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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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이라고? 천만에. 복수는 사고하는 인간의 반사작용이야.

행동과 일관성의 복잡한 혼합물로,

지금까지 인간 외의 다른 종은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복수의 실행은 그 자체로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가장 복수심이 넘치는 사람만이 살아남았지.

복수 아니면 죽음. 눈에는 눈,

죄를 지은 자는 지옥에서 불타거나 최소한 교수대에 매달린다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지.

데뷔작 <박쥐>는 분량이 적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월하게 진도가 나갔는데 <네메시스>는 제법 두툼하다. 전작인 <레드 브레스트>와 후속작 <데빌스 스타>로 이어지는 <오슬로 3부작>에는 엘렌 옐텐 사건이 숨은 그림 찾기처럼 해리의 신경을 쓰이게 하면서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는 중이다. 그 건을 수사하기에 앞서 선결과제가 해리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부터가 재치 있다. 우연히 사건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더니 사실은 오슬로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을 해리가 비디오로 감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깜빡 속 았다 싶다가도 그 비디오에는 복선이 교묘하게 들어있어 후반부에 이르러 진실을 알고 나면 분명히 페이지를 앞으로 다시 넘기게 된다. 무심히 읽었다가는 실마리를 놓칠 수도 있으리라.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강도는 철두철미한 준비로 현금인출기의 돈을 꺼내 시간 내에 배낭에 담으라고 은행 여직원을 위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지 주어진 시간에서 6초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은 은행 여직원을 총으로 살해하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시가 급하게 현장을 떠났어야 할 강도가 그깟 6초 때문에 불필요한 살인을 저지르다니... 보란 듯이 저지른 살인은 마치 본보기를 삼기 위한 즉결처형 같다. 분명한 목격자는 없다. 다만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던 해리와 동료 베아테 렌은 강도와 은행 여직원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는 점에 주목한다. 강도가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 것 같기도 한데.... 아는 사이였을까?

그런데 은행 강도사건을 수사하던 해리는 6개월 동안을 알고 지낸 전 여친 안나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현장을 다녀갔던 용의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다. 아직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니 양손에 뜨거운 감자를 쥔 것 마냥 공식적으로는 은행 강도사건을 수사하고 몰래 몰래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안나 살인사건을 병행하여 수사한다. 한 사건 해결에도 벅차건만 동시에 두 사건을 수사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해리는 결단을 내린다. 누군가의 조력을 받고 또 누군가와는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거래를 시작한다. 그 와중에 쫓겨 다니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헛다리 짚기도 하면서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려는 의도로 정밀하게 안배된ㅡ 복수의 덫에 빠진다.

그러면서 인간이 복수를 하는 진짜 이유가 사랑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사랑이 소통을 못하면 복수를 낳고 그 복수마저 실천하지 못한 이는 눈물을 머금고 용서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면 어떤 이는 뒤늦게 자신만의 해결방식으로 속죄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베아테 렌이 한 선택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었기에 복수라는 동기를 가지고 단죄가 어느 선에서 가능한지를 고민하게 한 대목이다. 안타깝지만 총을 내려놓을 수밖에

.

또한 복합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을 끝장내기 위한 단서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재미를 증폭시키는데 시리즈 중 추리적 능력이 가장 극대화되지 않았나 싶다. 육체를 학대하는 해리의 악취미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도 하지만 보편적 물증에서 트릭을 찾아내는 솜씨는 경탄스럽다. 특히 편의점에서 용의자가 시도했던 그 트릭은 해리의 입으로 설명되기도 전에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나를 머쓱하게 했다.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그런 꼼수가 가능할 줄이야.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일이 지금까지 무수한 추리소설들에서 과연 한번도 시도된 적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이채로웠다고 본다.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그렇게 장애물은 모두 제거되었다. 시리즈의 처음부터 전작까지 내내 호기심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던 구미호 사냥이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고 하니 어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급해진다. 그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 깔딱 고개에서 순간순간 숨이 차다가도 극적으로 다시 힘을 내어 넘어가도록 만드는 그 강약조절이 이번에도 신통했다. 더구나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홍콩, 콩고 등 각 대륙을 넘나들었던 해리가 다음에는 북미대륙에도 갈 일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덧붙이자면 20세기에 한국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노르웨이의 스타가 A-HA였다면 한 세기가 바뀌어 21세기에는 요 네스뵈가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대중적 스타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별다른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노르웨이와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그가 가끔씩 경이로워 보인다. 미국 중심으로 치우친 외국 대중문화 선호도의 틀을 깨는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이자 첨병 역할을 수행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고집스런 존재감이 해리 홀레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해리 홀레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배우가 과연 잘 어울릴까 라는 생각도 요즘 자주 해 본다. 방금 떠오른 적임자는 휴 로리, 폴 베타니, 아베 히로시 세 사람이다. 192cm의 장신에 여윈 몸매라면 대체로 얼굴은 가급적말상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상상 조차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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