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웰즈의 죄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

 

“줄리언 웰즈의 죄”는 네 번째로 만나게 된 토머스 H. 쿡의 작품이다. 첫 만남이었던 “심문”은 전형적인 미스터리물이었고, 현재의 그가 가진 정체성을 확인시켜준 달까, 각인되어 있는 쿡 스타일로 안내했던 것은 “붉은 낙엽”이었고 다시 “채텀 스쿨 어페어”로 정서의 깊이를 더해갔다. 점점 더 진화하는 것 같고,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쿡의 작품세계. “줄리언 웰즈의 죄”는 이제껏 읽은 그의 작품 중 대중성 측면에서 가장 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단순히 그 점만으로 가치를 폄하할 수 없는 고유의 완성도가 있다.

 

 

해결되지 않는 범죄보다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는 이야기는 없다고 썼지만

의문이 풀리며 드러난 진실도 잊히지 않고 마음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발견한 진실도 그랬다.“ (P.14)

 

 

줄리언 웰즈의 작가적 재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한창 작가로서의 전성기를 누려야 할 50대에 돌연 호수 한가운데에서 팔목을 긋고 자살로 생을 고한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던 절친 필립은 줄리언의 책을 따라 과거로의 여정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하나 뿐인 진정한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던 필립은 황금 같은 청춘기와 작가라는 제2의 인생서막을 제대로 누리지도 않은 채 자살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헛된 기다림과 찰나의 고독을 감히 짐작조차 못했을 그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밝혀내기 위해서라도 과거행적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줄리언이 죽음 직전 보고 있었던 남미 아르헨티나 지도로 시작하여 반인륜적 역사를 다룬 친구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의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불행한 실종사건에서 단서를 잡는다. 책의 헌정사는 이랬다. “내가 지은 죄의 유일한 목격자인 필립에게 이 책을 밝힙니다.”라고. 그랬다. 아직 민주화의 봄이 도래하지 않았던 남미 대륙은 정국이 혼란했다. 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소위 “더러운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추악한 만행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은 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군사정권이 국가에 의한 테러, 조직적인 고문, 강제 실종, 정보 조작을 자행한 시기를 일컫는다. 학생·기자·페론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게릴라 및 동조자가 주 피해자이다. 약 1만명 정도의 몬토네로스와 인민혁명군의 게릴라가 실종됐고,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러운 전쟁은 콘도르 작전의 일부로 시작됐다. 이들 대부분은 억울하게 죄목을 뒤집어쓰고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러운 전쟁’ 말기인 1980년대 당시 줄리언과 필립은 방관자적 위치에 서 있었다. 30년전 아르헨티나의 젊은 여성 마리솔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고 그것의 진실이 수면 위로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과거와 현재는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며, 기억의 모호함에 가려진 선악의 근간마저 뒤흔들게 된다. 위태롭게 흔들린 양심은 줄리언에게 죄를 물을 만큼 무겁게 짓눌러왔으니 감당하지 못한 그를 끝내 자살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이유를 속히 알아내고 싶지만 중반까지 는 그날의 기억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히 마리솔의 실종에 어떤 책임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더러운 전쟁”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중 마리솔의 경우는 왜 그랬던가? 에 대한 해답은 후반부에 비로소 제시되기에 거기까지 도달하는 여정은 모호한 안개 정국이다. 그래서 후반부에서는 막힌 속을 뻥 뚫어주려고 작정한 것 마냥 상세히 설명해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마저 든다.

 

 

아이들은 장남삼아 개구리에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는 진짜 죽는다는 것. 젊은 용기를 의도하지 않는 결과로 호도한 대가는 컸었다. 설마 그러할까? 싶었는데 순진한 청춘은 이를 고이 곧대로 새겨듣고 실천한다. 세상을 너무나도 낭만적으로 생각한 것인지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의 이면에는 부디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랐던 기성세대의 무기력한 심술이 있는 줄 몰랐던 무지가 2차 책임이었다. 사내아이들의 장난 같은 ‘망토와 단검’ 이론에 넘어가 어리석은 수렁에 깊이 빠져들어간 후였으니, 선의의 피해자는 반인륜적 역사에 희생당하고 만 것이었다.

 

 

“관건은 적에게 던져줄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순진해야 한다는 거지.

