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읽었는지, 들었는지 아리송하게 출처를 알 수 없지만 '80%를 차지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 20%를 차지하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더 좋다.' 라는 말은 그만큼 글로벌 소설가로서의 위상 못지않게 그의 에세이는 독자적인 인기와 위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의 소설 속 세계관은 난해하다는, 그래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식자층을 대변하는 척도처럼 가늠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에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상 속의 소소하고 자글자글한 소재들을 담백하고 편하게 풀어내고 있어 일반 독자층에게도 어필될 만한 공동 환영구역인 것이다.

 

이번에 이야기할 에세이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에서도 특유의 위트 있는 제목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로 함께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가감 없는 순수한 딴지 걸기로 시작해서 끝내 마음을 자잘하게 파고드는 수다로 삶이 지향해야할 목표점 대신 삶에 대한 시선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하는지에 귀결시켜버린다. 청춘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세월이 거둬들여야 하는 몫으로 간주하여 세월이 세월의 기능을 다함으로서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이 드는 게 딱히 서럽지 않다는 것이 하루키의 주장인 바, 그 점도 괜찮고 어쩔 수 없으니 굳이 개똥철학으로 인생을 논하지 않는다. 그냥 맘 편히 먹고 순리대로 살자는 그 말에 서른을 앞두고 청춘이 끝났다며 절망감에 꺼이꺼이 눈물 콧물 질질 짜던 그때 그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그 즈음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달관된 마음가짐으로 이십대와의 고별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십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라는 뒤늦은 결과론도 상상해 본다.

 

지금 있는 것은 지금의 나이지 과거의 내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든 지금의 나와 잘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하루키의 청춘고별사는 그런 식으로 막연한 심적 상황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길지 않은, 결코 호소력이 짱인 문구가 아니더라도 제멋대로인 삶의 방식으로 적당히 애정하고 텅 빈 곳간을 채워놓아 삶을 포용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간절함을 넘어 조율된 화음으로 세월을 연주하는 거다. 제목인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쌍둥이 여자 친구를 갖고 싶은 하루키의 엉뚱 발랄한 발상을 함축적으로 집대성하고 있는데 쌍둥이 여자 친구가 생겼을 경우 현실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놀이기구를 탈 때나 데이트 약속 날짜 잡는 것까지 발생 가능한 여러 불편사항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진지한 가운데 실소도 자아낸다.

 

하지만 뭐 어쩔건대? 청춘 고별사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과 원칙 및 취향의 잣대에 따라 은밀하게 분열하고 증식하는 것이 그의 영원한 백일몽이다. 그렇게 삶에 결코 좌지우지되지 말고 뒤늦은 대처로 한탄하지 않으면서, 한 번쯤 가까이 다가가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게끔 하는 마력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에세이는 한 번에 탈탈 털어 읽을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생각 날 때마다 머리맡에 두고서 조금씩 읽으라는 추천사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팥빙수 맛이네. 이거 시원 달달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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