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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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 3도시』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가깝지만 먼 북한의 땅, ‘개성’이다. 개성공단은 남북 사이가 한창 좋을 때 시작해서 지금은 파국으로 끝이 났지만, 어느 정도 양쪽에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남한과 북한은 바람 앞에 등불일 수밖에 없기에, 우리가 모르는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비밀스러운 상상 속의 이야기와 떠돌던 소문들이 하나의 사건이 되어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제 3도시』이다.


 다 망해가는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강민규는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친척의 부탁을 받아, 직원으로 위장하여 개성공단에 들어간다. 목적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고 있는 원자재의 행방과 범인을 찾는 것이었다. 그가 개성에 오자마자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이 눈에 띄고, 노골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평소 피해자와 사이가 안 좋았던 강민규는 용의자로 잡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대신 개성공단의 추방이 확정된 상황.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지우고, 진범을 찾기 위해, 남은 시간 동안 제3도시를 조사한다.


  개성은, 휴대폰은 물론이고, 인터넷도 안되고, cctv도 없다. 남한과의 일 처리는 유선전화와 팩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이리저리 cctv가 설치되어 있다면 범인 찾기는 훨씬 빨랐겠지만, 열악한 상황에선 전통적인 고전 추리 방식으로 수사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트릭이 허접하거나 엄청 구식의 추리를 해나가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범죄의 원인과 주요 인물들의 유대감 또한 발전해 있으며, 남북한이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어려운 관계 속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하다.



  고전 추리가 좋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미 나는 현대 문물의 편리함 속에 살고 있기에 예전처럼 재밌게 읽히지 않는다. 최근에도 추리물은 많이 나오지만 현대 배경에서 기술의 발전 없는 추리물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고, 독자 입장에서도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에 반해 『제 3도시』 기본적인 제약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예전의 추리 방식으로 사건을 이끌어 가야 하는 배경을 가졌다. 물론 책의 볼륨이 작아 과거 ‘셜록 홈즈’를 다 읽고 났을 때의 두근거림은 아니었지만, 전개가 빠르고 이야기에 막힘이 없어서 좋았다. 유쾌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추리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초등학생 때 북한에 대한 학습을 떠올려 보면, 통일은 꼭 필요하다면서도 북한을 때려잡아서 무력통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교육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관심 없었던 시절이라 기억이 잘 안 나고, 성인이 되어서야 정부의 움직임에 따라 남한과 북한의 사이가 달라진 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큰일 터지지 않고 이대로 사는 게 가장 마음 편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남북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단순히 한편의 소설을 읽었을 뿐이지만 조금은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하길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심이다.

  재미있는 소설 한편으로 남북한의 미래도 한 번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우리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배경이기에 좀 더 특별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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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 - 당신의 이야기를 빛내줄 악당 키워드 17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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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 - 차무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작가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나 역시 장르 물을 좋아하기에 한때는 장르 소설 작가의 꿈을 가지기도 했었다. 보이지 않는 점처럼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설 창작에 대한 꿈을 꾸고 있을 때는 항상 주인공과 사건에 대한 생각만 했었다.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들어야 소설을 이끌어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그 매력적인 주인공이 엄청난 사건을 해결해가야 가슴을 조이면서 읽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짧디짧았던 작은 꿈은 사라지고 다시 장르 소설의 독자로 즐기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을 꿈꿀 때 빌런이 중요하단 생각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보다 매력적인 빌런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어서야 깨달았다. 〈양들의 침묵〉의 매력적인 살인마 ‘한니발’, 〈곡성〉의 ‘일본인’, 〈소우〉의 ‘직소’, 〈다크나이트〉의 ‘조커’ 등 주인공보다 더 기억에 남는 빌런들을 생각하며,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 빌런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빌런을 17가지의 키워드로 나누었다. 모두 재미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키워드는 ‘그림자’, ‘절대성’, ‘여성’이었다.


빌런은 주인공을 투영한다는 의미의 ‘그림자’에는 천재이면서도 다재다능한 살인마 ‘한니발’이 등장한다. 그는 살인을 하고 인육을 먹지만, 아무나 먹지 않는다.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들만 먹는다. 그런 의미 있는 자들에게 흥미를 보이며, 관찰하고, 함께하며, 때를 기다린다. 단순히 살인을 하는 살인마였다면 한니발의 이야기는 〈양들의 침묵〉에서 끝이 났을 테지만, 그가 갖고 있는 살인에 대한 의미는 〈한니발 라이징〉을 거쳐 미드의 주인공에까지 오르게 했다.


