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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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는 동명소설로서 3번째, 요코야마 히데오님의 소설로서 역시 3번째에 해당하는 33소설이 되겠습니다. 밟고 밟히는 약육강식의 조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가 모토였던 경찰소설을 그동안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반대편 세계에 서 있는 도둑이라는 범죄자의 입장에서 범죄의 이면을 들여 다 본다 정도로 정리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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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미카베 슈이치노비카베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밤도둑님인데 밤일을 하던 중에 경찰에 검거되어 수감생활을 하다 2년 만에 출소한 남자입니다프로페셔널 기술을 자랑하지만 34세로 아직 젊은 친구임을 감안하면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미카베는 이미 이 계통에서 상당한 연륜이 쌓인 노회한 고수인 것 같다는 착각에 내내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도 중늙은이 포스가 물씬한 미카베의 나이를 때때로 상기시켜 주는 사람이 둘 있어요. 쌍둥이 동생인 게이지와 어릴 적 친구이자 연정을 품고 있는 히사코양입니다.

 

   

 

동생은 가족 내의 불행한 사고로 죽었지만 끝내 떨쳐내지 못한 미카베의 미련인지 형의 마음속에서 동거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각 단편별 미스터리를 함께 해결해나간다는 동업자 관계로 보면 될 것 같네요. 마치 텐도 아라타<애도하는 사람>에서 시즈토의 주변을 맴돌던 그 넋을 연상시키기에 사념(思念)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어요. 그래서 그림자밟기인지도 모르겠군요.   

 

 

더불어 잊지 못할, 잊고 싶지 않은 그녀히사코미카베와의 정 때문에 시집도 안간 채 자신을 품에 안아주기만을 바라는 동안 그녀를 동시에 마음에 두었던 형과 동생의 우유부단함이랄까, 양보 같지 않은 상황이 생기는 것 자체가 답답하면서 안타까웠어요. 동생의 조언대로 새 출발해서 행복한 보금자리라도 꾸렸으면 바랄 게 없는데 미카베의 고집도 대단한 편입니다.

 

   

 

그 고집과 배짱이 만나서 놀라게 하는 점이 있다면 미카베가 어떤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 안면 있는 형사와 대면한다는 겁니다. 이 연작소설이 비록 영화 <도둑들>처럼 거액의 일확천금을 노린 한탕 신이 없지만 대신 그 소소해 보일지도 모를 사건들에 개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잠입기술을 써먹어야 한다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실적건수 올리기 위해 전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그 살벌한 현장 한가운데 버젓이 나타나 딜을 해서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장면들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등골을 싸하게 만들지요. 보통은 형사가 전과자를 겁박해 정보를 얻는데 이건 반대로 전과자가 형사에게... 이런 식이라니 지금까지는 한 번도 못 본 설정이어서 다른 그 어떤 내용들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고 덕택에 순간 몰입도가 최대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나있는데 손에 찔릴까 긴장하며 다루는 기분이란 것이겠죠.

 

 

 

당연히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솜씨는 상당히 재치 있습니다. 그 과정과 결말은 언뜻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순간순간 미묘하면서 사건해결의 쾌감과 함께 인간냄새가 감동과 진한 여운을 향수처럼 뿌리고 지나갑니다. 더 이상 경찰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은 작품을 계속 써내려 갈 필력이요코야마 히데오에게는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마음 훔칠 줄 아는 당신이 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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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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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代(삼대)

정말 한번쯤은 반드시 읽고 싶었던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가 이번에 합본 소장판으로 출간되는 바람에 드디어 그 명성을 확인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이 되지만 도약을 꿈꾸던 일본의 1948년부터 2007년까지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손자까지 3대로 이어지는 경찰집안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총 3부작으로 그려지는 대하드라마입니다.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온 안조 세이시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순사에 지원하여 경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소에서 만난 동기생 가토리 모이치”, “구보타 가쓰토시”, “하야세 유조와 함께 훈련을 마친 그들은 각자의 포부를 가진 채 근무지로 배속 받아 흩어집니다. 이후 틈틈이 셋이 여건이 될 때 마다 만나 회포를 푸는 식이었죠.

 

 

세이시는 우에노 경찰서 인근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근무하기 시작하는데 관할 내에 있는 공원에서 평소 안면이 있던 청년 미도리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 청년은 남창이었어요. 종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길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던 공원이었으며, 그중에는 남창무리도 섞여있었지요. 그 와중에 우연히 미도리를 찾던 경찰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어딘가 미심쩍다는 의심을 하게 되는 세이시.”