사투르누스에게 잡아먹힌 자식들처럼 영문도 모른 채 잡아먹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다.“ 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래서 그런 술책을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라고 부르지.“ (p.318)

 

 

차라리 이 책의 제목으로 그대로 썼어도 좋았을 이 말, ‘사투르누스의 기습’. 사투르누스는 그리스에서는 크로노스라고 일컫는 고대 로마의 농경신으로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시간의 의미와 함께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는 인간성의 타락을 상징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다. 때론 사람들은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는 약점이나 치부 같은 게 있기 마련이다. 그 내면에는 죄의식도 함께 들어있어 꽁꽁 숨겨 왔던 그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빗장을 몰래 열고 세상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산다.

 

 

믿음에 일순간에 배신당해 파멸당한 사투르누스의 자식들처럼 줄리언의 삶도 산산조각 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도 아차 하는 순간, 송두리째 달라진 변화를 겪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순간이 ‘사투르누스의 기습’이 된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이처럼 섬뜩하게 경고하는 표현이 또 있을까? 서정적이며 시적인 문장과 잔인한 원죄 의식은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해서 완전한 이해까지는 못했어도 여타 작가들과 그 심오한 경지가 다르다는 건 인정하게 된다. 이번에도 감탄했다.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짬뽕도 같이 먹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짬짜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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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ㅣ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검은숲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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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무속신앙의 본산 소재지나 각종 전설, 기담 등의 의미가 깃든 곳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순례를 ‘트래블 미스터리’라는 형식으로 그려내는 방식도 거의 일본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일 것 같다. 총 113편, 누적 판매부수 1억 부, 120회 드라마화! 일본 추리소설의 살아 있는 거장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중 작가 스스로도 가장 정점에 이른 작품으로 일컫는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은 나라 현 요시노 군 내의 작은 촌락 “덴카와”의 신사와 “노가쿠”에 얽힌 이야기이다.

 

 

“노가쿠”는 예의 익살스런 흉내를 기본 소스로 한 가무극을 말하는데 가마쿠라시대 중엽에는 이미 노의 형태를 갖춘 가무극이 공연되고 있었다고 한다. 지붕이 있는 전용무대와 ‘노멘’이라는 가면을 사용하며, 각본 ·음악 ·연기 등도 독특한 양식을 사용하였다는 정도로 “노가쿠”가 소개되고 있는데 드물게나마 TV에서 “노가쿠” 공연을 접할 때가 있었다. 단조음에다 알 수 없는 소리의 연발, 기이한 춤사위, 험상궂은 가면 등이 “노가쿠”에 대한 단면적 인상일 정도 인데 “스모”와 더불어 일본인이 아님 이해하기에 난해한 문화예술의 한 형태인 것 같다.

 

 

줄거리는 바로 이 “노가쿠” 무대에서 공연을 시전 하던 배우 “미즈카미 가즈타카”가 무대 위에서 급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노가쿠”의 대가이자 그의 조부인 “가즈노리”가 실종된다. 또한, 도쿄 신주쿠의 고층 빌딩 앞에서 한 남자가 군중들 속에서 원인불명으로 급사하는 일이 벌어진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은 신주쿠에서 죽은 남자의 손에서 “노가쿠”의 주요 인사들만이 가진다는 “덴카와” 신사의 부적 '이스즈'가 발견되면서 3건의 죽음이 어떤 고리로 연계되어 있음을 직감하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아사미 미쓰히코”이다. UFO처럼 생긴 이 방울을 “노가쿠”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이 소지하고 있었다는 게 의혹의 발단인데 노가쿠의 유래를 취재하던 “아사미”가 사건의 배후를 본격적으로 추적한다.

 

 

