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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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김영하 작가의 신간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착각이란 걸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10여 년 전에 출간된 적 있는 이 여행에세이는 새로운 제목에 정장과 사진 등을 추가해서 새롭게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신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했다. 국립예술대학의 교수, 소설가,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한 여자의 남편이 그를 대변하는 직함이라고 해야겠지. 모든 게 넉넉하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일간신문에 장편 연재 제의로 받아놓은 상태라 영혼이 탈탈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내는 말한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일부는 내려놓기로 한다. 그러던 차에 방송국에서 새로운 여행 다큐를 만들려고 하니 함께 다녀오지 않겠느냐는 솔깃한 유혹이 들어온다. 그런데 김영하 작가는 정말 세계를 구석구석 여행한 게 맞나 보다. 어지간한 나라는 다 다녀왔음. 그럼 어디 갈래라고 묻길래 책 제목처럼 시칠리아를 언급했다지.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사실 시칠리아하면 마피아의 고향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서 나도 영화 <대부> 그리고 영화 <시네마천국>이 잇달아 연상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곳에 대한 로망이 미리 생겨버렸다.

 

 

그러나 환상은 점차 산산조각 난다. 무작정 파라다이스는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정이 힘들어 보였다. 철도파업으로 열차지연 또는 취소는 예사고 영어가 통하지 않는 역무원의 무성의한 안내 등 김영하 작가의 아내 분은 이 같은 불친절함에 엄청 폭발했나보다. 우여곡절 끝에 반도의 끝까지 열차로 갔다가 다시 여객선에 열차를 싣고 메시나 해협을 건너 마침내 시칠리아에 열차가 내리기까지의 여정은 읽는 내가 고되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바이크로 시칠리아 한 바퀴 도는 투어도 꽤나 낭만적이고 오전 늦게 오픈해서 점심 느긋하게 먹은 뒤 좀 쉬었다가 일찍 마치는 시칠리아식 일상도 여유가 있어 보여 좋다. 시간에 쫓겨 허겁지게 움직이는 우리들 일상과는 시계 초침부터가 다른 듯하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낯선 이방인을 알음알음 챙길 줄 아는 속정도 우리네랑 닮은 듯 한데다 파스타 요리법은 읽으면서 배꼽시계가 절로 알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 유럽과 이슬람권의 문명이 복합적으로 산재해 있는 유적들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한 자산들이다. 비록 아직까진 본토의 로마베네치아, 밀라노 등에 비하면 덜 알려지고 덜 북적대지만 진짜 이탈리아의 참맛이 이곳 시칠리아있다고 하니 아일랜드와 더불어 떠나고 싶은 유럽의 섬들이다. 더불어 이 당시 방송프로그램은 검색해 보면 간간이 나와 있는 듯 해서 활자로만 접한 시칠리아의 풍광들을 영상으로 재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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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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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얼굴의 열여섯 살 소년 선윤재가 앓고 있다는 감정 표현 불능증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본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아몬드라 불리는 뇌 편도체가 작아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지. 즐거움이든, 공포든, 분노든, 슬픔이든 간에. 그래서 일부러 아몬드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했으며, 엄마는 윤재에게 상황별로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주입식 교육까지 한다. 자연스레 나오는 게 아니라 로봇처럼 암기해야 했으니 만만치 않은 일이었겠다.

 

 

