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피해자가 어린이인 사건들은 늘 보슈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런 사건들은 그를 완전히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상처를 입혔다. 그 독이 묻은 탄알을 막을 만큼 두꺼운 방탄조끼는 없었다. 어린이 사건들은 이 세상이 잃어버린 빛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본문 중에서)

 

다른 책들에 밀려 한동안 손에서 놓아버렸던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찾아 읽었는데 그것이 <유골의 도시>이다. <로스트 라이트>나 <보이드 문>은 입질만 보일 뿐 해외 컨펌은 언제쯤이나 확정될지 기약이 없는 상태에서 우선 미처 읽지 못했던 나머지 작품들을 우선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인데 솔직히 독자평은 그다지 호의적인 것은 아닌 듯싶다. 평점이나 서평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어야할까? 무슨 영화나 책이든지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게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인데 말이다. 이번 소설은 치열한 심리전이나 고강도의 액션, 거대한 음모나 배후 같은 노른자를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잔잔한 드라마적 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어 심심한 것은 사실이다. 작은 소품 같은 느낌이랄까? 보슈의 내면에 더 치중하게 되는, 그렇다면 통속적이고 평범하게 비치는 점은 감안해야한다. 그래도 해리 보슈!

 

새해 첫날부터 자살사건 현장에 출동한 해리 보슈는 헐리웃 언덕에서 소년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다시 현장으로 간다. 보슈는 소년이 20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생전에 수 많은 육체적 학대를 받았음을 알게 되면서 사건해결을 위하여 다각도로 수사에 매진하게 된다. 하지만 오래 전 사건인데다 별다른 단서 없이 제보 전화에만 의존하게 되어 지지부진한 수사진행에 부딪치면서 자칫 다른 사건으로 방향을 돌리게 될 상황에 놓인다. 마침내 언덕근처에 살던 아동 성추행 전과경력의 용의자가 물망에 오르고 그를 만나 탐문 수사를 하고 돌아간 후 누군가의 정보유출로 언론에 의해 유력한 사건 용의자가 되어버린 그 남자는 수치심에 결국 자살하고야 만다. 경찰은 신속한 사건해결을 위해 그를 범인으로 지목, 언론에 발표하고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한 보슈에게 살해당한 소년의 가족사에 숨겨진 비밀과 진실이 밀려들면서 새로운 국면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을, 진정한 악은 세상에서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기껏해야 양손에 물이 새는 양동이를 하나씩 쥐고 절망의 어두운 시궁창 속을 허우적거리고 다니며 물을 퍼내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보슈가 생각하는 도시에서의 악의 존재와 그에 대항하여 승산 없는,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대결에서 자신의 직무와 본분에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을 결과물을 낳고자 하는 보슈정신을 이만큼 적나라하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보슈의 행적을 뒤쫓다보면 사회라는 거대한 장벽에 끊임없는 좌절과 분노, 연민과 동정을 표하게 되니 이 시리즈를 왜 계속 읽게 되는지에 대한 소소한 답변이 되고 있는데 이번에도 보슈는 하나의 사건 이면에는 더 많은 더 암담한 어둠의 기원을 보게 되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된다. 미처 꽃피지 못한 소년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불행한 가족사, 무고한 용의자를 희생양 삼아 공적에 이용하려하는 경찰이라는 무능한 관료조직, 그 와중에 개인적 잇속에 눈이 멀어 정보제공에 뒷거래한 개인과 썩어빠진 언론까지 사체를 두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이 사회는 보슈의 힘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시궁창이다. 게다가 보슈는 이성문제와 관련하여 불행한 사고마저 겪게 되니 이쯤하면 불행과 재앙과는 가까운 친구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먼, 평생을 업보로 여기고 살아야 함은 역시나 안타까운 맘이다.

