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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박성신 지음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30년>의 책을 펼치면 우선 갤럭시탭-텍스토어 디지털 콘덴츠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란 경력부터가 눈길을 끈다. 생소한 공모전인지라 인터넷으로도 검색해보지만 신인작가들의 등용문 중 한 루트 정도로만 인지했고 더 이상 상세한 파악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근데 이 책은 징하다. “자수성가한 주인공이 30년 만에 아버지를 찾았지만 그는 가짜 아버지였고, 또 다른 가족들 간에 숨겨진 진실들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 싶었다.”라는 것이 박성신 작가의 수상소감에서 그 느낌이 비롯된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가족을 원하는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주인공 민재는 고아원에서 자라 파양의 아픈 과정을 겪으며 누구보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자수성가 한 것처럼 보이는 그는 사실 갖가지 비리와 추악한 비행으로 성공이라는 열매를 거머쥔 위선적인 인물로 그의 열등감을 채워줄 마지막 퍼즐은 바로 가족이다. 아름다운 아내 혜리와 수빈이 있지만 부모의 부재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할 필수조건이 되어버렸다. 마침내 TV에 출연해서 헤어진 부모를 찾게 되고 30년 만에 만난 아버지 대도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만 민재에게는 가족 구성원의 결원을 충족하는데 만족한다.
이제 이 가족은 행복할 것이다. 아니 행복해야만 한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남부러울 것 없을 것처럼 보이던 가족에게도 보이지 않은 균열이 서서히 진행된다. 민재는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양심을 저버린 댓가로 협박받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사로 그들로부터 또 다른 위협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혜리 또한 민재의 친구이자 부하직원인 상우의 집착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들 수빈이 조차 아무 조건 없이 사랑으로만 키우기엔 출생의 의혹이 드러나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고름이 곪아 악취가 진동하지만 정작 냄새는 맡지 못하고 대화의 부재 속에 서로의 가슴에 불신의 싹을 크게 키우기만 한다.
정작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은 정작 민재의 아버지 대도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민재의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믿기지 않는 진실이다. 그는 30년 전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마 “드라이버 살인마”였던 것이다. 어려서 엄마의 사랑도 못 받고 외간남자로부터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그 남자를 살해 후 불륜남녀들만 표적삼아 드라이버로 살해하는 최악의 범죄자로 성장하게 되지만 세월이 흘러 공소시효 만료로 자유의 몸이 된다.
민재도 그랬지만 대도 또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살아생전 꼭 들어가고 싶은 구역이었다. 그 어떤 범죄자에도 가족은 반드시 소중하고 이루고 싶은 마지막 보루라는 소망을 상기시키며 서로의 필요에 의해 대도는 민재의 친 아버지로 위장 접근하여 한 가족이 된다. 모래성같이 위태위태한 이 가정은 예감대로 비극으로 침몰하지만 대도의 가족에 대한 간절한 집착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모두가 일터에서 매일 출근했다 퇴근하여 삶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곳에는 가족들이 있지만 급격한 현대화와 산업화 속에 전통적인 가치관이 변질되고 핵가족화가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에는 각 가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도 없고 실제로 관심도 없다. 가내 두루 평안 할까? 아니면 누군가는 폭력을 휘두르고 거기에 시달려 만신창이가 되고, 또 누군가는 불륜을 저지르고.... 그 어떤 추악한 위선과 악행 등이 가족들을 병들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민재의 바람대로 대도의 바람대로 외부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일이 우리 모두가 거부하기 힘든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해 파멸로만 치닫는 이들의 모습은 안타까움과 함께 산소 같은 가정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준 것 같다. 단지 챕터별로 이야기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해 단절되는 점이 눈에 상당히 거슬리기는 하지만 독자의 공감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은 이 소설에 대해 무난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 순간 통영의 여아 살해범이 문득 떠오른다. 그에게는 베트남 출신의 아내가 있고 세 딸이 있다. 저도 자식이 있으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면 울부짖는 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금수만도 못 한 그자에게 가족이란 어떠한 의미일지 그 내면의 심리가 궁금하다. 남의 가정을 파괴한 살인마를 아버지로 둔 세 딸들이 세상의 냉대와 비난 속에 헤쳐나아가야 할 가혹한 현실은 고달프다 못해 일생을 두고 떠나지 않을 악몽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런 자를 아버지로 둔 게 죄라면 죄라고 누군가는 단정 짓겠지만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은 나란히 달리는 열차 선로처럼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그 누가 대신 어루만져 달래 줄 것인가? 그래서 가족이라는 숙명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굴레이다. 마음대로 선택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슬프다. 민재의 가족과 통영 살해범의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모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