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 십자가 모중석 스릴러 클럽 31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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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온라인에서 개인정보를 너무 많이 풀어놓고 있습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요즘 대한민국은 폭염주의보에 열대야 현상으로 많은 분들이 밤잠을 설치고 계신다. 찌는 무더위를 싹 가시게 만들 특효약으로 블록버스터 무비나 스릴러 소설 한 편이면 추천하기에 족할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제프리 디버의 신작 <도로변 십자가>의 등장은 오른 손에는 수박 한 조각을 든 상태에서 왼손을 채워줄 비밀병기로 기대하게 하는데 디버의 인터뷰에서도 확인가능 하듯이 이번 소설은 CBI 수사관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2탄이자 사이버스페이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완결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메신저 등 사이버월드가 가진 어둠의 일면에 주목해 착안했다는 이번 사이버스페이스 3부작의 대미는 예상과 달리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벌어지는 표현의 자유와 절제된 책임에 대한 의무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익명성으로 보호받는 근거 없는 루머와 폭로, 그리고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는 악플들로 확대되고, 현실과 가상세계 간 불분명한 혼돈, 이 모든 것에 편승한 현시욕이 범죄동기임이 밝혀지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 현대인들은 많은 애정과 관심을 몰두하면서 정작 오프라인에서는 서투르고 메말라가는 인간관계의 책임에 새삼 통감하게 된다. 누구나 현실에서는 꿈꾸지 못했던 위선의 가면을 쓴 채, 뒤에 숨어 죄 없는 개구리에 돌을 던지고 절대적인 권력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통치력을 뽐내기도 하면서 콤플렉스를 보상받고 응석받이로 대량 육성하는 이상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초래할 심각한 후유증에 대한 경고와 신랄한 비판의 메시지를 도로변 십자가 킬러의 살인예고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이 소설은 3부작 중 가장 현실적인,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잠재적 위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말이다. 제프리 디버가 누구이던가? 그만의 천재적 플롯과 충격적 반전은 한여름 냉동고에서 고드름 씹어 먹는 것 같은 짜릿함과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의심 속에서 허를 찌르는 트랩으로 타 작가와는 차별화된 재미를 전달하는 완소작가인 것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떠나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소설들은 게임이라는 이름의 유희로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중독성이 디버 스타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처음으로 무패신화가 깨어지면서 디버 제국의 신화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에서 열렬한 추종자로서 많은 아쉬움과 일말의 하탈감 마저 느낀다.

 

캐트린 댄스는 자타공인 동작학 전문가이다. 상대방의 표정과 눈짓, 손짓을 비롯해서 의식적, 무의식적인 버릇과 습관 등에서 감춰진 의도와 속내를 캐치하여 범죄를 유추하는 것이 주특기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그가 상대해야 할 범인은 직접 대면 같은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사이버스페이스이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다. 소재와 주인공의 주특기가 상극을 이루는 대표적인 케이스라 특유의 색깔과 향기를 상실한 채 힘을 잃고 지지부진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못 찾겠다, 꾀꼬리 같은 숨바꼭질 속에 범죄의 결과만이 드러날 뿐 범인의 심리 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전형적인 디버 스타일에서 한참 이탈해버린다.

 

자신만의 주특기를 살릴 수 없는 캐트린 댄스에게 가상공간에 대한 무지는 전문가의 초빙을 필요로 하게 되고 강습 받는 과정의 묘사는 흡사 해리 보슈가 후배 키즈민 라이더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는 대목이 오버랩 되면서 댄스와 보슈의 닮은꼴을 확인하게 되어 살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두 사람은 아날로그 수사의 아이콘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범인에 대한 단서 포착과 검거과정도 들여다보면 과학적, 논리적 근거 대신 우연이라는 개연성과 맞물려 단단하다고 생각되었던 매듭이 어느 순간 느슨하게 풀려있음을 눈치 채게 되는데 솔직히 개운치가 않다.

