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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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야구 미스터리 소설 <마구>는 1964년 3월 30일 봄 고시엔 야구시합에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이요 고교와 아세아 학원의 시합이 9회말 2사만루라는 정체절명의 긴박한 상황을 맞이한다. 강호 아세아 학원의 마지막 공격을 막아내야만 하는 가이요 고교의 에이스 스다 다케시는 상대팀의 4번타자를 맞아 회심의 일구를 던지는데... 아! 그러나 이게 왠일?  스다가 던진 공은 포수 기타오카 이카라의 미트 앞에서 굴절을 일으키며 뒷그물까지 굴러가버린다. 상대 팀 주자는 역전주자까지 홈을 받으며 허무한 역전패로 시합을 끝난다.

 

이 시합이 끝난 이후인 4월 10일 이른 아침 제방길에서 가이요 고교의 포수 기타오카가 애견과 함께 칼에 찔린 사체로 발견되고 같은 야구부원인 스다 다케시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수사망에 오른다. 천재투수인 스다의 강속구를 유일하게 받아낼 수 있는 기타오카의 죽음은 여러모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스다 마저 오른팔이 잘린 채 숲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되면서 경찰은 두 살인사건과 도자이 전기회사에서 발생한 폭파 미수 사건의 연관성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올해 프로야구가 당초 관객동원 목표인 700만을 넘어 800만까지 내다보는 등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추리소설에까지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꾸준히 출간되면서 새삼 야구의 인기를 재조명하는 시점에까지 이르고 있는 와중에 히가시노 게이고와 야구의 결합은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필독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고 <사우스포 킬러>에 이어 생애 두번째로 읽은 야구소설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읽은 이 소설은 연속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냐는 것과 함께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마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해나가는  점이 주요 포인트이다.

 

여기서 <마구>의 의미가 주요쟁점 사안이 된 것은 스다의 사체 옆 땅바닥에 새겨져 남겨진 의미불명의 개념이 사건해결의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롯데의 이용훈 투수가 스핏볼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투수들에게는 타자를 제압할 수 있는 마구 개발이 하나의 염원일 것이며 소설 속에서도 마구의 실체에 대한 갖가지 의혹들이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흥미로움이다.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범인은 항상 주변인물들 중에 있다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며 마구의 실체가 궁금한 것은 단지 야구팬으로서의 절대적인 호기심이다.

 

결국 실체가 밝혀진 마구는 개발을 의도하지 않은 미완성의 산물이며 거기에는 재기에 몸부림치던 어느 야구선수의 뼈를 깎는 절절한 아픔이 녹아있어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그렇기에 치밀한 추리과정과 반전은 기대하지 말자. 어차피 그런 것은 애초부터 작가의 관심대상이 아닐었을 터. 차라리 동기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 소설의 주인공인 스다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서 힘들게 동생과 자신을 힘들게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따뜻함을 넘어 애절하며 절절하기까지 한데 사건의 출발점이 혼자서 인생의 고달픔과 싸워 이겨내려했던 한 남자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추리소설로서의 결핍을 다른 관점에서 보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구에 이용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려 한 주인공의 죽음은 그라운드 내에서의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야구경기 이면에 땀과 더불어 눈물과 한숨이 한데 녹아있는 인간사가 숨어있음을 주목하게만드는 야구 미스터리 소설이 <마구>이다. 야구팬으로서 바라는 것은 야구가 꾸는 꿈은 그래도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한다는 사실도 빼놓지 말자는 거다. 그것이 바로 야구이다. 야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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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5 ㅣ 미치 랩 시리즈 4
빈스 플린 지음, 이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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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페이지를 펼치기 전에 일단 제목인 ‘집행권’의 의미부터 파악하게 된다. ‘집행권’을 검색해보니 좁은 의미로는 행정권과 구별해서 쓰이는데, 행정권이 비정치적인 행정작용에 관한 권한을 뜻하는 데 대하여, 집행권은 정치적인 집행 작용의 권한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경우의 구체적인 예로서는 군사·외교 등에 관한 권한이 있고 그 밖에 강제집행을 할 권능, 즉 ‘강제집행권’을 가리키기도 하며, 또한 확정된 형(刑)의 집행을 하는 국가의 권능을 가리킬 때도 있다고 정의되어 있다. 여전히 사전적 의미로는 쉽게 이해되는 용어는 아닌 것 같아 소설을 읽어서 맥락을 이해하기로 한다.

