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단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

 

기시 유스케는 그동안 한 번쯤 읽어봐야지 했던 작가 중 한사람이었고 4월중에 이 소설을 읽다가 갑작스럽게 발령이 나는 바람에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완독하게 되었다. 것도 신작 출간 소식이 아니었더라면 기억을 되살리기도 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시 유스케는 국내 사인회가 이상하게도 기억에 많이 남는데 내가 그의 사인회를 가본 적도 없지만 사인회가 개최소식이 들릴 때마다 어땠을지 궁금함이 꽈리를 튼다. 또 이 작가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극찬을 접할 때마다 도대체 어느 수준일지 역시 궁금함이 또 알을 낳던데 이번 입문작을 계기로 나머지 작품들도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소설은 실업자, 이혼녀, 퇴직자, 약물중독자 등 호주의 황무지 벙글벙글 레인지에 총 9명의 일본인이영문도 모른 채 모여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에 자신도 모르게 참여하게 되는데 게임을 포기하려면 자신이 죽어야하고,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게 된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에서 서바이벌 게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가 이 소설의 주요 줄기이다.

 

서바이벌 게임 형식이라 <배틀 로얄>이나 <인사이트 밀>이 반사적으로 연상된다, 관건은 게임 진행방식과 게임의 동기와 결말에서 차별성을 발견해야 할 터인데, 그 점은 확실히 판정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주인공 후지키 요시히로가 낯선 곳에서 눈을 뜨게 되는 장소가 하필이면 '진정한 호주'라고 불리며 서 호주에서도 아웃백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한 벙글벙글이라는 점이 이채롭긴 하다.

 

2000만년에 걸친 침식 작용으로 이루어진 벙글벙글은 오렌지색과 검은색 띠가 교차해 마치 벌집을 연상하게 한다고 한다. 이곳의 독특한 바위들은 해발 578m의 높이로 우뚝 서 있고 규모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감도 신비롭기만 하다. 거대한 벙글벙글의 협곡 안으로 들어서면 물웅덩이들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종려나무들은 아슬아슬하게 바위 절벽 틈을 뚫고 자라난다 이 곳은 남자의 자격에서도 다녀간 적이 있는 명소인데 그때는 지명을 몰랐고 왜 이 곳을 소설의 무대로 정했는지 모르겠으나 이국적인 풍광에 갖가지 동, 식물들이 공존하는 환경이 지구가 아니 외계행성이나 고원무립의 공간으로 설정하기 적합하리라는 단순한 의도가 있었을거라 추측해본다, 아님 작가가 실제 여기를 여행 다녀왔을지도 모르겠고.

 

서바이벌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진행 방식을 설명 받고 일행은 서바이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품으로 호신용품, 식량, 도구, 정보 등 총 4가지 중 하나를 각자 선택하게 되는데 순간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와 효용가치 판단 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했을까 라는 상상과 함께 이들이 헤쳐 나갈 게임의 과정들을 지켜보면 극한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이 드러내는 사악한 욕망과 본성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단 한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잠시도 숨 돌릴 겨를 없는 처절함과 잔혹함을 광기와 공포와 스트레스로 실감나게 그려내기에 밤에 읽으면 더욱 공포스럽다는 혹자의 추천평이 결코 허언은 아니었다. 그렇게 미지의 공간에서 눈치작전을 펼치며 벌이는 살육전은 인간성의 말살로 이어지는데 사람고기를 탐닉하게 되어버리는 식신귀의 등장은 그래서 더욱 소름끼친다. 한 번 맛보면 계속 먹게 되는 그 맛에 외모마저 변해버리는 부작용은 천인공노할 만행이란 무엇인지 실감나게 한다. 그 와중에 나오는 불신과 의혹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 긴장을 더욱 증폭시켜버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것이 의문스럽다. 아이의 정체는 후지키의 짐작대로 일까? 게임의 주최자는 돈 많은 부자들의 저열한 호기심과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내기판을 조성하기 위한 일종의 스너프 무비였을까? 아니면 후지키의 꿈? 정신착란? 결말은 무엇이 정답인지 깃발을 들지 않고 여러 가지 가설을 공개한 채 미스터리하게 종결하고 만다. 그냥 게임이 보여준 가공할 전개만을 소설로 읽고 즐기라는 것인지 알 길 없는 작가의 의중은 모든 것인 혼돈인 세상 그 자체를 벙글벙글이라는 실제 장소를 빌어 꼬집고 싶었나보다. 결말에 대한 분분한 감상에도 초연한 듯싶기도 한데 확실히 기시 유스케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시하고 배열하는 데엔 탁월한 능력자인 것 같고 그 점은 또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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