서두에서 “아사미”가 “노가쿠”의 한 대사인 “사라졌도다.”는 결국 가문의 전통과 명예를 지키고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이거나 가문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알력이거나, 가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떡고물을 노린 탐욕이던지... 추리의 향방은 이 중에서 거의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정작 원인과 관점은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었다. 운명이 필연이 될 수밖에 없는 비극적 동기는 진지하면서 흥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았을 뿐만 아니라, 끝내 꽃망울을 피우지 못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시즈카 고젠” 사이의 안타까운 결말은 심금을 울리면서 인연과 순리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 꽃미남에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드는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 “아사미”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과 별개로 서른 셋 나이에 집안에서 주선하려는 혼담이 오가는 전개를 더 적극 추진해나가지 않았음은 살짝 아쉽다. 추리는 추리고, 본격적인 로맨스가 진행되면 상당히 훈훈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을 터인데 사건 때문에 될 듯 말 듯 하다 흐지부지 되는 걸 봐선 아직 더 스타일리시한 독신남으로 염문설만 쫙쫙 뿌리고 다니라는 의미인 듯하다. 부러운 녀석. 게다가 “아사미”의 모친은 아들 녀석이 마냥 철부지 없는 캐릭으로만 인식되나 보다. 혼담처로 얘기되고 있는 집안의 아가씨와 견주어 지나칠 정도로 아들을 지나칠 정도로 헐값 취급해서 마뜩 잖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쁘다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너무 하지 않나?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치카와 곤” 감독이 이 작품을 영화화했고 “하야미 모코미치”으로 주연으로 작년 TBS 골든타임 드라마로 방영되었다지. <절대 그이>에서의 꽃미남 이미지라면 “하야미”가 “아사미” 역을 맡았다는 건 궁극의 캐스팅일 듯싶은데. 일단 비주얼로는 싱크로율이 만장일치에 육박하니까. “아사미”의 이미지는 상상 속에서 그렇게 그려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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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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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접대과’... 라는 이름에 일단 불건전한 상상부터 먼저 하게 되지만(접대를 받아본 경험에 따르면) 실상은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진심을 다해 대접한다는 진정성을 듬뿍 담고 있다. 작명만큼은 센스만점이지만 일본 고치 현의 관광 발전을 위해 파격적이면서 창의적인 기획을 내놓고자 의욕적으로 출범한 조직이라서 유연함과는 거리가 먼, 뼛속부터 관료체제에 길들여져 온 터라 틀을 깨고 미지의 성과를 내려고 하니 처음부터 시행착오를 거듭하리란 건 예상 범위 내다.

 

 

첫 스타트로 접대과에서 기장 젊은 직원인 스물다섯 살 총각 “가케미즈 후미타카”는 타 지자체의 사례를 들어 ‘관광 홍보대사’ 의 도입을 제안한다. 현 출신의 유명 인사를 홍보대사로 임명해 현의 관광 상품을 홍보하게 하자는 취지인데 구체적인 방안으로 ‘홍보대사명함’의 쿠폰을 배포하도록 하여 현의 관광명소를 제한된 횟수와 기한 등을 정해 무료 이용케 하자는 거다. 그리하면 자연히 고치 현을 찾는 외지인들이 증가하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발상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실효성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한계에 부딪힌다.

 

 

이에 “가케미즈”는 돌파구로 홍보대사인 소설가 “요시카도”의 컨설팅을 적극 청하고. 이 소설가는 이제부터 ‘관광접대과’ 행정에 본격 개입을 하는데, 감 놔라, 배 놔라 식의 부당한 참견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타파한 신성한 발상이구나. 그러기 위해 고치 현의 가장 큰 밑천은 무엇일지 아는 것이 우선순위겠다. 그건 단순히 천혜의 자연이라는 몸뚱이 뿐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경제적 성장 도모를 위한 개발을 여건의 제약으로 실행하지 못한 탓에 결과적으로 친환경적인 자연과 그 속에서 레저스포츠를 즐길 최적의 입지환경이 강력한 차별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잠재적 강점을 기회로 삼고자 제시된 개선방안은 크게 2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 경직된 공무원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민간사원 채용. 그것도 좀 더 감성적이고 즐길 거리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용의가 있는 젊은 여성으로다. 두 번째, 20여년 시립동물원 이전과 현립동물원 신설이 논의되었던 당시, 신생동물원에 판다를 유치하자고 역설했다가 묵살당한 채, 사직하고 고치 현청을 쓸쓸히히 떠났던 “기요토”라는 남자를 찾으라는 것.

 

 

첫 번째 과제인 민간여성 사원으로 채용된 스물두 살 아가씨, “다키”와 “가케미즈”의 의기투합은 마치 봄날에 꽃들이 흐드러지듯 흐뭇하고 기분 좋은 시너지 효과가 잘 전달되어 읽는 내내 즐겁게 한다.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고 순진한 “가케미즈”가 놓치기 쉬운 꼼꼼하고 야무진 일처리는 “다키”의 장점으로 두 사람은 반대의 스타일인 것 같은데도 서로가 동료로서(아님 썸남썸녀로도) 참 잘 어울린다. 은은한 풋풋한 청춘 로맨스로도 적격이기에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비쳐질 수도 있는 스토리의 흐름에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일이 전부 능사는 아니란 말이지. 순간순간 둘은 의견 충돌도 있지만 결국은 화해의 손길로 관광입현을 실천해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고치 현이 실제 고향이자 홍보대사로 활동방안을 모색하던 작가 아리카와 히로가 고향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과 채찍질이 동시에 투영된 산물이겠다.

