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스에서 스릴러 신간이 나온다고 했을 때, 그것도 대박작이라는 풍문이 조금씩 들려왔을 때,아직 펄스에서 출간된 작품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누구의 작품일지 내심 궁금했었다. 그런데 영국 작가 모 헤이더의 작품이라고 했다. 그럼 2012년 에드거상의 영예를 안겨다 준 (Gone)”이 나오는 건가? 했다. “(Gone)”이 제목에 들어간 다른 작품에 만족한 적 있어 그런 줄 알았고 그런 소문도 좀 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출간된 작품은 난징의 악마(The Devil Of Nanking)였는데 (Gone)”이 잭 캐프리 시리즈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걸 감안하면 2편도 국내출간 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건너뛸 일은 없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난징의 악마가 스탠드얼론이라고 해서 격이 떨어지거나 유명세에 뒤쳐질 우려는 전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또한 진정한 화제작이었고 왜 지금까지 한국에 선을 보이지 않았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에드거상을 수상하며 기쁨의 표정을 짓고 있는 모 헤이더의 모습이 묘한 매력도 풍기는 것도 같은데 실제 그녀의 이력은 실로 다양하면서도 특이하다. 교육행정가에서부터 도쿄에서의 호스티스 생활까지 도무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직업군을 두루두루 거쳤는데 역시 눈에 뜨이는 점은 호스티스 경력일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 같은 영국 여성에다 도쿄로 건너와 호스티스로 일을 하고 있으니 자신의 경험담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출신의 20대 여성 그레이는 우연히 1937년 중국 난징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부터 그것의 진실규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그녀를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낸 과대망상증에 걸린 환자 취급을 해버린다. 그녀는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솔직히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벽안의 여성이 그 문제를 조사하고 밝혀낸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상자 수도 정확한 집계 없이 들쭉날쭉하고 날조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서슬어린 협박 앞에서 당당하게 그 시절의 일들을 공표하라고 하는 것은 감히 목숨을 내걸라고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레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동경대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을 예고 없이 찾아와 1937중국 난징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잔학한 행위를 촬영한 16미리 필름이 보고 싶다고 매달린다. 스충밍 교수는 필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거절하지만 끈덕지게 달라붙는 그녀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든 교수는 필름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어떤 대가를 요구한다. 체재비를 벌기 위해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게 된 그레이에게 손님 중에서 야쿠자 조직인 후유키파 수장 후유키에 접근해 그가 복용하는 어떤 약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했던 것.

 

 

그레이가 후유키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을 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전개되던 그레이의 1인칭 시점에서 스충밍 교수의 19371인칭 시점으로 넘어가면서 화자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두렵고 소름끼치는 그날의 비극과 야만, 그리고 폭발하는 광기 속에서 무지몽매한 국가와 개인의 범죄행위를 지켜보면서 아직 과거는 종결되지 않고 무덤 속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칠뿐이라는 점도 잊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한다. 누가 그 나라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느냐며 말이다.

 

 

그런 생각을 안고 1937년 중국 난징을 회상해본다. 당시 젊었던 스충밍 교수는 미신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아내가 곧 아이를 출산할 순간에 임박해 있었다. 그 와중에 국민당 장개석 총통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믿음으로 일본군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은 수호할 것이라고 오판했다다가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국민당의 군대 대신 새로이 입성하게 된 일본군에게 다시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설마 일본군이 중국국민들을 함부로 대할까? 아닐 것이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일본군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악귀들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민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과 고문 등 잔학한 살육을 저지른다. 한 번 발동 걸린 이들은 피 맛에 들려 무차별적인 살인을 마치 게임을 하듯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탱크로 머리를 뭉개고 목을 베고 강간 후 살인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시체는 거대한 산을 이루고 흘러넘치는 피는 온 세상을 오직 붉은 색 하나로만 물들인다.

 

 

다시 현재의 도쿄. 그레이는 후유키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실로 위험천만한 접근을 계속 시도한다. 후유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곁을 지키는 일본인 여 간호사의 살기도 점점 위험수위를 높여간다. 남자같이 억센 체격의 간호사는 실제 휴우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을 차례차례 제거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살인마였다. 이제 그레이의 의도를 간파한 간호사를 위시한 후유키 일파의 본격적인 추적과 그레이의 사생결단 도주가 목조건물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숨바꼭질하게 되면서 스릴감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턱 밑까지 무시무시한 살의를 내비치면서 잠시도 숨을 멈출 수 없이 연속된 서스펜스의 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물리적 경계가 마침내 진실이라는 실체에 도달하게 되면 정말 속이 뒤집히는 순간이 온다. 일본군의 난징대학살 당시 난징의 악마 또는 난징의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던 자가 누구인지,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그 문제적 물건은 단순한 야만과 광기를 넘어서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상에 의해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낸 끔찍한 산물이었다.

 

 

그 소름끼치는 사태는 망각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마치 전통을 계승하는 거룩한 행위나 되는 것처럼 저질러왔던 그 만행은 실로 역겨워 토가 나올 지경이다. 도저히 떨쳐내지 못 할 슬픔과 한을 평생을 업보처럼 지고 왔을 스충밍 교수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으려 했고 처절한 오욕을 견뎌내야만 했던 그의 믿지 못할 사연들은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의 찬사 속에서도 정작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만큼은 금서가 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유를 제시하기 때문에 참혹함은 수도 없이 몸서리치게 한다.

 

 

현재의 일본인 후손들은 과거 자신의 선대들이 저지른 이 같은 만행을 역사왜곡과 은폐라는 눈가림에 속고 있고 양심에 가책을 물어볼 어떠한 기회도 구경조차 못하고 있다. 우경화를 통해 다시 군국주의 망령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총리는 중국과의 센가쿠 열도 분쟁과 관련해서 일본의 힘을 보여주겠노라고 자신 있게 다짐하고 있는데 대표적 우익 인사 중 한 명이었던 할아버지 같은 범죄자의 피가 흐르는 것을 어떻게 막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살고 싶었던 한줄기 소망을 무참히 총칼로 짓밟았던 그들에게 반성 없는 우호와 선린은 한낱 영혼 없는 메아리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난징은 우리의 역사가 아니지만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었던 우리들이라면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은 단순히 장르소설 독자에 한정짓지 말고 더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특별히 기억에 남을 작품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그래서 난징의 악마를 기습 출간한 펄스의 혜안에 깊이 감탄하면서 후속작 아파치는 물론이요 모 헤이더의 나머지 작품들도 신속히 공개하여 이 목타는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암튼 최고다 난징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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