 

그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에 달관해버렸다. 계속해서 경찰로 사는 이유가 거창한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가끔씩이라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그래서 낮에서 밤으로 전환되면 빛보다 어둠이 거리를 잠식하는 도시에서는 한 마리 코요테가 되어 어슬렁거리며 하이에나들을 처단하고 있다. 그는 동아줄을 잡고 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나 스스로가 코요테임을 자처하며 과감히 포기해 버리게 되니 잠깐 동안의 외도가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가 자못 궁금해진다. 그렇게 구성적 재미와는 별개로 코넬리의 필력과 그 속에 담긴 함축적 주제의식 만큼은 음미할수록 진국이라 중독되는 것이고 다음 편 <시인의 계곡>을 읽는 동안에 해당 출판사에서 속히 협의완료 짓고 국내에 해리 보슈라는 남자의 후속작을 공개하기 바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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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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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단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

 

기시 유스케는 그동안 한 번쯤 읽어봐야지 했던 작가 중 한사람이었고 4월중에 이 소설을 읽다가 갑작스럽게 발령이 나는 바람에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완독하게 되었다. 것도 신작 출간 소식이 아니었더라면 기억을 되살리기도 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시 유스케는 국내 사인회가 이상하게도 기억에 많이 남는데 내가 그의 사인회를 가본 적도 없지만 사인회가 개최소식이 들릴 때마다 어땠을지 궁금함이 꽈리를 튼다. 또 이 작가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극찬을 접할 때마다 도대체 어느 수준일지 역시 궁금함이 또 알을 낳던데 이번 입문작을 계기로 나머지 작품들도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소설은 실업자, 이혼녀, 퇴직자, 약물중독자 등 호주의 황무지 벙글벙글 레인지에 총 9명의 일본인이영문도 모른 채 모여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에 자신도 모르게 참여하게 되는데 게임을 포기하려면 자신이 죽어야하고,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게 된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에서 서바이벌 게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가 이 소설의 주요 줄기이다.

 

서바이벌 게임 형식이라 <배틀 로얄>이나 <인사이트 밀>이 반사적으로 연상된다, 관건은 게임 진행방식과 게임의 동기와 결말에서 차별성을 발견해야 할 터인데, 그 점은 확실히 판정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주인공 후지키 요시히로가 낯선 곳에서 눈을 뜨게 되는 장소가 하필이면 '진정한 호주'라고 불리며 서 호주에서도 아웃백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한 벙글벙글이라는 점이 이채롭긴 하다.

 

2000만년에 걸친 침식 작용으로 이루어진 벙글벙글은 오렌지색과 검은색 띠가 교차해 마치 벌집을 연상하게 한다고 한다. 이곳의 독특한 바위들은 해발 578m의 높이로 우뚝 서 있고 규모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감도 신비롭기만 하다. 거대한 벙글벙글의 협곡 안으로 들어서면 물웅덩이들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종려나무들은 아슬아슬하게 바위 절벽 틈을 뚫고 자라난다.  이 곳은 “남자의 자격”에서도 다녀간 적이 있는 명소인데 그때는 지명을 몰랐고 왜 이 곳을 소설의 무대로 정했는지 모르겠으나 이국적인 풍광에 갖가지 동, 식물들이 공존하는 환경이 지구가 아니 외계행성이나 고원무립의 공간으로 설정하기 적합하리라는 단순한 의도가 있었을거라 추측해본다, 아님 작가가 실제 여기를 여행 다녀왔을지도 모르겠고.

 

