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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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이 기존의 관습과 가장 거리를 두고 있는 가장 큰 차별점은 미시시피 주의 인종비율에 있다. 원래 미시시피라고 하면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시작되는 유년기의 추억이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미시시피 버닝>으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게 되어 있으나, 미국의 51개 주 중 흑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주답게 부유한 백인과 억압받고 착취 받는 흑인이라는 갑을 관계를 뒤집은 역전현상이 꽤나 인상적이다.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숫적으로 열세다보니까 뒷감당할 자신 없으면 깜둥이라고 입을 놀리지 말아야한다. 이제까지 이런 동거관계는 없었다.

 

 

소설의 배경은 미국 미시시피 주의 작은 마을 샤봇이다. 평생 마을을 떠난 일 없는 백인 토박이 래리 오트에게는 모두가 쉬쉬 하지만 뒷담화 꺼리가 될 만한 치명적 비밀이자 약점이 있다. 20여 년 전 고등학생이었을 때 래리와 데이트 하러 나갔던 동급생 신디 워커가 실종되어버린 것. 혼자 돌아온 래리를 모든 사람들이 의심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었다. 알리바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부잣집 여대생 티나 러더포드가 실종되는데 또 다시 의심을 받는 래리는 자살시도같이 보이는 총상을 당한다. 누가 봐도 신디 실종사건과 티나 러더포드 사건은 동일한 선상에서 동일한 용의자로 지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면서 온갖 냉대와 멸시, 거의 투명인간이나 괴물 같은 존재로 취급받았던 고통의 세월들이 계속 힘들다.

 

 

래리에겐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사일러스 존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경찰이 된다. 사일러스는 흑인이다. 현재는 그나마 개선되었을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백인과 흑인이 친구가 되어 어울린다는 것은 금기였다. 마초였던 래리의 아버지, 누구에게도 의지 않고 억척같이 아들을 키웠던 사일러스의 엄마, 짧았던 우정은 그렇게 종결되고 각자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만나지를 못했는데 2건의 실종사건은 피해자들이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제 늦기 전에 사건의 종지부를 찍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 시급했다. 그렇게 인종 간 문제해결, 우정, 용서와 화해의 여정이 수묵화처럼 마음속으로 잔잔히 스며들어오는 동안 래리는 정말 어눌하지만 오해 때문에 받은 상처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마음가짐에서 분노와 일탈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진실이 좀 더 일찍 고백을 하였더라면 무거운 짐을 덜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혜택을 제때 누리지 못했던 래리가 너무 불쌍했다. 한 번 덧씌워진 오명은 오물이 되어 평생 씻기지 않는 악취가 되어 괴롭히겠지.

 

 

이제는 미스터리계열과 순수문학의 장르융합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워졌다. 두 사람의 심리를 번갈아 보여주는 동안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인내하고 용서할 수 있겠는가가 될 것이다. 대신 미스터리는 상당히 취약하다. 서스펜스라고 할 만한 꼭지점도 없이 거의 심증에 의해 단숨에 매듭을 풀어버렸다. 이 순간만을 위해 그 많은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했던가, 라는 불편한 의구심이 질타로 연결되어 버린다. ​​

 

​

그래서 느슨함과 안일함이 장르적 쾌감을 원천봉쇄 했단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블평은 여기까지이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드라마적 요소에 모든 정서적 공감이 물처럼 흐르며 관통한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졌던 한 남자가 마침내 구원을 받아 광명을 찾는다는 결말에 늦은 시간 책을 다 읽고 나면 잠자리에 누워 비로소 단꿈 꾸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것으로 보상받으라. 뭉클한 감동과 여운을 만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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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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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덥고 낯설고 머나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뭔가 잘못됐다’로 시작하는 장면은 아는 이 없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 발을 들인 작가의 긴장이 느껴지는 듯하다. 아, 이거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닐까 라는 후회가 살짝 엿보일 정도이니. 어쨌든 이 시리즈의 탄생에 앞서 과도기를 먼저 접한 경우를 돌이켜 보더라도 항상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사건은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었기에 반드시 통과의례의 하나로 사건일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은 점 충분히 이해한다. 대부분이 네스뵈에 본격적으로 열광한 시점이 <스노우맨>의 대중적 성공에 기인하고 있지 않은가? <박쥐>부터 읽게 되었다면 그렇게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국내독자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유명인사가 된 해리 홀레의 과거가 뒤늦게 궁금해졌을 뿐이니까.     

