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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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무지무지 덥다. 찌는 무더위에 잠이 좀처럼 오질 않아서 책과 함께 긴긴 밤을 사투 속에 보내고 있는 상황,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사무실에서 이 책을 수령하였다. 여직원이 무슨 책이냐며 호기심을 비치면서 책을 문득 들어보더니 단박에 기겁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시무시한 책의 제목에 대한 거부반응이었으니, 나를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어찌 이런 극악무도한 책을 읽느냐며, 게다가 목이 뎅강 잘려나간 인형의 표지그림까지 지적하며 혀를 끌끌 차기까지 하네. 음지에 숨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장르소설 독자의 고충을 또 한 번 되씹게 되는 현실에 한탄하면서 이 계통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따져들고 싶었지만 참고 넘어가 버렸다. 게다가 난 남자라구, 쯧.....

 

그렇게 섬찟한 포스의 제목을 보여주는 사쿠라바 가즈키의 이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소비자금융, 즉 사채지옥의 끔찍함과 벌린 입 속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의 피폐하다 못해 나락의 구덩이로 떨어져버린, 파괴된 삶을 몸서리치게 다룬다. 소설 속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자면 중년의 번역가 요시노 사토루는 고학생 시절 하숙했던 고서점에 들렀다가 자신이 지냈던 방에 하숙하고 있는 묘령의 여인 시로이 사바쿠를 알게 된다. 사토루는 대학 강사와 번역가로 남 보기엔 번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채 빚에 내몰리고 있는 채무자 신세이다. 사바쿠도 요란한 대출광고에 현혹되어 결국 다중 채무자로 전락하고만 신세로 둘의 관계는 처음에는 사토루의 성적 욕망에 의해 육체적인 관계로 시작하지만 이윽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토루에게서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맡게 된 사바쿠는 그가 번역에 대한 인세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돈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한다. 비디오로 둘 만의 정사를 녹화, 이를 협박용으로 쓰려고 했고 이를 눈치 챈 사토루는 외딴 오두막으로 그녀를 유인해 토막 살인해 버린다. 그녀의 손가락을 잘라 병 속에 수집품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토루는 그녀가 자신처럼 사채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게다가 성형수술에 가명까지 써서 위장된 신분을 쓰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사바쿠의 행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차" 속의 그녀랑 무척이나 닮아있다. 내가 본 "화차"는 소설이 아니라 한국 영화이고 사바쿠는 본인의 무분별한 소비행태에서, 영화 "화차"의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아버지의 빚이 족쇄처럼 대물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비참한 현실과 죽음이라는 엔딩은 끝내 둘 다 피해가지 못했다.

 

그렇게 돈이라는 것은 말이지. 우리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성취의 열매로 뚝 떨어져 손에 쥐게 될 만큼 그리 눅룩치 않다. 화사한 돈 꽃을 피우고 행복해지고 싶은 것이 우리들 소망이지만 이 소설에선 순진한 믿음이 아니냐며 독자들을 맘껏 조롱하는 거 같다. 현실에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소득은 없고 카드 빚은 날로 늘어 사채에까지 손을 대고 마는 많은 사람들, 사채란 것은 금전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튼튼한 동아줄인 것처럼 미소 띈 가면으로 '돈은 얼마든지 가져다쓰세요' 라며 선심 베풀 듯 한다.

 

