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것이 참 편하다.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최고인 줄 알았지만, 마음 한편으론 참 힘들었다. 정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빼면, 함께 하는 일이 단순히 의무적이었다. 혼자 있으면 이상한 아이로 몰아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은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이런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각자의 방향에 몸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혼자 밥을 먹거나, 카페를 가고, 쇼핑하는 일이 절대 외롭지 않다는 걸 알았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에너지를 충전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영영 혼자 살 순 없지만, 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했다.
맏이로 자란 나에게 요구되던 유년기의 핵심 미덕이 ‘양보’였던 탓일까. 그게 나에게 익숙하고 유일하다시피 한 교류 방식이기에 편하다고 착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스스로 편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도 머리로는 늘 내가 더 배려 한다고 여기는 인식의 함정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높아지고 보상심리만 커질 뿐,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관계가 깊어지지는 못했다. 어쩌면 단 한 번도 서로의 욕구를 제대로 맞춰 본 적이 없었으니까.
p.37
나도 맏이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께 동생들 잘 챙기란 말을 지금까지도 듣는다. 양보도 좋지만 양보를 무조건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가르침은 잘못인데, 우리나라는 양보가 미덕이라 가르친다. 물론 성격상 모든 걸 양보하진 않았지만, 동생들 대신 내가 먼저 해야 한다거나,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아닌 압박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건 미덕이 아니라 강요이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뇌 당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땐 빨리 독립하는 것이 더 편해질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부분이다.
역시나 성인이 되면서 많은 부분을 다르게 생각했고, 결혼하면서 더더욱 달라졌다. 내가 챙겨주던 거라 생각한 건 동생들 입장에선 꼰대의 참견이었고, 가족들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지켜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어린 시절이야 서로 부대끼고 투닥투닥 하며 재밌게 자랐을진 모르지만 사춘기를 겪고,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생각보다 내 맘대로 흘러가는 인간관계가 적다는 걸 배웠다.
‘비교’의 가장 무서운 점은 현재의 내가 무엇을 얼마나 이루고 가졌는지와 관계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처럼 배어든다는 것이다. 진정한 자존감은 비교를 통한 상대적 만족감이 아닌 절대적인 자기 인정으로 얻을 수 있다. 이를 잊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교 없는 위로와 불안 없는 축하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p.101
나를 엄청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혼자 뭐라도 된 듯 저울질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사람들이다. 비교는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 비교에 자신을 넣어서 더 빨리 파괴한다. 무서운 점은, 생각해보면 나 역시 나를 파괴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남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가 저 사람만 안 만났어도 이런 말은 안 했을 텐데, 역시 혼자가 최고야.”
하지만…. 오랜 친구와의 만남에선 무슨 말을 해도 참 재미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곧 생명력과도 같다. 그렇게 우리는 모르는 새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에게는 늘 사람이 필요하다.
p.217
…누구나 자산의 경험이 만든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따금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맺힌 조금은 다른 관점의 세상에 마음을 내어 주면 좋겠다. 그렇게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을 배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p.241
아무리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해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해야 한다. 어릴 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알아줬으면 해서, 배려하고 양보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서 행동한다고 나를 알아줄 거란 건 큰 착각이었다. 나를 더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나를 아끼며 다른 사람을 보면, 내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전해진다. 날카로웠던 가시도 점차 뭉툭해진다.
책을 읽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걸 느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배려하면서도 나 자신을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진 않다. 이런 난제들의 해답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부드럽게 제안하는 듯한 책의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작가 역시 그런 과정이 있다는 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순 없다. 또다시 흔들리고 힘들어지겠지만 방법을 알고 있다면 문제없지 않을까.
예전엔 에세이가 재미 없었는데, 이 책은 참 좋다. 적당히 옆에 두고 종종 꺼내본다면 내면의 에너지를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함께 하면 어떨까 싶다. 주변에 그런 이들이 보인다면 슬쩍 선물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히 올해처럼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했던 지인들이 생각난다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