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바산장 살인사건 ㅣ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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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이번 책은 말해 무엇하는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무려 1986년에 발표한 그의 초기 작품인데 밀실트릭, 연쇄살인, '머더구스' 동요에 얽힌 암호까지 읽고 싶은 요소는 다 가지고 있다.

피 한 방울 안나오지만 아주아주 무섭고 궁금한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

​

우선 책을 한 장 펴보면 '머더구스 펜션'의 친절한 일러스트 지도와 주요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것을 잘 기억할 것! (기억이 안나면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펼쳐볼 것!)

주요 인물들과 그들이 묵고 있는 방의 매칭이 중요하다.

그리고 '런던 브리지와 올드 머더구스', '풍차', '거위와 키다리 할아버지', '험프티 덤프티', '세인트폴', '여행', '잭과 질' 같이 방 이름이 있는데

방마다 '머더구스' 동요 노래와 암호가 실려 있으니 잘 찾아갈 것!

​

​

남자는 저녁노을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작업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

다음 날 앙침, 하쿠바에 있는 한 펜션 주인이 담당 경찰서에 뒤편 계곡에서 손님이 떨어져 죽었다고 신고했다. 계곡에는 부서진 돌다리가 중간까지 뻗어 있었는데 거기서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돌다리가 얼어붙어서 미끄러지기 쉬웠다.

손님은 '신바시 지로'라는 이름으로 숙박했는데 곧 가명으로 밝혀졌다. 소지품 속에 '가와사키 가즈오'라고 적힌 병원 진찰권이 나온 것이다. 병원에서 확인해 본 결과 정확한 신원도 밝혀졌다. 도쿄의 보석가게 주인으로, 나이는 53세였다. 가족들 말로는 3일 전부터 실종된 상태였다고 했다. 이 남자가 왜 하쿠바의 펜션에 왔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책은 53세 도쿄 보석가게 주인 '가와사키 가즈오'.

하쿠바산장, 즉 백마산장에 와서 실족사하였으나 왜 혼자 이곳에 왔는지, 실종상태였는지는 미결인 상태로 자살 또는 사고사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하쿠바산장에서 주인공 '하라 나오코'의 오빠 '고이치'가 죽음을 맞이한다.

인기척이 없어서 들어간 방에는 싸늘한 고이치의 주검이 있었다. 잘못된 음료를 먹고 자살로 결론 지었으나

그의 여동생 '하라 나오코'는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절친 '마코토'와 바로 그 펜션에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때 그 멤버들이 모일 것이라는 바로 그 날에.

​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책에서 나온 2건의 죽음이 우연이길 바라겠지만, "우연이 아닌 경우가 더 무서운 일입니다" 라는 뒷 표지에도 적혀있듯

자연스럽지 않은 무서운 일들이 속출하게 된다.

​

 

 

 

험프티 덤프티가 벽 위에 앉아 있다.

험프티 덤프티가 쿵 하고 떨어졌네.

왕의 말을 총동원해도,

왕의 부하를 총동원해도,

깨진 험프티 덤프티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순 없었네.

-"험프티 덤프티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건방진 달걀이죠."

​

-"아까 그 부인은 아무것도 없어서 온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대가 아닐까?"

.."여기에 모두 모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

​

나오코와 마코토가 묵는 방은 '험프티 덤프티'.

오빠가 죽음을 맞이한 바로 그 방이다. 보통이라면 이 방은 관광객들에게 숙박예약을 받지 않지만, 그걸 이미 알고 있던 나오코가 괜찮다고 말하며 그 방을 (사실 꼭 그 방을 원했다) 예약한다.

​

방마다 의미심장하고 재밌는 벽걸이가 있다. 그 벽걸이에는 각 방의 이름과 어울리거나 알쏭달쏭한 영문이 새겨져있다.

개인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나라의 앨리스> 를 좋아해서 더 의미를 찾는데 열중했던 것 같다.

​

매년 이 날만 되면 모인다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오코도 바로 이 날, 바로 이 방을 예약했다.

과연 이 안에 오빠를 죽인 살인자가 있을까?

아니면 경찰의 말처럼 정말 자살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

​

"아! 여보세요, 경찰이죠? 여기는 머더구스라는 펜션입니다. 예. 그 길로 들어오는데...... 사고입니다. 사고가 일어났어요. 추락사입니다. 피해자는 한 명입니다. .....예...... 예. 그렇습니다. 사망한 것 같습니다."