소설 『한니발 라이징』으로 가장 먼저 한니발을 만났고, 그 뒤 역시 소설로 『양들의 침묵』과 『레드 드레곤』을 읽었기 때문에 한니발은, 나에게 처음부터 빌런이 아닌 주인공이었다. 그래서인지 『양들의 침묵』의 답답한 스탈링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니발이 탈출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주길 기다렸었다. 빌런을 잘 만들면 독자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키워드 ‘절대성’은 절대 악이다. 절대 악은 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인간이 이길 수 없다. 〈곡성〉, 〈유전〉, 〈엑소시스트〉, 〈더넌〉 등 빌런이 악마인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보통 오컬트 장르들인데, 내가 본 오컬트물들은 대부분 인간이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한 듯 보이는 경우에도, 악마는 숨어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악마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이다. 인간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성은 0.01%도 오직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존재하고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절대성을 가진 빌런이 등장하는 영화 등은 싸우는 과정보단 악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이 중요하다. 악의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고 당하기만 할 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포심이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악과의 싸움의 결과보다 과정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빌런을 정하기엔 쉽지만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더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다.





빌런이라 생각하면 이제는 단순한 악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봤을 때 악한 짓을 하고 범법을 저질러서 범죄자일 수는 있지만 빌런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오노 후유미의 『시귀』에는 흡혈귀와 같은 ‘시귀’라는 빌런이 등장한다. 평범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피를 빨아 조종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자신들과 같은 시귀로 만드는 아주 악한 존재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시귀는 살아갈 곳이 없다. 자신도 억울하게 물려 시귀가 되어 인간의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인간만 살아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들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인간은 그들 입장에서도 빌런이고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항상 옳지 않다. 시귀라고 해서 모두 악하지 않다. 시귀가 되어서도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피를 먹지 않아 굶어 죽은 시귀도 있다. 소설 『시귀』는 독자로 하여금 어느 편도 들 수 없이, 그냥 그들의 싸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든다. ‘시귀’는 어떤 키워드의 빌런일까. 꼭 하나의 키워드에 해당되지 않고 여러 키워드를 동시에 가진 빌런일 수도 있다.



내게 끌리는 빌런은 항상 선악을 정의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 같다. ‘시귀’도 그렇고, 『도쿄 구울』의 ‘구울’, 엑스맨의 ‘돌연변이’, 넷플릭스 드라마 〈 V-워〉의 ‘흡혈귀’들처럼 인간의 적이지만 그들의 존재의 이유는 인간과 같다. 그들과 공존하지 않으면 전쟁뿐이고, 공존하기 시작하면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은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에,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펼쳐질 때 어떤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지 역시 재미난 과정이다.





시대가 흐를수록 빌런을 나눌 수 있는 키워드는 더 늘어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매력적인 빌런이 아닌 납득이 갈 수 있는 빌런을 만들어 내는 것 일 것이다. 절대악처럼 존재 자체는 납득이 가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을 납득하게 되면, 이야기에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내가 작품을 쓴다고 할 때 그런 점들을 이해하고 시작한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꼭 읽어봐야 할 책이지만, 장르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꽤나 재밌다.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빌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이전에 접했던 작품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내어 곱씹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저자의 관련 지식이 풍부해서 하나의 지식서를 읽는 것 같았다. 실패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그리고 또 그런 이야기를 찾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내가 알고 있던 빌런들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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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싱킹 - 속도를 늦출수록 탁월해지는 생각의 힘
황농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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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싱킹』은 책 소개만 보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운이 좋게 서평단에 뽑혔다몰입 신드롬을 일으켰던 『몰입』의 저자의 다음 책이었기에 더 기대가 되었다. ‘몰입’만으로는 부족했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몰입뿐 아니라 뇌를 단련시키고 생각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일을 해결하기 위한 생각은 고통스러운 시간이다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풀리는 것을 위해 머리를 쥐어짤 때는 고통스럽다기보단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하는데 말이다직장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집에까지 가져와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고통스럽다.




『슬로싱킹』의 저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거운 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온종일 그 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편안하게 생각하면 어려운 문제는 해결되고, 결과적으로 내 일에 대한 애정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초반엔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했다. 어떻게 어려운 문제를 천천히 계속 생각하라는 걸까.