'빌려 쓴 돈 곧 갚아야지'라며 다짐하건만 사바쿠처럼 지옥은 입을 벌려 어느새 집어삼키기 시작하고 정신차려보면 자신의 몸뚱이는 이미 토막 나 버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는 못 되돌릴 과거의 핑크빛 삶은 책장을 넘길수록 막막한 한숨으로 갈기갈기 찟겨 다가오는데 불안, 절망, 공포가 한데 섞여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서 마구 휘둘리면서도 끝내 읽는 것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는 각각의 등장인물의 개별적 시점이 하나의 틀을 완성해나가는 구성에서 흥미를 느끼는 동시에 썩어 문드러진 삶의 냄새에서 경각심을 느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매일같이 사채광고는 전화로도 걸려오고, 휴대폰 문자로도, TV에서도 돈이 넘쳐흐름을 주체 못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그것을 살아가는 동안 끝내 피해갈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그냥 어둡고 무겁고 비참한 이야기들에서 교훈을 반추하고 현재의 힘든 삶을 헤쳐 나가며 고집스럽게 앞만 보고 나아가자고 밖에 내 놓을 결론은 없겠다. 그렇다면 돈에 지배받지 않고 우리네는 멀지않은 미래에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 왔는지는 사토루의 노년에서 해답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본래, 돈이라는 것에는 폭력성이 있네."

돈이란 말이지, 없으면 사람을 곤궁하게 만들고.

있으면 있는 대로 질투나 원망을 사게 만드는,

굉장히 성가신 물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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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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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완전범죄라는 튼튼한 벽돌을 보기 좋게 깨 부시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범인이 누구냐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심증은 있되, 물증은 없어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는, 만약 지목한 대상이 범인이라면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과 트릭으로 완벽하게 무장하여 빈틈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 철옹성을 구축해 놓고 공권력의 무기력함을 가면 속에서 비웃고 있을게다. 세상은 그를 완전무결한 존재로 둔갑시켜 놓았고 추적자는 몇 번의 좌절 속에서도 끈질긴 집념과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관점으로 마침내 깨뜨리고 들어가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순간, 독자는 말할 수 없는 희열 속에 빠지고 만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그러한 케이스에 해당된다.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싶은 추리소설의 수작이란 이런 것이다. 이 소설은 어느 추운 겨울 바닷가 바위에서 한 쌍의 남녀가 동사한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독극물을 마시고 나란히 情死(정사)한 것으로 추정,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어 종결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죽은 남자의 옷에서 열차에서 이용한 1인분 식사영수증이 발견되면서 누군가는 의혹을 품게 된다. 같이 열차를 타고 간 남녀가 왜 혼자서만 식사를 했을까?

 

얼핏 별일도 아닌 것처럼 비치던 사건에 다른 관점이 불을 지피는데다 출발역에서 이들이 같이 열차를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한 남녀가 있었다. 평소 각 플랫폼은 출발하는 열차와 정차 중인 열차가 한데 뒤섞여 다른 폼에서 해당열차를 볼 수 있는 것은 특정시간대의 단 4분뿐. 그 시간대외에는 다른 열차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4분간의 목격자는 우연이 아니면 작위의 냄새를 풍긴다.

 

미하라 경부는 당시 목격상황을 만든 야스다를 범인으로 점찍고 그의 알리바이를 집요하게 캐기 시작하지만 그는 사건 전후에 살인 장소와는 반대인 훗카이도로 출장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게다가 목격자까지 있다. 헛 다리를 짚은 것일까? 아니다 직감은 그를 범인으로 강력히 가리키고 있다. 동기만 추축할 수밖에 없는 기묘함 속에 정밀한 치밀함과 숨 막히는 진실공방이 허를 찌르고 이야기가 전개되면 사건은 실마리도 없이 미궁 속으로 깊숙이 빠져드니 세상에 완전범죄란 가능하단 말인가?

 