서바이벌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진행 방식을 설명 받고 일행은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품으로 호신용품, 식량, 도구, 정보 등 총 4가지 중 하나를 각자 선택하게 되는데 순간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와 효용가치 판단 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했을까 라는 상상과 함께 이들이 헤쳐 나갈 게임의 과정들을 지켜보면 극한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이 드러내는 사악한 욕망과 본성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단 한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잠시도 숨 돌릴 겨를 없는 처절함과 잔혹함을 광기와 공포와 스트레스로 실감나게 그려내기에 밤에 읽으면 더욱 공포스럽다는 혹자의 추천평이 결코 허언은 아니었다. 그렇게 미지의 공간에서 눈치작전을 펼치며 벌이는 살육전은 인간성의 말살로 이어지는데 사람고기를 탐닉하게 되어버리는 식신귀의 등장은 그래서 더욱 소름끼친다. 한 번 맛보면 계속 먹게 되는 그 맛에 외모마저 변해버리는 부작용은 천인공노할 만행이란 무엇인지 실감나게 한다. 그 와중에 나오는 불신과 의혹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 긴장을 더욱 증폭시켜버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것이 의문스럽다. 아이의 정체는 후지키의 짐작대로 일까? 게임의 주최자는 돈 많은 부자들의 저열한 호기심과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내기판을 조성하기 위한 일종의 스너프 무비였을까? 아니면 후지키의 꿈? 정신착란? 결말은 무엇이 정답인지 깃발을 들지 않고 여러 가지 가설을 공개한 채 미스터리하게 종결하고 만다. 그냥 게임이 보여준 가공할 전개만을 소설로 읽고 즐기라는 것인지 알 길 없는 작가의 의중은 모든 것인 혼돈인 세상 그 자체를 벙글벙글이라는 실제 장소를 빌어 꼬집고 싶었나보다. 결말에 대한 분분한 감상에도 초연한 듯싶기도 한데 확실히 기시 유스케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시하고 배열하는 데엔 탁월한 능력자인 것 같고 그 점은 또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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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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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손님이 신은 아니에요. 악마도 섞여있죠, 그걸 간파해내는 것도 우리가 할 일예요"

 

45.761871

143.803944

 

45.648055

149.850829

 

45.678738

157.788585

 

46.609755

144.745043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 생활 25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시리즈로 찾아왔다. 유가와 교수, 가가 형사를 잇는 뉴 히어로의 등장, 이름 하여 닛타 고스케 형사 시리즈이다. 그렇게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은 신선한 족적을 남기는 동시에 의미 있는 숨고르기가 되었을지 그의 팬이라면 궁금해 할 행보가 아닐까 싶다.

 

도쿄에서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첫 번째 피해자는 회사원, 두 번째 피해자는 주부, 세 번째 피해자는 고교 교사로 현장에는 범인이 남긴 기묘한 숫자 메시지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경찰은 메시지를 해독해내고 그 결과 차기 범행 장소로 도쿄의 최고급호텔 코르테시아도쿄로 밝혀지면서 네 번째 살인을 저지하기 위해 형사들을 위장 잠입시킨다. 하우스키퍼, 벨보이, 투숙객 등으로 각각 위장한 채 형사들은 잠입수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우리의 닛타 형사도 프런트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감시의 눈초리를 가동하게 된다. 이제 예고된 살인 날짜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범인의 정체는 무엇인지, 동기는 무엇인지, 범행 장소는 호텔의 어디쯤인지 예측할 수 없는 범인과의 두뇌싸움이 긴장의 끈을 점차 옥죄어 온다.

 