참 불길하고도 슬프지만 올해에도 머더구스 펜션에서는 추락사로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지는 밝힐 수 없으나 책의 딱 중간정도를 읽다보면 나오니까 스퍼트를 올려서 읽어보면 좋겠다.

​

도대체 왜 그 위험한 나무다리를 진작에 보수공사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위험 표시로 접근금지 작업이라도 하던지!

벌써 3명 (아니면 그것보다 더...?) 이나 사고를 당했는데 (당한게 맞을까..?)

그대로 놔두는지 답답하지만!

안그러면 전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열불을 내며 읽어본다.

도대체 누가 죽인거야, 왜 죽인거야, 언제 죽인거야!

​

나는 공포영화나 공포책은 무서워서 잘 안보는데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책은 나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무섭지 않은데 무섭고 궁금한 기분이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사실 처음 읽어보는데 그 많은 다작을 다 읽어봐야겠다는 의지도 든다.

​

 

 

"2년 전에도 여기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마코토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무라마사는 잠깐 숨을 멈추고, 한참 뒤에 "예" 하고 대답했다. 그 호흡이 나오코의 마음에 걸렸다.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아니요."

마코토가 형사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이번에도 사고사로 처리하려는 순간

보다 못했는지 오빠의 죽음을 파헤치러 온 두 셜록홈즈와 왓슨박사, 나오코와 마코토는 형사에게 사실을 말한다.

가명이라는 사실과 오빠의 죽음에 대해 의문이 있어서 확인하고 싶어 왔노라고.

자, 이제 3년 연속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에 이상함을 킁! 느끼고 진짜 조사에 들어간다.

​

조금의 힌트가 들어가자면,

각 방의 이름과 벽걸이 영문 시에는 의미가 있고 그걸 잘 찾아서 해독해야 한다.

그리고 3명의 죽음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니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오빠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책 마다 챕터와 함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것도 유심히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트릭안의 트릭이랄까?

에필로그1, 에필로그2도 오싹함을 더한다.

​

에필로그1을 보면 분명 잘 해결된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에필로그2에서는 두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절친, 마스터(펜션 주인)과 셰프(공동 경영자이자 요리사)의 대화가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잠에서 깬 마코토가 식음 땀을 흘리며 얘기한다.

​

-"그 펜던트의 새 말이야, 울새일지도 몰라"

"울새?"

나오코는 마코토가 표시한 페이지를 보앗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읊조려보았다.

"누가 울새를 죽였나? '그건 나'라고 참새가 말했다...... 라고?"

마코토는 책을 덮었다.

​

​

자, 이제 진짜 늪에 빠진 것 같다.

책을 덮어도 생각나는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누가 범인인지, 암호의 뜻은 무엇인지 검색해도 잘 안나오니까 끝까지 읽기를 권한다.

한 여름도 아닌데 여름에 읽는 공포영화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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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과의 대화
이시형.박상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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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만난 의미치료"

의미치료는 '인간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의지'에 초점을 두는 이론입니다. 의미치료는 내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내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알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치료법입니다. 내가 겪고 있는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을 우리는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 '의미'는 비로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의미치료에서 말하는 '영'이란 인간 '내면의 밝은 빛'입니다. 상처받아서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보이는 마음속에도 '순수한 밝은 빛' 즉 '삶의 목적과 고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불행과 고통밖에 없어 보이는 인생에도 반드시 숨어 있는 행복이 있고, 고통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책은 '특별한서재'에서 출판한 이시형 박사님의 신간!

박상미 박사님과 함께 공저로 출간했고 의미치료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오는 의미치료에 관한 치유심리책이다.

로고테라피? 의미치유?

아직 낯선 이 단어는 인간이 말그대로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가는데 초점을 두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치유법이다.

​

​

-"그렇지만 단 한가지만은 자네들에게 당부하겠네."

그는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의 한 대목이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면도를 하고 깔끔하게, 인간답게 살아야하는 중요성을 말해준다.

사실 이 글 안에는 '인간답게' 이전에 '일할 능력'이 있어보이기 위해 면도를 하고 깔끔하게 단장하라는 의미가 먼저 들어오지만

행동이 마음가짐을 만드는 것처럼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도 한 대목 있다.

