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죽은 남자 스토리콜렉터 18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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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을 알아차린 첫 계기는 식사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식탐이 대단했다고 한다. 매일 같은 메뉴가 이어지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어린 마음에도 의아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또 계란말이랑 감자샐러드야?” 무심결에 이렇게 중얼거렸다가 어머니께 혼이 났다. 무슨 소리야. 어제는 햄버그스테이크였잖니. <본문 중에서>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95년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국내에 작품이 소개되었다. SF와 신본격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착안은 얼핏 이질적이고 부조화라는 색안경을 피해가기 어려울 법도 한데 읽어보고 나면 남들이 흔히 시도하지 않은 방식에서 느낀 기상천외함에 색다른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주류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분명 마니아들로부터 얻은 꾸준한 인기와 함께 이 작품의 국내출간을 갈망해왔던 분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난해하다기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고 자극적이거나 잔인한 설정 없이도 이만한 수준의 미스터리를 창안해 낼 수 있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특정한 날의 특정 행동과 현상들이 수차례 반복되고 있지만 오직 본인만이 캐치할 뿐, 주변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진행된다는 설정은 작가도 시인했지만 빌 머레이 주연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나 자신도 즉각 떠 올렸다. 타임루프를 이 영화에서 최초시도하지 않았음에도 이유 불문하고 단단히 각인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특정한 날로 되돌아가서 반복함정에 빠진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대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상상은 누구라도 한번 즈음은 해보지 않았을까? 이러한 SF적 설정에다 미스터리가 가미되면 그땐 어떠한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그 엉뚱 발랄함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더군다나 20여 전에 출간될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타임루프가 시도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실로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시작부터 사건의 절정이지만

주인공은 설정을 설명한다.

등장인물들이 한곳에 모인다.

불온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그리고 사건은 일어난다.

역시나 사건은 일어난다.

질기게도 사건은 일어난다.

여전히 사건은 일어난다.

그래도 사건은 일어난다.

싫어도 사건은 일어난다.

사건은 마지막으로 몸부림친다.

그리고 아무도 안 죽기도 한다.

사건은 역습한다.

나선을 빠져나올 때

시간의 나선은 끝나지 않는다.

 

 

목차부터가 유머러스하지만 각 파트별로 사건이 어떤 식으로 발단되어 전개되고 결말을 맡게 될지 기본적인 설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타임루프가 가진 구간반복이라는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독자들은 어떻게든 나선형처럼 돌고 또 돌아야한다. 이것은 마치 원을 그릴 때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정확히 그 지점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안으로, 어떨 때는 밖으로 뒤틀리면서 계란형이 되었다가 보름달형이 되는 식으로 원형에서 탈피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방식이 반복함정이었다.

 

 

그래서 고등학생인 소년 오바 히사사타로는 사건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인지하고 있다. 큐타로라고 잘못된 이름으로 오해받는 히사타로가 어느 순간 체험하기 시작한 건 원인을 알길 없는 이상 체질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전예고도 없이 어떤 날이 딱 아홉 번 반복된다. 어제와 오늘은 달라야 하는데 내일까지 똑같이 반복될 때 시작된 첫 날은 오리지날이 되고 다음 날 부터는 자신의 의도한 바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전개시킬 수 있음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필요에 따라, 자신의 입맛대로 규칙을 유리한 쪽으로 이용해왔다, 입시에서도 문제를 반복 입수하여 만점을 받고 천재 소릴 듣지만 이후에는 다시 꼴통으로 전락하는 등 실력을 요행으로 얼렁뚱땅 넘긴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설날에 히사타로는 외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게 된다. 사업에 성공해 가진 게 돈 뿐이지만 과거 괴팍한 성격 때문에 가족들과 불화를 겪어 세 딸 중 두 딸과 의절하고 지내왔던 외할아버지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재산과 사업체를 지정된 후계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선언한다. 수시로 마음이 바뀌어 후계자를 갈아치웠지만 공인된 유언장을 작성해 확정짓겠다는 말씀에 지금까지 서먹하게 지냈던 히사타로네 가족들과 이모네 가족들까지 모두 할아버지의 환심을 얻어 재산과 사업체를 독차지할 속셈에 각자가 동상이몽을 꿈꾼다.