 

 

5년 후에는 철도원 직원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 흐지부지 되어 미결사건으로 잊혀가는 두 사건의 연관성을 찾으려했지만 세이시는 성과를 못 내고 경시청 주재 덴노지주재소 경관으로 배속 받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난 화재 속에서 세이시는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는데요, 그를 경찰에서 자살로 처리하면서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은 다미오도 뒤를 이어 경찰이 됩니다. 아버지의 동기들이자 삼촌들인 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경찰대학에 진학하려 했다가 경시청 소속의 누군가로부터의 제안을 수락하여 훗카이도 대학에 진학, 공안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혁혁한 전공을 올리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아내를 폭행하기까지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서 아버지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선 그 진실을 조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처럼 덴노지주재소로 배속 받는데 인질극에 뛰어들다 그만 순직하고 맙니다.

 

 

할아버지는 자살, 아버지는 순직... 참으로 남자들의 운명이 거짓말처럼 기구하네요. 할머니와 엄마는 줄줄이 미망인이 되어버렸으니 손주 가즈야마저 설마 같은 길을 걷게 될지는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겁니다. 오히려 가즈야는 생전에 아버지가 엄마를 폭행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던지라 경멸과 애증 정도가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은 3대를 모두 경찰관이라는 직업으로 엮어버렸으니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캐내고 싶다는 본능이 자리하게 되는군요. 같은 길을 걷는 가즈야”.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특정인물은 누구이며 현재 맡게 된 임무와 어떻게 조율하여 해결해 나갈까요?

 

 

경찰이란 조직은 시대에 따라 그 역할과 임무가 다르게 가중치가 부여되며 직업관도 근무여건도 달라졌습니다. 조직 안과 밖 모두에서 일등이 되어야했던 이들 삼부자의 모습에서 범인을 쫓아 범죄를 해결하는 사냥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 아들이었기에 피가 흐르는 인간 그 자체로 대면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백점짜리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기대치에 못 미쳤다고 하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마저 잘라낼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대의 진실을 밝혀내는 3대째의 승리에 묵직한 감동이 전해와요. 더불어 아들에게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버지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어느 아버지나 마찬가지일터, 그 기나긴 터널 밖으로 빠져 나오기까지의 강한 생존력을 장대하면서 유려하게 써내려간 필력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경찰소설의 또 다른 최고봉이 여기에 있음을 무력시위하는 것 같은 걸작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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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타이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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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뜬금없는 제목이라고들 했지만 솔직히 전혀 개연성 없는 제목이 아닐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할런 코벤<아들의 방>이 원제 <홀드타이트>로 새로이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습니다. 흔히 코벤의 작품들은 치정 또는 과거의 부정들이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일상을 뒤흔든다는 설정이 많은데 <홀드타이트>도 그중에서 특히 단골적소재인 가족애와 그 위에 드리워진 위기상황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사소한 말실수가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전개는 역시 가독성 좋습니다.

 

 

시작과 함께 한 여인이 살해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난 뒤(이유는 안 나옵니다. 궁금하면 끝까지 읽어야 알 수 있겠죠) 어느 미국의 중산층 가족으로 이야기가 넘어갑니다. “마이크 바이라는 가족인데 아버지는 의사, 엄마는 변호사라는, 겉보기에는 큰 문제없는 단란한 가정처럼 보이지요. 자녀는 아들, 딸 한명씩 두고 있구요. 최근 가장 핫한 고민거리라면 아들 애덤이 올해 열여섯 살의 사춘기 반항기를 겪고 있는데 가족들과 돌연 소통을 단절하면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버렸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아들과 대화도 시도하면서 그 원인을 알아내려 해보지만 도통 진전이 없어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냥 사춘기이려니 하고 넘어갈 단계가 아니다 싶은 초조함에 내린 처방은 아이의 인터넷을 감시해보기로 합니다. 그러다보면 아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는 거죠. 근데 아들의 사생활을 컴터로 일일이 감시하고 체크함으로서 관심개입이란 표현으로 대체하려하는 것 말인데요, 부모님의 경우에도 제가 방에 틀어박혀 컴터로 야동을 보는 건지, 리포트를 작성하는 건지 당췌 확인할 방법이란 모르셨는데 마이크부부는 작정하고 덫을 쳐놓습니다.