복잡한 관료절차에 부딪혀 질병급여,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다니엘 블레이크가 더이상의 절차를 포기하고 이름을 내려달라고 하자,

관공서 직원이 만류한다. 그래도 이름은 리스트에 남겨두라고. 나중에 되면 더 제재가 가할 수 있으니 다시 절차를 밟으라고.

그 때, 다니엘은 말한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

​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그리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말하는 인간다운 자존심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프랭클을 대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지녀왔떤 가치관, 행복관, 성공관, 인간관은 너무나 소아기적인 차원이란 생각에 몸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인생관에 혁명적 변화의 계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됩니다.

...

프랭클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섭니다. 자기를 초월한 경지입니다. 자기 초월의 욕구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는 것.

지금까지 심리학은 네가 진짜하고 싶은 일, 꿈, 그리고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떤 희망이나 원망을 실현시키고 싶은가에 치중되어 왔습니다. 프랭클의 반론은 신랄합니다. 자기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를 실현했다고 하자. 바로 또 새로운 하고픈 일이 생겨 어쩌면 우리를 만성 불만의 상태로 몰아간다고.

...

프랭클의 심리학은 의미치유입니다. 의미 발견을 위한 3가지 물음!

1.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을 요구받고 있나?

2. 나의 일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디 있는가?

3. 그 누군가, 무언가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자기 초월의 경지

 

Trans Personal

자기를 확립한 사람이 이젠 그 단계를 넘어 무언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하고자 한다거나 사회나 집단에 공헌하는 일입니다. 프랭클의 체험가치 -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함으로써 실현되는 가치는 당연히 이 단계를 말합니다.

...

프랭클의 의미치료의 깊은 구석까지 이해하려면 심각한 시련을 겪거나 철학적, 종교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그의 지론을 살펴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종교적 또는 트랜스 퍼스널적인 두 가지 견해가 받침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1. 시공을 초월한 존재가 우리들의 삶을 보고 있다.

2. 과거에 일어난 일은 영원히 현존한다.

초월의 의미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의미치료를 따라가다보면 초월, 더 나아가 자기 초월이라는 경지를 알게 된다.

나를 넘어선 타인과의 의미까지 확장되는 개념인데 나는 이 말이 '내 삶의 의미'를 더 잘 표현하고 찾게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기에. 무인도에 떨어져도 윌슨을 만드는 존재이므로.

​

누구는 말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말라고. 왜냐고 묻지않는 삶을 살라고.

나는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도, 인생의 순리에 따라 인위적이지 않게 물 흐르듯 사는것도 모두 찬성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살아가는 날들에 있어서 의미 없이 보내고 싶진 않다는 거다.

의미를 궁금해하고 찾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의미를 실현하고 싶어지는 믿음 자체가 오히려 의미치료에 한걸음 더 다가간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음에서 다시 시작한다.

"인생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의미는 반드시 주어져 있습니다.

해야 될 일, 충족시켜야 할 의미가 반드시 있기에 그 사람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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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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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걸 잃고 가장 바라는 걸 얻었어.

때때로 나는 비감에 젖고 싶을 때 또는 내 지금을 긍정하고 싶을 때 저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와 헤어졌고, 그와의 일을 글로 써 나는 데뷔했다."

 

 

 

 

 

 

이번 책은 <여름, 스피드>로 너무나 유명한 김봉곤 작가님의 두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

그 중 창비 사전 서평단으로 <시절과 기분> 소설집 수록 단편 <엔드 게임>을 읽었다.

기다린 시간만큼 생각할 만한, 느낄 만한, 잊고 있던 감정들이 불쑥 느껴졌던 단편 글.

​

<엔드 게임>은 주인공 '나'와 그의 전 남친이자 현 지인(?) 형섭이가 등장한다.

엔드 게임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그들은 끝이 났지만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다.

몇년 전 헤어짐을 맞이했지만 아직 연락을 주고 받는 둘.

잘 지내고 있니? 라는 안부 문자부터 무슨 옷을 입을까? 놀러와, 시험에 합격했어- 등등

일상적인 대화뿐 아니라 삶의 대소사까지 함께하며 마음 속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며 살고 있다.

​

소설가인 '나'의 글에 글감으로 등장한다는 '형섭'과의 이야기는

이 단편이 소설인지, 일기인지, 논픽션이지 알쏭달쏭하게 우리를 이끈다.

​

헤어졌지만 계속 알고 지내는 사이.