      

해리 홀레가 여기까지 날아오게 된 이유는 노르웨이의 잉게르 홀테르라는 아가씨가 교살된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파견된 것인데 명목상 사유는 그렇지만 왠지 골칫거리가 내쫓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그는 한 팀이 된 앤드류 켄싱턴과의 만남에서 술을 거절하기에 이때만큼은 밝고 건전한 서른두 살 청년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역시나다. 노르웨이에서 범죄 용의자를 동료와 함께 차로 추적하던 해리는 불행한 사고로 동료를 잃는다. 분명 과실이 있었지만 이슈가 될 것을 두려워한 상부의 입김인지 오히려 면책으로 유야무야 되었고 괴로웠던 해리가 술에 빠지게 된 사연은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생각보다 길었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는 더욱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겠지만. 덧붙여 애정전선 조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무엇 하나 순탄치 않게 전개되리란 걸 너무나 잘 알게 될 것이고. 그는 사랑에도 서툰 남자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또 하나의 단어는 바로 “애버리진”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흑인을 일컫는 단어로 이 나라의 과거사에서 오욕으로 점철된 인종적 역사라고 한다. 예전에 기시 유스케의 <크림슨의 미궁>에서 처음으로 “애버리진”를 알게 되었는데 그 때도 잔인한 숙명 같은 걸 피하지 못했다는 게 기억나서 이래저래 처연하고 슬프다. 우성과 열성으로 분류되는 야만적 박해 앞에서 과연 가해자와 피해자는 어떤 기준으로 정의되는 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사이코패스의 범죄로 치부할 것이냐, 아니면 그 이상을 넘어 특정한 의도가 있느냐는 동기 자체가 이방인의 시선에서 그려지기에 해리는 언제나 불완전한 왕따이자 청자로 소개되고 있다. 

 

박쥐가 상징하는 죽음뿐만 아니라 왈라, 무라, 버버가 등장하는 구전설화는 무수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고 더 나아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 정치, 문화, 관광을 아우르는 가이드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비밀을 풀기 위한 단계별 열쇠의 역할을 충실히, 그리고 차근차근 수행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물론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하기는 한다. 해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주도하고 있지는 않으니 답답해 보일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거칠고 덜 다듬어진 해리의 모습은 나름 풋풋하기는 하지만. 

 

또한 앤드류가 한 말처럼 인간의 마음속에 난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무턱대고 믿고 따라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의도와 동기를 암시하는 복선들이 곳곳에 깔려있어 환한 길을 의심하며 따라갔더니 끝내 복받쳐오는 감정에 눈물이 차오르던 해리를 보면서 코 끝이 찡하다. 원하지 않던 전개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였던 것이다. 아마도 옳다고 믿는 바를 관철하려했던 연쇄살인마의 선택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만 부추긴 것과 동일한 이치일 것이다. 옳고 그름은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할지. 그런 오판을 하도록 만든 정의라는 이름에게 벌주는 복수가 과연 망상일지 일생일대의 사명일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결국에는 복수를 통해 벌을 주고자 하던 살인마와의 대결과 추격은 단죄의 박력과 쾌감을 잘 살려냈다고 본다. 일반적인 마무리가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그림에서 흥분되어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들었는데 살인범이 가진 가장 큰 감정은 좌절감이라고 했다. 해리도 출발부터 삐걱거리더니 좌절하고 마는데 끝없이 추락하고 싶은 기분을 감각을 깨우는 체험을 통해 천사가 되고자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라는 희망이 있었으니. 그리하여 미완의 캐릭터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처음을 지켜보는 것도 당연한 즐거움이 된다.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사랑한다는 이들은 선택이 아니라 기쁨 두 배가 될 첫 경험을 곁눈질 하다 부디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충성! 해리 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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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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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게 마냥 즐거울 수가 없다. 전업 작가든 독자의 리뷰 등 필자와 관계없이 누구나 지겨울 때가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본인 스스로도 어떤 글이든 일 년 이상 계속 쓰면 질린다고 해놓고선 4년여에 걸쳐 특정 글을 연재해왔다는 것은 글쓰기가 즐거워야만 가능할 현상이겠다. 그런 차원에서 <에스콰이어>, <뉴요커>, <라이프>, <피플>, <뉴욕>, <롤링스톤>, <뉴욕타임스> 같은 잡지와 신문을 왕창 받아 맘에 드는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하여 일본어로 번역하였다는 그 작업이 거저먹기였다니 대놓고 노골적인 그 표현 방식이 솔직해서 좋다. 