‘슬로싱킹’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 상태로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잠이 오면 편안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나면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다. 엄청난 훈련이 필요한 기술같이 보이지만 사실 생각하는 방법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야 힘들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해답을 보거나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모든 문제들이 이렇게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래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면 어느 순간 생각의 끊을 놓아버린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책 속에는 여러 경우의 ‘슬로싱킹’ 사례가 등장한다. 사례자들은 각자 다른 삶을 사고 있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슬로싱킹 할 수 없다. 다양한 사례를 읽어보면서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추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슬로싱킹’을 상상할  없다같은 시간 안에 누가  많이 외우고머릿속에 넣고시험 결과를 잘나오게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천천히 생각한다는 것은 남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이런 환경 속에서 창의력을 키우기란 매우 힘들다학벌이 중요한 사회에서미래에 대한 답은 창의력이라고 말하지만결국 배우고 공부하는 방식은 좋은 학벌로 가는 방향만 있을 뿐이고 창의력은 남는 시간에 알아서 키워야 하는 것이다. ‘슬로싱킹’은 개인이 스스로   있지만 정작 필요한 학생들에게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슬로싱킹』을 읽고 나서는, 가끔 뇌가 굳어서 더 이상 힘들 것 같은 도전들이 떠오르고 있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나도 ‘슬로싱킹’을 시도해보려 한다. 이 과정에서 실패가 올 수도 있고, 큰 벽에 부딪힐 수는 있겠지만 도전하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 큰 변화이다. 결과는 나쁠 수 있겠지만 다시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나를 단련하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많을수록 머리 아프고 스트레스 받는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면 나의 뇌는 언제나 생각할 수 있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의 장미꽃은 유일무이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어린 왕자가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는 햇볕을 쬐어준 시간 때문에 소중해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다. 그 일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일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의미와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 p25



 책을 모두 읽고 나면 결과물보다는 내가 열심히 해왔던 과정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슬로싱킹을 해서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값진 것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조금은 천천히 가는 게 긴 인생에서 그리 나쁜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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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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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스스로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정해진다『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의 저자는 기자이다. 그래서인지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의심이 있었다. 내가 읽고 있는 기사도 믿을 수 없는데 이 책은 또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의심이 모두 사라지진 않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준 것은 있다. 어떤 것이 개소리인지 의심할 수 있게 하는 힘과 의지이다.



 책은 2016년 미국의 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논란을 중심으로, 미국과 영국의 개소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였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뉴스보다 더 한 것이 바로 개소리(Bullshit)라 말한다. 여기서의 개소리는 말하는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는 말을 마음대로 떠드는, 그야말로 개소리다. 이 이상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개소리는 진실과 거짓으로 나뉘지 않는다. 진실 여부는 상관없이 그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엄청난 등급의 헛소리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개소리꾼들과 그들의 소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트럼프 특유의 미디어 전략 중에는 역사적 유례를 찾아볼  있는 전술이 하나 있다바로 나중에 뉴스를 주겠다는 언질로 뉴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트럼프는 무에서 기삿거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이런 소질을 처음 선보인 것은 오바마에게 흠집을 내려고 2012년에 트위터에 연거푸 올린 글에서였다그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면서 구체적 언급 없이 ‘확실히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오바마의 출생증명서는 조작이고, ‘비밀 취재원’이 미국의 채무 상태를 밝혔으며유죄 판결을 받은 사기꾼이 오바마 대통령의  구매를 도왔다고 주장했다트럼프는 방어 태세를 보일  이런 식으로 언질을 주거나 암시하는 교묘한 수법을 썼다.

p.139



 다양한 개소리꾼들이 있지만 단연코 돋보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트럼프와 로이 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몰아 본 적이 있다. 그 후로 트럼프는, 어이없지만 나름 힘이 있는 대통령이 아닌, 정말 무서운 인간이란 인식이 생겼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행했던 것들이 단순 사기 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서는 사람을 공격하여 지치게 만든 후 자신의 잘못은 그 여파로 작아지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때도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를 트위터를 통해 업로드한다. 다른 사람이 썼으면 정말 개소리라고 치부할 내용들이, 그가 말하는 순간 이상하게 힘을 갖는다. 그 개소리들의 진실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선 개소리가 잠잠해지는 기간보다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트럼프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개소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뉴스 미디어와 허위 사이트 둘 다 소비하는 대중이 있으니 그런 정보를 만든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반응한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게 해줄 뿐이다.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소비자이자 유료 독자이자 유권자로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제 우리도 전통적인 매체와 거의 대등하게 정보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진다.

p.156



이런 개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기존의 미디어들뿐만 아니라 SNS가 있다. 트럼프 역시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애용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모임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용도로 SNS를 이용한다.