그 중 어느한쪽은 아직 감정(feeling)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쪽도 감정이 있으니까 계속 연락하는거야. 그러니까 단편 제목처럼 <엔드 게임>으로 끝내지말고 <해피 엔드>로 끝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속으로 응원하고 있지만 사랑이야기의 끝이 언제나 해피하지는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리고 상대는 아무 감정 없지만 그저 편하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연락을 주고 받을 수도 있으며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연락이 뜨문뜨문해지다가 5년 후에는 서로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가물가물해질 수 있다는 것도.

 

 

 

 

 

"나는 그것을 알아야겠다. 내가 무엇을 정말 쓰고 싶었는지를,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의 형태를, 그와 나의 눈물의 이유를, 나를 무너뜨린 마음의 정체를, 되찾을 풍경과 열린 시간 속의 그의 모습을 나는 꼭 알아야겠다. 다시 한번 내 시간 속에서, 내 시간 속의 그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아직은 삶의 시간에 질 수 없다. 내 부끄러움에 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그래도 <엔드 게임>의 '나'는 외친다.

감정의 이유를, 이별의 목적을, 만남의 필요를, 둘의 의미를.

'나'와 '형섭'이 왜 헤어져야했는지 둘 중 한명의 감정이 변한 것인지 사회의 시선 때문인지 불확실한 미래로 갑갑한 수험생의 삶 때문인지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근데도 끝내지말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끝의 끝을 붙잡고 다시 한번 해보고나서 그리고 나서 끝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어쩔 수가 없다.

헤어진 연인은 함께한 추억을 나누고 말할 수 없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다시 만나고 살 수 있다.

이 글이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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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요가 - 인도 최고의 지성과 영성, 비베카난다의 말
스와미 비베카난다 지음, 김성환 옮김 / 판미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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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묻게 된다,

이 삶이 진짜일까?"

인간은 대체 왜 신을 찾는 것일까요?

왜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들이 완벽한 이상을 추구할까요? 그런 관념들이 이미 당신의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당신 자신의 심작박동 소리였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것을 외부에 있는 무언가로 간주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를 찾고 '그'를 실현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당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바로 그 신입니다.

​

이번 영성 책은 판미동에서 출판한 <마음의 요가>.

아직 배움이 짧아서 그런지 스와미 비베카난다 책은 처음 읽어봤다.

1863년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나 18세 그의 스승 라마크리슈나와 만났고 인도 전역을 통해 수행 길에 올랐다.

<마음의 요가>는 미국과 영국 전역에서 전 새계에 베다의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강연한 그의 말들이 담겨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삶과 영혼에 대한 말들이 생각에 잠기게 하고 책을 읽는 순간까지 명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다고 착각한 지식과 진실들을 그 심연 끝까지 파헤쳐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의 요가>를 통해 묻는 질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

알면 알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게 된다.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예전엔 그런 글들을 봐도 와닿지 않았는데 살면서 몇가지 경험들을 겪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몸과 마음으로 닿는 몇가지가 생긴 것 같다.

답이 없는 질문을 묻고 찾길 원한다면 <마음의 요가>를 읽으면서 그 길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

​

​

 

 

우리의 삶이 우주를 포함하고 다른 사람들을 포함할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삶을 살면, 단순히 죽음으로 끝날 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주에 생명이 존재하는 한 자신 역시 살아 있는 것이란 점을 깨달을 때에만 정복될 수 있습니다.

대범한 사람만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나는 모든 것 속에, 다른 사람 속에 존재한다. 나는 모든 생명 속에 존재하며, 그러므로 내가 곧 우주다."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그다, 내가 그다 I am He, I am He."

이 말이 마음속에 밤낮으로 울려 퍼지게 하고, 죽는 순간까지 '내가 그다.' 라고 선언하십시오. 이것이 진리입니다. 세상의 무한한 힘이 바로 당신 것입니다. 마음을 덮어 온 미신들은 쫓아 버리십시오. 대담해지십시오.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실천하십시오. 목적지가 멀더라도 깨어나고, 일어서서, 그곳에 도달할 떄까지 멈추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인간의 참다운 본성

당신이 원하는 힘과 도움은 모두 당신 내면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과거는 묻히도록 내바려 두십시오. 무한한 미래가 당신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각각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당신 내면에 그대로 저장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과 악한 행위가 불시에 덮쳐들듯, 활력을 불어넣는 희망과 선한 생각과 선한 행위도 언제든 솟아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당신을 언제나, 영원토록 보호해 주는 수천만 천사들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솟아날 것입니다.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하다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마음의 요가>를 읽다보면 반복적인 울림이 있다.