야스다의 용의주도함이 낳은 난공불락의 성, 그 성을 함락하려고 하는 미하라 경부하의 치열한 공성전은 제목 그대로 전혀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던 무수한 점들이 어느 지점, 어느 시점에 만나 하나의 선을 그으며 마침내 끝자락에 도달하게 되는데 진실에 가 닿기까지 비장의 카드인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을 퍼즐 짜 맞추듯 엮어 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발군이요, 명불허전이다. 그렇게 무릎을 일순 탁 치게 만드는 그런 소설, 오랜만에 추리소설다운 추리소설을 만나는 순간, 진실을 쫓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에는 그 어떠한 검은 의혹도 결코 비켜갈 수 없다는 결말에는 손가락이 절로 치켜세워진다. 그러니까 사소한 단서들을 토대로 트릭을 밝혀내는 천재적인 추리야말로 추리소설 본연의 쾌락이 아니겠는가? 진심으로 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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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ㅣ 환상문학전집 30
아서 C. 클라크 지음, 고호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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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크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과학소설의 ‘빅3’로 불리는 명실상부한 과학소설의 거장으로 출중한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미래를 철학적인 세계관으로 접근하는 관점의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작가보다 오히려 미래를 족집게 같이 예언한 미레학자로 더 유명하고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인터넷, 통신 위성, 우주 정거장 같은 것들 모두 작품에서 미리 예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작두 타는 무당 정도로 오해해선 곤란하지. 아서 클라크가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던 날카로운 통찰력에 있다고 한다. 아서 클라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가장 유명하지만 평소 그의 작품들을 쉽게 접할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닌데 시대 순으로 발간된 단편 전집은 우주여행의 시작부터 최고 정점에 이른 후대까지 순서대로 즐기면 된다는 이점이 있고 우주에 대한 인간의 동경이 위트와 진한 감수성이 한데 섞여 진국을 자랑한다. 물론 단편별로 각기 다른 개성을 선보여 이해정도도 천차만별이지만 이거야말로 진정한 과학소설의 표본임은 구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야. 퐈이야!!

 

<백일몽>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상상력이나 더 적은 상상력이 아니다. 상상력 그 자체다.”라는 멋진 명언을 작가는 남긴다. 절대 공감이다. 어디 과학소설에서만 통용되는 명언일까? 세상의 모든 대중문화가 개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튀는 것만 좆을 때 그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은 없노라는 명제는 진짜 중요한 것은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창작 대신 변형된 산물로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기존작에 아이디어만 더 해도 혁신은 가능하다. 그것이 발전의 원동력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뼛속 깊이 재밌는 단편은 1937년에 발표된 <유선전송>이 되겠다. 이해도 쉽거니와 유머에 대한 공감도 놀랄 만큼 일치한다. 일단의 과학자들이 수차례 실험의 장고를 거듭한 끝에 세계최초의 유선전송장치를 개발해내는데 성공한다. 이제 이 기술은 돈벌이 사업으로 이용되는데 처음에 사람을, 이후에는 하루에 수천 톤의 화물을 전송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신간 구입 시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온라인에서 결제 즉시 바로 책을 받아보게 되는 기쁨 두 배의 혁신이 될 터인데 실제로 이 기술의 개발이 시급하다, 그러면 택배아저씨는 더 이상 볼일이 없겠지. 또한 이 시스템은 여러 가지로 장점과 단점을 고루 보여주시는데 차량이동이 줄어드니 교통사고 사망자도 덩달아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지만 사람을 전송하던 중에 택배 분실처럼 600만명 중에 한 명 꼴로 실종되는 치명적 오류도 있으니 무조건적인 맹신은 금물일 듯싶다. 때때로 회로의 저항이 높아져 전송 고중 승객의 몸무게가 빠지는 기상천외한 결과도 나와 뚱뚱한 사람들의 다이어트용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수록작들 모두 맘에 든다. 고립된 우주공간에서의 고독함부터 외계문명에서 바라보는 우매한 인간세상까지, 이 모든 것이 상상력의 극대화가 이루어낸 산물이다. 그 누가 감히 예측하겠는가? 소설 속의 상상물들이 미래에 현실로 탄생할지 말이다. 이러한 상상력이야말로 과학발전에 지대한 영감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기술의 폐해 또한 잊지 않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앞만 보고 달리는 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아량마저 품에 넉넉히 안는 아서 클라크의 현명함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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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박성신 지음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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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책을 펼치면 우선 갤럭시탭-텍스토어 디지털 콘덴츠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란 경력부터가 눈길을 끈다. 생소한 공모전인지라 인터넷으로도 검색해보지만 신인작가들의 등용문 중 한 루트 정도로만 인지했고 더 이상 상세한 파악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근데 이 책은 징하다. “자수성가한 주인공이 30년 만에 아버지를 찾았지만 그는 가짜 아버지였고, 또 다른 가족들 간에 숨겨진 진실들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싶었다.”라는 것이 박성신 작가의 수상소감에서 그 느낌이 비롯된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가족을 원하는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주인공 민재는 고아원에서 자라 파양의 아픈 과정을 겪으며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자수성가 한 것처럼 보이는 그는 사실 갖가지 비리와 추악한 비행으로 성공이라는 열매를 거머쥔 위선적인 인물로 그의 열등감을 채워줄 마지막 퍼즐은 바로 가족이다. 아름다운 아내 혜리와 수빈이 있지만 부모의 부재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할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마침내 TV에 출연해서 헤어진 부모를 찾게 되고 30년 만에 만난 아버지 대도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만 민재에게는 가족 구성원의 결원을 충족하는데 만족한다.