겉보기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니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무탈하게 자라만 준다면 어른이 되어 절로 변하지 않을까, 반복학습의 효과가. 그런데 열여섯 번째 생일이자 크리스마스때 가족끼리 외출하였다가 묻지 마 살인에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의식불명 상태가 된다. 한창 가족이라는 보금자리에서 둥지 틀어야 할 소년 선재가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눈앞에서 가족이 험한 꼴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침착했다는 입소문은 자칫하면 윤재를 괴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감정 표현 불능증과 싸이코패스를 동일시하면 안 되지만 범죄자들 뇌 크기와 이상 유무설등과 맞물리면 세상의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기 딱 좋은 형국이니까 말이다. 다행히도 잠시 고난이 있었으나 슬기롭게 꿋꿋하게 잘 버텨내 다행이다,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좋은 어른이 가까이에 있었으며, 윤재와 성격이 정 반대인 친구들도 가까이에 두었다. 우정과 사랑이라는 별개의 형태는 그 시절의 십대에게 어울릴 만한 눈부심이자 설레임이 아니었을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린 잘 알기에 꾸준한 관심과 감정공유를 시도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그제서야 감정이라는 생물이 비로소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활짝 피우게 만든다. 십대 시절의 통과의례 같은 정석 같은 설정이 재미를 살짝 반감시키기는 하나 약간의 판타지와 현실이 결합된 마무리였다는 생각이다. 온기가 있어 따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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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의 윤무곡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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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나카야마 시치리의 시리즈물들 중에선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가 가장 괜찮다는 반응들이다. 그러니 덩달아 읽어나갈 수밖에. 물론 나 또한 선호하는 시리즈임에는 분명하다. 네 번째 작품인 <악덕의 윤무곡>은 전작인 <은수의 레퀴엠>미코시바가 소년원 시절 교도관이자 은사였던 이나미의 변호를 다루었다면 이번엔 자신의 어머니를 변호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시체배달부를 가족으로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미코시바의 가족들은 사회와 이웃들부터 몰매를 맞게 되면서 풍비박산 났었던. 특히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마저 해야만 했고,

 

 

이후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지내면서 미코시마와 어머니, 여동생은 서로 연락을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재혼한 어머니가 남편을 자살로 위장해 살인했다는 누명을 썼다며 변호인으로 의뢰를 하러 온 것이다. 미코시바와 여동생은 오래만에 만났지만 이들 사이엔 더 이상 가족이라는 혈연관계가 무의미했다. 아무도 시체배달부의 어머니를 변호하려는 이가 없었고 차마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여기로 돌려야했던 여동생은 오빠라는 호칭 대신 당신이 우리 가족을 망쳤다며 힐난하기에 바쁘고 미코시바는 우린 남남이니 변호사로 선임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양자택일만 하라며 냉정하게 자른다.

 

 

나중에 구치소로 어머니를 면회 간 미코시바는 거기서도 감정을 배제한 채, 정말 남남처럼 대하며 기계적이고 사무적으로만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모자지간의 일말의 정이라도 내비치려다 묵살당하니 읽는 내내 불편하고 싸했다. 미코시바는 참 독종 중의 독종이구나 싶더라는. 사실 서두에서 보여주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과거와 현재의 죽음 모두에 크나큰 반전이랄 건 없던 것 같다.

 

 

그랬을 것 같더라니. 미코시바가 어머니와 여동생의 과거행적을 조사하는 괴정에서도 너무 담담해서 지금까지 맡았던 사건의 변호와 차별점 마저 못 느낄 정도였다. 법정에서의 뒤집기 한 판, 그마저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치트 키 한방에 허무하게 끝난다. 치열한 공방전이라고까지 생각되지 않아 여러모로 아쉬웠다. 어쩌면 작가는 <은수의 레퀴엠>부터 이번 <악덕의 윤무곡>, 다섯 번째 작품인 <복수의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지내는 미코시바의 감정에 희미한 불씨를 되살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이번엔 기대만큼 아니었어도 여전히 이 시리즈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복수의 협주곡>에 있을 듯 싶다. 그래서 평소 요코라는 여자의 사생활이 은근 신경 쓰였다. 이 여잔 무엇으로 사는지.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미코시바에게 남은 유일한 여자가 그녀가 되지 않을까? 두 사람 사이에 로맨스가 싹틀 수도 있겠단 근거 없고 무책임한 망상을 벌써부터 하는 건 왜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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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트릭의 모든 것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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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어주는 신

회사 여자 화장실에서 막힌 변기가 저절로 뚫리고 바닥의 물까지 청소된 사건, 일면 기이한 현상이긴 하나 바쁜 업무를 감안하면 별일이 다 있네 라는 정도로 넘길 일인데도 종일 미스터리하다며 난리치는 로쿠탄다 여사도 은근 웃기지만 반전만큼은 익숙하면서도 친근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타입의 서술트릭이다. 유명한 모 추리소설을 오마주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회사 이름부터가 복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

별장에 침입한 무장강도 네 명에게 억류된 일본인 두 사람. 강도 세 명이 잠시 자리 비운 사이에 인질을 감시하던 강도 한 명이 살해된 사건이 일어난다. 여기는 외딴 곳이라 외부인의 침입의 흔적이 없는데다 인질들은 밧줄에 꽁꽁이라 손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 강도들은 자기들끼리 용의자로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이 험악한 분위기에 눈치 없이 떠드는 인질은 무엇이고 신경 곤두 선 강도들이라면 제지할 법도 한데라고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역시 진상은 지극히 단순한 서술트릭이겠으나 속여 넘기는 것도 재주다.



