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서지희 옮김 / 살림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조용히 해, 널 죽이려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너에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기회를 주는 거야.

질문에 대답만 해. 우리가 왜 널 여기에 가두고 있을까?“

 

이 소설의 표지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 분들이 많지만 원래 살림에서 출간되는 소설들은 원래 표지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갑니다(헤드헌터를 떠 올린다면). 더 이상 언급하면 손만 아프니까요. 대신에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반소설에서는 손길이 가지 않는 다양한 국적의 소설들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를 독일작가의 작품으로 예전에 한 번 읽은 적이 있지만 오리지널 덴마크 소설은 사실상 처음입니다.

 

소설은 한 여자가 손끝에 피가 맺힐 때까지 미끄러운 벽을 긁어대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요. 그녀는 지제장애자인 남동생과 여객선을 타고 가다 누군가로부터 납치당해 5년째 어딘지도 모를 폐쇄된 공간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범인들은 음식과 물, 용변기까지 때마다 교체해주며 그녀, 메레테 륑고로를 감금 감시하는데 아무래도 돈이 목적이 아니라 원한에 의한 복수인 것처럼 보입니다. 메레테는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중이었기에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정적이거나 이익단체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도 해보지만 사고사로 비쳐진 그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세간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며 잊혀지는 존재가 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 때 그녀의 실종에 의문을 품고 행방을 찾기 위한 수사에 돌입한 경찰조직이 등장합니다. 칼 뫼르크 경위와 시리아인 조수 아사드가 그들인데 칼은 범죄현장에 동료들과 출동했다가 범인들에게 습격 받아 동료 중 한 사람은 사망하고 한 사람은 불구가 된 상황에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외상적 장애가 있는 문제적 형사입니다.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칼은 동료들로부터 왕따 당하는데 때마침 미해결 사건을 전담하는 디파트먼트 Q가 신설되면서 수장으로 임명됩니다.

 

그렇게 자타에 의해 조수 아사드와 함께 맡게 된 첫 수사가 메레테 실종사건이었으니 그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동료형사들의 계속된 배척, 언론사 기자를 수사명목으로 협박했다는 악의성 보도까지 터지면서 미운 털 박힌 오리새끼로 낙인찍혀 버리는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단서수집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마침내 사건의 배경과 배후인물을 밝혀내는데 성공합니다.

 

사실 범행 동기는 중반부에 이르면 무엇이고 범인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도록 장치를 고안해 두었으니까요. 대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성격을 분석하는 일이 더 재밌을 거 같네요. 칼 뫼르크 경위는 이제껏 보았던 형사들과 크게 차별화될 정도로 부각되는 면은 없는 것 같지만 아사드는 좀 다릅니다. 국적이 시리아로 나오지만 정황 상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점도 많고 머리가 비상한데다 손재주도 뛰어나고 칼이 놓치기 쉬운 소소한 단서 하나도 흘리지 않고 꼼꼼히 내조하는 매의 눈이기도 해서 두 사람이 파트너로서 상당한 궁합을 자랑합니다. 그 관계의 상호작용이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키며 보여주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사실 이 소설은 독창적이라기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이 발견되는데요. 납치 감금된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것, 정치적 논리와 인기영합 차원에서 별도 신설된 경찰조직의 밥그릇 신경전, 주인공에게 자신을 안락사 시켜달라는 환자의 요청, 유능한 여성 정치인이 타겟이 된다든지 요소요소가 하반기에 먼저 읽은 북유럽의 모 스릴러 소설을 적잖이 연상시키죠. 두 소설 중 어느 것이 먼저 출간되었냐로 논란에 불을 지피기보다 스릴러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 정도로 종식하는 게 바람직 할 것 같네요.

 

그렇게 익숙한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감압 조정을 이용하여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범인들의 방식이 구출과정과 어우러져 스릴만점, 간장백배에 상당히 일조한 점은 탁월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던 스토리의 강약 전개는 불면의 밤을 달래주기에 최적화된 선택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Q가 지니는 미스테리한 상징성에 잘 어울리는 남자 아사드의 비밀과 아마게르 섬에서 칼 일행을 습격했던 빨간 체크무늬 남자 일당들에 대한 수사지속 여부도 이 시리즈가 진전되면 남겨 놓을 숙제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더욱 기대되는 후속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북유럽 스럴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던 <자비를 구하지 않는 그녀>는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픈 소설이랍니다.

