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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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가혹할 정도로 지루한 이 삶에서 나를 끌어당기고 낯선 곳에 떨어뜨려 온통 흔들어놓을 수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즐거움을 쫓는 매혹적인 독서에 인류의 길고 사연많은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의 수호자라 불린다는 알베르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는 독서와 관련된 숱한 문헌들을 하나하나 찾고 정리하면서 그가 얼마나 들뜨고 즐거웠을지가 짐작될 정도로 그의 책사랑이 구석구석 느껴진다.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첫장부터 수세기 전 역사 속 책읽는 사람들의 기록들을 내보이며 간증하듯 독서 행위의 위대함을 설파한다. 소리내 읽는 음독의 형태로 시작된 독서가 느긋하고 은밀한 묵독이 가능한 시대가 되고,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이를 통제하기 위해 글자를 배우고 책읽기를 금지해 온 만행이 어떻게 자행되었으며, 독서를 통해 충격과 자극을 받고 나아가 자유를 느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또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의해 달라지고 곡해될 수 있는 책 해석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과거 역사에서 소외되고 폄하해온 여성의 위치가 이 독서의 역사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적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두려워해 궁중에서조차 여성이 읽을 수 있는 독서의 분야를 제한한 일본의 이야기나 여성의 지적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해 마리아가 화가의 작품에서 독서가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을 고민한 적이 있는 카톨릭교회나 여성들의 독서모임의 내용을 폄하하고 비판한 내용들도 눈에 띈다.

안경의 발명으로 책읽기가 자유로운 시기를 맞았지만 나태하고 연약하며 삶의 기쁨을 모른 채 책 속에만 파묻힌 안경쓴 얼간이 같은 책벌레의 오명을 갖게된 독서가들의 이미지가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역사적 근거를 들어 독서가들을 변호한다.

특히 젊은 법학박사였던 브란트라는 사람의 풍자시집인 '바보선'이라는 책을 근거로 설교한 인문주의학자 가일러가 이야기한 책에 빠진 얼간이 7가지 형태를 언급한 것은 기억에 남는다. 첫째, 책이 마치 값비싼 가구인양 장식을 위해 수집하는 얼간이, 둘째, 현명해지려는 욕심에서 지나치게 많은 책을 읽는 얼간이, 셋째, 책은 모으되 진정으로 읽지는 않고 자신의 값싼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건성으로 들춰보기만 하는 얼간이, 넷째, 호화로운 그림책만을 좋아하는 얼간이, 다섯째, 종이책을 값비싼 표지로 장정하는 얼간이, 여섯째, 고전은 한 번도 읽지 않았을 뿐더러 철자나 문법 등에 대한 지식은 없으면서 엉성한 책을 써서 출판하는 얼간이, 일곱째, 책을 철저히 무시하고 책에서 얻는 지혜를 멸시하는 얼간이다. 나도 아마 어떤 얼간이에 속해있을 것이다.

문헌 속 글 뿐만 아니라 회화 작품과 사진 외에도 독서가들의 연대표 등 다양한 정보를 정말 성의있게 정리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지만 주제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도 풀어내 에세이처럼 재미있기도 하다. 책을 사랑하는 역대 독서가들의 주옥같은 명언도 얻을 수 있다. 암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섬광처럼 구원을 내리는 책읽기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저자가 실은 사진을 보면서 내게도 계속 책읽기가 그처럼 다가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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