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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평점 :
<그림자밟기>는 동명소설로서 3번째, “요코야마 히데오”님의 소설로서 역시 3번째에 해당하는 3∙3소설이 되겠습니다. 밟고 밟히는 약육강식의 조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가 모토였던 경찰소설을 그동안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반대편 세계에 서 있는 도둑이라는 범죄자의 입장에서 범죄의 이면을 들여 다 본다 정도로 정리해보렵니다.
주인공 “미카베 슈이치“는 “노비카베”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밤도둑님인데 밤일을 하던 중에 경찰에 검거되어 수감생활을 하다 2년 만에 출소한 남자입니다. 프로페셔널 기술을 자랑하지만 34세로 아직 젊은 친구임을 감안하면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미카베”는 이미 이 계통에서 상당한 연륜이 쌓인 노회한 고수인 것 같다는 착각에 내내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도 중늙은이 포스가 물씬한 “미카베”의 나이를 때때로 상기시켜 주는 사람이 둘 있어요. 쌍둥이 동생인 “게이지”와 어릴 적 친구이자 연정을 품고 있는 “히사코”양입니다.
동생은 가족 내의 불행한 사고로 죽었지만 끝내 떨쳐내지 못한 “미카베”의 미련인지 형의 마음속에서 동거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두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각 단편별 미스터리를 함께 해결해나간다는 동업자 관계로 보면 될 것 같네요. 마치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에서 “시즈토”의 주변을 맴돌던 그 넋을 연상시키기에 사념(思念)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어요. 그래서 그림자밟기인지도 모르겠군요.
더불어 잊지 못할, 잊고 싶지 않은 그녀“히사코”가 “미카베”와의 정 때문에 시집도 안간 채 자신을 품에 안아주기만을 바라는 동안 그녀를 동시에 마음에 두었던 형과 동생의 우유부단함이랄까, 양보 같지 않은 상황이 생기는 것 자체가 답답하면서 안타까웠어요. 동생의 조언대로 새 출발해서 행복한 보금자리라도 꾸렸으면 바랄 게 없는데 “미카베”의 고집도 대단한 편입니다.
그 고집과 배짱이 만나서 놀라게 하는 점이 있다면 “미카베”가 어떤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하여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 안면 있는 형사와 대면한다는 겁니다. 이 연작소설이 비록 영화 <도둑들>처럼 거액의 일확천금을 노린 한탕 신이 없지만 대신 그 소소해 보일지도 모를 사건들에 개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잠입기술을 써먹어야 한다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실적건수 올리기 위해 전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그 살벌한 현장 한가운데 버젓이 나타나 딜을 해서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장면들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등골을 싸하게 만들지요. 보통은 형사가 전과자를 겁박해 정보를 얻는데 이건 반대로 전과자가 형사에게... 이런 식이라니 지금까지는 한 번도 못 본 설정이어서 다른 그 어떤 내용들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고 덕택에 순간 몰입도가 최대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나있는데 손에 찔릴까 긴장하며 다루는 기분이란 것이겠죠.
당연히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솜씨는 상당히 재치 있습니다. 그 과정과 결말은 언뜻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순간순간 미묘하면서 사건해결의 쾌감과 함께 인간냄새가 감동과 진한 여운을 향수처럼 뿌리고 지나갑니다. 더 이상 경찰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은 작품을 계속 써내려 갈 필력이“요코야마 히데오”님에게는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 마음 훔칠 줄 아는 당신이 짱 ^^