 

 

뭐가 걸려드는지 어디 함 볼까나! 자식들은 이런 것을 간섭이라면서 극렬 반발하겠지만요.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 부재로 인한 "단절"을 훔쳐보기를 통하여 복구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어느 정도 공감되긴 합니다. 어디까지가 개입이고 간섭인지 명확한 구분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방임을 넘어 과잉보호에 미달되도록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감시 결과가 나왔을까요? 몇달전 친구 한명이 자살하게 된 시기와 아들이 변하게 된 시기가 맞물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 그리고 아들은 어느 파티에 갔다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버지 마이크는 파티현장에 찾으러갔다가 구타를 당합니다. 이제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을 다니는 부모님의 애타는 마음과는 별개로 또 다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네요.

 

 

전혀 두 사건은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코벤의 주특기가 엮기니까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지속적으로 떡밥을 뿌려주니까 페이지를 넘겨나갈 수밖에 없단 말이죠. 이제 장르소설에서 가족이라는 소재는 어느덧 한국 사람들이 밥 먹을 때 곁들이는 김치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불화, 가족의 중심축이 된 아이가 범죄에 연루될 때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테이큰식 진행, 그리고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 이런 익숙함을 즐길 것이냐 외면할 것이냐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범인과의 대치과정에서의 개연성 부족이라든지 해결방식이 좀 좋아 보이지 않다는 점에 덧붙여 에섹스군수사과장 로렌 뮤즈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중반까지 간간히 사건에 대한 단서를 캐고 가던 그녀가 어느 순간 증발했다가 다 해결되고 나니까 엔딩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부모들의 고군분투기라면 경찰의 역할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면 제대로 된 능력을 과시 못해 사장된 캐릭터라는 점에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다들 언급하시는 도입 부분, 진화론과 창조론의 퓨전화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범인이 타켓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자 떠벌이는 내용이지만 읽는 이의 눈과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네요. 만약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만한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고 논리가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보면 익숙함의 2% 부족은 어쩔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균열 없이 유지하기 위해 부모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마이크부부에게는 힘을 실어주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계획은 누구에게나 시작은 완벽했지만 우연이란 변화가 개입한다면 암초와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 위험을 바로 조정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죠. 그렇다면 탄생이 축복 그 자체였을 부모님들의 환희와 이후 겪고 계신 조마조마한 줄타기를 우리는 똑바로 공감하며 컸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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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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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사회의 키워드들을 놓고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고령화 가족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인 "사와무라 씨 가족"에게서 "미래의 우리 집인 것 같습니다."라는 카피문구가 눈에 들어온다면 일단 드는 생각은 "맞아, 우리 가족도 나중에 이랬으면 좋겠어.""고령화 가족이 주축이 된 고령화 사회는 무작정 두렵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양자택일의 반응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이 가족들을 만나봅시다. 아버지 사와무라 시로(70)는 회사원 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했고 엄마 사와무라 노리에(69)는 요리가 특기에 최근 뜨개질을 하면 눈이 아프고 으깨지 않은 팥소를 좋아한답니다. 사와무라 히토미(40)은 회사원인데 현재 독신이며 살짝 억척스런 성격으로 소개됩니다. 그래서 세 사람의 평균연령이 60세인 고령화 가족인 것이죠.

 

 

"히토미양"은 연세 많으신 엄마에게 어깨 잠깐만 주물러 달라고 하는데요. 엄마의 입장에선40살이나 먹은 딸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날이 오리라 상상도 못했겠죠. 반대로 손주의 안마를 받으셨어야할 연세이신데,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런 딸의 입장에선 꼬꼬마 시절을 기억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셔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는

것처럼도 보여요. 어렸을 적 일일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소녀가 이제는 스스로 자기 앞

가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이란 걸 자각해야 한단 말이죠. 물론 날이 갈수록 연약해지

시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는 점도 잊진 않습니다.

 

 

찹쌀떡을 사면서 목에 걸려 체하시는 긴급 상황이 생길까봐 응급조치를 미리 검색하는 경우죠. "그 무렵에는 엄마가 건강했었지라고 지금을 떠올리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도 해보아요.부모님 생각은 또 어떠실까요? 아침부터 영정사진을 찍으려 하시는 아버지...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그 이름을 한번 불러 보고 싶지만 이젠 부를 수 없게 되자 어머니 스웨터를 들며 회한에 잠기시는 어머니 모습... 두 분 모습이 짠합니다.

 

 

또한 딸이 늙도록 시집도 안가고 있지만 크게 닦달하지 않으시지만 내심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 그렇지만 막상 시집 가버리면 허전해서 우실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지금 이대로 셋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염원도 동시에 있습니다. 그게 부모님의 마음 아닐까요? 저도 늦게 결혼할 때까지 부모님과의 동거기간이 길어서 세 사람 각자의 모습과 처지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네요. 공감이 많이 가더라구요.