 

 

이제 가족들 사이는 경쟁관계로 인해 긴장과 반복, 대립이 극심해지는데, 다음 날 히사타로는 이 시점에서 자신이 또 반복함정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인 타임루프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계속 반복해서 겪게 될 그 날에 할아버지가 갑자기 시체로 발견된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할아버지가 살해되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해 히사타로는 바쁘다. 반복함정에 빠질 때마다 범인의 살인시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럴 때 마다 철저히 어긋나버린다. 범인은 날마다 다른 사람이 되니까, 나비효과가 되어 매일 다른 결과를 낳는데 마지막 날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스터리가 이토록 유쾌하게 전개되는 경우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웃음은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지속되면서 끊임없이 낄낄거리게 하지만 미스터리물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결코 잊지 않는다. 변수란 녀석은 본래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살인이 어떤 억제력을 뿌리치고 일정의 뒤틀림을 가져다준다. 이것을 인과율이라고 달리 표현하는데 반복현상은 논리를 설명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고 반복학습과 수정작업을 통해 최적의 답안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히사타로의 고민은 깊어지고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긋남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오리지날이라고 부르는 첫날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사실 <일곱 번 죽은 남자>는 신본격을 표방하고 있지만 고도의 두뇌게임을 요하지 않는다.SF라지만 과학지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미스터리를 선호하지 않는 일반 독자층도 충분히 선호할 만하다. 이것은 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이라는 물리적 흐름에 주목하다보면 범인의 정체나 살해 동기 같은 일반적인 미스터리의 해법보다는 반전에서 지금까지 구상된 트릭들이 의외성이 아니라 규칙의 반복에서 빚어진 착각이라는 개념임을 알게 된다. 퍼즐이 아니라 넌센스 퀴즈 같은 타입이니 재미와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그 점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자칫 마이너틱한 이미지로 전락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저자는 정통계열에서 벗어난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미스터리의 한 계보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직구만으로 타자를 상대할 수 없으니 이 같은 변화구도 때론 필요하다. 강속구 투수는 수도 없이 보아왔지 않은가? 유희왕 같은 투수는 변칙이 자신 있게 살아남는 또 다른 유형이자 요령인 것이다. 아웃만 시켜낸다면 정통파나 기교파냐 하는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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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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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내 삶이 지겨울 때, 모든 걸 포기하고만 싶을 때

“이 두 글자를 기억해줘,GO!”

 

열네 살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머나먼 이국 브라질로 이민했던 소년은 무려 30여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집하기 보다는 완벽한 현지인으로 동화된 삶을 살았던 그에게 기억에서 가물거렸던 한국은 낯설면서도 과거의 어느 깊은 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끈이란 의미 때문에 조금이나마 의식해야만 했을 것 같다. 한국 이름으로는 이규석, 브라질 이름으로는 닉 페어웰(닉 페어웰로 불러주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한국인이라는 뿌리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될 듯). 닉 페어웰은 자신의 인생에서 지금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브라질에서 펴낸 책 한 권이 가져다 온 돌개바람. 브라질 청소년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삶을 바꾼 책이라며 최고를 외치는 이 책 <GO>에는 어떠한 메시지가 있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이 책의 현지에서의 인기는 실로 놀랍고 화려하다. 성인이 주인공이고 내용도 그러하지만 브라질 교육부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공립고등학교 필독서라고 하니 읽고 나서도 좀 의아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브라질 청소년들이 <GO>라는 단어로 문신도 새기고 티셔츠 운동화도 입고, 신는 등 가히 신드롬에 가까운 열풍은 인생에서 낙오하고 실패한 주인공이 자신을 구원하면서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자는 그 단순명료한 메시지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청춘들의 내면에 단비를 내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될 것이다.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았더니 그제서야 이 모든 현상들이 이해되고 정립되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나는 가난하다. 고정적인 직장도, 친구도, 당연히 여자 친구는 더더욱 없다. 작은 월세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상파을로의 바에서 디제잉을 한다. 그의 삶은 여러모로 남루하고 보잘 것 없지만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하는 것은 어릴 적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에서 자책과 원망의 한숨이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마나 희망이랄까,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겠다.

