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메두사 컬렉션 13
그렉 아일즈 지음, 강대은 옮김 / 시작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페이지터너(Page-Turner)라는 용어가 있다. ‘한 번 잡으면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해서 책장 넘기기가 바쁜 책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렉 아일즈의 <24시간>이 정말 그랬다. 읽는 동안 잡념과 세상만사 번뇌는 안드로메다로 저 멀리 보내고 미친 듯이 책에 고개를 박고 눈은 부릅뜨고 모든 감각은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한 채 진정한 스릴을 마음껏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렇게 몰입해서 스릴러를 읽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애초 기대했었지만 상상 그 이상의 짜릿한 재미에 화장실도 참아야 했다. 이런 작품을 그동안 몰라뵈었으니 그동안 참 재미없는 소설들에 내가 시간을 낭비했구나 하는 한탄과 아쉬움이 밀려든다.

 

이 소설은 24시간 동안 리얼타임으로 펼쳐지는 피 말리는 심리전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죄자가 있다. 조라는 불리는 이 남자는 사촌인 휴이와 부인인 세릴과 3인조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아이를 납치해서 인질로 잡고 부모에게 몸값을 받아낸 뒤 24시간 안에 부모 품으로 돌려주는 범죄행각을 벌여왔고 그 누구의 사상도 없이 성공률 100%라는 악명을 자랑하는 자이다. 그것도 모두 1년에 한번 씩 의사를 대상으로만 저지른 범죄라는 가장 큰 특징이다.

 

올해 조의 범죄표적이 된 가정은 의사 윌과 카렌 부부의 다섯 살 딸 애비! 윌이 의학강연회에 참석하러가고 카렌과 애비만 가정에 남아있을 즈음 조 일당의 마수가 뻗쳐온다. 휴이가 애비를 몰래 납치해 달아나고 조는 카렌에게 딸의 납치사실을 알려주고 몸값 20만 달러를 요구하며 그녀 또한 인질로 억류하는 동시에, 남편 윌도 유혹을 가장하여 접근한 세릴에게 인질로 억류당하면서 일가족 3명이 각각의 장소에서 각각의 범인들의 감시를 받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찰에 알리면 아이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협박 속에 윌과 카렌은 조 일당의 예상을 뒤엎고 애비를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집념으로 양자 간의 불꽃 튀는 두뇌게임을 전개한다. 과연 윌과 카렌은 애비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어 범인들 모르게 딸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아동납치나 학대 등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은 넘칠 정도로 많았지만 동일한 재료로도 명인의 솜씨에 따라 화려하게 재탄생되기도 한다. 주범인 조는 매우 치밀하고 영리한 자로서 다소 모자라지만 심성은 나약한 사촌 휴이와 폭압으로 지배하고 있는 부인 세릴을 공범으로 조종하여 이번에도 완전범죄를 꿈꾸는데 자신감엔 다 그만한 근거가 있다. 보통의 납치극이라면 범인들은 부모에게 자신들의 정체와 위치를 철저히 은닉한 채, 몸값을 요구하겠지만 이자들은 상식을 초월한다. 3명이 각자 역할 분담하여 남편과 아내, 아이를 각각 납치하여 흩어진다. 그리고 조는 휴이에게 30분 간격으로 통화하고 만약 자신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면 신상에 변고가 생긴 것으로 간주, 미리 세워두었던 또 다른 계획에 착수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트라이앵글 중 어느 한 축만 이상이 생겨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시스템 구축으로 어느 인질도 딴 맘을 품지 못하게 철저한 보완책을 강구해놓았던 것.

 

이전의 사례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번에 만난 표적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묘한 기지와 책략으로 빈틈없을 것 같았던 거미줄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조금씩 심어가기 시작한다. 아이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있는 윌 부부를 지켜보는 동안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가 어찌나 황홀하던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마치 브레이크 풀린 스포츠카가 도심 한복판을 무한 질주하는 것 같은 쾌감에서 제프리 디버의 향기가 물씬 풍길 뿐 아니라 후반부에선 할런 코벤의 솜씨도 엿보일 정도로 테크닉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영화의 한 장면을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역시 루이스 만도키 감독, 케빈 베이컨, 샤를리즈 테론, 다코타 패닝 출연으로 <트랩드>라는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헐리웃에서 이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가 없는데 영화평점은 썩 좋지 않다. 원작의 탄탄한 스릴을 제대로 못살려낸 게 패착인 것 같다.

 

그냥 영화는 영화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그렉 아일즈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는 <데드 슬립>이나 펜 케이지 시리즈도 국내에 속히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작가가 국내에도 널리 소개되어 자칫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무더운 여름날을 맞아 보양식으로 제격인 이 작품을 읽게 되면 우린 왜 스릴러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에 백점짜리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간만에 만난 제대로 된 대박!! 그렉 아일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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