 

필리핀의 급진적인 이슬람단체 아부 사야프에 미국인 가족이 인질로 잡혀 억류 중인지 6개월이 흘렀다. 이들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미 해병대가 현지에 파견되지만 매복 중인 적들에게 병사 2명을 희생당하고 작전은 실패한 채 철수하고 만다. 이에 헤이즈 대통령은 작전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후속적인 구출조치를 명한다. 미치 랩은 구출작전의 실패가 내부의 기밀누설 때문인 것을 알게 되면서 분노하게 되고 직접 자신이 현장으로 출동해 구출작전을 지휘하기로 한다. 한편 사우디 왕자 오마르의 지원을 등에 업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데이비드는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과도 이중거래를 하며 팔레스타인 민족의 독립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비밀리에 테러를 시도하는데... 중동에 불어 닥친 피바람이 예고 없는 죽음을 앞당기기 시작한다.

 

4번째 시리즈 “집행권”에서는 비밀요원 미치 랩의 신상에 많은 변화가 드러난다, 우선 미혼이었던 그가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솔로에서 품절남으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 분쟁지역을 넘나들며 목숨 건 미션을 수행하면서 단독적인 사고와 행동이 몸에 배었던 미치 랩은 이제 인생의 반려자가 생기면서 예전처럼 무모한 돌출행동에는 일정부분 제동이 걸리게 되고 함께 삶을 분담해야하는 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나 해야 할까. 비밀요원과 기자가 부부로 만났으니 단순히 부부로써의 관계를 넘어 정보원으로서의 역할도 병행하게 되었으니 여간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정보를 요구하는 애너와의 관계설정이 그래서 쉽지 않아 보이고 영화 “스미스씨 부부”처럼 부부가 동일한 목적과 방향에 의해 움직이는 부부관계라면 미치 랩이 좀 더 원대한 포부와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데 날개를 달 수 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해 오히려 새장 속에 갇힌 새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원치 않던 상황에 의해 헐리웃 스타처럼 전 세계에 신분이 노출된 데다 내근직으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으니 갑갑한 심정이야 오죽할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으니 언제까지 참고 지낼 미치 랩이 아니라고 본다면 어느 순간 옷을 벗어던지고 울타리를 타고 넘어가려는 시도를 목도할 수 있을 것이고 결혼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오리란 것은 명약관화! 그것은 시리즈가 계속되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시리즈에서도 드러난 특징이라면 데뷔작 <임기종료>에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모든 적은 내부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일 것이다. 제 아무리 외부의 적을 향한 최첨단의 방어태세를 구축한다고 해도 내부의 긴밀한 공조와 지원 없이 보안 불감증을 노출시킨다면 미처 대처도 못한 채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은 남과 북이 대치한 우리네 현실에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세치 혀 단속부터 철통보안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된 “집행권”은 미치 랩이 헤이즈 대통령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아 외교적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일련의 테러리스트를 처단함으로서 심지의 불씨를 꺼뜨리면서 국가 간 갈등을 봉합하고 일시적인 평화를 가져오는 과정들을 축약해서 표현하는 용어로 이해하고 싶다. 팔레스타인의 폭탄공장을 폭파한다는 명분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한 이스라엘이나 그에 대한 보복으로 순교여단의 자살폭탄테러, 이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사우디왕가와 혼란을 부추켜 조국 건국의 정당성을 국제적인 공론으로 몰고 가려는 데이비드, 어느 한 쪽도 명분에 정당성을 확실히 도장을 부여받지 못했기에 전 세계는 자국의 실리에 편승하여 권한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이에 미치 랩은 순리를 거슬렀다고 판단된 국제적 음모에 강제집행권을 동원한 인위적인 실력행사에 들어감으로서 비극에 일침을 놓는데 과연 그의 선택이 옳았느냐에 대한 논란은 쉽사리 판정내릴 수 없는 대단히 복잡 미묘한 문제이다.