 

 

<쿠비코바>라는 제목으로 구상 중인 소설은 동유럽 국가출신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신과 똑같은 입장에 놓여있는 한 남자가 그녀를 만나는 이야기인데 상상이 현실에 이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 인생의 여자가 있었으면, 되어 준다면 이라는 바람이 소녀 진저를 만나 사랑에 빠지도록 된 것이다. 사랑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놓았다. 진저를 통해 구원받고 그녀의 소개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맡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은 기쁨과 보람에 설렌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행복의 나날들은 길지 않았다. 한순간의 오해와 실수로 그녀에게 이별통보를 받아 실연당한다. 이제 상심과 고통에 절어 다시 과거의 추레했던 시절로 퇴행해버린 나. 희망은 없다. 그녀가 없다면.

 

 

아무런 미래가 없는 루저라는 현실은 인생에서 진정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주저앉아 버린 진실에서 기인한다. 찾았다고 생각해서 시도라도 했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남는 것은 자기연민 뿐이다. 삶은 다시 재기할 때까지 기회를 무한리필해주지도 않고 냉정하게 빨리 흘러가 버리는 것만 같다. 이제야 자신의 삶으로 돌려놓을 인연을 만났는데... 부족했던 자신을 고쳐서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삶으로 변모시키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누구라도 자신을 대입시키고 응원해주고픈 마음이 굴뚝같을 거다. 더 잘 할 수 있어.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가슴에 난 실연이라는 상처는 살아갈 의지라는 연고로 치유해아만 한다. 그러기에 나의 방황은 길었다.

 

 

할아버지의 바람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했던 주인공의 아버지를 보라.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이타주의라는 도덕적 굴레에 얽힌다면 진심 행복하기 힘들다. 남들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즐겁지가 않다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신의 의지와 시간이라는 현상은 슬픔, 분노, 좌절,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과정들을 순화시키고 어느 정도 리셋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이다. 용서 못할 것도 없이. 연약함과 불안, 비참함에서 허우적거리기엔 인생은 길지 않기에 나는 멋지게 일어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도하는 수 밖에 없다, 누구의 방해도, 입김도 없이 말이다.

 

 

나는 말한다. “삶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네가 내 삶을 통해 보았듯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으로 가득해. 하지만 모든 게 최악일 때는 두 글자로 된 단어 하나를 떠올려봐. GO. 가, 앞으로 가. 글을 써, 그림을 그려, 사진도 찍어, 춤을 춰, 바느질을 해, 연기해, 노래해.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 최악일 때마다 딱 한 단어만 기억하는 거야. GO. 가, 앞으로 가. 그냥 해봐.” 포기하는 순간 삶은 죽음이다. 최악이라는 나락에 빠지지 않으려면 안주하지 말고 벽을 깨고 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만 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전제조건으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능력을 갖추기를 바라고 있다.

 

 