 

 

"희한한 습성"편에서는 외출에서 돌아올 때, 가족 모두가 아주 잠깐 딴 데를 돌아보는 습성을 보여주는데요. 반려견이 죽은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습관처럼 개집이 있던 위치를 돌아보게 하는 모습도 나이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이별의 한 단면임을 잘 나타내네요.

 

 

제일 공감되는 대목은 "40대의 이별"입니다. 긴 머리, 민소매, 미니스커트를 더 이상 할 수 없어 이별하게 되는 나이대인 40!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해도 될 것 같은 어린 시절의 기대와는 달리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이별과 만남의 교차입니다.

 

 

돋보기, 주름살, 흰머리에서 출발하여 질병, 노화 더 나아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물론 요즘은 70대가 경로당에서 담배심부름 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 로 다들 젊게 사시니까 얼마 전 모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이 실제나이보다 자신이 더 동안으로 보인다는 믿기지 않은 자신감을 보여주더라는 뉴스도 보았습니다만...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20대 중반의 여교사들을 떠올려보면 결혼도 안했는데 외모나 말투가 어찌나 아줌마스럽게 보이던지(또래 아이들은 다 아줌마 취급함) 지금 30대 여성들을 보면 그때의 20대 아가씨들보다 상대적으로 한참 어려보일 정도니까요. 이 점이 자신감으로 작용

하는지 히토미양처럼 독신으로 부모님과 동거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경우가 증가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만화는 결혼 안 하고 부모님과 계속 동거하는 것도 괜찮다는 점만 어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퇴직연금으로 근근이 살고 있기 때문에 차비가 덜 드는 장소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동창모임이나 딸이 엄마랑 집 리모델링을 논의할 때 고령자를 위해 문턱을 없애는 설계방식을 언급하는 자체가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가족들의 그늘을 고민스럽게 보여주는 겁니다.

 

 

때문에 이 만화가 마냥 재밌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 팔팔한 청춘이어서 먼 미래의 뜬금없는 상황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40대에 이미 들어선 저의 입장에선 어둡고 무겁게 다가오는 만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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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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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윗과 골리앗은 성서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에 하나임을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양치기 소년 다윗이 블레셋족의 거인인 골리앗에 당당히 맞서 돌팔매로 그를 한방에 때려잡았다는 이야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될 만큼 승부의 세계에서 약자의 통쾌한 승리로 비유될 정도 역사가 깊지요. 지금까지는 성서 속의 이야기니까 큰 의문 없이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던 게 사실입니다.

 

 

이쯤해서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져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만화가 나타났습니다. “골리앗2미터가 넘는 장신이란 것 외에 전투에서 그냥 적에게 말로 도발했다가 그깟 돌팔매 하나에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거죠. 이전 전투에서 수많은 아군들을 쓰러뜨려 공포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친 적도 없었던 거였고 최초의 도발이 허무하게 죽음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다윗은 용맹함이 부각되어 나중에 왕까지 되지만요.

 

 

여기에 영국작가 톰 골드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야기에 상상력을 불어 넣습니다. 골리앗은 부대 내에서 뒤에서 다섯 번째로 검술이 약한데다 키만 컸을 뿐, 행정병이라 단 한 번도 전투에 나선 적 없는 순둥이로 말이죠.

 

나는 가드의 골리앗이다.

블레셋인들의 전사다.

내 너희들에게 도전한다.

 

한 사람을 골라서

내게 그를 보내면

우리는 싸울 것이다.

그가 나를 죽일 수 있다면

우리는 너희들의 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죽인다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과연 순전히 그의 의지에서 나온 발언이었을까요?

명령대로 읽었을 뿐인데....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이 남자는 어쩌면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냥 서 있었는데 갑자기 돌멩이가 날아와 쓰러졌다면 무모한 심리전에 말려든 가련한 병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이 상상력 앞에 결말은 참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만 남깁니다. 다 아는 사실이니 스포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예상하고 있던 전개 앞에서도 이 청년은 밟히고 또 밟혔어요. 꽃보다 아름답고 순순했던 골리앗이 덩치 값 못한 패배자의 낙인으로 찍혀 있을 때 그 누구도 그 외로운 넋을 어루만져 달래주는 일에 인색했습니다.

 

 

그 점이 안타까웠던지 작가는 우울한 갈색 톤의 배경과 귀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강렬한 한방 그리고 묵직한 여운과 슬픔을 전해주면서 영국식 스타일이란 이렇다는 점도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때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도 말 못할 아픔과 반전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면서요. 이것이 픽션임을 감안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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