 

"잘 자. 메레테.“

그는 조용히 말했다.

“부디 지옥의 영원한 불길이 너를 집어삼키기를.”

말을 마친 그는 스피커를 껐고. 이제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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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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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과 일본인은 형제와 같습니다. 우리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함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시마다 소지)

 

매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면 팩스에 금융권 대출 광고물이 쏟아지다시피 해서 들어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겠죠. 대출 받으시라는 홍보전화와 문자를 수시 날려서 바쁜 업무시간을 앗아가고 있을 정도이니 가히 쩐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런 전화가 오면 동료들 중에는 “나는 신용불량자인데 1억 그냥 빌려주느냐”며 농으로 받아치는가하면 “그 회사 직원들도 사람들 전화 상대하면서 스트레스가 오죽 많겠느냐, 불쌍하니 그냥 좋게 말해서 끊어버려라”며 다른 대처방식을 제시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정상적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사채를 끌어 빌렸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고금리를 감당 못해 인생마저 저당 잡히는 사채지옥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일은 이제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사채가 낳은 폐해에 덧붙여 야구라는 스포츠를 세트로 묶어 청춘의 꿈과 이상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좌초되고 마는 과정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결국 사채와 야구가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예상과는 달리 야구의 비중이란 것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고 느껴져서 당혹스럽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뜨거운 투혼과 승부욕, 생생한 시합 묘사 등을 기대했지만 신고 선수로 짧은 경력을 남긴 주인공 다케야 료지가 재능의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 성장을 못한 채 퇴출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별 볼일 없는 야구인생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심드렁하기까지 했습니다. 매년 스토브리그를 후끈하게 달구는 FA선수들의 이적에 수반되는 거액의 계약금에 현혹되다보면 무명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시피 하기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가려진 그들의 눈물어린 땀은 외면해 왔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도 솔직히 그들에 비해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에 자존심 상해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선수로서 재능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가진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내었노라 자평하면서 최선의 일구, 최후의 일구를 던진 다케야와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성공을 내려놓아야 했던 다케치, 두 남자의 우정만큼은 누가 뭐래도 가슴 뭉클한 순간을 남겼습니다. 무명과 유명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족적을 남긴다면 다케야의 야구인생도 박수갈채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에 족쇄가 채워진 두 청년을 보면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상대적으로 미흡한 미스터리적 결함을 현실과 맞닿은 범죄의 사회적 동기에 초점을 맞춘 방식도 여전히 유효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의 경우 범죄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모두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한껏 선보일 기회가 공평하게 배분된, 그러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에 임하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1루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는 선수가 진정 프로다"며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 것 등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고 설명하며 목표를 향해 정진하라고 당부한 양준혁, 전 삼성라이온즈 선수나 ‘일구이무’, 즉 공 하나에 승부를 걸 뿐 다음은 없다는 좌우명으로 살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왜 야구라는 스포츠에 그토록 열광하게 되는지를 새삼 공감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야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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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 <용서할 수 없는>을 읽기 전만 해도 할런 코벤의 기존 작들에 대한 괴리감이 분명 존재했었기에 다른 책들에게 밀려 한동안 책꽂이에서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더 이상 쌓이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내어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한 많은 독자들의 찬사와 호평들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그러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뒤늦게나마 확인하게 되어 한편으로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동안 코벤의 작품들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안정적인 일상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하고 그것이 점차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간다는 미스터리한 설정이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인물들 간 갈등과 불화를 거쳐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는 별반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맘을 파고드는 것은 작품 속에서 발생하는 상황들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지켜보면서 나라면 그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는 자문을 구하면서 나라도 그렇게 처신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공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흥미 있는 미스터리라는 미덕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함께 빨간색 문에 달린 놋쇠손잡이에 비친 갈고리 모양의 그림자는 “그 빨간 색 문을 열면 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의 불길한 전조를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빨간 색 문은 소아 성애자로 몰리게 된 댄 머서의 상황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댄의 스탠포드 대학시절 룸메이트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파멸과 불행들이 사실은 의도하지도, 의도되지도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라는 금기를 결과적으로 열었던 선택을 상징한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 있을 수 있는 치기라는 추억이 우발적인 사고로 한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게 되면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책임지고 속죄해야 할 최악의 상황 앞에서 피해자는 대범하게도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관용을 베푼 사실이 있습니다. 결코 쉽사리 내리기 힘든 결단에 가해자들의 처신은 각자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회피하며 뒤로 발을 빼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속죄를 실천하기도 하지요. 왜 내가 억울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면서 분을 토하는 사람도 제각각, 결국 인간 군상들의 축소판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은 용서가 용서를 낳으면서 훈훈한 반전과 결말로 마무리 지으면서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톨스토이의 명언과 ”진실로 시간이 귀한 줄을 아는 현명한 자는 용서함에 있어 지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헛된 허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새뮤얼 존슨의 명언대로 분노에 목을 옭죄도록 만들기보다는 용서라는 베풂이 당장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를 불행에서 구제해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겠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실천은 아닐 것이며 그전에 진정한 반성과 속죄가 선행되어야 함을 댄을 통해 깨닫게 될 겝니다.