 

이제 이 가족은 행복할 것이다. 아니 행복해야만 한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남부러울 것 없을 것처럼 보이던 가족에게도 보이지 않은 균열이 서서히 진행된다. 민재는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양심을 저버린 댓가로 협박받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사로 그들로부터 또 다른 위협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혜리 또한 민재의 친구이자 부하직원인 상우의 집착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들 수빈이 조차 아무 조건 없이 사랑으로만 키우기엔 출생의 의혹이 드러나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고름이 곪아 악취가 진동하지만 정작 냄새는 맡지 못하고 대화의 부재 속에 서로의 가슴에 불신의 싹을 크게 키우기만 한다.

 

정작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정작 민재의 아버지 대도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민재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믿기지 않는 진실이다. 그는 30년 전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마 “드라이버 살인마”였던 것이다. 어려서 엄마의 사랑도 못 받고 외간남자로부터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그 남자를 살해 후 불륜남녀들만 표적삼아 드라이버로 살해하는 최악의 범죄자로 성장하게 되지만 세월이 흘러 공소시효 만료로 자유의 몸이 된다.

 

민재도 그랬지만 대도 또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살아생전 꼭 들어가고 싶은 구역이었다. 그 어떤 범죄자에도 가족은 반드시 소중하고 이루고 싶은 마지막 보루라는 소망을 상기시키며 서로의 필요에 의해 대도는 민재의 친 아버지로 위장 접근하여 한 가족이 된다. 모래성같이 위태위태한 이 가정은 예감대로 비극으로 침몰하지만 대도의 가족에 대한 간절한 집착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모두가 일터에서 매일 출근했다 퇴근하여 삶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곳에는 가족들이 있지만 급격한 현대화와 산업화 속에 전통적인 가치관이 변질되고 핵가족화가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에는 각 가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도 없고 실제로 관심도 없다. 가내 두루 평안 할까? 아니면 누군가는 폭력을 휘두르고 거기에 시달려 만신창이가 되고, 또 누군가는 불륜을 저지르고.... 그 어떤 추악한 위선과 악행 등이 가족들을 병들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민재의 바람대로 대도의 바람대로 외부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일이 우리 모두가 거부하기 힘든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해 파멸로만 치닫는 이들의 모습은 안타까움과 함께 산소 같은 가정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준 것 같다. 단지 챕터별로 이야기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해 단절되는 점이 눈에 상당히 거슬리기는 하지만 독자의 공감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은 이 소설에 대해 무난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 순간 통영의 여아 살해범이 문득 떠오른다. 그에게는 베트남 출신의 아내가 있고 세 딸이 있다. 저도 자식이 있으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면 울부짖는 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금수만도 못 한 그자에게 가족이란 어떠한 의미일지 그 내면의 심리가 궁금하다. 남의 가정을 파괴한 살인마를 아버지로 둔 세 딸들이 세상의 냉대와 비난 속에 헤쳐나아가야 할 가혹한 현실은 고달프다 못해 일생을 두고 떠나지 않을 악몽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런 자를 아버지로 둔 게 죄라면 죄라고 누군가는 단정 짓겠지만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은 나란히 달리는 열차 선로처럼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그 누가 대신 어루만져 달래 줄 것인가? 그래서 가족이라는 숙명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굴레이다. 마음대로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슬프다. 