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 <용서할 수 없는>을 읽기 전만 해도 할런 코벤의 기존 작들에 대한 괴리감이 분명 존재했었기에 다른 책들에게 밀려 한동안 책꽂이에서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더 이상 쌓이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내어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한 많은 독자들의 찬사와 호평들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그러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뒤늦게나마 확인하게 되어 한편으로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동안 코벤의 작품들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안정적인 일상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하고 그것이 점차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간다는 미스터리한 설정이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인물들 간 갈등과 불화를 거쳐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는 별반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맘을 파고드는 것은 작품 속에서 발생하는 상황들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지켜보면서 나라면 그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는 자문을 구하면서 나라도 그렇게 처신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공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흥미 있는 미스터리라는 미덕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함께 빨간색 문에 달린 놋쇠손잡이에 비친 갈고리 모양의 그림자는 “그 빨간 색 문을 열면 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의 불길한 전조를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빨간 색 문은 소아 성애자로 몰리게 된 댄 머서의 상황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댄의 스탠포드 대학시절 룸메이트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닥친 파멸과 불행들이 사실은 의도하지도, 의도되지도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라는 금기를 결과적으로 열었던 선택을 상징한다고도 보여 집니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 있을 수 있는 치기라는 추억이 우발적인 사고로 한사람을 불행에 빠뜨리게 되면서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책임지고 속죄해야 할 최악의 상황 앞에서 피해자는 대범하게도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관용을 베푼 사실이 있습니다. 결코 쉽사리 내리기 힘든 결단에 가해자들의 처신은 각자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회피하며 뒤로 발을 빼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속죄를 실천하기도 하지요. 왜 내가 억울한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면서 분을 토하는 사람도 제각각, 결국 인간 군상들의 축소판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은 용서가 용서를 낳으면서 훈훈한 반전과 결말로 마무리 지으면서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을 책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톨스토이의 명언과 ”진실로 시간이 귀한 줄을 아는 현명한 자는 용서함에 있어 지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헛된 허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는 새뮤얼 존슨의 명언대로 분노에 목을 옭죄도록 만들기보다는 용서라는 베풂이 당장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를 불행에서 구제해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겠지요. 물론 말처럼 쉬운 실천은 아닐 것이며 그전에 진정한 반성과 속죄가 선행되어야 함을 댄을 통해 깨닫게 될 겝니다.

그리고 코벤의 이번 작품에서도 발견되지만 시리즈물이 아님에도 전작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조연으로 간헐적인 출연을 하는데 아! 그때 그 사람하면서 기억을 한 번씩 되살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에서 이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웬디 모자가 아니라 헤스터 크림스타인 변호사였습니다. <아들의 방>에서 FBI에 연행된 마이크와 애덤을 위해 적극 변호에 나서는 변호사 헤스터 크림스타인의 맹활약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저에게 그녀의 재등장은 반갑더군요.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하지 말고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는 그녀를 보면 맹렬한 투견이 연상되는데 그녀가 출연한 TV리얼리티 쇼도 재밌는 대목이지만 보안관 워커와 취조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정말 정말 압권이었네요.

 

헤스터는 또 한 번 자신의 귀에 나팔 모양을 만들었다.

“얼른 대답해요, 덩치 씨. 말을 하라구요”.

“풍악을 울려야 털어 놓을 건가요?”                                         <본문 중에서>

 

그녀의 언변을 듣다보면 변호사가 아니랄까 봐 신랄하면서도 풍자가 있고 논리에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아 미심쩍기도 한데 교묘히 정당하게 포장해서 자신하게 유리하게 결론을 유도하는 기술은 감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녀가 하는 말에는 하나같이 뼈가 있고 무게가 실려 있으며 강렬한 에네르기가 장악하는 터라 읽는 동안에 완벽히 제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미키 할러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변호사 캐릭이 아닌 가 싶은데 그녀를 원톱으로 내세운 시리즈물이 나온다면 굉장할 것 같네요. 한 번쯤 작가가 고려해봤음 좋겠다는 희망사항과 함께 그 동안 다소 멀게 느껴졌던 할런 코벤과의 거리가 이번 작품으로 인해 코앞까지 당겨지는 순간이어서 만족스러웠으며, 작품별 굴곡이 심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가 이 정도 퀄리티만 꾸준히 내 놓을 수만 있다면 완소작가의 자격이 충분할 것 같네요.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부터 꾸준히 챙겨보고 싶은데 그 중에서도 <밀약>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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