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 - 당신의 이야기를 빛내줄 악당 키워드 17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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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 - 차무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작가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나 역시 장르 물을 좋아하기에 한때는 장르 소설 작가의 꿈을 가지기도 했었다. 보이지 않는 점처럼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설 창작에 대한 꿈을 꾸고 있을 때는 항상 주인공과 사건에 대한 생각만 했었다.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들어야 소설을 이끌어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그 매력적인 주인공이 엄청난 사건을 해결해가야 가슴을 조이면서 읽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짧디짧았던 작은 꿈은 사라지고 다시 장르 소설의 독자로 즐기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을 꿈꿀 때 빌런이 중요하단 생각을 크게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보다 매력적인 빌런들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어서야 깨달았다. 〈양들의 침묵〉의 매력적인 살인마 ‘한니발’, 〈곡성〉의 ‘일본인’, 〈소우〉의 ‘직소’, 〈다크나이트〉의 ‘조커’ 등 주인공보다 더 기억에 남는 빌런들을 생각하며,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 빌런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빌런을 17가지의 키워드로 나누었다. 모두 재미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키워드는 ‘그림자’, ‘절대성’, ‘여성’이었다.


빌런은 주인공을 투영한다는 의미의 ‘그림자’에는 천재이면서도 다재다능한 살인마 ‘한니발’이 등장한다. 그는 살인을 하고 인육을 먹지만, 아무나 먹지 않는다.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들만 먹는다. 그런 의미 있는 자들에게 흥미를 보이며, 관찰하고, 함께하며, 때를 기다린다. 단순히 살인을 하는 살인마였다면 한니발의 이야기는 〈양들의 침묵〉에서 끝이 났을 테지만, 그가 갖고 있는 살인에 대한 의미는 〈한니발 라이징〉을 거쳐 미드의 주인공에까지 오르게 했다.


소설 『한니발 라이징』으로 가장 먼저 한니발을 만났고, 그 뒤 역시 소설로 『양들의 침묵』과 『레드 드레곤』을 읽었기 때문에 한니발은, 나에게 처음부터 빌런이 아닌 주인공이었다. 그래서인지 『양들의 침묵』의 답답한 스탈링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니발이 탈출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주길 기다렸었다. 빌런을 잘 만들면 독자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키워드 ‘절대성’은 절대 악이다. 절대 악은 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인간이 이길 수 없다. 〈곡성〉, 〈유전〉, 〈엑소시스트〉, 〈더넌〉 등 빌런이 악마인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보통 오컬트 장르들인데, 내가 본 오컬트물들은 대부분 인간이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한 듯 보이는 경우에도, 악마는 숨어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악마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이다. 인간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성은 0.01%도 오직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존재하고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절대성을 가진 빌런이 등장하는 영화 등은 싸우는 과정보단 악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이 중요하다. 악의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고 당하기만 할 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포심이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악과의 싸움의 결과보다 과정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빌런을 정하기엔 쉽지만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더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다.





빌런이라 생각하면 이제는 단순한 악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봤을 때 악한 짓을 하고 범법을 저질러서 범죄자일 수는 있지만 빌런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오노 후유미의 『시귀』에는 흡혈귀와 같은 ‘시귀’라는 빌런이 등장한다. 평범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피를 빨아 조종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자신들과 같은 시귀로 만드는 아주 악한 존재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시귀는 살아갈 곳이 없다. 자신도 억울하게 물려 시귀가 되어 인간의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인간만 살아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들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인간은 그들 입장에서도 빌런이고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인간은 항상 옳지 않다. 시귀라고 해서 모두 악하지 않다. 시귀가 되어서도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 피를 먹지 않아 굶어 죽은 시귀도 있다. 소설 『시귀』는 독자로 하여금 어느 편도 들 수 없이, 그냥 그들의 싸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든다. ‘시귀’는 어떤 키워드의 빌런일까. 꼭 하나의 키워드에 해당되지 않고 여러 키워드를 동시에 가진 빌런일 수도 있다.



내게 끌리는 빌런은 항상 선악을 정의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 같다. ‘시귀’도 그렇고, 『도쿄 구울』의 ‘구울’, 엑스맨의 ‘돌연변이’, 넷플릭스 드라마 〈 V-워〉의 ‘흡혈귀’들처럼 인간의 적이지만 그들의 존재의 이유는 인간과 같다. 그들과 공존하지 않으면 전쟁뿐이고, 공존하기 시작하면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은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에,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펼쳐질 때 어떤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지 역시 재미난 과정이다.





시대가 흐를수록 빌런을 나눌 수 있는 키워드는 더 늘어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매력적인 빌런이 아닌 납득이 갈 수 있는 빌런을 만들어 내는 것 일 것이다. 절대악처럼 존재 자체는 납득이 가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을 납득하게 되면, 이야기에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내가 작품을 쓴다고 할 때 그런 점들을 이해하고 시작한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꼭 읽어봐야 할 책이지만, 장르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꽤나 재밌다.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빌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이전에 접했던 작품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꺼내어 곱씹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저자의 관련 지식이 풍부해서 하나의 지식서를 읽는 것 같았다. 실패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그리고 또 그런 이야기를 찾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내가 알고 있던 빌런들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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