거야. 민이는 몸을 얻을 거고, 그러면 이 호수에 다시 오자."

"그냥 물이 고여있을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은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이른바 인간세가 끝나게 된 것은 SF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 소멸해버렸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 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햔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어 소멸해버렸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었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했고 의식은 영속한다. 그 말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