그리고 코벤의 이번 작품에서도 발견되지만 시리즈물이 아님에도 전작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조연으로 간헐적인 출연을 하는데 아! 그때 그 사람하면서 기억을 한 번씩 되살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에서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웬디 모자가 아니라 헤스터 크림스타인 변호사였습니다. <아들의 방>에서 FBI에 연행된 마이크와 애덤을 위해 적극 변호에 나서는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의 맹활약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저에게 그녀의 재등장은 반갑더군요.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고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그녀를 보면 맹렬한 투견이 연상되는데 그녀가 출연한 TV리얼리티 쇼도 재밌는 대목이지만 보안관 워커와 취조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정말 정말 압권이었네요.

 

헤스터는 또 한 번 자신의 귀에 나팔 모양을 만들었다.

“얼른 대답해요, 덩치 씨. 말을 하라구요”.

“풍악을 울려야 털어 놓을 건가요?”                                         <본문 중에서>

 

그녀의 언변을 듣다보면 변호사가 아니랄까 봐 신랄하면서도 풍자가 있고 논리에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아 미심쩍기도 한데 교묘히 정당하게 포장해서 자신하게 유리하게 결론을 유도하는 기술은 감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에는 하나같이 뼈가 있고 무게가 실려 있으며 강렬한 에네르기가 장악하는 터라 읽는 동안에 완벽히 제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미키 할러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변호사 캐릭이 아닌 가 싶은데 그녀를 원톱으로 내세운 시리즈물이 나온다면 굉장할 것 같네요. 한 번쯤 작가가 고려해봤음 좋겠다는 희망사항과 함께 그 동안 다소 멀게 느껴졌던 할런 코벤과의 거리가 이번 작품으로 인해 코앞까지 당겨지는 순간이어서 만족스러웠으며, 작품별 굴곡이 심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가 이 정도 퀄리티만 꾸준히 내 놓을 수만 있다면 완소작가의 자격이 충분할 것 같네요.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부터 꾸준히 챙겨보고 싶은데 그 중에서도 <밀약>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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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두산-롯데의 2012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4차전이 사직구장에 열리던 그 날, 금요일 저녁 회사워크숍 관계로 서울 출장 왔다가 마치고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준비성 없이 내려가는 티켓을 미리 예매 안 했던지라 당근 앉아서 갈 자리는 없었고 꼼짝없이 입석이라도 발매 기기에서 조회할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한 장을 다행스럽게 건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다 야구는 롯데가 뒤지고 있어 이래저래 심란한 상태였고 일단 인근 서점으로 읽을 책을 구입하러 갔었죠. 서점은 규모가 작아서인지 있는 책들은 있고 없는 책들은 없는 수준, 레이다망에 포착하여 복잡한 머리속을 비워줄 가벼운 책으로 골랐던 것이 바로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입니다.

