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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추리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완전범죄라는 튼튼한 벽돌을 보기 좋게 깨 부시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범인이 누구냐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심증은 있되, 물증은 없어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는, 만약 지목한 대상이 범인이라면 그야말로 천재적인 발상과 트릭으로 완벽하게 무장하여 빈틈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 철옹성을 구축해 놓고 공권력의 무기력함을 가면 속에서 비웃고 있을게다. 세상은 그를 완전무결한 존재로 둔갑시켜 놓았고 추적자는 몇 번의 좌절 속에서도 끈질긴 집념과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관점으로 마침내 깨뜨리고 들어가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순간, 독자는 말할 수 없는 희열 속에 빠지고 만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이 그러한 케이스에 해당된다. 대단하다고 인정하고 싶은 추리소설의 수작이란 이런 것이다. 이 소설은 어느 추운 겨울 바닷가 바위에서 한 쌍의 남녀가 동사한 채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독극물을 마시고 나란히 情死(정사)한 것으로 추정,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어 종결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죽은 남자의 옷에서 열차에서 이용한 1인분 식사영수증이 발견되면서 누군가는 의혹을 품게 된다. 같이 열차를 타고 간 남녀가 왜 혼자서만 식사를 했을까?
얼핏 별일도 아닌 것처럼 비치던 사건에 다른 관점이 불을 지피는데다 출발역에서 이들이 같이 열차를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한 남녀가 있었다. 평소 각 플랫폼은 출발하는 열차와 정차 중인 열차가 한데 뒤섞여 다른 폼에서 해당열차를 볼 수 있는 것은 특정시간대의 단 4분뿐. 그 시간대외에는 다른 열차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4분간의 목격자는 우연이 아니면 작위의 냄새를 풍긴다.
미하라 경부는 당시 목격상황을 만든 야스다를 범인으로 점찍고 그의 알리바이를 집요하게 캐기 시작하지만 그는 사건 전후에 살인 장소와는 반대인 훗카이도로 출장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게다가 목격자까지 있다. 헛 다리를 짚은 것일까? 아니다 직감은 그를 범인으로 강력히 가리키고 있다. 동기만 추축할 수밖에 없는 기묘함 속에 정밀한 치밀함과 숨 막히는 진실공방이 허를 찌르고 이야기가 전개되면 사건은 실마리도 없이 미궁 속으로 깊숙이 빠져드니 세상에 완전범죄란 가능하단 말인가?
야스다의 용의주도함이 낳은 난공불락의 성, 그 성을 함락하려고 하는 미하라 경부하의 치열한 공성전은 제목 그대로 전혀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던 무수한 점들이 어느 지점, 어느 시점에 만나 하나의 선을 그으며 마침내 끝자락에 도달하게 되는데 진실에 가 닿기까지 비장의 카드인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을 퍼즐 짜 맞추듯 엮어 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발군이요, 명불허전이다. 그렇게 무릎을 일순 탁 치게 만드는 그런 소설, 오랜만에 추리소설다운 추리소설을 만나는 순간, 진실을 쫓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에는 그 어떠한 검은 의혹도 결코 비켜갈 수 없다는 결말에는 손가락이 절로 치켜세워진다. 그러니까 사소한 단서들을 토대로 트릭을 밝혀내는 천재적인 추리야말로 추리소설 본연의 쾌락이 아니겠는가? 진심으로 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