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가까운 사이 (스노볼 에디션) -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너와 나의 거리
댄싱스네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혼자 있는 것이 참 편하다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최고인 줄 알았지만마음 한편으론 참 힘들었다정말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을 빼면함께 하는 일이 단순히 의무적이었다혼자 있으면 이상한 아이로 몰아갔지만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이들은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이런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각자의 방향에 몸을 맡기다 보니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혼자 밥을 먹거나카페를 가고쇼핑하는 일이 절대 외롭지 않다는 걸 알았다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또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에너지를 충전했다인간이기 때문에 영영 혼자 살 순 없지만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했다.



맏이로 자란 나에게 요구되던 유년기의 핵심 미덕이 ‘양보’였던 탓일까그게 나에게 익숙하고 유일하다시피 한 교류 방식이기에 편하다고 착각해 왔는지도 모른다결국은 스스로 편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행동하면서도 머리로는 늘 내가 더 배려 한다고 여기는 인식의 함정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높아지고 보상심리만 커질 뿐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관계가 깊어지지는 못했다어쩌면 단 한 번도 서로의 욕구를 제대로 맞춰 본 적이 없었으니까.

p.37



 나도 맏이로 자랐기 때문에부모님께 동생들 잘 챙기란 말을 지금까지도 듣는다양보도 좋지만 양보를 무조건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가르침은 잘못인데우리나라는 양보가 미덕이라 가르친다물론 성격상 모든 걸 양보하진 않았지만동생들 대신 내가 먼저 해야 한다거나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 아닌 압박은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그런 건 미덕이 아니라 강요이고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세뇌 당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어릴 땐 빨리 독립하는 것이 더 편해질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부분이다.


 역시나 성인이 되면서 많은 부분을 다르게 생각했고결혼하면서 더더욱 달라졌다내가 챙겨주던 거라 생각한 건 동생들 입장에선 꼰대의 참견이었고가족들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지켜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어린 시절이야 서로 부대끼고 투닥투닥 하며 재밌게 자랐을진 모르지만 사춘기를 겪고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생각보다 내 맘대로 흘러가는 인간관계가 적다는 걸 배웠다.




‘비교’의 가장 무서운 점은 현재의 내가 무엇을 얼마나 이루고 가졌는지와 관계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처럼 배어든다는 것이다진정한 자존감은 비교를 통한 상대적 만족감이 아닌 절대적인 자기 인정으로 얻을 수 있다이를 잊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교 없는 위로와 불안 없는 축하를 건넬 수 있을 것이다.

p.101



나를 엄청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혼자 뭐라도 된 듯 저울질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사람들이다비교는 스스로를 파괴한다그 비교에 자신을 넣어서 더 빨리 파괴한다무서운 점은생각해보면 나 역시 나를 파괴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그럴 땐 남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내가 저 사람만 안 만났어도 이런 말은 안 했을 텐데역시 혼자가 최고야.


하지만…오랜 친구와의 만남에선 무슨 말을 해도 참 재미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곧 생명력과도 같다그렇게 우리는 모르는 새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사람에게는 늘 사람이 필요하다.

p.217



…누구나 자산의 경험이 만든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다만 이따금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맺힌 조금은 다른 관점의 세상에 마음을 내어 주면 좋겠다그렇게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을 배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p.241


  아무리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해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해야 한다어릴 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알아줬으면 해서배려하고 양보했다하지만 나 스스로를 낮추고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서 행동한다고 나를 알아줄 거란 건 큰 착각이었다나를 더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그렇게 하기 위해선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적당히 거리를 두고 나를 아끼며 다른 사람을 보면내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전해진다날카로웠던 가시도 점차 뭉툭해진다.




  책을 읽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걸 느꼈다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그들을 배려하면서도 나 자신을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진 않다이런  난제들의 해답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부드럽게 제안하는 듯한 책의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작가 역시 그런 과정이 있다는 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순 없다또다시 흔들리고 힘들어지겠지만 방법을 알고 있다면 문제없지 않을까.



  예전엔 에세이가 재미 없었는데이 책은 참 좋다적당히 옆에 두고 종종 꺼내본다면 내면의 에너지를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다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함께 하면 어떨까 싶다주변에 그런 이들이 보인다면 슬쩍 선물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특히 올해처럼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했던 지인들이 생각난다면더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