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피해자가 어린이인 사건들은 늘 보슈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런 사건들은 그를 완전히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상처를 입혔다. 그 독이 묻은 탄알을 막을 만큼 두꺼운 방탄조끼는 없었다. 어린이 사건들은 이 세상이 잃어버린 빛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본문 중에서)

 

다른 책들에 밀려 한동안 손에서 놓아버렸던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찾아 읽었는데 그것이 <유골의 도시>이다. <로스트 라이트><보이드 문>은 입질만 보일 뿐 해외 컨펌은 언제쯤이나 확정될지 기약이 없는 상태에서 우선 미처 읽지 못했던 나머지 작품들을 우선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인데 솔직히 독자평은 그다지 호의적인 것은 아닌 듯싶다. 평점이나 서평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어야할까? 무슨 영화나 책이든지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게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인데 말이다. 이번 소설은 치열한 심리전이나 고강도의 액션, 거대한 음모나 배후 같은 노른자를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잔잔한 드라마적 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어 심심한 것은 사실이다. 작은 소품 같은 느낌이랄까? 보슈의 내면에 더 치중하게 되는, 그렇다면 통속적이고 평범하게 비치는 점은 감안해야한다. 그래도 해리 보슈!

 

새해 첫날부터 자살사건 현장에 출동한 해리 보슈는 헐리웃 언덕에서 소년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다시 현장으로 간다. 보슈는 소년이 20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생전에 수 많은 육체적 학대를 받았음을 알게 되면서 사건해결을 위하여 다각도로 수사에 매진하게 된다. 하지만 오래 전 사건인데다 별다른 단서 없이 제보 전화에만 의존하게 되어 지지부진한 수사진행에 부딪치면서 자칫 다른 사건으로 방향을 돌리게 될 상황에 놓인다. 마침내 언덕근처에 살던 아동 성추행 전과경력의 용의자가 물망에 오르고 그를 만나 탐문 수사를 하고 돌아간 후 누군가의 정보유출로 언론에 의해 유력한 사건 용의자가 되어버린 그 남자는 수치심에 결국 자살하고야 만다. 경찰은 신속한 사건해결을 위해 그를 범인으로 지목, 언론에 발표하고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한 보슈에게 살해당한 소년의 가족사에 숨겨진 비밀과 진실이 밀려들면서 새로운 국면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을, 진정한 악은 세상에서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기껏해야 양손에 물이 새는 양동이를 하나씩 쥐고 절망의 어두운 시궁창 속을 허우적거리고 다니며 물을 퍼내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보슈가 생각하는 도시에서의 악의 존재와 그에 대항하여 승산 없는,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대결에서 자신의 직무와 본분에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을 결과물을 낳고자 하는 보슈정신을 이만큼 적나라하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보슈의 행적을 뒤쫓다보면 사회라는 거대한 장벽에 끊임없는 좌절과 분노, 연민과 동정을 표하게 되니 이 시리즈를 왜 계속 읽게 되는지에 대한 소소한 답변이 되고 있는데 이번에도 보슈는 하나의 사건 이면에는 더 많은 더 암담한 어둠의 기원을 보게 되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된다. 미처 꽃피지 못한 소년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불행한 가족사, 무고한 용의자를 희생양 삼아 공적에 이용하려하는 경찰이라는 무능한 관료조직, 그 와중에 개인적 잇속에 눈이 멀어 정보제공에 뒷거래한 개인과 썩어빠진 언론까지 사체를 두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이 사회는 보슈의 힘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시궁창이다. 게다가 보슈는 이성문제와 관련하여 불행한 사고마저 겪게 되니 이쯤하면 불행과 재앙과는 가까운 친구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먼, 평생을 업보로 여기고 살아야 함은 역시나 안타까운 맘이다.

 

그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부조리에 달관해버렸다. 계속해서 경찰로 사는 이유가 거창한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가끔씩이라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그래서 낮에서 밤으로 전환되면 빛보다 어둠이 거리를 잠식하는 도시에서는 한 마리 코요테가 되어 어슬렁거리며 하이에나들을 처단하고 있다. 그는 동아줄을 잡고 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나 스스로가 코요테임을 자처하며 과감히 포기해 버리게 되니 잠깐 동안의 외도가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가 자못 궁금해진다. 그렇게 구성적 재미와는 별개로 코넬리의 필력과 그 속에 담긴 함축적 주제의식 만큼은 음미할수록 진국이라 중독되는 것이고 다음 편 <시인의 계곡>을 읽는 동안에 해당 출판사에서 속히 협의완료 짓고 국내에 해리 보슈라는 남자의 후속작을 공개하기 바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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