기존 시리즈와는 별개로 새로운 시리즈의 탄생이라고 하니 캐릭터가 우선 궁금하지 않을 수없다. 닛타 고스케는 경시청 내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명석한 두뇌로 남다른 수훈을 세울 만큼 인정받고 있는 전도유망한 형사이다. 소설 속에서도 드러나듯이 사소한 단초에서도 범인의 심리를 꿰뚫듯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가설을 만들어내는 기지와 발상의 전환이 주특기인데 프라이드가 강한만큼 오만하다고 비쳐질 수도 있는 질풍노도의 타입이다. 또한 이 소설에는 그를 조력하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여 사건해결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잔재미에 일조하고 있는데 노세 형사와 야마기시 나오미 호텔리어가 그들이다. 노세 형사는 어수룩한 외모의 중년형사지만 자신의 공훈 대신 닛타의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인간적인 형사로 특이한 성품만큼이나 두 형사의 환상적인 투톱 활약을 차기 시리즈에서 기대하게 한다. 야마기시 나오미는 프로페셔널한 직업정신으로 고객의 룰 북에 입각한 철저한 응대서비스로 어떠한 클레임에도 흔들림 없는 자세로 임하면서 호텔리어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멋진 여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제목이 "매스커레이드 호텔"일까? 그것은 호텔을 찾는 사람들은 손님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으며,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에 찾아온다는 나오미의 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면서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지만 어느 것이 진짜 본연의 얼굴인지 본인조차 헷갈릴 정도로 진실 자체를 잊고 산다는 것을 곰곰이 되씹어보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고객의 가면을 벗겨 범행을 막으려는 닛타 형사와 달리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호텔을 고객들의 가면무도회 장소로 변모시켜 즐길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시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이 호텔은 거대한 세상의 또 다른 축소판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고객의 신분으로 수시 드나드는 곳이라 말 못할 사연들이 감동도 주었다가 같이 공분하기도 하면서 못 말릴 사람들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살인사건 수사진행과는 별개의 재미를 안겨다준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닛타 형사와 나오미 간의 티격태격 트러블도 또 다른 보너스의 느낌이라 역시 재미있고 뻣뻣한 형사에서 호텔리어로 거듭나는 닛타의 모습은 더욱 재미있다.

 

다시 살인사건 수사로 돌아가 보자. 상단에 언급한 숫자 메세지는 범인이 의도하고자 하는 트릭이 감지된다. 이 숫자들의 조합에는 어떤 일정한 공식에 의해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데 그것의 비밀이나 그것을 풀어낸 경찰의 능력에는 생뚱맞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중트릭이 있음을 알게 되면 범인의 비상한 두뇌에 감탄하게 되고 그것은 마지막 반전으로까지 이어진다. 반전에 이르러 밝혀진 범인의 정체나 범행동기에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버리는 일련의 행동들. 다시 말해 그 당시에는 누가 생각해도 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조치였다고 생각한 것들이 누군가에는 씻을 수없는 악의라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됨을 알게 된다. 이래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란 어렵고도 무서운 일인 것이다. 하물며 서비스업에서라면 두 말해서 무엇하랴? 최상의 서비스가 무시무시한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는 설정, 인간의 집념이란 사소한 지점에서 출발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언제 빵 하고 터질지도 모를 위태로운 전개, 하지만 우리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전개나 트릭, 반전 등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작위와 우연의 남발 같은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보여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이 소설의 스타일이나 느낌이 무척이나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더 이상이 아닌, 기대하고 있는 만큼의 수준 설정에 거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이 정도라면 만족할 만하다. 그런만큼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근래 들어 정밀집약적인 추리를 지향하는 대신 사람들의 뒷 담화에 더욱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내가 그의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따뜻했고 결말은 훈훈하다. 그리고 멋지다 당신!  닛. 타. 고. 스.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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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ㅣ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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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읽었는지, 들었는지 아리송하게 출처를 알 수 없지만 '80%를 차지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 20%를 차지하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더 좋다.' 라는 말은 그만큼 글로벌 소설가로서의 위상 못지않게 그의 에세이는 독자적인 인기와 위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의 소설 속 세계관은 난해하다는, 그래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식자층을 대변하는 척도처럼 가늠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에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상 속의 소소하고 자글자글한 소재들을 담백하고 편하게 풀어내고 있어 일반 독자층에게도 어필될 만한 공동 환영구역인 것이다.

 

이번에 이야기할 에세이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에서도 특유의 위트 있는 제목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로 함께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가감 없는 순수한 딴지 걸기로 시작해서 끝내 마음을 자잘하게 파고드는 수다로 삶이 지향해야할 목표점 대신 삶에 대한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하는지에 귀결시켜버린다. 청춘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세월이 거둬들여야 하는 몫으로 간주하여 세월이 세월의 기능을 다함으로서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이 드는 게 딱히 서럽지 않다는 것이 하루키의 주장인 바, 그 점도 괜찮고 어쩔 수 없으니 굳이 개똥철학으로 인생을 논하지 않는다. 그냥 맘 편히 먹고 순리대로 살자는 그 말에 서른을 앞두고 청춘이 끝났다며 절망감에 꺼이꺼이 눈물 콧물 질질 짜던 그때 그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 즈음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달관된 마음가짐으로 이십대와의 고별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십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라는 뒤늦은 결과론도 상상해 본다.