 

“적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우리를 공격한 것보다 더 강력히 그들에게 보복하는 것”이라는 벤 프리드먼의 말이나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것에 환상을 품지 말라. 총만이 광신도들이 이해하는 유일한 것이며, 중동의 평화를 원한다면 그들이 사라져야 한다. 오지 그렇게 될 때에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함께 나란히 살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라는 미치 랩의 말에서 동토에 봄이 오도록 물러나야 할 동장군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을 뿐이며, 이상은 현실 앞에 주눅 들어 동면하고 있는 상황은 이 시리즈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원동력인 것이다. 그렇지만 피로 점철된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도 가려운 곳은 신속 과감히 긁어주는 미치 랩의 해결사로서의 능력은 언제 읽어도 시원시원하지 않는가 말이다. 비록 그들의 정책을 대변하는 히어로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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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ㅣ 메두사 컬렉션 13
그렉 아일즈 지음, 강대은 옮김 / 시작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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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터너(Page-Turner)라는 용어가 있다. ‘한 번 잡으면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해서 책장 넘기기가 바쁜 책’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렉 아일즈의 <24시간>이 정말 그랬다. 읽는 동안 잡념과 세상만사 번뇌는 안드로메다로 저 멀리 보내고 미친 듯이 책에 고개를 박고 눈은 부릅뜨고 모든 감각은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한 채 진정한 스릴을 마음껏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렇게 몰입해서 스릴러를 읽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애초 기대했었지만 상상 그 이상의 짜릿한 재미에 화장실도 참아야 했다. 이런 작품을 그동안 몰라뵈었으니 그동안 참 재미없는 소설들에 내가 시간을 낭비했구나 하는 한탄과 아쉬움이 밀려든다.

 

이 소설은 24시간 동안 리얼타임으로 펼쳐지는 피 말리는 심리전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죄자가 있다. 조라는 불리는 이 남자는 사촌인 휴이와 부인인 세릴과 3인조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아이를 납치해서 인질로 잡고 부모에게 몸값을 받아낸 뒤 24시간 안에 부모 품으로 돌려주는 범죄행각을 벌여왔고 그 누구의 사상도 없이 성공률 100%라는 악명을 자랑하는 자이다. 그것도 모두 1년에 한번 씩 의사를 대상으로만 저지른 범죄라는 가장 큰 특징이다.

 

올해 조의 범죄표적이 된 가정은 의사 윌과 카렌 부부의 다섯 살 딸 애비! 윌이 의학강연회에 참석하러가고 카렌과 애비만 가정에 남아있을 즈음 조 일당의 마수가 뻗쳐온다. 휴이가 애비를 몰래 납치해 달아나고 조는 카렌에게 딸의 납치사실을 알려주고 몸값 20만 달러를 요구하며 그녀 또한 인질로 억류하는 동시에, 남편 윌도 유혹을 가장하여 접근한 세릴에게 인질로 억류당하면서 일가족 3명이 각각의 장소에서 각각의 범인들의 감시를 받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찰에 알리면 아이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협박 속에 윌과 카렌은 조 일당의 예상을 뒤엎고 애비를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집념으로 양자 간의 불꽃 튀는 두뇌게임을 전개한다. 과연 윌과 카렌은 애비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어 범인들 모르게 딸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아동납치나 학대 등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은 넘칠 정도로 많았지만 동일한 재료로도 명인의 솜씨에 따라 화려하게 재탄생되기도 한다. 주범인 조는 매우 치밀하고 영리한 자로서 다소 모자라지만 심성은 나약한 사촌 휴이와 폭압으로 지배하고 있는 부인 세릴을 공범으로 조종하여 이번에도 완전범죄를 꿈꾸는데 자신감엔 다 그만한 근거가 있다. 보통의 납치극이라면 범인들은 부모에게 자신들의 정체와 위치를 철저히 은닉한 채, 몸값을 요구하겠지만 이자들은 상식을 초월한다. 3명이 각자 역할 분담하여 남편과 아내, 아이를 각각 납치하여 흩어진다. 그리고 조는 휴이에게 30분 간격으로 통화하고 만약 자신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면 신상에 변고가 생긴 것으로 간주, 미리 세워두었던 또 다른 계획에 착수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트라이앵글 중 어느 한 축만 이상이 생겨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시스템 구축으로 어느 인질도 딴 맘을 품지 못하게 철저한 보완책을 강구해놓았던 것.

 

이전의 사례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번에 만난 표적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묘한 기지와 책략으로 빈틈없을 것 같았던 거미줄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조금씩 심어가기 시작한다. 아이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있는 윌 부부를 지켜보는 동안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가 어찌나 황홀하던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마치 브레이크 풀린 스포츠카가 도심 한복판을 무한 질주하는 것 같은 쾌감에서 제프리 디버의 향기가 물씬 풍길 뿐 아니라 후반부에선 할런 코벤의 솜씨도 엿보일 정도로 테크닉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영화의 한 장면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역시 루이스 만도키 감독, 케빈 베이컨, 샤를리즈 테론, 다코타 패닝 출연으로 <트랩드>라는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헐리웃에서 이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는데 영화평점은 썩 좋지 않다. 원작의 탄탄한 스릴을 제대로 못살려낸 게 패착인 것 같다.