 

 

어느 곳이나 조직은 존재한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소설처럼 내내 비판과 구박이 이어지면서도 모르는 점은 배우고 잘못된 관행은 머릴 숙여서라도 개선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관광접대과’ 직원들의 땀과 열정은 현실의 관료시스템이 보고 느껴야만 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경직성, 거기에 일침을 가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강력한 설득력을 보이는 “요시카도”와 기성세대도 타파 못한 벽에 도전하려는 실험정신과 깨어있는 사고는 복지부동이 만연한 공직사회에 한바탕 훈풍을 불어 넣을만한 신선함이 돋보인다. 공공부문이 민간에서 수혈해야할 젊은 피란 이런 것이다.

 

 

그렇게나 인간미와 더불어 극렬한 갈등과 대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 같은 편안한 재미가 인상적이어서 좋은 이 소설은 아니나 다를까 2013년 영화로 제작되어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고 한다. “니시키도 료”가 “가케미즈”역을 맡았는데 항상 우중충한 그늘이 좀 보였던 그가 영화 포스터에서는 누구보다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하고 있어 의외다 싶기도 하다. 직접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원작의 따뜻한 감성을 충실히 재현해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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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킬러 덱스터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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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커다란 유리창 앞에 매달리듯 서 있는 남자들, 황홀경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이 믿기지 않는 요지경 앞에서 천하의 살인마도 완전 무장해제 당하는 곳.

​그들은 모처로 납치를 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었다.

​요람에 누워 꼼지락대는 핏덩이들을 보며 인간이라면

응당 느낄 감정에 심장이 뛰는 남자.

그는 덱스터 모건이다.

 

​

​어둠의 승객을 가이드 삼아 세상의 극악무도한 살인마들을 살인해온

살인기계로 살아왔던 그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 앞에서 사악한 본능을 흘려보내야 할 순간이

닥쳐오자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딸의 이름은 “릴리 앤”. 그도 드디어 딸 바보가 되어버렸다.

어둠 속의 덱스터를 과거에 묻고 살인마로 살아가기를 거부한 채,

딸이 있는 밝고 아름다운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

하지만 세상은 난폭한 피와 대혼란이라는 뒤틀린 길을 눈앞에 펼쳐놓고

검은 유혹의 손길을 내밀며 어서 오라고 속삭인다.

실종된 소녀의 방에서 피분수가 난무하자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상상한다. 납치냐 가출이냐...

혈흔 분석가인 덱스터 모건 경사와 여동생 데보라는

이것이 카니발(식인)이라는 경악할 범죄임을 밝혀낸다.

식인을 위해 치과에서 뱀파이어처럼 송곳니로 개조한 진료기록을 찾아낸

두 사람이 찾아간 악의 본거지.

 

​

여기서 덱스터 모건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모종의 밀약 같은 관계를 발견하는데

스톡홀름 신드롬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그 내면의 심리 속에는 살아온 시간이 그랬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이 가슴 한 곳을 저릿하게 하는 슬픈 소리가 있었다. ​

자존감이란 것은 왜 이다지도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도구로 바쳐야만 했을까?

 

​

그러자 식인 뱀파이어 무리들은 계획적이었고 잔악했다.

살인이 멈추지 않고 희생양이 늘어날수록 탐욕도 늘고 신의 뜻도

점점 더 거스르게 되지만 이 모든 것은 늘 자기만의 고독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될 사연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부적응이 적극 부채질해왔기 때문에 벌어진 모순이다.

 

​

 

그러는 순간마다 어둠을 직면하게 된 덱스터는 살인이라는 본능 앞에서

흔들리고 또 고민했다.

​아빠라는 대명제 앞에서 빛과 어둠의 양 갈래 길에서 전진도, 후진도 없는

자가당착의 상황은 왜 달콤한 킬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준다.

달라져야만 한다는 책임과 의무감 앞에서 과감히 실력 발휘를 못한

덱스터 모건이 끔찍할 정도로 수줍어보였다.

 

 

이런 남자를 두고 그 어느 누가 희대의 살인마라고 진정

몸서리치겠는가? 하지만 결정적 위기를 예상치 못한

돌파구로 해결한 점은 쓸쓸하지만 애틋한 부성애로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

따라서 자신과 인간을 분리해왔던 덱스터가 생경한 경험을 통해 점차 피가 통하는

착한 살인마로 변신하는 과정들은 낯설면서도 멋진 아이러니로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이자 생생한 감정이입으로 지금보다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될 남자,

덱스터 모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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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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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이라고? 천만에. 복수는 사고하는 인간의 반사작용이야.

행동과 일관성의 복잡한 혼합물로,

지금까지 인간 외의 다른 종은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복수의 실행은 그 자체로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가장 복수심이 넘치는 사람만이 살아남았지.