 

지금 있는 것은 지금의 나이지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든 지금의 나와 잘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하루키의 청춘고별사는 그런 식으로 막연한 심적 상황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길지 않은, 결코 호소력이 짱인 문구가 아니더라도 제멋대로인 삶의 방식으로 적당히 애정하고 텅 빈 곳간을 채워놓아 삶을 포용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간절함을 넘어 조율된 화음으로 세월을 연주하는 거다. 제목인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쌍둥이 여자 친구를 갖고 싶은 하루키의 엉뚱 발랄한 발상을 함축적으로 집대성하고 있는데 쌍둥이 여자 친구가 생겼을 경우 현실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놀이기구를 탈 때나 데이트 약속 날짜 잡는 것까지 발생 가능한 여러 불편사항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진지한 가운데 실소도 자아낸다.

 

하지만 뭐 어쩔건대? 청춘 고별사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과 원칙 및 취향의 잣대에 따라 은밀하게 분열하고 증식하는 것이 그의 영원한 백일몽이다. 그렇게 삶에 결코 좌지우지되지 말고 뒤늦은 대처로 한탄하지 않으면서, 한 번쯤 가까이 다가가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게끔 하는 마력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에세이는 한 번에 탈탈 털어 읽을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생각 날 때마다 머리맡에 두고서 조금씩 읽으라는 추천사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팥빙수 맛이네. 이거 시원 달달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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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1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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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혼자 사는 여자 침실에 몰래 들어가 성 폭행하고 배를 갈라 자궁을 꺼냈던 잔혹한 엽기 살인마 '앤드루 캐프라'. 4명의 여자들을 같은 수법으로 살해했던 그는 다음번 희생자로 선택했던 캐서린 코델 박사에게 결국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 3년의 세월이 지난 후 보스턴에서는 또 다시 자궁이 없어진 채 살해된 여자들의 시체가 연이어 발견되는데 앤드루 캐프라의 솜씨를 재현해낸 것 같은 해부학적 솜씨와 지식을 가진 살인마를 세상은 "외과의사"라고 부른다. 이에 보스턴 경찰서의 강력반 형사 토마스 무어와 제인 리졸리는 캐프라의 마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캐서린 코델 박사를 이번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삼아 풀어가려하는데, 과연 살인마는 앤드루 캐프라의 부활인가? 아니면 모방범의 수법인 것인가?

 

"의사라는 경험은 다른 이의 가장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유리창과도 같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비극을 숱하게 보아왔고 위기에 처한 가족의 최선과 최악의 모습을 모두 목격했다. 의학적 훈련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안겨 준다." - 테스 게리첸 -

 

<외과의사>는 전직 의사출신이자 메디컬 스릴러의 여왕이라 불리는 테스 게리첸의 리졸리&아일스 시리즈의 1탄이다. 게다가 아 소설은 RHK의 국내 출간작 중 가장 많은 판매부수의 기록을 남겼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정확한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크나큰 인기와 호평을 얻은 작품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더군다나 메디컬 스릴러라는 장르는 스릴러라는 큰 뿌리 속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힘들었던 줄기인지라 강도 높은 표현수위와 문체와 더불어 전인미답의 설레임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소설 속 살인마 외과의사는 피가 가진 원시성과 육체의 해부에 지적 흥미와 쾌감을 느끼는 야만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소설 중간 중간 외과의사의 독백에 의한 시점을 빌려 기괴한 범죄 심리를 엿볼 수 있게 하는데 고대 아즈텍 문명의 희생제의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용, 시험관 속에 담긴 피를 보며 느끼는 변태적 성향, 자신의 롤 모델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 등을 통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살인동기로 변환되면서 대단히 소름끼치는 촉매제 역할을 충실히 재현해낸다.