혼자서 잘 났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은 세상이니까. 곁에서 부축해주면서 같이 보조 맞추어 걸어줄 나, 당신 그리고 우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라면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팝 뮤지션, 특히 록 밴드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전해지는 추억에 대한 향수이다.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이 그때 그 시절에 들으며 추종했던 밴드들이 그리워서 맘 한구석이 잠시 감상에 젖는다. 당대의 대중문화가 심어놓은 소통은 단절되었지만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는 점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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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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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서 스릴러 신간이 나온다고 했을 때, 그것도 대박작이라는 풍문이 조금씩 들려왔을 때,아직 펄스에서 출간된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누구의 작품일지 내심 궁금했었다. 그런데 영국 작가 모 헤이더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럼 2012년 에드거상의 영예를 안겨다 준 (Gone)”이 나오는 건가? 했다. “(Gone)”이 제목에 들어간 다른 작품에 만족한 적 있어 그런 줄 알았고 그런 소문도 좀 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출간된 작품은 난징의 악마(The Devil Of Nanking)였는데 (Gone)”이 잭 캐프리 시리즈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걸 감안하면 2편도 국내출간 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건너뛸 일은 없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난징의 악마가 스탠드얼론이라고 해서 격이 떨어지거나 유명세에 뒤쳐질 우려는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또한 진정한 화제작이었고 왜 지금까지 한국에 선을 보이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에드거상을 수상하며 기쁨의 표정을 짓고 있는 모 헤이더의 모습이 묘한 매력도 풍기는 것도 같은데 실제 그녀의 이력은 실로 다양하면서도 특이하다. 교육행정가에서부터 도쿄에서의 호스티스 생활까지 도무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직업군을 두루두루 거쳤는데 역시 눈에 뜨이는 점은 호스티스 경력일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 같은 영국 여성에다 도쿄로 건너와 호스티스로 일을 하고 있으니 자신의 경험담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출신의 20대 여성 그레이는 우연히 1937년 중국 난징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부터 그것의 진실규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그녀를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낸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 취급을 해버린다. 그녀는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솔직히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벽안의 여성이 그 문제를 조사하고 밝혀낸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상자 수도 정확한 집계 없이 들쭉날쭉하고 날조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서슬어린 협박 앞에서 당당하게 그 시절의 일들을 공표하라고 하는 것은 감히 목숨을 내걸라고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경대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을 예고 없이 찾아와 1937중국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잔학한 행위를 촬영한 16미리 필름이 보고 싶다고 매달린다. 스충밍 교수는 필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거절하지만 끈덕지게 달라붙는 그녀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든 교수는 필름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어떤 대가를 요구한다. 체재비를 벌기 위해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된 그레이에게 손님 중에서 야쿠자 조직인 후유키파 수장 후유키에 접근해 그가 복용하는 어떤 약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했던 것.

 

 

그레이가 후유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을 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전개되던 그레이의 1인칭 시점에서 스충밍 교수의 19371인칭 시점으로 넘어가면서 화자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두렵고 소름끼치는 그날의 비극과 야만, 그리고 폭발하는 광기 속에서 무지몽매한 국가와 개인의 범죄행위를 지켜보면서 아직 과거는 종결되지 않고 무덤 속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칠뿐이라는 점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한다. 누가 그 나라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느냐며 말이다.

 

 

그런 생각을 안고 1937년 중국 난징을 회상해본다. 당시 젊었던 스충밍 교수는 미신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아내가 곧 아이를 출산할 순간에 임박해 있었다. 그 와중에 국민당 장개석 총통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믿음으로 일본군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은 수호할 것이라고 오판했다다가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국민당의 군대 대신 새로이 입성하게 된 일본군에게 다시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설마 일본군이 중국국민들을 함부로 대할까? 아닐 것이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일본군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악귀들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민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고문 등 잔학한 살육을 저지른다. 한 번 발동 걸린 이들은 피 맛에 들려 무차별적인 살인을 마치 게임을 하듯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탱크로 머리를 뭉개고 목을 베고 강간 후 살인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시체는 거대한 산을 이루고 흘러넘치는 피는 온 세상을 오직 붉은 색 하나로만 물들인다.

 

 

다시 현재의 도쿄. 그레이는 후유키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실로 위험천만한 접근을 계속 시도한다. 후유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곁을 지키는 일본인 여 간호사의 살기도 점점 위험수위를 높여간다. 남자같이 억센 체격의 간호사는 실제 휴우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을 차례차례 제거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살인마였다. 이제 그레이의 의도를 간파한 간호사를 위시한 후유키 일파의 본격적인 추적과 그레이의 사생결단 도주가 목조건물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숨바꼭질하게 되면서 스릴감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턱 밑까지 무시무시한 살의를 내비치면서 잠시도 숨을 멈출 수 없이 연속된 서스펜스의 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물리적 경계가 마침내 진실이라는 실체에 도달하게 되면 정말 속이 뒤집히는 순간이 온다.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당시 난징의 악마 또는 난징의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던 자가 누구인지,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그 문제적 물건은 단순한 야만과 광기를 넘어서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상에 의해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끔찍한 산물이었다.