영혼, 자유, 삶, 죽음.

그리고 그건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처럼 내 마음 안에 있다.

힘이 드는, 그리고 힘이 되는 가르침을 주는 비베카난다의 강연이 내 안에 있는 영성의 힘을 작게나마 깨우쳐주길 바라게 된다.

​

오래된 나무를 가만히 보면 아마 반도 못미치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짧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내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건 아직도 큰 슬픔이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난 적도 없고 죽지도 않는다는 가르침과 영혼의 눈으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비베카난다의 말로 큰 울림을 받는다.

​

'영혼은 힘이 아니다. 영혼은 생각조차 아니다. 그것은 몸 그 자체도 아니다.'

내 마음, 영혼을 위한 <마음의 요가>로 잠시 멈춰서서 지혜, 행위, 헌신으로 가는 그 시간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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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를 알면 두렵지 않다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김종수 옮김 / 움직이는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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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는 역사의 화살을 추진시키는 활과 같다."

-<진보의 역설>을 출간한 이래 나는 이 난제를 계속 연구해왔다.

생활은 나아지는데 왜 사람들은 더 나빠진다고 느끼는가?

​

-이 책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썼다.

첫 번째 목적은 오늘날 온갖 불안 요소와 인터넷상의 요란한 논란, 귀에 거슬리는 피상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나머지 나라에서 생활 여건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좋은 조짐을 보이고 있따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그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다, 미국과 대부분의 여타 국가에서 보이고 있는 양호한 생활 여건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왜 모든 것들이 나빠지지 않고 더 나아지는가? 어떤 근본 요인들이 쇠퇴를 막는가?

세 번째, 이 책은 과거의 성공적인 개혁으로부터 배운 교휸을 불평등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21세기의 난제에 적용해보고자 한다.

이 세 가지 논점을 통해 나는 '역사의 화살(역사의 방향성)'이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

-낙관주의는 다시금 지적으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낙관주의는 개혁을 위한 최선의 주장이다.

그리고 역사의 화살을 추진시키는 활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서 파국적인 쇠퇴론과 긍정적인 역동설이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역동설의 관점은 우리가 우여곡절은 겪겠지만 전체적으론 삶의 여건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사람과 기술은 진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것이고, 유사 이래 그래왔다. 역동설은 우리가 미래를 그대로 용인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미래에도 잘살 수 잇을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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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안과밖이 시끄럽다.

그리고 지금은 제21대 국회의원선거기간이다.

여기저기 뉴스와 정보들이 가득하지만, 그게 진짜=팩트 일까?

지금처럼 너무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을 때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디지털리터러시다.

이미 읽고 쓰는 능력은 보유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 안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진짜뉴스인가, 가짜뉴스인가를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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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 <팩트를 알면 두렵지 않다>는

우리가 왜 팩트를 알아야하고, 그동안 세상은 팩트와 다르게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과 가까이있다는 메시지다.

비관주의가 아닌 낙관주의로 역사의 화살을 쏘아 그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저자의 말에 힘을 실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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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는 팩트로 끝나지 않는다.

팩트가 이성이라면 반드시 감성을 끌고 들어온다.

왜 트럼프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가들이 이 공포심리를 자극해서 표를 얻는지, 그리고 민중들은 선동되서 표를 던지는지 알 수 있는 재밌는 대목도 있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에 더 자극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그래서 세계는 굶주리고 있는가?", "자원은 고갈되었는가?", "범죄와 전쟁은 악화되었는가? 등...

정치가와 선동가들이 "그래! 여전히 그러고 있어!"라고 외칠 때

이 책과 우리가 눈여겨봐야할 것은 "여전히 있는 건 맞아.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더' 나빠지고 있냐는거야." 를 알려준다.

낙관주의라는 새로운 시각.

생각보다 우리는 점점더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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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낙관주의가 바로 역동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적으로 발전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결국 부딪치고 어느 지점에서는 쇠퇴하겠지만 역사라는 총체의 관점에서는 점점더 나아지고 있는 거라고.

이 책에 종종 언급되는 '역동설'이라는 키워드와 어조는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인류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내용들을 다루지만 그 어조는 밝다.

책에서 외치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공포라는 감정이 선동되기 전에 진짜 팩트라는 렌즈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좋은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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