 

또한 이 장르의 재미를 결정짓는 요소를 어둠이 가진 악마성과 가공할 파급효과, 특유의 스킬에 중점을 둔다면 이 역시 재미를 반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보여 진다. 3부작 중 전작들이 범인의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천재적인 장악력과 두뇌, 목적을 수행하는 강력한 스킬로 현실을 무시무시한 공포로 몰아넣는 혼돈까지 무엇 하나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던 밀도 높은 스토리와 현란한 스피드에서 압도적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물먹은 솜처럼 시종일관 무기력한 분위기가 팽배하고 심장의 박동 소리가 작다. 하다못해 1편의 악당 다니엘 펠 처럼 시종 악마 같은 심성에 몸서리치게 하는 등장 인물 조차 없으니 대체로 전작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어 넣었던 건 아닌지 안타까움마저 든다.

 

주인공의 주특기도 빛바래지고 악의 가공할 위력마저 상실하여 입체감 없이 모든 토끼들을 마구마구 놓쳐버린 아쉬움을 그나마 달래는 것은 캐트린 댄스와 그녀의 가족들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범인 다니엘 펠을 추적하다 안락사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던 수사요원 후안 밀라의 죽음을 두고 안락사를 시킨 용의자로 그녀의 어머니 이디 댄스가 지목되어 검거된다. 도로변 십자가 킬러 검거와 어머니의 무죄방면 해결이라는 양 극단의 갈림길에 놓인 댄스의 가혹한 처지는 결국 십자가 킬러 검거에 우선시 할 수밖에 없는 결단으로 이어지고 모녀간의 불편하고 섭섭한 오해로 맞물리면서 그녀의 고충은 점차 커져간다.

 

그녀의 미처 피지 못한 로맨스의 싹(?)도 아쉽기만 하다. 그동안 아들 눈치 땜에 변변한 연애조차 못한 댄스에게 자문교수인 조나단과의 업무적 만남은 의외로 그녀의 아이들에게 적극적인 호의를 이끌어낸다. 특히 아들 웨스는 조나단과 많은 점에서 잘 통하면서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는데 주위에서 생각하는 남녀관계와 당사자들이 보는 관점은 많이 다르나보다. 상호 간 인간적인 호감은 개인사의 아픔에 발목 잡혀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하지 못해 그냥 아무 일 없었듯이 끝나고 마는데 내 맘이 많이 안쓰럽더라. 괜찮은 남자인데.... 언젠가 그녀의 인연이 보린 듯이 등장해 재혼으로 이어져 아이들에게도 아버지라는 존재를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기찬의 또 한 번 사랑은 가고~~~~

 

그밖에도 그녀와 아이들, 부모님, 친구들까지 가족 구성원들의 단란한 일상은 물 흐르듯이 행복감과 일상의 편안을 가져다주면서 이런 것이 가족이라는 끈끈한 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이지 좋았다. 비록 추리적 재미는 상당히 약하지만 디버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캐트린 댄스의 인간적인 매력을 캬라멜 마끼아또 처럼 생동감 있게 살려낸 깔끔함을 즐기면서 댄스 시리즈의 차기작 <XO>을 출간을 빌어본다. 디버에게 실망하기엔 그간 그에게 공들였던 내 진심이 아까워서라도 아직 이르다. 그래도 디버는 디버니까.

 

!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인데 디버는 혹시 한국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불편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엣지>에서는 한국의 다방문화를 소개하면서 차 배달하면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다방 아가씨라고 지칭한다고 언급해 놀라움과 찝찝함을 남기더니 이번 <도로변 십자가>에서는 온라인 게임에서 한 미국인 소년과 가상커플로 결혼한 여학생의 국적을 한국으로 또 한 번 지칭하는데 이 여학생도 공부 못하는 존재로 언급된다. 이 모든 것이 한국 여성에 대한 의도적인 비하들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일 뿐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하나? 이상해!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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