 

 

그 소름끼치는 사태는 망각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마치 전통을 계승하는 거룩한 행위나 되는 것처럼 저질러왔던 그 만행은 실로 역겨워 토가 나올 지경이다. 도저히 떨쳐내지 못 할 슬픔과 한을 평생을 업보처럼 지고 왔을 스충밍 교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으려 했고 처절한 오욕을 견뎌내야만 했던 그의 믿지 못할 사연들은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의 찬사 속에서도 정작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만큼은 금서가 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유를 제시하기 때문에 참혹함은 수도 없이 몸서리치게 한다.

 

 

현재의 일본인 후손들은 과거 자신의 선대들이 저지른 이 같은 만행을 역사왜곡과 은폐라는 눈가림에 속고 있고 양심에 가책을 물어볼 어떠한 기회도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우경화를 통해 다시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총리는 중국과의 센가쿠 열도 분쟁과 관련해서 일본의 힘을 보여주겠노라고 자신 있게 다짐하고 있는데 대표적 우익 인사 중 한 명이었던 할아버지 같은 범죄자의 피가 흐르는 것을 어떻게 막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살고 싶었던 한줄기 소망을 무참히 총칼로 짓밟았던 그들에게 반성 없는 우호와 선린은 한낱 영혼 없는 메아리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난징은 우리의 역사가 아니지만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었던 우리들이라면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은 단순히 장르소설 독자에 한정짓지 말고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특별히 기억에 남을 작품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그래서 난징의 악마를 기습 출간한 펄스의 혜안에 깊이 감탄하면서 후속작 아파치는 물론이요 모 헤이더의 나머지 작품들도 신속히 공개하여 이 목타는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암튼 최고다 난징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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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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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를 품에 꽉 끌어나고 몸의 경련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한동안 그렇게 그녀를 세게 안고 있던 그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오 빌어먹을!" 율리아는 분노한 나머지 두 손을 꽉 쥐었다.

 

"열두 번째 백합이야."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추앙받고 있는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율리아 뒤랑 시리즈를 총 12편을 남겼고 <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은 시리즈의 두 번째 케이스에 해당된다. 1편부터 순차적으로 국내출간 되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유작부터 먼저 선을 보인 점은 뜬금없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차례차례 나와 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가. 보고 싶어도 1편만 선보이고 자취를 감춘 어느 인기 시리즈물이 복귀에 제동이 걸려 기약이 없다는 사례를 감안하면 고인이 된 안드레아스 프란츠는 사후에 비로소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범죄의 향연이 신묘하기만 하다. 이 시리즈는 그러하다.

 

 

 

 

열두 살 소녀 카를라는 한 달 전 처음 시작한 생리로 성장통을 겪고 있던 평범한 아이였다. 우연히 친구의 꾐에 빠져 파티에 초대받아 갔던 그날 밤에 어떤 일을 겪는다. 순진해서 세상 물정을 몰랐던 어린 소녀를 음흉한 무리들이 가만히 내 버려둘 리 만무한 것.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법이고 카를라의 인생은 지옥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율리아 뒤랑에게 12송이 백합과 성경 구절을 인용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율리아는 혼란스러워한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편지를 보낸 것일까에 골몰하고 있을 때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이제야 알아차린다. 범인은 율리아에게 어떤 힌트를 남기면서 살인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율리아와 일면식이 있는 듯한데 그녀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듬뿍 담긴 살인예고장은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식의 전면적인 도발은 들어 있지 않지만 인용된 성경구절은 계속된 살인을 막기 위해 율리아에게 주어진 도전장이자 숙제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두통거리였기도 하고.

 

 

 

 