 

처음으로 열차입석으로 타서 연결통로에서 뻣뻣한 다리를 어루만져 가며 이 소설에 기대했던 점은 머리 아픈 추리보다는 빵빵 터지는 폭소극! 결과적으로 소리내어 웃을 일은 결코 없었다는 겁니다. 맘속으로 풋 하고 웃어 넘겨버릴 수준인데 일본식 유머는 접할 때마다 참 어정쩡한 것 같습니다. 웃길 때는 사정없이 방바닥을 구르게도 하지만 아닐 때는 썰렁함에 멍 때릴 적도 많은데 적당히 간보는 수준의 유머가 아니었나 싶네요. 차라리 유머라면 <명탐정의 규칙>이나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같은 소설들이 두 마리 토끼 잡는데 제격인데 말이죠. 너무 웃을거리에 목매었나 봅니다. 풋풋함은 있지만요.

 

일본 해안에 자리 잡은 지방 중소도시인 이카가와 시의 자칭 홈즈와 왓슨, 우카이와 류헤이 콤비가 해결하는 다섯 가지 단편들이 차례차례 선보이고 있는데 매형과 처남의 관계도 알고 보니 누나랑 이혼한 사이라고 하니 그다지 끈적끈적한 유대관계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첫 번째 단편 [후지에다 저택의 완전한 밀실]에서는 눈 내리는 저택의 지하실을 밀실로 만들어 완전범죄를 꿈꾸는 범인의 계획을 단순한 착안점에서 출발해서 쉽게 해결하는 콤비의 추리가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처음 읽는 저 같은 독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거대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는 애시 당초 기대도 말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은데 기왕이면 범인의 트릭을 정면 돌파하여 깨뜨리는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범인이 나름 고심 끝에 고안하여 보다 자신만만했었는데.. 그 성의가 가상해서라도 한순간에 허무개그로 만들면 안되지요 .ㅡ 저 같은 독자의 입장도 생각했었더라면.... 

 

첫 번째가 몸 풀기 수준이었다면 두 번째 단편부터는 나름 신경 쓴 흔적은 엿보입니다. [시속 40킬로미터의 밀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일어난 밀실살인을 해결해내는 내용인데 계획되지 않은 우발적 살인이 기막힌 타이밍에 맞춰 발생되었다는 점이 작위적이어서 역시 찜찜하기도 한데 처분을 훈훈하게, 다소 익살스럽게 매듭지은 점만은 그래도 점수를 더 줄만 합니다. 세 번째 단편 [일곱 개의 맥주상자]는 도난당한 맥주상자들이 이용한 트릭을 통해 일상 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날지도 모를 범죄 사각지대의 사소한 위험을 경고한다고 생각되는데 발상 자체가 엉뚱하다는 정도입니다. 네 번째 단편 [참새 숲 의 이상한 밤]은 가장 추리소설 적이기도 하지만 가장 흥미 없는 단편이기도 했습니다. 달콤한 러브러브를 꿈꾼 류헤이가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뭐 팔자 소관이겠죠~~~~

 

대미를 장식하는 [보석도둑과 엄마의 슬픔]은 총 다섯 편의 단편 중 가장 백미였습니다. 기상천외한 반전은 그야말로 <식스센스>급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런 설정이라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웃기는 게 묘한 앙상블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트릭!! 나머지 단편들에서 미진했던 감상을 한 방에 만회하는군요. 진짜 이상야릇한 유머였습니다.계속 이 정도로 써내려간다면 종종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을 듯 싶은데도 불구하고 편차가 상당하겠구나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표지 일러스트는 올 초에 읽었던 가이도 다케루의 <울트라 황금지구의>를 연상시키는 재밌는 착상이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내용이 그렇게 신선하게 와 닿지 않고 억지스럽다는 점은 좀 그렇습니다. 가볍게 읽어야 할 추리소설에 제가 너무나도 많은 걸 기대하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시점에 맞춰 때마침 TV에선 기시 유스케의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자물쇠가 잠긴 방>의 에피소드 1화가 방영되고 있군요. 오노 사토시와 토다 에리카도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운데다 밀실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요건 재밌을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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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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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들의 심장에 불타는 말뚝을 박으리라. 단 하나의 심장도 다시  뛰지 못하리.’(본문 중에서)

 