 

분명히 외과의사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선 인물이다. 그가 선택한 희생자들을 하나같이 사냥감으로 간주하고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생포하고 살인의 유희를 펼친다는 점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 통제하고 있는 야만성이라는 최악의 본성을 우리 모두는 대신 관음적인 시선으로 목격하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희생자로서의 억눌린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여성들의 위축된 심리와 아픈 상처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서 남성 위주의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그녀들에게 얼마나 깊은 갈등과 고뇌를 내면깊이 무겁게 짊어져야 하는 것인지 절절한 고통으로 다가오게 하기도 한다.

 

무릇 약자인 여성에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인격체로서의 존중 대신 마구 난도질을 선물하는 외과의사에 의한 희생도 그렇거니와 늘 방어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여 형사 제인 리졸리에게서도 그러한 아픔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 가족들의 무관심과 차별 속에 성장했으며 경찰이 되고 나서는 동료들에게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따돌림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자연히 남성위주의 사회구조에 반감을 가지게 되면서 화장기없는 투박한 얼굴에 공격성향적인 성격까지 갖추고 있는데 내, 외적 갈등을 끊임없이 겪으면서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은 투쟁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를 보며 많은 여성 독자들이 공감하며 지지를 보내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희생자들을 보나 리졸리를 보나 현재를 살아가는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는 지금이 수난의 시대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같은 여성으로서 작가는 문제 제기와 함께 분노와 좌절, 공포를 토해내는데 시종일관 강력한 에너지가 소설 전반에 걸쳐 투영되면서 독자들을 책 속으로 붙들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결국 제인 리졸리라는 캐릭터에 있다. 비록 그녀가 처한 현실은 누구라도 동의하게 되는, 불합리하고 억압된 구조 속에 놓여있는 것은 분명하나 모든 원인을 주변 여건에 돌린다면 이 점에 대해서는 반박하게 된다. 자신보다 더 매력적인 여성에게 질투와 시기를 보내는 모습이라든지(사실 그 여성은 아무런 죄가 없다. 오히려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희생자일 뿐이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하며 치기어린 말과 행동으로 타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 만다. 오! 맙소사 이렇게 비호감적인 주인공이라니!

 

게다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리졸리보다 무어를 더 정감 가는 캐릭으로 설정해놓고 수사의 큰 흐름을 쥐고 있는 역할을 부여하여 사실상 주인공을 무어로 만들고 있는데 변변한 활약조차 없이 징계를 먹어 무관심 속에 방치되던 리졸리. 작가는 "아! 그래 내가 주인공인 너를 깜빡 잊고 있었구나. 미안해." 라고 하듯 갑자기 리졸리를 사건해결의 무대로 소환해낸다. 그것도 사무실에서 입 벌리고 자고 있다가 문득 깨어나 무어가 조사해 온 수사 자료에서 밥에 숟가락만 얹듯 단서를 포착해 범인을 검거하러 납시니 이렇게 어이없는 전개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너무 한 것 아닌가? 주인공에 대한 애정인지 무관심인지 종잡을 수 없는 작가의 의도가 비호감적인 캐릭과 허술한 전개를 낳으면서 급격한 하강국면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치명적인 약점이랄 수 있겠다.

 

물론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했던 점은 왠만큼 용인이 필요하겠다. 리졸리도 불평불만 대신 실력을 키워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성숙함을 보여주는 전개가 후속 시리즈에서 분명 보여줄 것이라 예상해본다. 또한 의사라는 과거경험을 되살려 생사를 넘나드는 의료현장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윤리와 의학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설계를 시작한 캐서린 코델의 앞날에 축복하고 싶다는 점에서도 소중한 갈채를 보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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