살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달아 발생하고 살인예고장에 담긴 의미를 밝혀내지 못한 율리아 뒤랑은 언제나 한발 늦게 범인의 그림자를 따라 가기에 급급하게 되는데 살해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진 저명인사들이었던 것도 특징이다. 율리아만 모를 뿐 독자들은 범인의 심리와 범행동기 그리고 범행실행을 빠뜨림 없이 확인하게 되는데 범인의 시점과 율리아 뒤랑의 시점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어떻게 하나의 뿌리로 다시 만나게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읽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8년 전의 사건이 불러온 비극은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 측의 지극히 사적인 복수극이다. 공권력에 의지하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이 이유이다. 인간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연에는 생계 유지적 측면과 우발적인 측면, 원한, 돈 등이 대표적이겠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는 상류층에서의 범죄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겉으로는 화려한 성공에 풍족한 생활, 공인으로써 사회적 모범이란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가면 뒤에 가려진 얼굴은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상상 조차 하기 힘든 추악한 욕망 충족을 위해 위선적인 작태를 저지르고 있기에 평범한 소시민들은 그 실태를 상상 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 점을 노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자행되는 이들의 범죄는 실로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으며 범인은 마치 도장 깨기를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몸통과 머리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어 처절한 피의 복수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살인자의 눈물겹고 안타까운 사연들은 누구도 그를 비난하기는커녕 두 손 모아 응원하게 되는 심정이 된다.

 

 

 

비록 범인이 원수를 상대하는 방법이 패턴화 되어 있다는 점이 우려할 만하나 의심을 피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악이라는 나무가 수많은 가지치기를 하고 있기에 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계통의 소설에서 범인이 범죄행위에 관한 힌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성경 구절의 속 뜻이 이런 용도로 재해석되기도 한다는 것은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선입견을 통렬히 와해시키면서 효과적으로 재생산해낸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이기에 최고의 칭찬을 해 주고 싶은 결정적인 대목이다.

 

 

 

 

12송이 백합에 담긴 의미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숫자의 범위에 산정되지 않고 은밀히 숨은 그림 찾기 하는 방식은 얼마나 우아하고 산뜻한가. 틀에서 벗어나 관점을 확대시키는 그 시도가, 그 결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런 전개가 참 좋다. 무수한 상징과 은유들이 무리 없이 소설 전반에 잘 융화되니까 마지막 장을 덮고도 여운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실화를 바탕으로 사전에 꼼꼼한 조사를 통해 완성해 낸 결과물은 단지 일회성으로 즐기고 망각해버리는 가벼움이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담아내면서 왜 안드레아스 프란츠가 독일 미스터리 스릴러의 간판이 될 수밖에 없는지 세상에 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의의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프란츠의 작품세계는 당당히 전진한다. 여전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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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명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7 미치 랩 시리즈 6
빈스 플린 지음, 이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죽이고 싶은 놈이 있습니다."

 

 "빈스 플린"의  "미치 랩"시리즈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 "제거명령(Consent To Kill)"은 벌써부터 시리즈의 최고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영화화 판권이 팔린 작품 중 하나라는 소식도 이 작품의 국내출간을 기대하는 요인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리고 "빈스 플린"의 죽음은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겠지만 이 작품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특별한 의미가 되면서 여러모로 가슴 뭉클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의를 제기 할 필요가 없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이 있어 나는 책을 손에 들고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읽어 내려갔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CIA 대테러요원으로서 자국의 안보에 최우선의 중점을 두면서 세계질서에 위협이 되는 적성국들과 과격집단에 맞서 평화를 수호한다는 대의명분으로 동분서주했다면 이번에는 온전히 개인적인 복수에 촛점을 맞추고 강력하게 대응해나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총 14편의 시리즈 중 순서상으로 거의 중간에 위치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남은 시리즈의 향방을 가늠해보는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미치 랩"에게는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를 더욱 냉혹한 저승사자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르겠다.

 

 

전편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핵테러를 저지했던 "미치 랩"에게 아들을 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영적 지도자인 "사에드 아메드 압둘라"는 왕가의 "라시드" 왕자에게 "미치 랩"에 대한 암살을 간청한다. 이제 "미치 랩"의 목에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지만 상시 신변의 위협이 일상이었던 그에게 이러한 루머는 대수롭지 않았고 그 방심은 예상치도 못한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한 쪽에서는 사상 최강의 요원이자 암살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본인이 원치않는 상황에서도 익명성은 보장받지 못한 채 정치계에서는 대테러의 일등방패로 지지하는 세력과 통제불가능한 그의 파워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세력으로 양분되고 있었고,

 

 

다른 방면으로는 이런 그의 명성이 "미치 랩"의 주가를 폭등시켜 암살계획이 주도면밀하게 진행되도록 만든다. "미치 랩"에 대한 정면돌파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법, 그래서 암살자는 그를 뛰어넘고 싶단 욕망이 간질거려도 배후가 드러나는 걸 염려하는 청부자의 바람대로 사고사로 위장하려고 시도한다. 모두가 꺼려했던 그에 대한 암살작전은 마침내 "미치 랩"의 무시무시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 지구 끝까지 복수를 집행하러 추적이 시작된다.  