민재의 가족과 통영 살해범의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모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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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십자가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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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온라인에서 개인정보를 너무 많이 풀어놓고 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폭염주의보에 열대야 현상으로 많은 분들이 밤잠을 설치고 계신다. 찌는 무더위를 싹 가시게 만들 특효약으로 블록버스터 무비나 스릴러 소설 한 편이면 추천하기에 족할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제프리 디버의 신작 <도로변 십자가>의 등장은 오른 손에는 수박 한 조각을 든 상태에서 왼손을 채워줄 비밀병기로 기대하게 하는데 디버의 인터뷰에서도 확인가능 하듯이 이번 소설은 CBI 수사관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2탄이자 사이버스페이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완결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메신저 등 사이버월드가 가진 어둠의 일면에 주목해 착안했다는 이번 사이버스페이스 3부작의 대미는 예상과 달리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벌어지는 표현의 자유와 절제된 책임에 대한 의무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익명성으로 보호받는 근거 없는 루머와 폭로, 그리고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는 악플들로 확대되고, 현실과 가상세계 간 불분명한 혼돈, 이 모든 것에 편승한 현시욕이 범죄동기임이 밝혀지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 현대인들은 많은 애정과 관심을 몰두하면서 정작 오프라인에서는 서투르고 메말라가는 인간관계의 책임에 새삼 통감하게 된다. 누구나 현실에서는 꿈꾸지 못했던 위선의 가면을 쓴 채, 뒤에 숨어 죄 없는 개구리에 돌을 던지고 절대적인 권력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통치력을 뽐내기도 하면서 콤플렉스를 보상받고 응석받이로 대량 육성하는 이상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초래할 심각한 후유증에 대한 경고와 신랄한 비판의 메시지를 도로변 십자가 킬러의 살인예고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이 소설은 3부작 중 가장 현실적인,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잠재적 위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말이다. 제프리 디버가 누구이던가? 그만의 천재적 플롯과 충격적 반전은 한여름 냉동고에서 고드름 씹어 먹는 것 같은 짜릿함과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의심 속에서 허를 찌르는 트랩으로 타 작가와는 차별화된 재미를 전달하는 완소작가인 것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떠나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소설들은 게임이라는 이름의 유희로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중독성이 디버 스타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처음으로 무패신화가 깨어지면서 디버 제국의 신화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에서 열렬한 추종자로서 많은 아쉬움과 일말의 하탈감 마저 느낀다.

 

캐트린 댄스는 자타공인 동작학 전문가이다. 상대방의 표정과 눈짓, 손짓을 비롯해서 의식적, 무의식적인 버릇과 습관 등에서 감춰진 의도와 속내를 캐치하여 범죄를 유추하는 것이 주특기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그가 상대해야 할 범인은 직접 대면 같은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사이버스페이스이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다. 소재와 주인공의 주특기가 상극을 이루는 대표적인 케이스라 특유의 색깔과 향기를 상실한 채 힘을 잃고 지지부진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못 찾겠다, 꾀꼬리 같은 숨바꼭질 속에 범죄의 결과만이 드러날 뿐 범인의 심리 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전형적인 디버 스타일에서 한참 이탈해버린다.

 

자신만의 주특기를 살릴 수 없는 캐트린 댄스에게 가상공간에 대한 무지는 전문가의 초빙을 필요로 하게 되고 강습 받는 과정의 묘사는 흡사 해리 보슈가 후배 키즈민 라이더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는 대목이 오버랩 되면서 댄스와 보슈의 닮은꼴을 확인하게 되어 살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두 사람은 아날로그 수사의 아이콘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범인에 대한 단서 포착과 검거과정도 들여다보면 과학적, 논리적 근거 대신 우연이라는 개연성과 맞물려 단단하다고 생각되었던 매듭이 어느 순간 느슨하게 풀려있음을 눈치 채게 되는데 솔직히 개운치가 않다.