개인적으로 장르소설에 관해서는 단권보다는 시리즈물을 확실히 선호하는 편입니다. 애정 하는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시리즈물에서 강점을 보이는 그들이죠. 그렇게 본다면 존 버든의 데이브 거니 시리즈 2<악녀를 위한 밤>은 일단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리즈물의 특성 상 전편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658, 우연히>를 먼저 읽지 않았다는 건 사전이해라는 선결과정을 생략해버린 오류를 범했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래도 읽고 난 감상은 불리한 조건이지만 일단 써내려가고자 하는 것이고 차후에 전편을 역으로 찾아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멜러리 사건 이후 전직 뉴욕 최고의 형사였던 데이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의뢰가 들어옵니다. 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의사 스콧 애슈턴과 결혼한 신부가 오두막에서 끔찍하게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고 용의자는 애슈턴의 정원사로 일하던 멕시코인 헥터 플로레스로 밝혀지면서 사라진 그를 찾아 달라는 신부 어머니의 의뢰였습니다.

 

 

그와 별개로 이전 사건 때문에 거니와 부인 매들린에게는 많은 힘든 고비가 있었고 아직 그 여파가 있어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나 봅니다. 둘 사이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확인 못해 뭐라 판단 못하겠지만 대화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관계가 겉도는 공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들린의 입장에서는 형사직에서 은퇴한 남편이 더 이상 살인사건 조사에 연루되지 말고 부부가 자연 속에서 안락한 일상을 보내고픈 바램이 있지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는 미스터리라는 퍼즐을 짜 맞추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본능에 맘이 동하게하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당연히 부부 사이는 의견차이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금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거니는 기한을 두고 사건을 조사하기로 타협을 봅니다. 한편 이번 살인사건은 범인의 살인동기도 모호하고 흔적 없는 살해현장 주변과 도주 중 끊긴 발자국까지 도무지 단서를 남기지 않은 완전범죄인 듯 하네요. 완전범죄란 없고 완전해 보이는 현장이 있을 뿐이라는 책 소개 글이 중반 이후까지 갈지자걸음 같던 수사행보에 종지부를 찍고 범인의 트릭을 밝혀내는 복선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실살인의 동기와 트릭을 파해하는 것은 순전히 데이브 거니의 직감과 끊임없는 상상력입니다. 거기에 보태서 구체적인 물증을 통한 과학수사 없이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예리한 통찰력으로도 진실에 근접하게 되면서 동굴 입구에 모닥불을 피워 연기로 숨은 여우를 끌어내는 순간만큼은 전광석화 같은 기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여우의 꾐에 농락당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자칫 좌초될 뻔 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과정들은 조금이라도 터닝 포인트를 조절 못했더라면 오버액션이 될 악수를 절묘하게 매조지 했던 것 같습니다. 라면 끊이는 냄비의 물이 넘치기 직전 화력조절을 잘한 이치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육체보다 어떤 느낌에 따라 감응하는 거니의 조사방식은 물증주의 수사의 대가 링컨 라임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 색다른 개성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또한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도 위트와 시니컬한 냉소도 담겨있어 이를 음미하는 맛도 괜찮구요. 이제껏 만족스럽지 못했던 심리 스릴러 분야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생각되는데 몰입도가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제목인 <악녀를 위한 밤>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성폭력의 가해자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역시 신선(?)합니다. 고정관념을 과감히 바꾼 시도가 식상하지 않아 좋습니다.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꾼 점은 어찌 보면 그리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중점을 둔 포인트는 어떤 일정한 사회적 메시지가 아니라 단지 퍼즐미스터리라는 두뇌게임을 만들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니까요. 진짜 악의 근원은 달리 존재합니다.

 

어쨌거나 주인공 데이브 거니는 때론 무모해서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더한 집념어린 오기 앞에 세상은 결코 진실을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도 깨닫게 합니다. 무엇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요? 그렇게 섞이지 못할 것 같던 거니와 매들린의 관계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에야 돈독해지란 믿음을 남긴 결말 부분은 그래서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심리전으로 승부하는 이 스릴러가 많은 독자들에 매혹적으로 다가오도록 만드는 스타일을 제대로 구축했다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구요.

 

'구역질나는 OO의 자손들을 쓰러뜨리고 그들이 저지른 역겨운 행각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글을 썼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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