 

 

사실상 무모해 보였던 "미치 랩"에 대한 암살작전의 결과에는 어떤 변수가 발생하고 그의 복수는 이제 가장 당연하고 순수한 명분이 담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 정부는 그가 택할 선택을 두려워해서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미치 랩"이 평소 가지고 있었던 정치권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다시 한 번 폭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미국 정부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을 조짐이 보인다. 피치 못할 신변상의 사유로 조만간 "임기종료""권력의 이동"으로 이어질 듯 하고 그 틈새를 노리는 들개 무리의 야심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가운데 대테러조직의 운영과 집행을 둘러싼 파워게임은 "미치 랩"과 또 다른 충돌을 일으키면서 이것이 제2차 위협이 된다. 외부의 적도 경계해야 하지만 내부의 적은 더욱 경계해야한다는 비정한 현실이 "미치 랩"의 명줄을 다시 한 번 조여오는데 집안단속이 얼만큼 중요한지를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해 보인다. 

 

 

이대로라면 "미치 랩"에게 힘을 실어주던 지렛대의 한 축이 무너질 참이다. 명령과 통제에 불응하고 자신만의 의지와 판단만으로 독단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그의 방식은 이미 많은 정적들을 만들어냈지만 여태껏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두개의 지렛대였음을 감안하면 그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 같은 걱정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그보다 중요한 당면의 과제는 "복수"이다. 어떤 개인적인 경사를 앞두고 있었던 "미치 랩"에게 닥친 청천벽력같은 사태는 어쩌면 그의 팬들이 공통적으로 입방을 찧었던 어떤 지적같은 것들이 말이 씨가 되는 것 처럼 잉태된 불행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미워하지만 않았더라면 바뀔 수 있었을까?  마치 "나는 소망한다. "미치 랩"에게 금지된 것을", 같다고 해야할지. 

 

 

당연히 "미치 랩"의 대응은 어느 상황보다 신속하다 못해 몸서리치기까지 하는데 암살자와 청부자 모두 방심 속에, 또는 회피 속에서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차례차례 무참히 궤멸되는 과정들은 왜 "미치 랩"을 건드리는 일이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런 일인지 뼛속 깊이 각인시켜주는 극명한 모범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이슬람권에 대한 지독한 반감은 여전하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유연한 자세를 취할 수만 있다면 액션스릴러로서 이것 이상을 능가하는 강렬함을 체험시켜줄 작품은 보기 드물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읽은 "미치 랩" 시리즈 중 최고의 재미를 안겨다주는 작품으로서 다른 시리즈를 제쳐두고 "안톤 후쿠아"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데올로기의 전쟁이 아닌 "미치 랩"의 개인적인 동기에 의한 사적인 복수극은 헐리웃에서 블록버스터화 하기에 최적의 설정이자 시나리오일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액션 씬으로 영상화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시퀀스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같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번 작품은 결말에서 "미치 랩"이 보여 준 선택에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감성이 전달되는데 대단히 울컥하게 만들 정도의 감동이 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냉혈하고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던 "미치 랩"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마치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놓여있던 적에게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는 그를 보면 낯설기도 하면서 책의 표지에서 나온 묘지의 사진은 제2의 인생을 살게됨을 암시하는 동시에 투병생활중 생을 마감한 "빈스 플린"에 대한 애도가 연상되는 슬픔도 동시에 느껴진다. 이제 그의 작품은 남은 유작들외에 더 이상 신작으로 만날 일은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탓인지 자신의 미래를 "미치 랩"에게 어느정도 투영한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는 "제거명령(CONSENT TO KILL)"은 다시 강조하지만 시리즈에 방점을 찍는 역작 중의 역작이다.

 

   고이 잠드소서(1966년-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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