 

그냥 영화는 영화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그렉 아일즈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는 <데드 슬립>이나 펜 케이지 시리즈도 국내에 속히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작가가 국내에도 널리 소개되어 자칫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무더운 여름날을 맞아 보양식으로 제격인 이 작품을 읽게 되면 ‘우린 왜 스릴러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에 백점짜리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간만에 만난 제대로 된 대박!! 그렉 아일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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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이후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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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여 전에 스티븐 킹의 <캐리>를 읽고 데뷔작으로서의 신선함과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차례대로 읽어봐야지 하던 차에 때마침 13편의 단편들로 엮인 <해가 저문 이후>로 다시 접할 기회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단편집들을 무척이나 선호하는데 호불호가 엇갈리는 와중에서도 맘에 드는 단편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이 상당하기에 어중간한 장편보다 오히려 더 월등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단편집은 스티븐 킹이 왜 호불호가 극명한 작가인지 분명한 본보기를 제시하는 첫 경험이 되었는데 아무리 대중작가로서의 입지가 단단하다지만 초현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일상 이야기들이 마냥 쉽고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너무 만만히 생각했던 것인지.... 솔직히 중반까지는 나름 집중해가며 읽어 내려갔지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지루한 부분도 존재하면서 작가와 역자의 해설을 통해“아하! 그러한 내용을 소재로 다루고 있구나.”라며 이해했을 정도로 다소 소화해내기에 벅찬 단편들이 다수였었다. 작가의 코드랑 개인적으로 맞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그러다가 종착역까지 3분의 1 정도 남겨주고 그제야 나를 만족시킬만한 이야기들이 막판에 몰려나온다. 가장 몰입해가며 읽었던 <지옥에서 온 고양이>의 경우 호러의 제왕이 보여주는, 어디선가 읽은 듯한, 고전적인 취향의 이야기였다. 소설 속 고양이의 저주는 사람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불행이라는 산물에 직접 경고장을 던져주며 순서대로 단죄해가는 과정 속에서 아무리 몸부림치며 벗어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업보인 듯하다. 결말 부분에서는 가장 끔찍한 상황 설정을 통해 글로 읽는 공포를 눈을 감고 상상으로 재현하게 만듦으로서 끝내 몸서리치게 만드는 재기발랄함도 돋보인다.

 

<벙어리>는 불륜에 빠진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벙어리 히치하이커가 결초보은(?)해서 처리해 준다는 이야기인데, 정상인이 아닌 벙어리에게 답답한 맘에 하소연했던 개인사를 예상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결말짓게 만드는 전개는 일순 흥미롭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우연이 필연으로 연계되는 과정 속에서 아이러니라는 부조화를 잉태하고야 만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되씹어 보게 한다. 물론 의외의 반전도 쏠쏠한 재미.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주 비좁은 곳>도 악의로 가득한 이웃 간의 사투가 빚어내는 블랙유머의 집약으로 손색없는 즐거움이 충만한 이야기다. 용서와 화해 대신 갈아먹어도 시원찮을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의 반복되는 보복을 통해 인간의 아집과 독선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 비좁은 간이화장실에서의 냄새나고 토악질 나는 폐쇄공포증 속에서 생생하게 시전 된다. 둘 중 하나는 직접 손을 대지 않더라도 지구상에서 사라져야만 종료되는 게임은“원수를 사랑하라”하는 말이 무색하게 할 정도로 미련하고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는 전개로 색다른 재미가 돋보였다.