 

또한 이 장르의 재미를 결정짓는 요소를 어둠이 가진 악마성과 가공할 파급효과, 특유의 스킬에 중점을 둔다면 이 역시 재미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보여 진다. 3부작 중 전작들이 범인의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천재적인 장악력과 두뇌, 목적을 수행하는 강력한 스킬로 현실을 무시무시한 공포로 몰아넣는 혼돈까지 무엇 하나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던 밀도 높은 스토리와 현란한 스피드에서 압도적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물먹은 솜처럼 시종일관 무기력한 분위기가 팽배하고 심장의 박동 소리가 작다. 하다못해 1편의 악당 다니엘 펠 처럼 시종 악마 같은 심성에 몸서리치게 하는 등장 인물 조차 없으니 대체로 전작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 넣었던 건 아닌지 안타까움마저 든다.

 

주인공의 주특기도 빛바래지고 악의 가공할 위력마저 상실하여 입체감 없이 모든 토끼들을 마구마구 놓쳐버린 아쉬움을 그나마 달래는 것은 캐트린 댄스와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범인 다니엘 펠을 추적하다 안락사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던 수사요원 후안 밀라의 죽음을 두고 안락사를 시킨 용의자로 그녀의 어머니 이디 댄스가 지목되어 검거된다. 도로변 십자가 킬러 검거와 어머니의 무죄방면 해결이라는 양 극단의 갈림길에 놓인 댄스의 가혹한 처지는 결국 십자가 킬러 검거에 우선시 할 수밖에 없는 결단으로 이어지고 모녀간의 불편하고 섭섭한 오해로 맞물리면서 그녀의 고충은 점차 커져간다.

 

그녀의 미처 피지 못한 로맨스의 싹(?)도 아쉽기만 하다. 그동안 아들 눈치 땜에 변변한 연애조차 못한 댄스에게 자문교수인 조나단과의 업무적 만남은 의외로 그녀의 아이들에게 적극적인 호의를 이끌어낸다. 특히 아들 웨스는 조나단과 많은 점에서 잘 통하면서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는데 주위에서 생각하는 남녀관계와 당사자들이 보는 관점은 많이 다르나보다. 상호 간 인간적인 호감은 개인사의 아픔에 발목 잡혀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하지 못해 그냥 아무 일 없었듯이 끝나고 마는데 내 맘이 많이 안쓰럽더라. 괜찮은 남자인데.... 언젠가 그녀의 인연이 보린 듯이 등장해 재혼으로 이어져 아이들에게도 아버지라는 존재를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기찬의 또 한 번 사랑은 가고~~~~

 

그밖에도 그녀와 아이들, 부모님, 친구들까지 가족 구성원들의 단란한 일상은 물 흐르듯이 행복감과 일상의 편안을 가져다주면서 이런 것이 가족이라는 끈끈한 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이지 좋았다. 비록 추리적 재미는 상당히 약하지만 디버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캐트린 댄스의 인간적인 매력을 캬라멜 마끼아또 처럼 생동감 있게 살려낸 깔끔함을 즐기면서 댄스 시리즈의 차기작 <XO>을 출간을 빌어본다. 디버에게 실망하기엔 그간 그에게 공들였던 내 진심이 아까워서라도 아직 이르다. 그래도 디버는 디버니까.

 

아!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인데 디버는 혹시 한국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불편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엣지>에서는 한국의 다방문화를 소개하면서 차 배달하면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다방 아가씨”라고 지칭한다고 언급해 놀라움과 찝찝함을 남기더니 이번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온라인 게임에서 한 미국인 소년과 가상커플로 결혼한 여학생의 국적을 한국으로 또 한 번 지칭하는데 이 여학생도 공부 못하는 존재로 언급된다. 이 모든 것이 한국 여성에 대한 의도적인 비하들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일 뿐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하나? 이상해!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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