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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소설의 줄거리만 접했을 때에는 홍콩영화 <무간도>가 반사적으로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비밀경찰요원이 범죄조직에 10년간 위장 잠입하여 조직원을 위장한 스파이로 활동한다는 설정이 이 소설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경찰이 아니라 경찰의 정보원 즉 끄나풀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되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작년에 국내 출간되었던 <비스트>는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지나치고 말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에서야 이 콤비작가의 다른 소설을 만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피에트 호프만이라는 이 남자는 실제 범죄자이면서 파울라라는 가명으로 경찰의 위장수사를 돕는 끄나풀이라는 이중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폴란드의 마약조직인 보이테크의 일원으로 가장해 위장 잠입 중이다. 때마침 보이테크 조직은 스웨덴 내 모든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마약을 독점공급 판매하려는 야심찬 사업을 구상 진행하게 되고 이에 호프만은 중범죄자로 위장 수감되어 역으로 조직을 말살하려는 경찰의 계획에 착수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교묘한 눈속임으로 교도소 내에 마약과 총기를 밀반입하는데 성공하여 마약상으로 순조로운 활동을 하던 중에 호프만이 이전에 얽혔던 살인사건 수사를 위해 에베트 그렌스 경정이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점차 거리를 좁혀오게 된다. 이에 당황한 프로젝트 관련자들은 호프만의 존재를 덮어버리기 위해 그의 정체를 발설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이제 호프만의 정체는 발각되고 생명의 위협마저 받게 되자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결심을 한 채, 그는 인질극이라는 정체절명의 승부수를 던진다.
이제껏 읽었던 스웨덴산 스릴러 중 일단 가독성면에서는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소설이 헐리웃에서 영화화되기로 결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인데 그만큼 캐릭터가 심리묘사에 치중되기 보다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시각적인 쾌감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상황에서 전전긍긍하던 호프만이 과감한 결단과 기지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물 먹이려던 설계자들에게 복수하게 되는 과정까지 신속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은 도둑맞게 된다.
또한 <비스트>와 마찬가지로 범죄자의 시점에서 범죄를 재구성하는 방식에선 탁월한 창작능력을 과시하고 있으면서 교도소 내에 마약의 밀반입 과정을 직접 시도, 성공한 연후에 이를 집필의 재료로 삼았다고 하니 그들만의 치밀한 고증과 자료조사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 같다. 때문에 상상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던 대목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알게 되면 믿기지 않으면서도 짜릿함도 동시에 상승 동반반된다.
다른 관점은 어떨까? 경찰의 범죄수사를 위해 실제 범죄자를 이용하여 악을 악으로 대처하게 하는 덱스터식 방식은 때론 원치 않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와 오차들로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데 어느 부분까지 면책권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의 합리화가 과연 도적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남긴다는 점에서 사회적 메시지와 고민을 던진다. 단순히 재미만이 전부가 아니라 빠른 흐름 속에서도 생각의 여지는 있다.
전체적인 호평 속에서도 석연치 않은 설정이 눈에 띄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도소 내의 수감생활과 인질극이라는 대치과정 중에서 사전에 배경으로 설명되었던 점이 뒤에 가서는 달리 적용(?)되고 있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오류가 아니라면 나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가령 감방에 재소자가 입실해야 하는 시간이 처음에는 19시 35분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19시 30분으로 설명되는 것 같은 경우이다.
그리고 에베트 그렌스 경정의 개인적인 과거사들이 뜬금없어 보였는데 시리즈 중 후속편이라고 해서 납득은 되면서도 전작들에서 어떤 아픔들이 있었는지 궁금증도 생긴다. 물론 그의 독불장군식 소통과 아집이 가끔씩 불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울러 아슬아슬한 위기상황에서도 비교적 순조롭게 대처해 나가는 호프만과 그렌스 경정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두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미리 답을 준비해 놓고 차례대로 풀어나가는 듯해서 어떻게 전개될지 이야기가 궁금하긴 해도 살 떨리는 긴장감은 다소 부족했다는 점도 옥의 티로 지적하고 싶다. 예측 가능한 결말도 마찬가지.
그렇게 남들이 다 호평하는 스릴러엔 조금이라도 까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비수를 들이대긴 했어도 꿈틀대는 생존본능이 속도감으로 표출되는 즐거움이 상당했으며, 그간 스웨덴산 스릴러는 지루하더라는 개인적인 통념을 희석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세 번째 시리즈가 국내 출간되면 다시 이 콤비의 세계를 찾아 읽게 될 것같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부디 예감이 적중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