복수 아니면 죽음. 눈에는 눈,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서 불타거나 최소한 교수대에 매달린다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지.​​

​

데뷔작 <박쥐>는 분량이 적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월하게 진도가 나갔는데 <네메시스>는 제법 두툼하다. 전작인 <레드 브레스트>와 후속작 <데빌스 스타>로 이어지는 <오슬로 3부작>에는 엘렌 옐텐 사건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해리의 신경을 쓰이게 하면서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는 중이다. 그 건을 수사하기에 앞서 선결과제가 해리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부터가 재치 있다. 우연히 사건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더니 사실은 오슬로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을 해리가 비디오로 감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깜빡 속 았다 싶다가도 그 비디오에는 복선이 교묘하게 들어있어 후반부에 이르러 진실을 알고 나면 분명히 페이지를 앞으로 다시 넘기게 된다. 무심히 읽었다가는 실마리를 놓칠 수도 있으리라.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강도는 철두철미한 준비로 현금인출기의 돈을 꺼내 시간 내에 배낭에 담으라고 은행 여직원을 위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지 주어진 시간에서 6초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은 은행 여직원을 총으로 살해하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시가 급하게 현장을 떠났어야 할 강도가 그깟 6초 때문에 불필요한 살인을 저지르다니... 보란 듯이 저지른 살인은 마치 본보기를 삼기 위한 즉결처형 같다. 분명한 목격자는 없다. 다만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해리와 동료 베아테 렌은 강도와 은행 여직원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는 점에 주목한다. 강도가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 것 같기도 한데.... 아는 사이였을까?

​

그런데 은행 강도사건을 수사하던 해리는 6개월 동안을 알고 지낸 전 여친 안나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현장을 다녀갔던 용의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다. 아직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니 양손에 뜨거운 감자를 쥔 것 마냥 공식적으로는 은행 강도사건을 수사하고 몰래 몰래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안나 살인사건을 병행하여 수사한다. 한 사건 해결에도 벅차건만 동시에 두 사건을 수사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해리는 결단을 내린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고 또 누군가와는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거래를 시작한다. 그 와중에 쫓겨 다니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헛다리 짚기도 하면서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의도로 정밀하게 안배된ㅡ 복수의 덫에 빠진다. ​

​

​그러면서 인간이 복수를 하는 진짜 이유가 사랑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사랑이 소통을 못하면 복수를 낳고 그 복수마저 실천하지 못한 이는 눈물을 머금고 용서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면 어떤 이는 뒤늦게 자신만의 해결방식으로 속죄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베아테 렌이 한 선택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었기에 복수라는 동기를 가지고 단죄가 어느 선에서 가능한지를 고민하게 한 대목이다. 안타깝지만 총을 내려놓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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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복합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을 끝장내기 위한 단서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재미를 증폭시키는데 시리즈 중 추리적 능력이 가장 극대화되지 않았나 싶다. 육체를 학대하는 해리의 악취미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도 하지만 보편적 물증에서 트릭을 찾아내는 솜씨는 경탄스럽다. 특히 편의점에서 용의자가 시도했던 그 트릭은 해리의 입으로 설명되기도 전에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나를 머쓱하게 했다.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그런 꼼수가 가능할 줄이야.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일이 지금까지 무수한 추리소설들에서 과연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이채로웠다고 본다.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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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애물은 모두 제거되었다. 시리즈의 처음부터 전작까지 내내 호기심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던 구미호 사냥이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고 하니 어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급해진다. 그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 깔딱 고개에서 순간순간 숨이 차다가도 극적으로 다시 힘을 내어 넘어가도록 만드는 그 강약조절이 이번에도 신통했다. 더구나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홍콩, 콩고 등 각 대륙을 넘나들었던 해리가 다음에는 북미대륙에도 갈 일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덧붙이자면 20세기에 한국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노르웨이의 스타가 A-HA였다면 한 세기가 바뀌어 21세기에는 요 네스뵈가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대중적 스타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별다른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노르웨이와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그가 가끔씩 경이로워 보인다. 미국 중심으로 치우친 외국 대중문화 선호도의 틀을 깨는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이자 첨병 역할을 수행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고집스런 존재감이 해리 홀레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해리 홀레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배우가 과연 잘 어울릴까 라는 생각도 요즘 자주 해 본다. 방금 떠오른 적임자는 휴 로리, 폴 베타니, 아베 히로시 세 사람이다. 192cm의 장신에 여윈 몸매라면 대체로 얼굴은 가급적말상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상상 조차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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