별생각 없이 산 책의 결말

주인공이 칵테일 바에서 일하던 중 사장에게 얼마 전 읽은 추리소설을 들려주고 트릭을 알아 맞춰 보라며 내 준 퀴즈. 친구와 함께 영화신작을 보러가기로 한 약속에 대하여 취소전화를 건 누군가에 이어 한 남자가 강가에서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완벽한데 여기에도 서술트릭이 들어 있다. 역시 추리소설은 시대와 세태를 반영하는 척도라고 하지 않던가? 꽤 괜찮았다.

 


그 외에도 많은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세 편만 추려 간단한 감상만 남긴다. 처음부터 완벽한 보안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이고도 천연덕스럽게 서술트릭을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놓는 작가의 자신감은 선전포고나 다름없겠다. 속이려는 작가와 거기에 도전한 나, 소설 속 등장인물인 벳시씨 자체도 트릭이었기에 놀랐고 그 자체로도 유머스럽고 즐거운 독서체험이었다. 특히 작가의 후기에 제대로 한 방 먹은 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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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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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명이 극도로 발전하면 인류는 어디까지 행복해 질수가 있을까? 국가가 출생부터 성장, 노후, 자유의지까지 설계하고 통제하는 미래의 세계가 펼쳐지는 멋진 신세계”. 이미 이 소설의 내용 중 일부는 현재에 이르러 유사하게 현실화 되고 있어 마냥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넘겨 버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미 인류는 다섯 계급으로 분류되어 있고 공장 제품처럼 대량 생산된 후, 아기들은 반복되는 세뇌와 학습에 의하여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길러진다.

 

 

현대에 이르러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를 감안하면 멀지 않은 미래엔, 아니면 지금에도 가족이란 공동체의 의미가 희석되고 부정당하는 걸 거부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국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선다면 이런 식으로 인위적인 출생관리가 가능하겠다. 결혼도 출산도 기피한다면 말이다. 섹스는 철저히 쾌락의 산물이 된다는 미래소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으니. 뜬금없는 설정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급이 미리 정해져있다면 보다 나은 성장과 발전을 위한 노력할 의미도 없어질 테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은 사멸될 테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명확하게 구분된다면 얼마나 어이없고 분노할 일인지. 이 소설엔 그런 점에 있어서 의문과 분노, 저항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앱실론 계급의 아기들의 뇌에 산소를 적게 공급하는 따위의 무섭고 섬뜩한 방식으로 조작하다가 성인이 되어선 소마(SOMA) 같은 약물에 의존, 중독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대마초가 합법화 된 미국의 일부 주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모두가 정신적으로 행복한 국가.

 

 

책은 불온하며 늙지도 않고 이 남자, 저 여자 닥치는 대로 만나고 사귀어도 흠이 안 되는 사회, 그래서 소설의 후반부에서 야만인과 지배자 간의 대화는 한쪽의 우월하고 철저한 논리 앞에 압승이 정해져있다는 귀결이다. 얼핏 지루할 수도 있는 대목인데 의외로 집중하게 만든 순간이었고 나조차 솔깃하게 만들 정도이니 아무도 체제에 환멸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내가 만약 소설 속 야만인이었다면 초반에 저항하겠지만 결국 백기투항하고 점차 동화되지 않을까란 상상을 해보았다.

처음엔 비판이라는 결론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독서는 현실에 만족한 채, 대안을 기피하려는 나약함을 갖춘 나에겐 말 그대로 멋진 신세계였기에. 나도 1등급으로 살게만 해준다면야. 개성이나 존엄성보단 쾌락이 때때로 더 절실할 때가 많다.​ 위선과 가식을 내세우기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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