넘쳐나는 가짜 뉴스와 개소리들이 손쓸 시간 없이 퍼져나가지만 팩트 체크를 할 수 있는 양과 시간은 한정적이다. 미디어들은 돈을 찾아 진실과 다른 것들을 전달하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떠든다. 그들에 맞서기 위한 우리들은 제대로 된 지식을 얻기 위해선 단순히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정치인은 법을 만들고 나라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개소리는 어쩔 수 없이 힘을 갖는다.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지 말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미디어는 돈이 중요하다. 하지만 돈보다는 신뢰를 얻어야 오래갈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독자이자 유권자인 바로 우리이다. 나 역시 나만의 고정관념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의 틀을 깨고 여러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 번씩 더 생각하며 의심하고 좀 더 찾아본다면, 언젠가 나의 통찰력은 날카로워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개소리는 한 계층이 노력한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개소리는 언제나 우리의 옆에 떠돌아다닌다. 심지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 개소리를 0%로 만들 순 없지만 정치인, 미디어, 독자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만 노력하여 개소리를 걷어내려 한다면 세상이 조금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개소리가 쏟아져 나올 것인지 약간의 기대감과 걱정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도움으로 나의 생각 회로에 몇 가지의 함수가 더 추가된 느낌이다. 앞으로도 개소리가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지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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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가까운 사이 (스노볼 에디션) -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댄싱스네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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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것이 참 편하다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최고인 줄 알았지만마음 한편으론 참 힘들었다정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빼면함께 하는 일이 단순히 의무적이었다혼자 있으면 이상한 아이로 몰아갔지만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은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이런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각자의 방향에 몸을 맡기다 보니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혼자 밥을 먹거나카페를 가고쇼핑하는 일이 절대 외롭지 않다는 걸 알았다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또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에너지를 충전했다인간이기 때문에 영영 혼자 살 순 없지만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했다.



맏이로 자란 나에게 요구되던 유년기의 핵심 미덕이 ‘양보’였던 탓일까그게 나에게 익숙하고 유일하다시피 한 교류 방식이기에 편하다고 착각해 왔는지도 모른다결국은 스스로 편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도 머리로는 늘 내가 더 배려 한다고 여기는 인식의 함정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높아지고 보상심리만 커질 뿐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관계가 깊어지지는 못했다어쩌면 단 한 번도 서로의 욕구를 제대로 맞춰 본 적이 없었으니까.

p.37



 나도 맏이로 자랐기 때문에부모님께 동생들 잘 챙기란 말을 지금까지도 듣는다양보도 좋지만 양보를 무조건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가르침은 잘못인데우리나라는 양보가 미덕이라 가르친다물론 성격상 모든 걸 양보하진 않았지만동생들 대신 내가 먼저 해야 한다거나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아닌 압박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그런 건 미덕이 아니라 강요이고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뇌 당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어릴 땐 빨리 독립하는 것이 더 편해질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부분이다.


 역시나 성인이 되면서 많은 부분을 다르게 생각했고결혼하면서 더더욱 달라졌다내가 챙겨주던 거라 생각한 건 동생들 입장에선 꼰대의 참견이었고가족들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지켜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어린 시절이야 서로 부대끼고 투닥투닥 하며 재밌게 자랐을진 모르지만 사춘기를 겪고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생각보다 내 맘대로 흘러가는 인간관계가 적다는 걸 배웠다.




‘비교’의 가장 무서운 점은 현재의 내가 무엇을 얼마나 이루고 가졌는지와 관계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처럼 배어든다는 것이다진정한 자존감은 비교를 통한 상대적 만족감이 아닌 절대적인 자기 인정으로 얻을 수 있다이를 잊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교 없는 위로와 불안 없는 축하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p.101



나를 엄청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혼자 뭐라도 된 듯 저울질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사람들이다비교는 스스로를 파괴한다그 비교에 자신을 넣어서 더 빨리 파괴한다무서운 점은생각해보면 나 역시 나를 파괴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그럴 땐 남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내가 저 사람만 안 만났어도 이런 말은 안 했을 텐데역시 혼자가 최고야.


하지만…오랜 친구와의 만남에선 무슨 말을 해도 참 재미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곧 생명력과도 같다그렇게 우리는 모르는 새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사람에게는 늘 사람이 필요하다.

p.217



…누구나 자산의 경험이 만든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다만 이따금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맺힌 조금은 다른 관점의 세상에 마음을 내어 주면 좋겠다그렇게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을 배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p.241


  아무리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해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해야 한다어릴 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알아줬으면 해서배려하고 양보했다하지만 나 스스로를 낮추고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서 행동한다고 나를 알아줄 거란 건 큰 착각이었다나를 더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그렇게 하기 위해선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적당히 거리를 두고 나를 아끼며 다른 사람을 보면내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전해진다날카로웠던 가시도 점차 뭉툭해진다.




  책을 읽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걸 느꼈다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그들을 배려하면서도 나 자신을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진 않다이런  난제들의 해답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부드럽게 제안하는 듯한 책의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작가 역시 그런 과정이 있다는 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순 없다또다시 흔들리고 힘들어지겠지만 방법을 알고 있다면 문제없지 않을까.



  예전엔 에세이가 재미 없었는데이 책은 참 좋다적당히 옆에 두고 종종 꺼내본다면 내면의 에너지를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다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함께 하면 어떨까 싶다주변에 그런 이들이 보인다면 슬쩍 선물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특히 올해처럼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했던 지인들이 생각난다면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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