 

 

거창한 포부 같은 건 없어도 80년대를 살아온 세대에게 추억을 상기하라고 앨범을 하나 보여줄 뿐이다. 맞다 그땐 그랬지 라는 회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다행히도 꿈 많은 10대 시절을 보냈던 덕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되 그것으로 족하다. 세대가 다르면 무작정 지루한 독서가 되었을 테니. 다행히 하루키는 추억이 망각되기 전에 차 한 잔 나누며 낭만을, 감성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하니 아니 좋을까? 그 시절 남학생들에겐 피비 케이츠, 브룩 쉴즈, 소피 마르소, 왕조현 브로마이드나 책받침 등이 필수아이템이었을 때 당대의 인기스타가 지금엔 어떤 위상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돌아보면 세월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는 당연한 생각도 새삼 든다.

 

 

그러면서 <모비딕>이나 <위대한 개츠비>같은 책들을 제치고 누적판매부수에서 금자탑을 이룩했다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야기에서는 어떤 박해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고전으로 남은 그 저력하며, 남자가 늙을 때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를 통계수치로 변환하여 어떡하면 쾌남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간단하지만 명쾌한 해답은 때론 상식이지만 또한 실천적 해법이라 귀 기울이게 된다. 예전 다른 에세이에서 헌욕 시스템을 창안한 것과 마찬가지로 성(性)에 관한한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는 하루키도 남자임을 상기시켜 주기에 그런 글들이 항상 재미나다.

 

 

 그리고 80년대 독신남 인기 순위에 있는 톰 크루즈와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스티븐 킹에 대한 언급은 특정작가를 향한 개인적 애정만큼이나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 기세가 새삼 경이롭다. 인기판도의 당시와 현재 사이에 등락이 없는 현존 스타를 이 책에서 찾아보면 사실상 두 사람밖에 없다. 그러므로 매력적인 독신남의 정의는 촌철살인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그 말이 유머러스해서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게다가 책에서 소개하는 <쿠조>와 <크리스틴>이라는 소설과 영화도 은근 보고 싶긴 하고. 

 

 

그 밖에 마이클 잭슨이나 브레이크 댄스, 실베스타 스탤론, 아놀도 슈왈츠네거 같이 익숙한 문화적 현상도 소개되고 있지만 무엇인지 전혀 감 안 잡히는 문화현상들은 한국에서 수용 가능했던 80년대 세계 대중문화의 경계가 어디쯤이었을지 가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뉴에이지 레이블인 <윈드햄 힐>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 없다. 그 장르의 매니아도 아니면서 나에겐 따뜻한 봄날같이 나른하고 황홀하며, 고풍스런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다만 일본 디즈니랜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간단한 소망 정도로만 별다른 느낌은 없는 듯하다. 유일하게 관심이 안 가는 파트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단순히 잡담거리로 치부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되돌아갈 길 없는 인생의 황금기를 잠시 타임 슬립하고 돌아온 착각 속에 흠뻑 빠져 행복한 포만감을 체험하였으면 된다. 그래, 글쓴이의 즐거움이 읽는 이의 즐거움으로 부메랑 되어 돌아오는 감성 팔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것은 결코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제대로 된 추억여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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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아시베 다쿠 지음, 김수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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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사건의 히어로가 되어볼 생각은 없나?”

어느 비 내리는 오후 백수 청년 다카미 료이치의 귀를 의심케 하는 이상한 제안이 들어온다.

제안을 한 남자는 거짓 살인 사건을 만들어 일부러 죄를 뒤집어쓰고 감방에 들어가라는 것. 나중에서야 사건이 날조되었다며 폭로하고 고발하는 논픽션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만든다는 ‘인공 누명 계획’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범죄를 만들어야 범인으로 체포될 수 있는 것이고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중요한 구조다.

 

그 역할을 맡기기에 다카미가 적임이라고 판단한 어떤 의도가 처음부터 숨어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있지만 정작 꿈에 다가서지 못한데다 과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한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대물림은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 역할을 승낙하도록 만들었다. 누명을 쓰기 위한 기상천외한 준비는 뜻밖에도 그의 기억에 전혀 없는 진짜 강간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혐의로 돌아온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임을 누누이 호소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DNA가 자신의 것이라는 결정적인 증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한 구세주가 있었으니 그 이름 모리에 슌사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다카미 료이치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 변호사이다. 이 사건의 배후에서 냄새가 난다. 그것도 스케일 큰 걸로 말이다. 그의 직감이 틀리지 않기를... 그리고 그들의 공판은 일본 관서지방의 첫 배심원 재판으로 결정되는데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될 시점에는 일본에서 배심원 제도는 시행되지 않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전에 잠깐 시행하다가 폐지된 이 제도의 부활이 의미하는 건 사법의 약점에 메스를 들이댈 위험과 그 밖의 더 큰 음모가 진행에 차질을 빚는다는 점이다. 우려의 목소리는 일본 민주주의의 후퇴를 민도의 수준으로 곡해하고 있다는 진실에 반대의 논리로 펼쳐진다.

