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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책을 읽기 전에는 스스로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정해진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의
저자는 기자이다. 그래서인지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의심이 있었다. 내가 읽고 있는 기사도 믿을 수 없는데 이 책은 또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의심이 모두 사라지진 않았지만 이 책이 나에게 준 것은 있다. 어떤 것이 개소리인지 의심할 수 있게 하는 힘과 의지이다.
책은 2016년 미국의 대선과 영국의 브렉시트 논란을 중심으로, 미국과 영국의 개소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였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뉴스보다 더 한 것이 바로 개소리(Bullshit)라
말한다. 여기서의 개소리는 말하는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는 말을 마음대로 떠드는, 그야말로 개소리다. 이 이상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개소리는 진실과 거짓으로 나뉘지 않는다. 진실 여부는
상관없이 그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엄청난 등급의 헛소리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개소리꾼들과 그들의 소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트럼프 특유의 미디어 전략 중에는 역사적 유례를 찾아볼 수 있는 전술이 하나 있다. 바로 나중에 뉴스를 주겠다는 언질로 뉴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트럼프는 무에서 기삿거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소질을 처음 선보인 것은 오바마에게 흠집을 내려고 2012년에 트위터에 연거푸 올린 글에서였다. 그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다면서 구체적 언급 없이 ‘확실히 믿을 만한 정보통’에 따르면 오바마의 출생증명서는 조작이고, ‘비밀 취재원’이 미국의 채무 상태를 밝혔으며, 유죄 판결을 받은 사기꾼이 오바마 대통령의 집 구매를 도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방어 태세를 보일 때 이런 식으로 언질을 주거나 암시하는 교묘한 수법을 썼다.
p.139
다양한 개소리꾼들이 있지만 단연코 돋보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트럼프와 로이 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몰아 본 적이 있다. 그 후로 트럼프는, 어이없지만 나름 힘이 있는 대통령이 아닌, 정말 무서운 인간이란 인식이 생겼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행했던 것들이 단순 사기 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서는 사람을 공격하여 지치게
만든 후 자신의 잘못은 그 여파로 작아지게 만드는 무서운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때도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를 트위터를 통해 업로드한다. 다른 사람이 썼으면 정말 개소리라고 치부할 내용들이, 그가 말하는
순간 이상하게 힘을 갖는다. 그 개소리들의 진실 여부를 밝혀내기 위해선 개소리가 잠잠해지는 기간보다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트럼프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개소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뉴스 미디어와 허위
사이트 둘 다 소비하는 대중이 있으니 그런 정보를 만든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반응한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게 해줄 뿐이다.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소비자이자 유료 독자이자 유권자로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제 우리도 전통적인 매체와 거의 대등하게 정보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진다.
p.156
이런 개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기존의 미디어들뿐만 아니라 SNS가
있다. 트럼프 역시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애용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모임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용도로 SNS를 이용한다.
넘쳐나는 가짜 뉴스와 개소리들이 손쓸 시간 없이 퍼져나가지만 팩트 체크를 할 수 있는 양과 시간은 한정적이다. 미디어들은 돈을 찾아 진실과 다른 것들을 전달하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떠든다. 그들에 맞서기 위한 우리들은 제대로 된 지식을 얻기 위해선 단순히 글을 읽고 생각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정치인은 법을 만들고 나라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개소리는 어쩔 수 없이 힘을 갖는다.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지 말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미디어는 돈이 중요하다. 하지만 돈보다는
신뢰를 얻어야 오래갈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독자이자 유권자인 바로 우리이다. 나 역시 나만의 고정관념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의
틀을 깨고 여러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 번씩 더 생각하며 의심하고 좀 더 찾아본다면, 언젠가 나의 통찰력은
날카로워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개소리는 한 계층이 노력한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개소리는
언제나 우리의 옆에 떠돌아다닌다. 심지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 개소리를 0%로 만들 순 없지만 정치인, 미디어, 독자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만 노력하여 개소리를 걷어내려 한다면 세상이 조금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개소리가 쏟아져 나올 것인지 약간의 기대감과 걱정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도움으로 나의 생각 회로에 몇 가지의 함수가 더 추가된 느낌이다. 앞으로도 개소리가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지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