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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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심장에 불타는 말뚝을 박으리라. 단 하나의 심장도 다시  뛰지 못하리.’(본문 중에서)

 

개인적으로 장르소설에 관해서는 단권보다는 시리즈물을 확실히 선호하는 편입니다. 애정 하는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시리즈물에서 강점을 보이는 그들이죠. 그렇게 본다면 존 버든의 데이브 거니 시리즈 2<악녀를 위한 밤>은 일단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리즈물의 특성 상 전편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서 <658, 우연히>를 먼저 읽지 않았다는 건 사전이해라는 선결과정을 생략해버린 오류를 범했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래도 읽고 난 감상은 불리한 조건이지만 일단 써내려가고자 하는 것이고 차후에 전편을 역으로 찾아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멜러리 사건 이후 전직 뉴욕 최고의 형사였던 데이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의뢰가 들어옵니다. 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과의사 스콧 애슈턴과 결혼한 신부가 오두막에서 끔찍하게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고 용의자는 애슈턴의 정원사로 일하던 멕시코인 헥터 플로레스로 밝혀지면서 사라진 그를 찾아 달라는 신부 어머니의 의뢰였습니다.

 

 

그와 별개로 이전 사건 때문에 거니와 부인 매들린에게는 많은 힘든 고비가 있었고 아직 그 여파가 있어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나 봅니다. 둘 사이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확인 못해 뭐라 판단 못하겠지만 대화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관계가 겉도는 공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들린의 입장에서는 형사직에서 은퇴한 남편이 더 이상 살인사건 조사에 연루되지 말고 부부가 자연 속에서 안락한 일상을 보내고픈 바램이 있지만 거니에게 살인사건 조사는 미스터리라는 퍼즐을 짜 맞추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본능에 맘이 동하게하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당연히 부부 사이는 의견차이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금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거니는 기한을 두고 사건을 조사하기로 타협을 봅니다. 한편 이번 살인사건은 범인의 살인동기도 모호하고 흔적 없는 살해현장 주변과 도주 중 끊긴 발자국까지 도무지 단서를 남기지 않은 완전범죄인 듯 하네요. 완전범죄란 없고 완전해 보이는 현장이 있을 뿐이라는 책 소개 글이 중반 이후까지 갈지자걸음 같던 수사행보에 종지부를 찍고 범인의 트릭을 밝혀내는 복선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실살인의 동기와 트릭을 파해하는 것은 순전히 데이브 거니의 직감과 끊임없는 상상력입니다. 거기에 보태서 구체적인 물증을 통한 과학수사 없이도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예리한 통찰력으로도 진실에 근접하게 되면서 동굴 입구에 모닥불을 피워 연기로 숨은 여우를 끌어내는 순간만큼은 전광석화 같은 기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여우의 꾐에 농락당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자칫 좌초될 뻔 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과정들은 조금이라도 터닝 포인트를 조절 못했더라면 오버액션이 될 악수를 절묘하게 매조지 했던 것 같습니다. 라면 끊이는 냄비의 물이 넘치기 직전 화력조절을 잘한 이치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육체보다 어떤 느낌에 따라 감응하는 거니의 조사방식은 물증주의 수사의 대가 링컨 라임과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라 색다른 개성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또한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화도 위트와 시니컬한 냉소도 담겨있어 이를 음미하는 맛도 괜찮구요. 이제껏 만족스럽지 못했던 심리 스릴러 분야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생각되는데 몰입도가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제목인 <악녀를 위한 밤>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성폭력의 가해자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도 역시 신선(?)합니다. 고정관념을 과감히 바꾼 시도가 식상하지 않아 좋습니다.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꾼 점은 어찌 보면 그리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중점을 둔 포인트는 어떤 일정한 사회적 메시지가 아니라 단지 퍼즐미스터리라는 두뇌게임을 만들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니까요. 진짜 악의 근원은 달리 존재합니다.

 

어쨌거나 주인공 데이브 거니는 때론 무모해서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도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더한 집념어린 오기 앞에 세상은 결코 진실을 내어 보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도 깨닫게 합니다. 무엇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요? 그렇게 섞이지 못할 것 같던 거니와 매들린의 관계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에야 돈독해지란 믿음을 남긴 결말 부분은 그래서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심리전으로 승부하는 이 스릴러가 많은 독자들에 매혹적으로 다가오도록 만드는 스타일을 제대로 구축했다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구요.

 

'구역질나는 OO의 자손들을 쓰러뜨리고 그들이 저지른 역겨운 행각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글을 썼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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