 

그러자면 DNA를 둘러싼 어떤 트릭에 도달하는 순간 유죄도, 무죄도 어느 쪽에 서더라도 함정은 변함없다. 1차적으로 진범을 밝혀내어 누명을 벗을 것, 2차적으로 덫의 배후를 알아낼 것,마지막엔 어떤 결론이든 재판에 어떤 불순한 공작을 가하려는 시도에 멋지게 반격해야 하는 등 3번에 걸친 단계별 대응이 긴장의 끈을 조여들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상당히 공을 들였고 사전조사도 충실히 반영된 법정미스터리의 수작이다. 기대 했지만 좀 더 웃도는 수준이며, 유전학적 이론에 기댄 해법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웠던 점만큼은 걸림돌로 기억된다. 

 

그래도 만에 하나 결백한 의뢰인을 의심하는 일보다 어쩌다 배신당하는 것이 더 낫다는 확고한 모리에의 신념 앞에서 합리적인 의심이야말로 정의에 대한 증명이었다는 결말이 흡족한 작품이었던 것 같다. 덧붙여 민주주의를 상기해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곶감 빼먹듯이 낼름 훔쳐가는 도둑넘 처럼 호시탐탐 허를 찌르고 들어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국민의 권리는 소중하니까. 결국 포기하는 순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왜곡이 시작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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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송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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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중반의 어느 미래에는 건강이 최고의 가치이자 법이며 덕목인 시대를 살게 된다.

 

 

질병이 퇴치되고 위생과 청결을 위해 불결한 세균들이 있을지 모를 모든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캡슐과 튜브에 든 음식물 섭취 대신 자연에서 채취한 먹거리도 금지다. 면역 체계도 다르면 연애, 결혼까지 금지되다 보니 언뜻 보기에 목가적이고 건강한 사회일지도, 라는 예상은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건강독재사회이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독재자 빅브라더는 선의의 목적으로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를 뜻하며, 부정적 의미로는 정보 독점을 통해 권력자들이 행하는 사회 통제 수단을 말하는데 <어떤 소송>이 그리는 유토피아의 실상은 그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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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매일 규정대로 운동하고 매달 건강을 진단받는 일이 규범화된 사회, <어떤 소송>에서 개인적으로 수긍할 만한 일은 오로지 금연뿐이었다. 그치만 생물학 전공자 미아 홀에겐 남동생 모리츠가 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수감 생활을 하다 자살했던 아픔이 있었다. 하나 뿐인 동생을 잃은 슬픔은 컸으니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를 소홀했다는 죄목으로 청문회에 소환된다. 자, 뚱보는 죄악이자 폭식은 마약이다. 건강 소송 법규 위반일세. 필수적인 점검을 통한 공공 예방제도가 과연 사람을 위한 “방법”이라고 부른다면, 획일적인 국가 체제 뒤에 숨겨진 진실과 개인적 자유 의지에 대한 억압에 대한 반발은 반체제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그 공공성은 왜 체제에 맞서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인가?

 

 

 

미아가 벌이는 법정 투쟁은 법치국가를 맹신하던 보통국민들처럼 절대적 신뢰가 무너지면서 체제의 모순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녀와 대립의 각을 날카롭게 세우는 언론인 크라머는 체제의 대변인이고 변호사 로젠트레터는 개인을 변호하며 선택의 자유를 대변하는 쪽이다. 건강이라는 담보를 기치로 내걸며 “방법”을 공격하는 자들을 반동분자로 보는 획일적인 시스템에 대항하며 힘겨운 싸움을 할 때 낡고 불합리함에 패닉현상을 겪는다. 

 

 

 

그렇게 세상이 불합리한 이유는 질병, 불안 때문에 사회 안전 체계가 붕괴될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물리적 조건을 딛고 개인의 존엄을 넘어 탈 관념화하지 못한 채 유용성에 굴복해왔기 때문이다. 병이 날 권리, 즉 “병날권”은 사실적이고 일상적이며 규범적인 것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독단적 기준에 대항하여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자부심과 신뢰감에 출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게 또 타인에게 특정한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책 속에 있다. 

 

삶이란 하나의 제안이고

우리는 그걸 거부할 수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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