 

그렇게 다 읽고 난 소감은 역시 아이스크림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단편집의 매력이란 것이고 스티븐 킹의 이번 단편집도 예외가 아니란 점이다. 비록 모든 이야기가 만족스러운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의 다채롭고 기묘한 이야기들은 역시 킹(king)이다. 그래서 향후 소재의 원천과 영감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올라 많은 독자들을 지속적으로 독서의 바다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하는 원초적인 기쁨과 희열을 맛볼 수 있게 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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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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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소설의 줄거리만 접했을 때에는 홍콩영화 <무간도>가 반사적으로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비밀경찰요원이 범죄조직에 10년간 위장 잠입하여 조직원을 위장한 스파이로 활동한다는 설정이 이 소설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경찰이 아니라 경찰의 정보원 즉 끄나풀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되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작년에 국내 출간되었던 <비스트>는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지나치고 말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에서야 이 콤비작가의 다른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피에트 호프만이라는 이 남자는 실제 범죄자이면서 파울라라는 가명으로 경찰의 위장수사를 돕는 끄나풀이라는 이중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폴란드의 마약조직인 보이테크의 일원으로 가장해 위장 잠입 중이다. 때마침 보이테크 조직은 스웨덴 내 모든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마약을 독점공급 판매하려는 야심찬 사업을 구상 진행하게 되고 이에 호프만은 중범죄자로 위장 수감되어 역으로 조직을 말살하려는 경찰의 계획에 착수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교묘한 눈속임으로 교도소 내에 마약과 총기를 밀반입하는데 성공하여 마약상으로 순조로운 활동을 하던 중에 호프만이 이전에 얽혔던 살인사건 수사를 위해 에베트 그렌스 경정이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점차 거리를 좁혀오게 된다. 이에 당황한 프로젝트 관련자들은 호프만의 존재를 덮어버리기 위해 그의 정체를 발설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이제 호프만의 정체는 발각되고 생명의 위협마저 받게 되자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결심을 한 채, 그는 인질극이라는 정체절명의 승부수를 던진다.

 

이제껏 읽었던 스웨덴산 스릴러 중 일단 가독성면에서는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소설이 헐리웃에서 영화화되기로 결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인데 그만큼 캐릭터가 심리묘사에 치중되기 보다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시각적인 쾌감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상황에서 전전긍긍하던 호프만이 과감한 결단과 기지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물 먹이려던 설계자들에게 복수하게 되는 과정까지 신속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은 도둑맞게 된다.

 

또한 <비스트>와 마찬가지로 범죄자의 시점에서 범죄를 재구성하는 방식에선 탁월한 창작능력을 과시하고 있으면서 교도소 내에 마약의 밀반입 과정을 직접 시도, 성공한 연후에 이를 집필의 재료로 삼았다고 하니 그들만의 치밀한 고증과 자료조사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 같다. 때문에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던 대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알게 되면 믿기지 않으면서도 짜릿함도 동시에 상승 동반반된다.

 

다른 관점은 어떨까? 경찰의 범죄수사를 위해 실제 범죄자를 이용하여 악을 악으로 대처하게 하는 덱스터식 방식은 때론 원치 않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와 오차들로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어느 부분까지 면책권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의 합리화가 과연 도적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남긴다는 점에서 사회적 메시지와 고민을 던진다. 단순히 재미만이 전부가 아니라 빠른 흐름 속에서도 생각의 여지는 있다.

 

전체적인 호평 속에서도 석연치 않은 설정이 눈에 띄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도소 내의 수감생활과 인질극이라는 대치과정 중에서 사전에 배경으로 설명되었던 점이 뒤에 가서는 달리 적용(?)되고 있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오류가 아니라면 나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가령 감방에 재소자가 입실해야 하는 시간이 처음에는 19시 35분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19시 30분으로 설명되는 것 같은 경우이다. 

 

그리고 에베트 그렌스 경정의 개인적인 과거사들이 뜬금없어 보였는데 시리즈 중 후속편이라고 해서 납득은 되면서도 전작들에서 어떤 아픔들이 있었는지 궁금증도 생긴다. 물론 그의 독불장군식 소통과 아집이 가끔씩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울러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에서도 비교적 순조롭게 대처해 나가는 호프만과 그렌스 경정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미리 답을 준비해 놓고 차례대로 풀어나가는 듯해서 어떻게 전개될지 이야기가 궁금하긴 해도 살 떨리는 긴장감은 다소 부족했다는 점도 옥의 티로 지적하고 싶다. 예측 가능한 결말도 마찬가지.

 

그렇게 남들이 다 호평하는 스릴러엔 조금이라도 까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비수를 들이대긴 했어도 꿈틀대는 생존본능이 속도감으로 표출되는 즐거움이 상당했으며, 그간 스웨덴산 스릴러는 지루하더라는 개인적인 통념을 희석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세 번째 시리즈가 국내 출간되면 다시 이 콤비의 세계를 찾아 읽게 될 것같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부디 예감이 적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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